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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핍이 없을 때 삶은 평탄해 보인다. 하지만 결핍을 알아챌 때 삶은 비로소 속내를 드러낸다. 내면의 진실한 소리를 들었던 순간은 언제였던가? 부족함을 알게 되었을 때,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을 때이다. 그건 고통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결핍을 아는 것은 '자신'을 알게 되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질 때 내겐 삶의 새로운 문이 열렸다. 넘어져야만 나타났다. 내 안에 숨어 있던 길들여지지 않은 백마는 그런 순간에 질주하기 시작했다.
 
아이는 이 말과 함께 있으면 자신의 가장 생기발랄한 부분, 질풍같이 어둡고 야성적인 일면과 함께하는 것 같다. 아이는 일요일이면 공포와 놀이를 통해 자신을 알아간다. 사실 자기 자신에 대해서가 아니라면 삶에서 아무것도 배울 게 없고 알아야 할 것도 없다. 물론 혼자 배울 수 있는 게 아니다. 자신의 가장 내밀한 부분에 이르려면 누군가를 거쳐야 한다. 어떤 사랑을, 어떤 말(言)이나 얼굴을 거쳐야 한다. 아니면 화사한 어린 말(馬)을. - 60p, '날 봐요, 날 좀 봐요', <작은 파티 드레스> 중
     
크리스티앙 보뱅의 <작은 파티 드레스>에 실린 '날 봐요, 날 좀 봐요'라는 글에는 말타기를 좋아하는 아이가 등장한다. 길들여지지 않은 백마를 한 눈에 알아본 아이는 그 말과 함께 있을 때 '가장 생기발랄한 부분, 질풍같이 어둡고 야성적인 일면과 함께' 하는 것 같다. 일요일마다 아이는 말을 탄다. 그리고 피아노를 연습해야 한다. 그건 아이가 싫어하는 일이다. 말을 탈 때면 눈부시게 빛나는 아이가 피아노 앞에서는 어둠에 잠긴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 아이는 자신에게 맞는 악기를 찾아낸다. 플루트. 말을 타고 공기를 가르며 달리길 좋아하는 아이에게, 공기를 불어넣어 음악을 만드는 악기 플루트가 썩 잘 어울린다. '말과 정령, 갈대밭의 바람'처럼, 말과 아이, 플루트는 멋진 조합을 이룬다. 자기만의 조합을 찾아가는 아이를 보며 우리가 좋아하는 걸 찾아가는 방식도, 삶을 살아가는 방식도 이렇게 연결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평생을 통해 배워야 하는 게 있다면 바로 '자기 자신'일 것이다. '어떤 사랑을, 어떤 말이나 얼굴을 거쳐가면서' 우리는 '자신'에 대해 알아간다. 삶이 작은 보트로 망망대해를 건너는 일이라면, 그 항해를 멋지게 마칠 수 있는 열쇠는 무엇보다 보트를 제대로 아는 일일 것이다. 우리 자신이 바로 그 보트다.
 
무수한 꽃더미 속에서 나만의 것을 찾아가는 게 삶이 아닐까. 나에게 가장 잘 맞는 조합을 찾아, 시도하고 실패하면서 나아가는게 삶일 것이다.
▲ 나만의 조합을 찾아가는 삶 무수한 꽃더미 속에서 나만의 것을 찾아가는 게 삶이 아닐까. 나에게 가장 잘 맞는 조합을 찾아, 시도하고 실패하면서 나아가는게 삶일 것이다.
ⓒ 김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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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한 삶의 기준은 저마다 다르다. 내게 성공한 삶이란, 자신에게 밀착된 삶이다. 몸에 잘 맞게 재단된 옷을 입듯 자연스럽게 나를 감싸는 삶. 어느 한 부분도 몸에서 어긋나거나 헛돌지 않고, 그렇다고 지나치게 조이거나 과장되어 보이는 부분도 없어야 한다. 그러려면 체형과 사이즈를 제대로 알고 그에 맞는 옷을 찾는 게 중요하다.

처음엔 주어진 옷을 반항없이 입었던 것 같다. 부모님이 입혀주는 옷을,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입는 옷을 따라서 입었다. 주어진 옷을 입는데 익숙해 벗을 수 있다는 것조차 알지 못했다. 모두 그 옷을 입고 있는데 나만 입지 않는다는 건 상상하기 어려웠다. 한동안 입고 있던 옷이 내겐 맞지 않고, 숨통을 조인다는 걸 알게 되어도 벗을 수 없었던 건 용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온몸을 조이는 옷에 익숙해지려 긴 시간 애를 써보기도 했다. 어떤 순간에는 성공적으로 거기에 걸맞는 사람이 되었다고 느꼈다. 하지만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그 옷을 입은 채로는 일어설 수가 없었다. 일어서려면 옷을 벗어야 했다. 용기를 내야 했다. 성장은,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입고 있던 옷을 벗고 내게 맞는 옷을 찾아가는 일이었다.

마흔 중반을 향해가고 있다. 여전히 내 옷이 불편하다. 육아와 가사를 도맡아 해야하는 '엄마'와 '아내'라는 옷. 겉보기엔 자연스럽고 편안해 보였는데 아니었다. 다시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고, 이 상태로는 일어설 수 없다는 걸 깨닫고 있다. 옷을 벗어야 하는데, 그것마저 쉽지 않다. 옷을 벗는 법부터 천천히 다시 배우고 있다. 다만 조금 덤덤하게 그걸 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모든 게 변할 것이다. 우리를 둘러싼 상황과 관계도, 사람들도, 나 자신도. 삶의 유동성은 우리를 힘겹게 하지만, 그 가능성이 희망이다. 변한다는 건 그래서 축복이다. 자신의 결핍을 목도하는 일은 아프지만 빛은 거기서 나온다. 넘어진 나를 바라보고, 결핍을 알아채는 것은 길들여지지 않은 백마가 웅크리고 앉아 울부짖는 소리를 듣는 일이다. 울음의 이유와 방향을 감지해야 다시 달리게 할 수도 있다.

내게 맞는 옷 찾기는 어느 시기에 완결되는 일이 아니다. 누군가에겐 그 일이 조금 더 일찍 일어나고, 수월하게 끝나기도 할테다. 하지만 내겐 평생이 걸리는 일이 아닐까 예감한다. 그래서 다행스럽다. 혹시 잘못 고르더라도 다시 고를 수 있어서, 한 번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여러 번 고를 기회가 있어서. 바꿔 입을 옷이 세상에 가득하다고 믿는다. 내가 찾으려 하는 한 어딘가에 그 옷이 있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기자의 개인 블로그에도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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