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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돈을 써야만 행복할 수 있을까요? 소비하지 않고도 재밌고 다채롭게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은 분명 있을 겁니다.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의 '무소비 OO'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편집자말]
나는 집에서 가끔 책장에 꽂혀 있는 책들의 제목을 훑어보곤 한다. 내가 탐독했던 책들의 제목을 보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될 때가 있어서다. 그런데 빈틈없이 꽉 찬 책장과 더는 꽂아둘 데가 없어 집 안 여기저기에 쌓여 있는 책들을 보면 책이 마냥 버거워진다. 책들을 정리할 시기가 온 것이다.

거실 책장 맨 위 칸에 있는 책부터 책등을 손으로 짚어가며 질문을 시작한다. 첫 번째 질문을 한다. '재밌게 읽은 책인가?' 예전에는 이 질문만 통과해도 책은 무사했다. 그런데 이제는 그런 책을 다 소장하기에는 공간이 부족하다. 그래서 두 번째 질문이 추가되었다. '또 볼 책인가?' 두 번째 질문에서 책을 많이 솎아낸다.

"이 책은 추억이잖아요"

이제 나는 아이 책 쪽으로 간다. 아이가 요즘 잘 보지 않는 책, 연령에 너무 맞지 않은 책들을 빼낸다. 아이는 내가 빼놓은 책들을 몇 권 들춰보더니 말한다.

"엄마. 이거 버리려고요?"
"이제 잘 안 보잖아. 안 보는 건 기부하거나 동생들한테 물려주자."
"싫어요. 이 책은 우리 추억이잖아요. 내가 계속 갖고 싶어요. 추억은 간직해야죠."


아이가 못 버리게 하는 책들에는 편지가 붙어 있다. 아이가 어렸을 적 나는 아이 그림책에 편지를 써서 붙여 놓았다. 가끔 꽤 긴 편지를 붙이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작은 메모 편지들이다.  
 
아이 그림책에 붙여놓은 책편지입니다.
 아이 그림책에 붙여놓은 책편지입니다.
ⓒ 진혜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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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편지를 써서 그림책에 붙인 것은 아이가 돌도 되기 전이었다. 나는 얼른 아이와 그림책을 읽고 교감을 나누고 싶었다. 그런데 아이는 아직 말도 제대로 못 하는 아기였다. 나는 아이가 클 때까지 기다릴 수 없었다. 책을 읽고 아이에게 하고 싶은 말들을 써서 그림책에 붙였다.

나는 편지에 부모가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뭔가 거창하고 대단한 가르침을 쓰지 않았다. 편하게 말하듯이 썼다. 나는 다만 아이가 책을 펼쳤을 때 엄마 편지를 보고 기분 좋은 마음으로 책을 읽길 바랄 뿐이었다.

"콩이 어떻게 잘 자라나 했더니 낮에는 햇님이, 밤에는 달님이 토닥토닥 해줘서 그랬던 거였구나. 토닥토닥해주면 힘이 나잖아. 엄마도 그래. 엄마가 기분이 안 좋을 때 도현이가 엄마한테 와서 토닥토닥해주면 속상한 마음이 싹 풀리고 다시 기분이 좋아져. 가르쳐주지도 않았는데 위로해주는 건 어떻게 알았지? 도현아. 힘이 들 땐 언제나 엄마에게 오렴. 힘든 일, 억울한 일 마음 놓고 얘기해. 엄마가 도현이 하고 싶은 이야기 다 들어주고 토닥토닥해줄게." - <콩이 쑥쑥> 엄마의 책편지 중에서

책의 한 페이지가 된 엄마의 편지

편지에 들어가는 내용은 다양하다. 아이가 책에서 좋아했던 장면과 반응, 책에 대한 엄마의 생각이나 느낌, 아이가 좀 커서는 책을 읽고 아이와 나눈 이야기를 썼다. 또한 우리의 소소한 일상과 책을 사거나 읽었던 장소의 풍경을 쓰기도 했고, 때로는 책 속 주인공이 아이에게 편지를 써주는 것처럼 쓰기도 했다. 책편지에는 그 시절 아이의 모습과 아이에게 해주고 싶은 사랑의 말들이 담겨 있다.
 
아이 그림책에 붙여놓은 책편지입니다.
 아이 그림책에 붙여놓은 책편지입니다.
ⓒ 진혜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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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그림책에 붙여놓은 책편지입니다.
 아이 그림책에 붙여놓은 책편지입니다.
ⓒ 진혜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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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엄마 편지가 붙어 있으면 아이는 그 책을 더 사랑하게 된다. 아이는 어떤 이야기보다 자기 이야기를 좋아한다. 편지를 읽어주면 그 조그만 아이가 얼마나 귀 기울여 듣는지 모른다.

하루는 아이가 그림책을 읽어달라고 가져왔는데 책에 긴 편지가 붙어 있었다. 나는 목도 아프고 그 책을 전에 여러 번 읽었던 터라 편지를 은근슬쩍 건너뛰고 책을 읽었다. 그러자 아이는 편지는 왜 안 읽냐면서 어서 그것부터 읽어달라고 했다. 아이에게는 엄마의 편지도 책의 한 페이지였다.
 
아이 그림책에 붙여놓은 책편지입니다.
 아이 그림책에 붙여놓은 책편지입니다.
ⓒ 진혜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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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그림책에 붙여놓은 책편지입니다.
 아이 그림책에 붙여놓은 책편지입니다.
ⓒ 진혜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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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아홉 살이 된 아이는 이따금 밤하늘의 별을 올려다보며 '마음이 터질 정도로 감동이야'라고 말하고, 호수 앞 벤치에 앉아 '저 물결이 내 이불이었으면'이라고 말한다. 시골 책방에서 하는 동시 쓰기 수업을 듣고 와서는 '와. 웃음이 떠나질 않는다. 이 웃음이 내 마음에 일주일은 남겠지'라는 말을 하여 나를 깜짝 놀라게 하기도 한다.

아이는 이제 저 책들을 자주 읽진 않지만 언제든지 꺼내 볼 수 있도록 곁에 두고 싶어 한다. 아이에게 책은 엄마의 사랑이고, 우리의 추억이 되었다. 아무래도 100권이 훌쩍 넘는 저 책들을 버릴 수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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