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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지방법원 2020가소86184 판결문
 수원지방법원 2020가소86184 판결문
ⓒ 최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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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지방법원 안산지원 2020가소86184 판결문
 수원지방법원 안산지원 2020가소86184 판결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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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0월 A씨가 수원지방법원 안산지원 민사소액 13단독(강희석 판사)로부터 받은 판결문 전문이다. 

A씨는 같은 해 2월 2500만 원을 지급해 달라는 소송을 당했다. 한 차례 조정기일, 두 차례 변론기일을 통해 '아들이 돈을 빌리면서 본인 통장을 사용하도록 한 것일 뿐 본인이 빌린 것이 아니다'라고 주장했지만 1심 판사는 그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런데 위 판결문에는 판결이유가 가재되어 있지 않다. 단지 이 문구만 기재되어 있을 뿐이다. 
 
"소액사건의 판결서에는 소액사건심판법 제11조의 2 제3항에 따라 이유를 기재하지 아니할 수 있습니다."

치과진료를 받다가 의료사고를 당한 B씨는 2017년 2월 의료기관을 상대로 자신이 입은 손해 약 2400만 원을 배상받기 위한 소송을 시작했다, 의료기관의 과실을 입증하는 건 쉽지 않았다. 2년 8개월 동안 진행된 1심 소송결과는 아쉽게도 패소였다. 

B씨가 2019년 10월 받은 패소 판결문(수원지방법원 안산지원 2017가소9088)에도 판결이유는 단 한 자도 적혀 있지 않았다. 그 판결문에도 A씨가 받은 판결문과 같이 이유를 생략할 수 있다는 문구만 기재되어 있었다. 

B씨는 항소를 해야 할지가 고민된다며 이 판결문을 들고 여러 변호사 사무실을 전전했으나, 결국 항소를 포기했다. 이유가 기재되지 않은 판결문을 보고 항소심 승소가능성을 제대로 예측해 설명할 변호사를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B씨는 이런 말을 남겼다. 

"왜 제 사건이 소액사건이죠? 제가 청구한 2400만 원은 제 전 재산보다 많은 돈인데요?"

'소액사건' 딱지 붙이기
  
청구금액이 상대적으로 작은 사건에 '소액사건'이라는 딱지를 붙인 건 1973년 소액사건심판법이 제정되면서부터이다. 최초 법 제정 당시 20만 원을 초과하지 아니하는 사건으로 시작한 소액사건의 범위는 1980년부터는 법률이 아닌 대법원규칙으로 바뀌었고, 이후 대법원은 그 범위를 넓혀 2017년에는 3000만 원에 이르렀다.

그리고 소액사건의 경우 판결 이유를 생략할 수 있는 제도는 1981년부터 시행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사법부가 제한된 인력으로 각종 소송을 더욱 능률적으로 처리하기 위해 이러한 조치는 불가피할 수도 있다. 그런데 청구금액의 크기만을 사유로 판결이유 기재가 생략 가능하도록 한 것이 과연 적절한지에 대해 의문이 든다.

빌려준 3억 원을 받지 못해 그 돈을 달라고 요구하는 대여금 소송은 그리 복잡한 싸움이 아니더라도 무조건 1심부터 판사 3명으로 구성된 합의부 재판을 받고 구체적인 이유를 확인할 수 있는 판결문을 받을 수 있다. 

반면 의료과실로 입은 피해에 대해 2000만 원을 배상해달라고 하는 복잡한 의료소송은 청구금액이 3000만 원을 초과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소액사건으로 분류되고 이유도 적혀 있지 않은 판결문을 제공받는다. 이를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을까?

2018년 근로자 상위 40~50%의 연봉평균이 2864만 원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소액사건의 기준 3000만 원은 지나치게 높다. 대법원이 단순히 규칙변경으로 소액사건 범위를 결정하는 것부터 중단시키고, 최초 법이 시행되었을 때처럼 시민들의 의견이 반영되어야 하는 건 아닐까?  

법원이 발표한 자료(사법연감)를 보면 2019년 전국법원에 접수된 민사소송 94만 9603건 중 소액사건은 68만 1576건으로 무려 71.8%를 차지한다. 또한 2018년은 이보다 조금 더 높은 73.9%를 차지한다. (2018년 전국법원에 접수된 민사소송 95만 9270건 중 소액사건은 70만 8760건) 

우리나라 헌법은 재판받을 권리를 보장한다. 이는 단순히 내 사건을 법정에 가지고 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을 것이다. 판사가 그 사건을 성심성의껏 검토하고, 내 주장이 받아들여지든 아니든 그렇게 판단한 이유가 판결문에 설명되어 있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재판받을 권리는 충분히 보장받고 있을까?

오늘도 판결이유가 기재되어 있지 않은 '불량판결문'을 손에 쥐고 시민들은 묻는다. '불량판결문 어디서 A/S 받아야 할까?' 법원은 이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성실한 답변을 내놓아야 하지 않을까? 

태그:#불량판결문, #소액사건 판결이유 생략, #최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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