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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돈을 써야만 행복할 수 있을까요? 소비하지 않고도 재밌고 다채롭게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은 분명 있을 겁니다.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의 '무소비 OO'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편집자말]
오랜만에 자전거를 타고 나갔다. 며칠 전만 해도 쌀쌀한 날씨였는데 서둘러 여름이 온 듯 날씨는 더웠고, 초록은 푸르렀다. 민들레 홀씨들이 시야를 방해하며 날아다니는 모습이나 솜뭉치처럼 굴러다니는 모습마저도 아름답다고 느끼게 된 건,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예기치 않게 우리 삶에 들어온 코로나는 내가 삶을 바라보는 모습을 참 많이 바꾸어놓았다. 미처 알지 못했던 계절의 아름다움과 공기의 상쾌함을 온몸으로 체험하는 경험은, 내가 운동을 바라보는 시선이 통째로 바뀌기 이전에는 몰랐던 일이었다.

특별한 장비나 준비 없이 운동화만 신고 문득 나서도 되는 달리기나 자전거 타기는 무척이나 진입장벽이 낮은 운동이다. 계절을 오감으로 느낄 수 있고, 배우지 않아도 되며, 무엇보다 가성비 또한 최고이니 일석삼조라고 할 수 있는데 사실 어찌 일석삼조일 뿐일까. 안전하게 자연을 즐길 수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장점은 차고 넘칠 것이다.

헬스클럽 등록이 당연한 줄 알았다
 
고요하고 한적한 자전거길, 자연이 주는 울림이 좋습니다.
▲ 자전거길 고요하고 한적한 자전거길, 자연이 주는 울림이 좋습니다.
ⓒ 은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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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내가 처음부터 이렇게 무소비 운동의 예찬론자는 아니었다. 코로나 뉴노멀이 시작되기 전엔, 나도 남들처럼 피트니스센터에 다니는 평범한 중년의 아줌마였다.

희한하게도 커피 전문점보다 고기 정육점이 더 많은 우리 동네에는 그렇게 잘 먹어 찌운 살을 열심히 빼야 하지 않겠냐는 듯, 100미터 간격으로 대형 피트니스센터가 다섯 곳이나 줄지어 있다. 줄줄이 오픈하는 헬스장에서는 회원을 모집하기 위해 시도 때도 없이 특급 할인 이벤트를 열었는데 그 광고 문구를 보고 있자면 헬스장 문을 두드리지 않기가 더 어려운 일이었다.

'얇아지는 옷차림, 나만 두꺼워질 수는 없잖아요!!' 같은 자극적인 문구들은 '할인도 많이 해주는데, 이렇게 운동하기 좋은 동네에서 정말 운동 안 할 거야?'라고 들쑤시는 느낌이라고 할까. 그러니 운동을 하든 안 하든 일단 피트니스센터에 등록은 하고 보는 일은 당연했다.

그런데 날씬하고 건강한, 아름다운 몸을 만들기 위해 운동을 해야 한다는 건 알겠는데, 문제는 음악에 맞춰 뛰고, 무거운 기구를 들어 올리고, 훈련받듯 버피를 해야 하는 것이 너무나 괴로웠다는 것이다.

대형 센터이다 보니 요가나 필라테스 같은 프로그램도 물론 있었지만 여전히 전신거울 앞에서 옆사람에 비해 뻣뻣한 나의 몸을 시시각각 확인하는 일은 그다지 유쾌하지 않았다.

그렇게 재미도 없는 운동을 꾸역꾸역 하던 어느 날, 느닷없이 닥친 코로나에 나는, 기다렸다는 듯 헬스장에 시원스레 이별을 고하고 공원을 찾았다. 이렇게 후련한 걸 왜 이전에는 몰랐는지, 아마도 피트니스센터에 가야지만 제대로 운동하는 거라는 착각 때문이었을 것이다.

참 이상하게도 푸른 숲, 맑은 하늘, 고요한 나무와 몽글몽글한 구름, 그리고 별을 보고 걷고 있노라면 가꿔야만 할 것 같던 내 몸에 더 이상 시선이 가지 않았다. 헬스장의 벽면을 모두 채운 전신거울 앞에서 내 몸만 바라봐야했던 시선, 나의 지방을 무례하게 지적하던 트레이너의 그 시선으로부터 해방되었다는 것이 무엇보다 마음에 들었다.

어차피 변하게 되어 있는 몸, 날씬하지 않다고 탓하기 전에 그 몸을 보는 시선에 너그러움을 담는 것은 어떨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해야 할 자기관리란 무릇 마음관리 아닐까 하는 생각도. 그리고 사실 말이지만 어차피 아무리 가꿔도 타고난 몸매는 못 바꾼다. 살을 아무리 빼도 다리가 길어지지 않는 것처럼.

계절을 즐기는 소풍 같은 운동

그렇게 시야가 넓어지자 비로소 어차피 되지도 않을 몸을 만드느라 돈 쓰고 고생하는 것이 의미가 있겠냐는 내밀한 외침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아름다운 몸에 대한 열망이 나쁜 건 아니지만, 아름다운 몸과 건강한 몸이 같지 않으니 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의 무소비 운동이 가진 가장 큰 장점은 마지못해 하는 운동에 비해 그 효과가 남다르다는 데 있었다. 아무리 죽어라 근육을 만들고, 현기증이 나도록 버핏을 해도 좀처럼 나아지지 않던 체력이 단지 걷고 뛰기만 했는데도 몰라보게 좋아졌다는 건 정말 신기한 일이었다.

돈을 내고 하는 운동이 아니니 성취욕에 지극히 소극적이었는데도 말이다. 아주 개인적인 판단이지만 계절을 즐기는 소풍 같은 운동이 내 마음마저 건강하게 만들어준 탓은 아닐까.

나는 이젠, 더이상 피트니스센터에서 땀 흘릴 일이 없을 것 같다. 탄탄한 근육과 젊어보이는(?) 몸을 위해 노력하는 대신에, 봄이면 지천에 깔리는 꽃들의 향기를 맡을 것이며 여름이면 진한 풀냄새를 풍기는 풀들 사이를 질주할 것이다.

가을의 단풍과 겨울에 내리는 소복한 눈까지, 네 계절을 오롯이 즐겨볼 욕심은 생각만 해도 설레는 일이다. 공짜로 즐기는 자연에 체력과 정신건강까지 따라오니 이보다 더 좋은 운동은 없지 않을까.

그러고 보니, 인생을 다시 시작한다면 여행도 더 많이 다니고 석양도 더 자주 구경하리라는, 켄터키주 시골의 85세 나딘스키 할머니의 진한 아쉬움이 유난히 생각나는 계절이다.
 
인생을 다시 산다면 다음번에는 더 많은 실수를 저지르리라. 긴장을 풀고 몸을 부드럽게 하리라. 여행을 더 많이 다니고 석양을 더 자주 구경하리라. 산에도 더욱 자주 가고 강물에서 수영도 많이 하리라. 아이스크림은 많이 먹되 콩요리는 덜 먹으리라. 내가 인생을 다시 시작한다면 초봄부터 신발을 벗어던지고 늦가을까지 맨발로 지내리라. - 나딘스테어 <내가 인생을 다시 산다면>

우리에게 또다시 푸르른 계절이 왔으니, 자 이제 한번 신발을 벗어볼까.

태그:#무소비운동, #달리기, #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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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고 글쓰는 일을 좋아합니다. 따뜻한 사회가 되는 일에 관심이 많고 따뜻한 소통을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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