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제 모리뉴 감독이 또다시 경질됐다. 토트넘 구단은 지난 19일(한국시간)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모리뉴 감독와 그의 코칭스태프진 모두가 토트넘과 결별한다"고 발표했다. 당분간 1군 운영은 라이언 메이슨 코치가 진행할 예정이다. 다니엘 레비 회장도 "모리뉴 감독과 그 코칭스태프들은 클럽의 가장 어려운 시기를 함께 해왔다. 그들은 언제든 여기서 환영받을 것이며 그들의 노고에 감사한다"라고 작별의 예의를 지켰다.

어느 정도 예상된 일이지만 타이밍은 다소 놀랍다. 토트넘은 일주일 뒤인 26일 맨체스터 시티와의 카라바오컵(리그컵) 결승전을 앞두고 있었다. 모리뉴 감독이 올시즌까지는 지휘봉을 유지하거나 최소한 컵대회 결승전 결과까지는 지켜보고 경질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지만, 토트넘은 과감하게 결단을 내렸다.

모리뉴 감독이 이끄는 토트넘은 올시즌 리그에서 14승 8무 10패, 승점 50점으로 7위에 그치고 있었다. 선두 맨시티와는 무려 24점차, 다음 시즌 챔피언스리그 출전권이 주어지는 4위 웨스트햄과는 5점차였다. FA컵과 유로파리그에서는 모두 16강에서 탈락했다.

모리뉴 감독은 토트넘에서 86경기 45승 17무 24패, 승률은 51.16%를 기록했다. 이는 지도자 경력 초창기를 제외하고 2002년 이후 모리뉴 감독의 커리어 최저 승률이었다. 그가 자신이 맡은 클럽에서 단 한 개의 우승트로피도 들지 못하고 떠난 것도 2001-02시즌 UD 레이리아(포르투갈) 이후 20년만이다.

그는 한때 '우승 청부사'로 불리며 유럽축구를 대표하는 최고의 명장으로 군림했다. 모리뉴는 2002-03시즌 FC포르투 감독으로 재임 당시 리그, 컵대회, 유로파리그, 챔피언스리그를 잇달아 석권하면서 유럽 전역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이후 잉글랜드 첼시로 진출하여 언론과의 첫 만남에서 자신을 소개한 '스페셜 원'(나는 특별한 사람이다)이라는 호칭은 모리뉴의 별명이자 아이덴티티로 자리잡았다.

모리뉴는 잉글랜드에서도 부임과 동시에 첼시를 프리미어리그 2년 연속 우승으로 이끌며 진가를 증명했다. 이후 잠시 성적이 주춤하면서 로만 아브라모비치 구단주와 선수 영입-팀 운영을 둘러싼 입장 차이로 해임됐지만 여전히 모리뉴 감독의 주가는 높았다. 2008년에는 이탈리아 인터 밀란으로 자리를 옮겨 리그 2연패와 트레블(리그-UCL-FA컵 3관왕, 2009-10시즌)를 달성하며 커리어의 정점에 올랐다.

2010년에는 스페인 레알 마드리드 감독으로 취임하며 당시 역대 최강으로 꼽히던 바르셀로나의 연속 우승을 저지하고 2010-11시즌 코파델레이(국왕컵) 우승, 2011-12시즌 라 리가 최다 승점 우승을 달성했다. 레알과의 계약이 만료된 이후에는 다시 잉글랜드로 돌아와 친정팀 첼시에서 2기를 맞이했다. 2년차인 2014-15시즌에는 프리미어리그와 리그컵을 제패하는 '더블'을 달성하며 건재를 증명했다.

하지만 바로 다음 시즌 선수단과 불화설에 휩싸이며 성적이 급락하자 우승을 차지하고 불과 반년 만에 첼시에서 두 번째 경질을 맛봤다. 2016년에는 첼시의 최대 라이벌이자 잉글랜드 최고의 명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지휘봉을 잡고 첫해 리그컵-커뮤니티실드-유로파리그 3관왕을 차지하며 재기하는 듯했으나 2,3년차에는 또다시 무관에 성적부진, 선수단과의 불화가 터지며 불명예스럽게 물러났다.

한동안 야인으로 지내던 모리뉴 감독은 2019년 11월 마우리시오 포체티노 전 감독(현 파리 생제르맹)의 후임으로 토트넘의 지휘봉을 잡았다. 커리어가 내리막을 향해간다는 평가를 받던 모리뉴 감독과 좋은 전력에도 장기간 무관에 허덕이던 토트넘 모두 반전이 절실했다.

초반은 나쁘지 않았다. 2019~2020시즌 도중 부임 후 14위까지 추락했던 팀을 6위까지 끌어올렸다. 타이틀을 따내지 못했지만 코로나19로 인한 리그 중단과 주축 선수들의 줄부상이라는 악재 속에서도 나름 선방했다. 올시즌에는 모처럼 구단의 전폭적인 전력보강- 주포 해리 케인과 손흥민의 맹활약을 등에 업고 초반 리그 1위까지 올랐다. 유로파리그와 리그컵에서도 잇달아 승승장구하며 많은 이들이 '스페셜 원'의 부활에 주목했다.

그러나 빡빡한 일정 속에 부상자가 속출했고 케인과 손흥민의 역습에만 의존하는 모리뉴 감독의 단조로운 '실리축구'를 상대팀이 간파하며 토트넘은 점차 한계에 봉착했다. 특히 우승을 기대했던 유로파리그에서 한 수 아래로 꼽혔던 디나모 자그레브(크로아티아)에게 1차전을 이기고도 2차전에서 0-3으로 충격적인 역전패를 당하며 탈락한 것은 치명타였다.

토트넘이 올시즌 리그에서만 먼저 리드를 잡았던 경기에서 비기거나 패하여 놓친 승점은 무려 20점에 이른다. 지난해 10월 웨스트햄과 홈경기에서는 후반 막판 10여분간 내리 3골을 내주며 3-3으로 비겼고, 지난 4일 뉴캐슬과의 리턴매치에서도 후반 40분까지 2-1로 앞서다가 뼈아픈 동점골을 허용했다. 12일 맨유전에서는 손흥민의 선제골에도 불구하고 내리 3골을 내주며 역전패했다. 만일 토트넘이 리드를 잡았던 경기에서 잃은 승점만 합산해도 최소한 리그 2위까지 오를 수도 있었다. 안정된 수비와 역습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모리뉴 감독의 지키는 축구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 장면이다.

그의 축구철학과 리더십 자체가 현대 축구에서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 2년간 챔피언스리그와 프리미어리그를 제패했던 위르겐 클롭 감독의 리버풀도 올시즌에는 무관의 위기에 처하며 고전을 면치 못하는 데서 보듯 현대축구의 흐름은 수시로 변하고 경쟁은 더 치열해진다. 항상 비슷한 스타일의 전술과 선수기용, 지루한 수비축구, 로테이션과 플랜B의 부재 등 전성기에도 지적되었던 문제점을 모리뉴 감독을 전혀 해결하지 못했다. 

가장 뼈아픈 대목은 선수단과의 소통 능력이다. 그는 한창 잘 나갈 때만 해도 선수 장악력이 최대의 장점으로 꼽히던 감독이었다. 직설적인 발언과 언론플레이를 통하여 선수의 자존심과 경쟁심을 자극하고 동기부여를 이끌어내는 것이 모리뉴의 방식이었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면서 자유분방하고 의사 표현이 확실한 젊은 선수들은 모리뉴의 일방통행적인 리더십에 반발하며 많은 갈등을 초래했다. 이는 그가 가는 팀마다 불화설에 휩싸이며 라커룸 장악력을 상실하게 만드는 원인이 됐다. 비교적 문제아가 적고 케인이나 손흥민같이 온순하고 모범적인 선수들이 많은 토트넘에서도 모리뉴 감독은 델레 알리-대니 로즈-세르주 오리에-위고 요리스 등과 연이어 마찰을 일으켰고 이들이 공개적으로 불만을 토로하거나 팀 분위기를 흔드는 것을 통제하지 못했다.

모리뉴 감독은 2010년 인터밀란에서의 트레블을 끝으로 최근 10년간은 더 이상 박수받으며 팀을 떠난 경우가 없다. 레알 마드리드에서는 계약만료 형식이었지만 이미 선수단과의 불화로 어차피 감독직 유지가 어려운 상황이었고, 첼시-맨유-토트넘에서는 성적부진 끝에 무려 '3연속 경질'이라는 굴욕을 당했다. 무리뉴 감독이 더 이상 빅클럽을 감당할 만한 지도력을 가지고 있는지 회의적인 시선이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다.

'한국축구의 자존심' 손흥민은 모리뉴 감독 체제에서도 꾸준히 핵심선수로 중용된 수혜자로 꼽힌다. 그는 손흥민의 기량과 인성, 프로의식을 극찬하며 '월드클래스'라는 인증을 붙여주기도 했다. 하지만 모리뉴 감독과의 동행이 손흥민에게 과연 긍정적이었는지는 의문이다.

화려한 경력에 비하여 우승과 인연이 없었던 손흥민은 모리뉴 감독과 함께 우승의 꿈을 이룰 수 있다는 기대에 부풀었으나, 초반 이후 팀 성적은 추락했고 손흥민도 모리뉴 감독의 전술에서 수비가담과 체력적 부담 등에 시달리며 혹사 논란에 휘말리기도 했다. 지난 시즌에는 팔꿈치 부상을 당했고 올시즌에는 햄스트링 부상에 오른 것도 두 차례나 될만큼 수난이 끊이지 않았다.

토트넘은 최근 새롭게 창설한 슈퍼리그에 참여를 확정지으며 이제 더 이상 올시즌 프리미어리그 성적이나 다음 시즌 UCL 진출에 연연할 필요가 없는 상황이 됐다. 이미 팀 내에서 여러 가지 문제점을 드러내며 신망을 잃은 모리뉴 감독과의 동행을 이어갈 명분이 사라졌다. 하지만 막대한 투자에도 불구하고 팀이 올시즌 또다시 무관에 그칠 가능성이 높아진데다, 팀의 비전에 실망한 해리 케인 등 주축 선수들의 이적설, 슈퍼리그 참여에 대한 안팎의 비판 여론 등이 끊이지 않고 있어서 당분간도 적지 않은 후폭풍이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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