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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7월 22일 국회 의원회관 제2세미나실에서 열린 '학교민주시민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과 향후 입법과제' 국회토론회 포스터.
▲ "학교민주시민교육" 관련 국회세미나 포스터 2020년 7월 22일 국회 의원회관 제2세미나실에서 열린 "학교민주시민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과 향후 입법과제" 국회토론회 포스터.
ⓒ 강민정 의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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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교육기본법엔 '민주시민'을 육성하는 것을 교육의 목적으로 명문화하고 있다. 따라서 교육과정 역시 교육의 목적을 구현하기 위한 설계도인 만큼 '민주시민'을 육성하는 '주권자 교육'을 지향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교육은 100년 넘게 '출세주의' 입시경쟁교육으로 크게 왜곡돼 왔다. 왜곡된 교육을 바로 잡고 교육의 본질을 회복하기 위해서라도 학교교육은 정상화돼야 한다. 나아가 21세기 다가올 미래사회를 대비하기 위한 미래교육을 충실히 구현하기 위해서라도 학교교육은 교육의 목적에 충실해야 한다.

교육부는 올해 1월 26일 업무계획을 통해 '국민이 함께 만들어가는 교육과정 개정'을 발표했다. 이를 위해 국가교육회의와 협업하여 '2022 개정 교육과정'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교육부·시도교육감협의회·국가교육회의가 공동으로 '국민적 참여'를 통해 '2022 개정 교육과정'의 비전과 방향을 마련하고 추진하기로 한 것이다.

국민의견을 수렴하는 것은 이해한다. 그러나 교육과정을 심의하고 결정하는 것은 교육전문가인 교사에게 맡겨야 한다. 그렇지 않고 국민여론에 따라 결정한다면 민주주의의 외피를 쓴 결정일 뿐 올바른 결정도 교육적인 결정도 아니다. 3년 전 대학입시 전형에서 수시와 정시 비율을 국민 여론에 따라 결정하는 잘못을 되풀이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교육과정은 교사와 학생의 삶을 강력하게 규정하는 제1의 요소이다. 교육과정이 어떻게 편성되는가에 따라 교사와 학생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교육과정은 어떤 내용을 담아내고 어떻게 교육할 것인지에 대한 교육설계도이다.

따라서 교육과정을 구성하고 운영하는 주체가 누군가에 따라 교육의 질은 크게 달라질 수밖에 없다. 교육의 질뿐만 아니라 교사와 학생의 상호작용이 이루어지는 교수-학습 과정의 기본 틀이 달라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미국을 비롯해 북서유럽 교육 선진국은 교육과정 편성과 운영에서 단위 학교와 교사의 자율성을 매우 높게 존중해 오고 있다. 국가수준 교육과정을 대강화하고 교육과정 운영의 실질적 주체인 교사의 능동성과 자율성을 극대화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연방정부 차원에서 국가수준교육과정 자체가 없다. 교육정책 결정 권한을 지닌 주 정부에서 교육과정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다만 민주시민교육의 경우'전미 사회과 교육협회'(NCSS)가 제시한 교육과정 기준과 주 정부가 제시한 교육과정, 그리고 카운티 성취기준을 바탕으로 학교마다 '시민교육' 연간계획을 수립한다. 교육과정 편성과 운영에서 주 정부와 단위학교, 그리고 교사의 자율성을 존중한다,

프랑스, 스웨덴을 비롯한 북서 유럽 국가들도 교육과정 편성에서 교사의 자율성을 존중한다. 국가수준 교육과정은 불과 몇 쪽에 지나지 않을 정도로 대강화하고 교육과정 편성과 운영권한을 학교와 교사의 자율에 맡기고 있다. 다만 핀란드는 국가수준교육과정이 500쪽에 이를 정도로 자세하게 기술돼 있다. 우리의 경우는 '2015 개정 교육과정' 당시 50쪽 분량에 달했다.

다가올 '2022 개정 교육과정'에서 교육부는 미래사회를 준비하기 위해 미래 세대가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했다. 미래세대가 학습해야 할 내용이 무엇인가라는 근본적 질문을 통해 학생들을 비롯해 교사, 학부모, 국민과 함께 합의해 가는 교육과정을 추구한다고 발표한 것이다. 그리고 합의된 내용을 '2022 국가교육과정'에 반영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를 위해 대통령 직속 '국가교육회의'에서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고자 대국민 설문조사를 진행하려 한다.

다가올 사회변화와 4차 산업혁명 시기 미래사회의 급변하는 모습을 예견하고 그에 대비한 교육비전을 제시함으로써 중장기적 교육정책방향을 마련하려는 취지에는 크게 공감한다. 그러나 여론과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는 것은 필요한 일이지만 교육과정을 편성하고 운영하는 주체는 교육전문가에게 일임해야 한다.

교육선진국 사례처럼 지방정부(또는 지역 교육청) 내지 단위학교가 교육과정 편성권한을 갖되 편성 원칙의 대강을 제시하고 교과교사가 다양한 교육 자료를 재구성하여 교육과정을 재구성, 운영할 수 있도록 자율성을 존중해야 한다. 이에 글쓴이는 '2022 교육과정 개정'에서 지향할 가치와 목표, 그리고 인간상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자 한다.
  
2020년 7월 22일 국회 의원회관 제2세미나실에서 열린 '학교민주시민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과 향후 입법과제' 토론회 장면
▲ "학교민주시민교육" 관련 국회토론회 장면 2020년 7월 22일 국회 의원회관 제2세미나실에서 열린 "학교민주시민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과 향후 입법과제" 토론회 장면
ⓒ 하성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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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개정 교육과정은 '주권자'로서 '비판적 ‧ 창의적 사고'를 지닌 '연대하는 시민'을 육성하는 것을 지향해야 한다. 주권자 의식을 갖춘 민주시민으로서 공동체 문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비판적‧창의적 사고를 통해 미래사회를 설계하며 사회적 약자와 연대할 줄 아는 인간상을 추구해야 한다.

다가올 미래사회는 인공지능, 빅데이터, 사물인터넷, 로봇공학 등 첨단 과학기술과 IT 기술의 놀라운 발달이 하나의 충격으로 우리 눈앞에 펼쳐질 것이다. 따라서 학교교육은 급변하는 미래사회의 양상을 우선적으로 예측하여 이를 교육과정에 반영해야 한다.

무엇보다 통섭에 기초한 창의적 사고를 학교교육과정이 감당해야 하는데 창의적 사고는 반드시 도덕적 가치를 지향하도록 해야 한다. 왜냐하면 도덕적 가치는 창의적 사고의 나침반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창의적 사고의 나침반으로서 비판적‧도덕적 사고를 함양하는 것은 학교교육과정에서 절대적으로 요청되는 필수 내용 요소이다.

단순히 입시중심 지식을 축적하고 암기하는 교육행태를 지양한다는 차원을 넘어서서 미래사회 미래교육을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비판적‧창의적‧ 사고를 갖춘 연대하는 시민을 기르는 것은 한시도 늦출 수 없는 시대정신이자 절체절명의 당면과제이다.

요컨대 궁극적으로 학교교육을 통해 길러내고자 하는 인간상은 급변하는 사회현실 속에서 연대와 협력을 일상의 삶으로 받아들이며 사회적 약자와 더불어 살아가는 '민주시민을 육성'하는 것에 있다. 따라서 '연대할 줄 아는 시민'을 길러내는 것은 미래교육이 지향하는 궁극적인 목표가 되어야 한다.

프랑스 '시민도덕' 교과를 '연대의 끈'으로 일컫는 이유도 미래교육이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 바로 '연대할 줄 아는 시민'을 육성하기 위함이다. 독일 민주시민교과인 '정치교육'(Politische Bildung) 역시 민주적으로 사고하고 정치적으로 성숙한 시민을 기르는 데 있다. 16개 주 정부마다 '정치교육'의 교과명은 다르지만 지향점은 동일하다.

'정치교육'을 통해 중고등학생들은 정치적 분석 역량과 정치적 판단 역량을 기른다. 정치적 쟁점을 문제 상황과 연관 지어 분석하면서 정치적 결정과 해결방안들을 학습한다. 비판적‧창의적‧도덕적 사고와 연대의 범위를 독일 국가에서 유럽연합을 주도하는 국가로 확장시킨다. 나아가 전 지구적 차원에서 정치적으로 성숙하게 판단할 수 있는 시민역량을 추구한다.

바덴뷔르템베르크주 김나지움 '정치교육' 교과인 '공동사회'(Gemeinschaftskunde) 학습주제를 살펴보면 이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우리나라 중학교와 고등학교 1학년에 해당하는 김나지움 8-10학년의 경우, '사회집단에서 함께 생활하기', '학교 참여', '공동체 정치', '독일에서 정치적 결정과정', '국제사회 평화와 인권'을 학습한다.

나아가 우리나라 고등학교에 해당하는 김나지움 11-12학년에선 '사회민주주의 국가의 형성'과 '국제적 과제', 그리고 '유럽의 경제정책'을 학습한다. 나아가 '국제체제의 토대'와 '평화와 안전', '독일의 국외 정치', '전 지구적으로 통치하기'를 학습한다.

'정치교육'을 통해 형성하려는 정치적 행위 역량은 자신의 의견과 이해관계를 명확히 하여 토론과 협상을 통해 합의를 이끌어 낼 수 있는 능력을 지향한다. 특히 사회적 소수자의 처지를 배려하는 능력과 정치‧경제‧사회문제에 대해 매체를 활용하여 문제제기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른다. 나아가 정치적 쟁점을 명료화하여 갈등을 조정하고 합의를 도출할 수 있는 능력을 학교교육을 통해 학습한다.

실제로 독일은 연방 차원에선 주 정부와 학교 교육을 지원할 뿐 간섭하지 않는다. 독일 학교교육은 16개 '주 정부 문화교육부장관회의'(약칭 KMK)에서 교육과정에 대한 기본방침을 결정한다. 놀라운 사실은 KMK에서 정치교육을 강화하기 위해 '학생 참여'를 크게 강조하고 이를 권장한다는 데 있다. KMK에서 각 주에 제시한 '학생 참여' 차원의 기본 방침 4가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 학생들에게 학생회 등 교내 의사결정 과정에 대한 참여 권장
․ 학교에서 특별한 참여 활동에 대한 포상
․ 학생들에게 시 학생의회나 주 학생의회 등 교외 정치 참여 권장
․ 학생들에게 학교 평가 참여를 권장

독일 문화교육부부장관 협의체 회의(KMK)에서 중고등학생들에게 교내 의사결정에 참여를 권장하는 것은 우리 교육부와 별 차이가 없다. 다만 학교 밖 정치활동인 시 학생의회나 주 학생의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을 권장하는 모습은 한국 사회에선 감히 상상하기 어려운 장면이 아닐 수 없다.
  
2020년 10월 중앙선관위 선거연수원 주최로 열린 '2020 온라인 유권자 정치페스티벌'에서 '민주시민' 과목 개설의 필요성과 개설방안 정책토론회가 열렸다.
▲ "2020 온라인 유권자 정치페스티벌" 안내 표지 2020년 10월 중앙선관위 선거연수원 주최로 열린 "2020 온라인 유권자 정치페스티벌"에서 "민주시민" 과목 개설의 필요성과 개설방안 정책토론회가 열렸다.
ⓒ 하성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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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 놀라운 장면은 수업 차원에서 KMK는 '보이텔스바흐 합의'의 원칙에 기초하여 논쟁성 짙은 정치현안들을 날 것 그대로 교실수업에 끌어들인다는 점이다. 의무교육인 중학교에서 노동법을 필수교육과정으로 공부한다. 노사관계 관련 수업이 교과서에 역할극 형태로 제공된다.

학생들 스스로 사용자와 노조대표로 역할을 나누어 단체협상을 교실수업에서 학습한다. 노동조합에서 항의 문건을 어떻게 작성하고 언론과 인터뷰하는 요령 또한 공부한다. 나아가 노조에서 대외 연설문을 어떻게 작성할 것인지 연설문 작성 방법도 학교교육을 통해 학습한다. 우리교육 현실과 비교하면 너무도 낯선 장면이지만 독일 학교교육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우리 교육계는 '2022 교육과정 개정'을 1년 앞두고 있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다시 7년을 기다려야 한다. 교육선진국에 비해서 우리교육은 영국에 비해 20년 정도, 그리고 독일, 핀란드에 비해 50년 정도 늦었다. 그렇지만 이번 '2022 교육과정 개정'시에 '민주시민'을 길러내는 교육과정을 필수 의무교과로 포함시킨다면 우리교육에도 희망은 있다.

실제로 1987년 6월 항쟁 이후 민주화의 여파가 학계, 교육계에도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그 결과가 1993년 교육부 자체적으로 '민주시민교육 지도자료'를 장학자료로 발간한 것이다. 당시 교육부 장학자료에는 이렇게 기술돼 있다.

"만일 교육은 잘 되었는데 민주시민교육은 잘못되었다는 주장이 있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교육의 개념을 오도하고 있는 것이다. 교육의 궁극적인 목적은 '민주시민자질의 함양'에 있다. 모든 것에 성공하고 이 점에 실패했다면 그것은 교육 전체가 실패한 것이나 다름없다. 즉, 학교교육의 성패여부는 궁극적으로 민주시민교육의 성패여부와 직결된다." - 교육부, '민주시민교육 지도자료' 교육부 장학자료 제96호 16-17쪽.

민주시민을 길러내는 교육과정을 구성하고 학습했을 때 그 교육적 효과를 확인하는 데에는 10년 정도 걸린다고 한다. 영국의 사례가 그것을 보여주었다. 1998년 크릭보고서(Crick's Report)를 채택한 뒤 2000년 민주시민교육이 국가교육과정에 반영됐다. 그리하여 2002년부터 '시민성' 교과를 독립교과로 개설해 교실에서 공통 필수 교과로 가르쳤다. 그 결과 2010년 즈음 민주시민교육의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이번 '2022 개정 교육과정'에 민주시민교육과정을 포함시켜 학교교육에 적용한다고 하더라도 그 교육적 효과는 2030년 이후에나 확인 가능한 셈이다. 다시 말해 이 번 '2022 개정 교육과정'은 한국 사회와 한국 교육에서 중요한 분기점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다가오는'2022 개정 교육과정'에 민주시민교육과정을 공통 필수교육과정으로 반드시 반영해야 한다. '민주시민교육'의 관점에서 교육계의 지각변동을 기대한다.

태그:#민주시민교육, #2022 개정 교육과정, #국가교육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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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회원으로 가입하게 된 동기는 일제강점기 시절 가족의 안위를 뒤로한 채 치열하게 독립운동을 펼쳤던 항일투사들이 이념의 굴레에 갇혀 망각되거나 왜곡돼 제대로 후손들에게 전해지지 않은 점이 적지 않아 근현대 인물연구를 통해 역사의 진실을 복원해 내고 이를 공유하고자 함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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