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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수정 : 22일 오후 2시 50분]

광주역에서 멀지 않은 광주광역시 북구 신안동 121-2번지 방향으로 걷다 보면 도롯가에 웬 표석이 하나 서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제목부터가 벌써 흥미로운데 바로 태봉산 유래비다.

보통의 경우 태봉산(胎封山)의 지명은 태실이 있기에 붙여지는데, 유래비가 있다는 것은 과거 이곳에 태봉산이 있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하지만 주위를 둘러봐도 산 같은 것은 보이지 않기에 태봉산 유래비와 도심 속 풍경은 묘한 이질감을 보여준다.
 
신안동 121-2번지 앞 도로가에 세워져 있다.
▲ 태봉산 유래비 신안동 121-2번지 앞 도로가에 세워져 있다.
ⓒ 김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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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런지는 태봉산 유래비에 있는 안내문을 보면 알 수 있다. 과거 이곳에는 평지에 그릇을 엎어둔 듯한 둥근 봉우리 형태의 태봉산이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지형은 태실에서 길지로 손꼽히던 장소였고, 실제 다른 태실들에서도 평지에 둥근 봉우리가 있는 지형이 다수 확인된다. 또한 1960년대에 찍힌 태봉산의 사진을 보면 산 정상에 태실비로 추정되는 비석이 있는데, 지금은 행방을 알 수가 없다. 

태봉산의 태실은 용성대군의 태실

태봉산 유래비의 안내문을 보면 해당 태실의 발견은 극심한 가뭄의 영향이었다. 1928년에 광주 지역은 가뭄으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이에 마을 사람들이 기우제를 지낸 뒤 산 정상에 암장된 무덤을 파헤쳤는데, 이 과정에서 태함의 존재가 확인되었다고 한다. 또한 태함의 내부에서 태항아리와 태지석, 금박 등이 출토되었다. 
 
안내문을 통해 태실의 발견 과정을 알 수 있다.
▲ 태봉산 유래비의 안내문 안내문을 통해 태실의 발견 과정을 알 수 있다.
ⓒ 김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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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출토된 태지석의 명문을 통해 인조와 인열왕후 한씨의 소생인 용성대군(龍城大君, 1624~1629)의 태실로 확인되었다. 태지석에는 '황명천계사년구월초삼일진시탄생/왕남대군아지씨태/천계오년삼월이십오일장(皇明天啓四年九月初三日辰時誕生/王男大君阿只氏胎/天啓五年三月二十五日藏)'이 새겨져 있다. 이를 통해 천계 4년인 1624년(인조 2) 9월 초4일에 태어난 왕비 소생의 대군의 태실인 점과 천계 5년인 1625년(인조 3) 3월 25일에 태실이 조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용성대군의 태실이 있던 태봉산은 1967년에 헐리게 되는데, 그 이유는 경양방죽과 관련이 있다. 경양방죽은 광주광역시 동구 계림동 일대에 있던 저수지로, 당시 태봉산을 허물어 경양방죽을 매립하는 데 썼다. 때문에 지금은 태봉산과 경양방죽은 사라졌고, 시간이 흐르면서 변해버린 도심 속에 태봉산 유래비와 벽화, 지명 등의 흔적으로만 남아 있는 것이다.

재미있는 건 1625년에 조성된 태실임에도 1872년에 제작된 <전라좌도 광주지도>에 '고려왕자태봉(高麗王子胎封)'으로 표기되어 있다는 점이다. 불과 247년 밖에 지나지 않았음에도 용성대군이 아닌 고려 왕자의 태봉으로 표기된 점은 그만큼 태실의 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또한 전승과 실제 태주가 다를 수 있음을 용성대군의 태실을 통해 알 수 있다.
 
광주역사민속박물관의 야외에 전시 중이다.
▲ 용성대군의 태함 광주역사민속박물관의 야외에 전시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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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성대군의 태실과 관련한 내용이 적혀 있다.
▲ 안내문 용성대군의 태실과 관련한 내용이 적혀 있다.
ⓒ 김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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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태봉산이 사라지면서 용성대군의 태실 석물은 뿔뿔이 흩어졌는데, 태함의 경우 광주역사민속박물관의 야외로 옮겨져 전시 중이다. 반면 태항아리와 태지석은 국립광주박물관으로 옮겨졌는데, 두 장소 모두 태봉산 유래비에서 5km가량 떨어져 있다. 태봉산 유래비와 함께 주목해볼 장소다. 

이처럼 길 위에서 만난 태봉산 유래비를 시작으로 태봉산과 용성대군의 태실 흔적을 찾아볼 수 있었다. 앞으로도 그 자리를 지키고 서 있을 태봉산 유래비는 오래도록 이곳에 태봉산과 용성대군의 태실이 있었다는 것을 말없이 증언할 것이다.  

태그:#태봉산, #광주 신안동 태봉산, #경양방죽, #용성대군 태실, #태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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