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음악을 관통하는 한 마디 단어가 있다면 불친절인 것 같아요. 나는 친절했던 적이 없어요."
 
 2021.4.16 4집 <시도미>를 발매한 셀린셀리셀리느

2021.4.16 4집 <시도미>를 발매한 셀린셀리셀리느 ⓒ 김영규


유려하게 연주되지만 튜닝이 틀어진 낡은 기타 소리. 강렬하지만 숨이 끊어질 듯 아슬아슬한 보컬. 한 번만 들어도 흥얼거리게 되는 매력적인 멜로디지만 낯설고 폐쇄적인 사운드. 4집 '시도미'에 대한 첫인상은 불친절함이다. 완성된 그림을 검은 실루엣으로 덮어버린 듯 먹먹한 거리감을 느꼈다. 

지난 16일, 앨범 발매일에 맞춰 셀린셀리셀리느를 만났다. 그리고 "왜 이렇게 만들었냐"고 무례한 질문부터 던졌다. 인터뷰를 위해 두 번 이상을 쉬지 않고 앨범을 듣고 내친 김에 1집부터 3집까지 다 듣고 난 직후였는데, 몸이 축 쳐지고 우울해진 탓이다.

"삶에서 제일 힘든 순간에 음악이 나와요. 저의 음악을 관통하는 한 마디 단어가 있다면 불친절인 것 같아요. 저는 친절했던 적이 없어요."

3집까지의 앨범 디자인이 모두 인상적이었지만, 이번 앨범은 특히 강렬하다. 단정한 스케치 노트처럼 보이는 표지를 펼치면 기괴하고 일그러진 얼굴들과 손글씨가 가득하다. 종이가 패일만큼 깊고 진한 낙서로 한 페이지를 덮어버린 일기장이 생각났다.

"그림은 이경은 작가의 작품들이에요. 우연히 작가님의 그림을 보게 됐는데, 일종의 '영감의 공유' 같은 걸 느꼈던 것 같아요. 그림의 불친절한 느낌이 내 음악과 비슷하지 않아요? 오히려 불쾌함까지 느껴져요."
   
 4집 시도미 앨범 이미지, Painting by 이경은, Calligraphy&design by GINA

4집 시도미 앨범 이미지, Painting by 이경은, Calligraphy&design by GINA ⓒ 김영규


물론 불친절함만으로 이번 앨범을 설명하는 건 불충분하다. 어떤 면에서 그의 절망은 아주 친절하게 듣는 이의 피부까지 전달된다. 심지어 가사를 귀담아 듣지 않아도 사운드의 질감만으로 그의 깊은 그림자를 알 수 있다. 3집에 이어 이번 앨범에서도 직접 모든 음향 작업을 했는데, 난해한 예술적 실험으로 느껴질 수 있지만 음악적 정서를 직관적으로 반영한 솔직한 사운드에 가깝다.

"예술적 실험은 전혀 아니죠. 그냥 제가 표현하고 싶은 걸 표현하는 것 뿐이에요. 다만 고집이 엄청 세서 가사와 멜로디만으로는 만족을 못하겠더라고요."

가사와 멜로디, 연주, 사운드, 앨범 디자인까지 관통하는 일관성은 오히려 청자와의 간격을 명확하게 벌리고 경계를 만든다. 내용은 뜨겁고 태도는 무심하다. 외로움 때문에 너의 따스함을 몰랐다고 말했으면 '이제는 알아', 혹은 '미안해'라고 말해야 하지 않나? 왜 크게 웃고만 있을까.(Track2. 행복한 노래). 하지만 사운드를 비롯한 어떤 요소도 그 괴리를 쉽게 메우지 않는다.

"오만하고 젠체하죠. 어떤 면에서는 나라는 사람이 비비 꼬여 있어서 솔직하게 표현해도 듣는 입장에서 불친절하게 느끼는 걸 수도 있어요. 요즘은 저의 노래가 대중들에게 다가갈 수 있을 지 의문이에요. 예전에는 사람들이 전부 저처럼 생각하는 줄 알았고 제가 표현하면 이해받을 줄 알았는데 점점 음악을 하다 보니 아닌 것 같아요. 공감대가 없을 것 같아요. 그래서 1번 트랙(어디의 어디즘)이 나온 거예요."
 
 Track1 어디의 어디즘 내지, Painting by 이경은, Calligraphy&design by GINA

Track1 어디의 어디즘 내지, Painting by 이경은, Calligraphy&design by GINA ⓒ 김영규

 
1번 트랙 '어디의 어디즘'은 앨범 전체의 단상이다. 스스로 내용과 태도의 괴리를 인식하며 혼란스러워한다. 명확한 거리감을 만드는 자기주장과 스스로를 나쁜 사람으로 여기며 받아들여지지 않을 거라는(Track6. 내일의 기분) 체념이 혼재되어 있다.

"하지만 결국에는 저한테 들어왔으면 좋겠어요.  어쩌면 제가 원하는 건 거의 신의 사랑인 것 같아요. 어떠한 나도 포용해줄 수 있는 신의 사랑."

아이러니하지만 이 불친절함을 지그시 응시하다 보면 공감을 요청하는 손이 분명하게 느껴진다. 차가운 심장을 내보이는 깡통로봇(Track9. 깡통로봇)의 손이다. 혹은 개미점이 된 작은 개미이거나, 개미를 덮는 손이거나. (Track7. 개미점) 멀리 떨어져 보이지만 그래서 더욱 격렬하게 느껴진다.

"시도미(Track9. 시도미)는 제가 생각하는 지향점이에요. 다 벗어던지고 짐승처럼 춤을 추는 거죠. 화도 있고, 증오도 있고, 거칠 것 없는 즐거움으로 가득한 춤. 그래서 시도미는 제가 생각하는 가장 행복한 얘기예요. 벌건 들판은 우리 생애 마지막, 끝이에요. 해가 지는 중이에요. 그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춤을 추는거죠.

공연장에서 이 곡을 연주를 할 때를 상상해봐요. 불을 다 끄고 노래를 트는 거예요. 불을 끈 상태니까 알아서 춤을 추세요, 라고 말하고. 체신과 체면 따위는 다 때려 치우고 어둠 속에서 춤을 추는 거예요. 부끄러움이 없는 환희."

 
 시도미 앨범 아트워크 Painting by 이경은

시도미 앨범 아트워크 Painting by 이경은 ⓒ 이경은

 
어둠에 몸을 맡기고 춤을 춘다면 내 안에 잠든 괴물들이 미쳐 날뛰는 걸 보게 될 것이다. 그건 해방감이고, 그의 말처럼 환희다. 그 뿐일까? 그의 불친절함에서 눈을 돌리지 않는다면 사랑과 연민, 순수와 욕망, 온갖 것이 뒤섞인 다양한 감정을 만날 수 있다. 그리고 그건 셀린셀리셀리느의 감정이 아니라 그의 음악을 듣는 사람들의 것이 분명하다. '셀린셀리셀리느'라는 정체불명의 이름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듣는 사람들의 몫인 것처럼. 그리고 우리는 그가 벌려둔 거리만큼 넉넉한 여유가 있다.

누군가 조명이 비추지 않는 무대 구석에서 노래를 부른다면 자세히 바라보자. 어둠에 익숙해져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 불친절함으로 가려지지 않는 것들이 있다.
셀린셀리셀리느 시도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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