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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 거문도는 여수와 제주의 중간쯤에 있습니다. 여수에서 115km 떨어져 있고 여수 여객선 터미널에서 뱃길로 2시간 20분이 걸리는 머나먼 섬입니다. 여수보다는 고흥에서 더 가깝습니다. 하지만 행정구역상 여수에 속해 있습니다.

여수에서 산 지 그새 20년이지만 거문도를 한 번도 못 가봤다가 지난 3월 말경에야 겨우 다녀왔습니다. 올초까지만 해도 두 개의 선사에서 운항하는 배가 하루 네 차례 오갔습니다. 우리가 가던 날에는 배 한 대가 고장으로 운항을 중단해 한 대 밖에 가지 않았습니다.
여수-거문도를 오가는 여객선 니나호
▲ 여객선 여수-거문도를 오가는 여객선 니나호
ⓒ 정병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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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배가 오전 7시 10분 출발이라 새벽부터 서둘러 챙겨 나서야 하였습니다. 혹시나 안개가 짙게 끼거나 풍랑이라도 일면 여객선 운항이 중단될 수 있습니다. 거문도에 사는 주민이라도 여수 시내 볼일 있어 나왔다가 악천후로 배 운항이 중단돼 못 돌아가는 일이 간혹 벌어진다고 합니다. 그만큼 거문도 가는 길은 쉽지 않습니다. 다행히 우리가 간 날은 바람도 없고 바다 물결도 호수처럼 잔잔한 화창한 날씨였습니다. 

우리가 탄 여객선 니나호는 고흥 나로도와 선죽도, 초도를 거쳐 거문도 동도 선착장에 닿았습니다. 선죽도로 가는 동안 멀리 이름 모를 섬들이 보였습니다. 아마 무인도일 겁니다. 배가 선죽도에 잠시 들러 나오는데 예사롭지 않은 바위산이 눈앞에 나타났습니다. 찾아봤더니 삼각산 '쌍둥이 바위'랍니다. 정말 생김새가 쌍둥이처럼 비슷해 보입니다. 산 정상에 우뚝 솟아나 사이좋게 손을 맞잡고 있는 형세입니다. 내려서 직접 올라가 보고 싶었지만 다음을 기약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동도와 서도를 연결하는 거문대교
▲ 거문대교 동도와 서도를 연결하는 거문대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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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문도는 동도, 서도, 고도라는 세 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예전에는 이 세 개 섬이 모두 따로 떨어져 있었지만 지금은 거문대교와 삼호교가 건설돼 서로 연결되었습니다. 거문도는 1885년 영국 해군이 러시아의 남하를 막는다는 핑계로 거문도를 불법 점령하면서 벌어진 '거문도 사건'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고도 앞 바다 작은 섬들
▲ 고도 앞 바다 섬들 고도 앞 바다 작은 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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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은 거문도 사건보다 훨씬 이전부터 이 섬을 눈독 들였다고 합니다. 영국 함대는 1845년 거문도를 발견하고는 당시 영국해군성 차관이던 '해밀턴' 이름을 따서 제 멋대로 '해밀턴 항'(Port Hamilton)이라 이름 붙였습니다. 지금도 고도에는 '해밀턴' 이름을 붙인 숙박 업소가 있었습니다. 영국 함대가 우리 섬을 불법 점령해 붙인 이름인데 여태 그 이름을 써서 아쉬웠습니다. 

거문도를 점령한 영국 해군은 거문도 고도에 기지를 설치하고 약 2년 간 주둔하였다 합니다. 그 뒤 일제 강점기에는 거문도가 일본군의 군사기지로 활용되기도 하였습니다. 그 흔적이 아직도 섬 곳곳에 남아 있습니다. 고도에는 일본식 건물들이 있고 우리가 머문 동도 죽촌마을에는 일본군이 만든 벙커가 길가에 세 개나 설치돼 있는 게 보였습니다. 
 
일본군이 만든 벙커
▲ 벙커 일본군이 만든 벙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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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고도에 있는 영국군 묘지에 들렀습니다. 동도 죽촌마을에서 고도까지는 마을버스를 이용하였습니다. 거문도에서 한 대 밖에 없는 마을버스랍니다. 운전기사는 거문도 출신의 젊은 분이셨는데 차량 한 대 겨우 지나다닐 만큼 비좁고 구불구불한 콘크리트 길도 아무렇지 않다는 듯 능숙하게 운전하였습니다. 

거문도 사건 당시 거문도 고도에 주둔한 영국 해군은 약 700~800명가량이었습니다. 본디 고도에는 물이 나오지 않아 사람이 거주하지 않았답니다. 영국 해군은 이 섬에서 주둔하면서 한국 최초로 테니스장도 만들고 섬 주민을 고용해 목장을 운영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들이 머문 2년 동안 사망한 군인이 약 9명인데, 그중에 7명은 시신을 영국으로 운구해 갔고 나머지 2기의 무덤이 있습니다.
 
거문도 영국군 묘지
▲ 영국군 묘지 거문도 영국군 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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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문에는 1886년 알바트로스함 폭발사고로 사망한 윌리엄 J. 머레이(William J. Murray)와 17세 소년 찰스 데일(Charles Dale)이라 써 있습니다. 영국군 9명의 사망 사고는 '풍토병'과 '폭발사고'로 알려져 있지만, 몇몇 현지 주민의 증언은 달랐습니다. 당시 사망한 군인들 중에는 건너편 서도의 유곽에 놀러 갔다 돌아오던 중 배가 뒤집혀 사망한 군인들이 있다는 겁니다.

실제로 서도 백촌리 유림해수욕장 부근 야산에는 일본인이 운영하던 유곽이 있었습니다. 영국군 제독은 거문도 촌장을 설득해 일본인 접대부를 데려왔다고 합니다(<러시아해군성문서Ⅰ 1854~1894> no.6). 영국 해군 병사 한 명이 유곽에 놀러 가다가 배가 뒤집히자 가져간 엽전 무게 때문 익사하였다는 풍문이 돌았음을 언급한 논문(김재승, "거문도사건에서 주둔 영국군의 실상," 1997)도 있습니다. 자세한 경위야 알기 힘들지만, 영국 해군의 불법 점령부터 사망사고 관련 풍문에 이르기까지 제국에 짓밟힌 약소국, 그것도 평화롭던 남도 한 섬의 단면 같아 마음 아픕니다. 
 
고도 희망봉 가는 숲길
▲ 희망봉 가는 숲길 고도 희망봉 가는 숲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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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군 묘지 위쪽으로 '희망봉' 가는 길이 있습니다. '희망봉'이 남아공에만 있는 줄로만 알았더니 거문도에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호기심에 가봤더니 공기도 신선하고 가는 숲길이 무척 아름다웠습니다. 영국군이 만든 테니스장 안내판도 보였지만 그곳에는 들르지 못하였습니다. 
   
무인등대인 녹산등대
▲ 녹산등대 무인등대인 녹산등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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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을 먹은 뒤, 우린 국내에서 가장 오래됐다는 거문 등대는 못가 보고 대신 녹산 등대에 잠시 들렀습니다. 녹산등대는 동도에서 거문대교를 건너면 올라가는 길이 있습니다. 이 등대는 사람이 상주하지 않는 무인등대인데 가는 길이 절경이었습니다. 캄캄한 밤중 이 등대 불빛을 보고 배들이 길을 잃지 않고 나아갈 것입니다. 
  
거문도 해풍 쑥밭
▲ 쑥밭 거문도 해풍 쑥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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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문도는 '해풍쑥'으로 유명합니다. 우리가 머문 죽촌마을에도 쑥밭이 곳곳에 있었습니다. 주민들이 쑥을 일부러 키워서 파는 겁니다. 바닷바람을 잔뜩 맞고 자란 쑥이라면 효능이 훨씬 클 것입니다. 거문도, 또 가보고 싶은 섬입니다. 하지만 우릴 초대한 목사님은 "'가보고 싶은 섬'이 아니라 '살고 싶은 섬'이 되길 원한다"라고 뼈 있는 말씀을 하십니다. 

덧붙이는 글 | <여수넷통뉴스>에도 싣습니다.


태그:#거문도, #거문도 사건, #해밀턴, #해풍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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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솔샘교회(solsam.zio.to) 목사입니다. '정의와 평화가 입맞추는 세상' 함께 꿈꾸며 이루어 가기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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