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시카고>

뮤지컬 <시카고> ⓒ 신시컴퍼니


"신사숙녀 여러분! 여러분은 살인과 탐욕, 부패, 폭력, 사기, 간통 그리고 배신이 가득 담긴 이야기를 감상하게 될 겁니다. 바로 우리 모두가 매우 소중하게 여기는 그런 것들이죠."

뮤지컬 <시카고>는 이런 어처구니없는 대사와 함께 시작됐다. 재즈 음악이 관능적이고 걸죽하게 공간을 채웠고 검정색의 심플하고 섹시한 의상을 입은 남녀들이 무대에 우르르 등장했다. 생명력이 넘쳤고, 그야말로 풍자와 위트로 넘실대는 블랙코미디 같은 뮤지컬이었다. 

지난 20일 오후 7시 30분, 서울 구로구 신도림 대성 디큐브아트센터에 열린 뮤지컬 <시카고> 공연에 다녀왔다. 이날 캐스팅은 록시 하트 역에 티파니 영, 벨마 켈리 역에 최정원, 빌리 플린 역에 박건형, 마마 모튼 역에 김영주 배우로 이뤄졌다.

쇼 비즈니스에 인생을 투영한 작품
 
 뮤지컬 <시카고>

뮤지컬 <시카고> ⓒ 신시컴퍼니

 
뮤지컬 <시카고>는 1920년대 미국, 재즈의 열기와 냉혈한 살인자들이 만연하던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미국의 쿡카운티 교도소에 불륜남을 살해한 혐의로 갇힌 록시 하트가 극을 이끌어가는데, 록시 하트는 나이트클럽 댄서로, 보드빌 무대의 주연을 꿈꾸는 인물이다. 

감옥에 갇힌 록시 하트는 시카고에서 가장 약삭빠른 변호사 빌리 플린을 고용하기 위해 순진한 남편에게 오천달러를 만들어 오도록 설득하고, 변호사는 그녀의 범죄를 연예 기사의 주요 뉴스로 만들어 무혐의로 풀려나게 만든다. 살인을 저지른 킬러들은 "죽어 마땅한 놈들을 죽였으므로 나는 무죄"라고 주장하며 관객과 배심원을 유혹한다. 

이렇듯 살인을 저지르고서도 스타가 되길 꿈꾸는 록시 하트의 야망과 탐욕을 따라가며 1920년대 물질만능주의 시대를 조롱하는 뮤지컬 <시카고>는 올해로 국내 초연 21주년을 맞이했다. 누적 공연 1146회에 평균 객석 점유율 90%를 기록 중인 뮤지컬 <시카고> 한국 프로덕션에는 그랜드 마스터 최정원, 아이비, 김영주, 김경선 등 관록의 기존 배우들과 뉴캐스트인 윤공주, 티파니 영, 민경아, 박건형, 최재림이 합류해 신선한 조합을 선보인다. 

살인, 욕망, 부패, 폭력, 착취, 간통, 배신의 끝을 보여주는 <시카고>는 당시 미국 사회의 치부를 비판적으로 묘사한다. 언론에 의한 사건의 조작, 진실과 정의와는 거리가 먼 사법제도의 민낯을 풍자 형식으로 보여주는 것. 이른바 '1전 신문(penny paper)'이라 불리던 선정적이고 통속적인 싸구려 저널리즘에, 남성중심의 도덕관과 물질만능주의, 진실보다는 포장을 중시하는 외형주의에 일침을 가한다.

"모든 게 쇼 비즈니스라고!"

등장인물의 이런 외침처럼 언론에서, 그리고 법정에서 그려지는 록시 하트와 벨마 켈리, 빌리 플린의 모든 행동은 모두 쇼다. 이들은 쇼 비즈니스를 마치 게임처럼 즐긴다. 돈만 있으면 뭐든지 가능하던 그때의 부조리와 환락이 넘쳐나는 사회 풍경이 화려하고 섹시하게 그려진다. 

최정원과 티파니 영의 능글맞고 사랑스러운 연기
 
 뮤지컬 <시카고>

뮤지컬 <시카고> ⓒ 신시컴퍼니

 
 뮤지컬 <시카고>

뮤지컬 <시카고> ⓒ 신시컴퍼니

 
<시카고>는 기승전결의 평범한 플롯을 취하기보단 비사실적인 표현방식으로써 주제를 부각시키는 콘셉트뮤지컬 형식을 택한다. <시카고>가 다른 뮤지컬과 다른 점은 또 있다.

벨마가 사회자 역할도 함께 하여 관객에게 직접적으로 말을 걸기도 하며, 오케스트라가 다른 뮤지컬과 달리 무대의 정중앙에 계단식으로 위치하여 극을 적극적으로 이끌어간다. 지휘자는 배우들의 연기에 갑자기 개입함으로써 극을 환기시킨다. 무대 세트와 조명도 심플하다. 사실적인 세트가 아닌 단순한 세트에 강렬한 조명이 움직이는 연기자들의 춤과 연기를 따라가며 오롯이 관객이 드라마에 집중하게끔 한다.

재즈풍의 음악과 드라마틱하고 코믹한 안무가 절묘한 조화를 이루는 점도 <시카고>의 주요한 특징이다. 작품의 메인 테마인 'All That Jazz'는 객석에 앉은 관객들을 들썩이게 했다. 특히 무대 중앙에 위치한 14인조 라이브 밴드의 연주는 백미였다. 또한 섹시한 의상을 입은 여배우들과 근육질 몸매를 드러낸 남배우들의 관능적이고 박력 넘치는 춤은 <시카고>의 빼놓을 수 없는 매력 포인트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날 공연의 분위기를 압도한 건 벨마 켈리 역의 최정원과 록시 하트 역의 티파니 영의 케미스트리였다. 최정원은 카리스마와 코믹함을, 티파니 영은 사랑스러움과 능글맞음을 앞세워 관객을 압도했다. 최정원의 익살맞고 뻔뻔한 연기에 객석에선 자주 웃음이 터졌고, 티파니 영의 철딱서니 없지만 거부할 수 없는 사랑스러움에 관객들은 매료됐다. 극의 후반부, 두 사람이 함께 춤을 추는 장면에선 모든 관객이 흥겹게 박수를 치며 배우들과 함께 즐기는 모습이 연출되기도 했다.

최정원과 티파니 영이라는 겁 없고 섹시하고 대범한 여성 둘이 함께 이끌어가는 <시카고>를 보고 나오면서 왠지 모르게 덩달아 쿨해지는 기분이었다.
 
 뮤지컬 <시카고>

뮤지컬 <시카고> ⓒ 신시컴퍼니

시카고 뮤지컬 티파니영 최정원 박건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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