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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지역을 여행하면서 시간을 내 들르는 곳이 있다. 오래된 사찰들이다. 불교라는 종교 공간으로 불교 문화가 집약된 곳이지만 동시에 우리의 역사와 문화, 풍습 등을 이해하는데 꼭 알아야 할 유물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부러 시간을 내 가는 경우도 많다.

사찰에서 특히 관심 있게 보는 것은 탑이다. 현재 남아 있는 불탑은 1200여 기. 백제의 부흥과 멸망, 고려인들의 민족부흥 의지가 깃들어 있다는 정림사지 오층석탑처럼 관심을 가지고 보면 역사를 아는 데 도움 되거나 흥미로운 사연의 탑들이 많아서다.

탑은 또한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독창적인 문화유산이다. 알고 보는 그만큼 우리의 역사는 물론 문화를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는 것이다. 저마다 다른 모습이라 보는 것만으로도 즐겁다는, 그래서 마음 편해지곤 한다는 표현은 어떨까.

그런데 탑을 만날 때면 종종 막연한 아쉬움이 일기도 했다. '우리 탑들이 왜 대부분 홀수 층일까?'와 같은 기본적인 것들은 물론 시대마다 어떤 특징을 보이는지 등 전반적으로 아는 것이 많지 않아서였다.

석탑들은 왜 홀수층이 많을까
 
<사찰의 비밀> 책표지.
 <사찰의 비밀> 책표지.
ⓒ 담앤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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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과 땅 중 무엇이 더 가치가 높을까? 답을 찾기가 쉽지 않다. 아니, 답이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중국인들은 이런 부분에 대한 가치를 규정해 놓았다. 천/지, 홀/짝, 남/여 따위가 그것이다. 이중 먼저 언급된 것이 더 우월한 가치를 가진다. 이를 언어의 우월성이라고 한다. 현재 우리는 가로세로라고 하지만 한자에서는 종횡, 즉 세로가로다. 이렇게 놓고 본다면 왜 탑의 수직과 수평이 홀수와 짝수가 되어야 하는지가 분명해진다.

천(하늘)-홀-종(세로)-남
지(땅)-짝-횡(가로)-여

<주역>-계사전에는 "천존지비"라하여, "하늘은 높고 땅 은 비천하다"는 언급이 있다. 이 말은 후일 '남자는 하늘이고 여자는 땅이다'라는 말로 변형되어 우리 문화에 깊은 흔적을 남기게 된다. 또 우리의 전통명절인 설날(1·1), 삼짇날(3·3), 단오(5·5), 칠석(7·7), 중양절(9·9)은 모두 홀수가 겹치는 날이다. 이는 홀수가 하늘의 양명함을 상징하는 상서롭고 길하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탑의 층수가 홀수라는 것은 쉽게 이해될 수 있다. - 75~77쪽
 
같은 대상을 유독 쉽게 설명해주는 사람이 있다. 이 책 <사찰의 비밀>(담앤북스 펴냄)이 그런 경우. 그동안 우리나라 탑 대부분이 홀수 층인 이유를 설명하는 글들을 여럿 접하긴 했었다. 그러나 음양오행을 토대로 복잡하게 혹은 두루뭉술하게 설명해 선뜻 이해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우리의 풍습이나 생활과 연결해 들려주는 이런 설명은 매우 살갑게 이해된다.

우리나라 탑 대부분이 홀수 층이긴 하지만 경천사지 십층석탑과 같은 짝수 층 탑들도 있다. 책에 의하면 "10진법 체계에서 10은 완전성을 상징한다. 그래서 10X10인 백(百)에는 '온전'과 '모두'의 의미가 있다. 즉 탑에 나타나는 10층은 기존의 홀수적인 관점과는 다른 각도에서의 완전성을 상징"이란다. 게다가 '원나라의 영향을 많이 받은' 탑들이라고 한다.

모습만으로 어떤 시대 탑인지 알 수 있다?
 
워낙 유명한 탑이라 모양만으로 어떤 탑이다 봤다면 이제부터 기단(탑 맨 아래 넓은 부분)에 중점해서 보자. 삼국시대 탑들은 기단이 크고 복잡하다가 통일신라 때 기단이 보다 간결해진다. 이후 고려시대로 가며 더 간결해진다. 아래 사진 마곡사 오층석탑처럼.
▲ 1-다보탑과 석가탑. 워낙 유명한 탑이라 모양만으로 어떤 탑이다 봤다면 이제부터 기단(탑 맨 아래 넓은 부분)에 중점해서 보자. 삼국시대 탑들은 기단이 크고 복잡하다가 통일신라 때 기단이 보다 간결해진다. 이후 고려시대로 가며 더 간결해진다. 아래 사진 마곡사 오층석탑처럼.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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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가 크고 홀쭉한 고려시대 전형적인 탑으로 티베트의 라마탑인, 속칭 풍마동을 상륜부(탑 윗부분)에 얹고 있는 탑이다.
▲ 2-공주 마곡사 오층석탑 키가 크고 홀쭉한 고려시대 전형적인 탑으로 티베트의 라마탑인, 속칭 풍마동을 상륜부(탑 윗부분)에 얹고 있는 탑이다.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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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 관련 궁금했던 것 또 하나는 시대별 특징이다. 정림사지 오층석탑이나 다보탑처럼 백제 혹은 신라 때 조성된 탑들은 대체로 넓은 편으로 안정감이 있다. 게다가 기단 규모가 크거나 석탑 부자재 개수도 많다. 이런 탑은 고려 시대로 가면서 기단 규모가 작아지는 한편 석탑 부자재 개수가 줄고 홀쭉해진다. 그리하여 조선 시대에는 쇠약하다는 느낌까지 들 정도로 간결해진다. 원각사지 십층석탑처럼 권력자와 관련되어 규모가 매우 큰 탑도 조성되지만.(사진 1.2 참고)

물론 책은 이처럼 설명하지 않는다. 전문적인 용어와 위 인용과 같은 탑을 이해하는데 필요한 것들을 녹여 들려준다. 다보탑과 석가탑, 감은사지 동서삼층석탑, 월정사 팔각구층석탑, 마곡사 오층석탑 등, 각 시대 특징이 잘 드러난 현존 탑들을 예로 들어 설명한다. 물론 사진을 통해 쉽게 비교하거나 확인하는 등 살펴볼 수 있게 했다.

여하간 분명한 것은 한번 읽은 것으로 우리나라 탑들의 시대적 특징을 한 단락으로 설명할 수 있을 정도로 매우 이해 쉬운 설명이라는 것이다. 실지로 책을 통해 이해한 것을 앞세워 탑 몇 개를 관련 설명을 전혀 참고하지 않고 시대구분을 해봤다. 100% 가까이 맞혔다. 이 책은 탑은 물론 전반적으로 이해 쉽도록 설명한다.

참고로 탑 맨 꼭대기, 즉 상륜부는 불교의 발상지인 인도의 더운 기후와 연관이 많다. 더운 나라라 파라솔과 같은 거대한 일산(큰 우산)을 쓰는 문화가 있고, 그래서 존중의 대상이 되는 불상이나 탑에도 일산을 씌우는 양식을 따르게 됐다는 것. 이런 일산 문화가 변형된 형태로 중국과 우리나라에 전해져 독자적으로 발전했다고 한다.

<사찰의 비밀>이란 제목으로 짐작할 수 있는 것처럼 사찰을 이루는 모든 것들을 설명하는 책이다. 일주문부터 저마다 다른 규모와 상징의 여러 전각, 탑이나 석등 같은 건축물들, 단청이나 꽃살문, 기둥처럼 건축물의 여러 요소, 법당 안 불상들이나 무늬 등 사찰 구석구석을 설명한다. 그런 만큼 사찰을 여행하는데 좋은 정보가 될 책이다.

불국사 극락전 앞에 극락정토를 상징하는 복돼지 조각이 지붕 아래 어딘가에 있음을 알려주는 내용의 이색적인 안내문이 있다. 물론 설명에 따라 찾아봤고 특별하게 남고 있다. 그런데 책에 의하면 대웅전에 더 많은 동물이 있다. 그런데 몰라서 유심히 보지 못했던 것. 그래서 나름 괜찮았던 불국사 여행이 좀 아쉬운 여행으로 바뀌었다.

아마도 경주 여행에 앞서 이 책을 만났다면 불국사 대웅전을 더욱 자세히 살펴볼 수 있었을 것이며, 다보탑이나 석가탑, 분황사지 탑도 그간 보아오던 것과 달리 볼 수 있었으리라. 이 책은 이처럼 조상들의 문화유산을 제대로 보고 느낄 수 있는 안목을 갖게 하니 말이다.

궁궐이나 서원 여행에도 꼭 필요한 정보 가득
 
아래 인용을 통해 서원 건축물에 네모기둥이 많다는 것을 알고 사진들을 찾아보니 역시나 대부분 네모기둥이다. 전혀 몰랐다. 책을 읽기전까지. 앞으론 고궁에 가도 눈여겨 볼 수 있겠다.
▲ 3.도산서원 대표 건물인 전교당(강당) 아래 인용을 통해 서원 건축물에 네모기둥이 많다는 것을 알고 사진들을 찾아보니 역시나 대부분 네모기둥이다. 전혀 몰랐다. 책을 읽기전까지. 앞으론 고궁에 가도 눈여겨 볼 수 있겠다.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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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씨춘추>(라는 책이 있다. 중국 진나라의 재상 여불위(?~기원전 235)가 여러 학설과 사실 설화를 모아 편찬한 책이다. 이 책에 펼쳐진 우주론이 바로 천원지방설이다. 내용인즉,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는 것이다. 여기에 <주역> 등에서 발견되는 천존지비 사상이 결합되면서 네모난 것보다는 둥근 것이 훨씬 가치가 높은 것으로 평가됐다. 이런 사상은 동아시아 전역에 뿌리 깊이 자리 잡았고 실제 일상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둥근 원에 네모난 구멍을 뚫은 엽전만 해도 바로 이런 사상의 반영이다.

이런 연유로 궁궐에서도 위계가 높은 정전에는 둥근 기둥, 그보다 위계가 낮은 편전에는 네모기둥을 사용했고(창경궁), 사찰에서도 불보살을 모신 건물에는 둥근 기둥을 사용하고 스님들의 거주처인 요사채 같은 곳에는 네모기둥을 사용하곤 했다. 물론 궁궐이나 사찰마다 여러 예외가 있기는 하다. 또 향교나 서원은 의외로 네모기둥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향교나 서원에서 네모기둥을 사용한 이유는 네모기둥이 성리학에서 추구하는 방정함이 보다 분명하게 드러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 137쪽
 
게다가 이처럼 사찰이란 불교 공간만이 아닌 궁궐이나 서원과 향교 등의 건축물들을 더욱 흥미롭게, 그리고 제대로 보게 하는 데 도움이 될 것들까지 아울러 설명한다. 궁궐 전각(건물)들의 기둥 모양이 그 전각의 위상에 따라 다르다는 것을 알고 볼 때와 전혀 모르고 볼 때의 차이는 매우 크니 말이다.(사진 3 참고)

사찰의 비밀 - 일주문에서 대웅전 뒤편 산신각까지 구석구석 숨겨진

자현 (지은이), 담앤북스(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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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 찾는 의미와 재미, 두 배로

태그:#사찰의 비밀, #도산서원, #탑은 왜 홀수, #마곡사 오층석탑, #자현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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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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