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우승후보들의 진검승부가 시작된다. 2020-21시즌 남자 프로농구 플레이오프가 21일부터 4강전에 돌입한다. 정규시즌 1위와 2위를 차지하며 4강에 직행한 전주 KCC와 울산 현대모비스가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다. KCC는 21일부터 정규리그 4위 고양 오리온을 물리치고 올라온 5위 전자랜드를, 현대모비스는 22일부터 6위 부산 KT를 격침시킨 3위 안양 KGC 인삼공사를 각각 상대한다.

KCC와 현대모비스는 나란히 프로농구 역대 최다 챔프전 우승 1·2위에 올라있는 팀이다. 모비스가 7회, KCC가 5회 정상에 오르며 24년에 이르는 KBL 역사의 절반을 양분했다. 유재학 현대모비스 감독과 전창진 KCC 감독 역시 프로농구 정규리그-플레이오프 역대 감독 최다승 1·2위에 나란히 이름을 올리고 있는 명장들이다. 63년생 동갑내기인 두 감독은 아직까지 챔프전에서 만난 적은 없다. 이제 4강전을 넘으면 유재학-전창진 감독의 사상 첫 챔프전 매치업이 완성된다는 점에서도 농구팬들의 기대를 모으고 있다.

도전자 입장인 전자랜드와 인삼공사가 '양강'을 상대로 얼마나 선전할지도 관심사다. KCC는 4강전 상대인 전자랜드에게 정규리그 전적 4승 2패로 우위를 점했다. 두 팀은 2008-09시즌 6강전(3승2패)과 2010-11시즌 4강전(3승1패), 2017-18시즌 플레이오프 6강전(3승2패) 등 봄농구에서 이미 여러 차례 만나 명승부를 펼쳤으나 최후의 승리는 항상 KCC가 가져간 바 있다.

KCC는 정규리그 우승의 주역인 타일러 데이비스(208㎝)가 막판 부상으로 이탈하는 악재가 있었다. 하지만 믿음직한 빅맨 라건아가 건재하고 KBL 외국인 선수 역대 득점 1위에 올라있는 베테랑 애런 헤인즈-조 알렉산더를 잇달아 영입하며 전력을 보강했다. 귀화선수인 라건아를 보유하고 있는 KCC는 몸값 상한선 이내에서 사실상 3명의 외국인 선수를 활용하는 게 가능하다.

나이는 많지만 영리하고 노련한 헤인즈는 '조커'로서 충분히 활용가치가 높지만, 알렉산더의 적응 여부가 관건이다. 알렉산더는 9일 2주간의 자가격리를 마치고 팀훈련에 합류했지만 플레이오프가 데뷔전이 된 그가 KCC의 조직적인 플레이에 얼마나 녹아들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스타일이 각기 다른 외인 3인방의 출전시간을 효율적으로 분배해야 한다는 것은 전창진 감독의 과제다.

사상 첫 고졸 출신 정규리그 MVP에 오른 송교창의 플레이오프 활약 여부도 관전포인트다. 2015-2016시즌 데뷔한 송교창은 챔피언결정전 1회, 4강 플레이오프 2회 진출 기록을 갖고 있다. 하지만 챔프전에 오른 신인 시절은 비중이 적었고 본격적으로 그가 팀의 주축이 된 2016-2017시즌 이후로 송교창의 플레이오프 활약상은 정규리그에 비하면 다소 아쉬웠다. 2017-2018시즌 SK, 2018-2019시즌 현대모비스를 각각 4강에서 만났는데 모두 KCC를 이기고 챔프전에 올라 정상까지 차지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송교창은 올 시즌 스트레치형 포워드로 변신하며 지난 시즌까지 팀의 약점이던 4번 자리를 강점으로 바꿔놨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공교롭게도 전자랜드도 4번이 약점이다. 무릎부상을 당했던 이대헌이 6강PO 막판에 돌아왔지만 최상의 컨디션이 아니고 정효근은 4강전도 출장 여부가 불투명하다. 하지만 6강전에서 의외로 쏠쏠한 활약을 펼친 박찬호와 민성주까지 활용하는 인해전술도 가능하다. 송교창이 플레이오프에서 정규시즌만큼만 활약해줄 수 있다면 KCC는 국내 선수 매치업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다.

올 시즌을 끝으로 구단 매각이 확정된 전자랜드는 지금의 팀명으로 치르는 마지막 플레이오프에서 못다한 우승의 꿈에 도전하고 있다. 승부수로 영입한 외국인 선수 조나단 모트리가 오리온과의 6강플레이오프에서 평균 25.0점, 14.3리바운드, 3.5어시스트로 맹활약하며 한국농구 적응을 완료했다는 것이 한가닥 희망이다. 모트리와 김낙현의 공격적인 2대 2 플레이는 KCC로서도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 부상자 속출과 체력적인 부담에도 불구하고 선수들이 똘똘 뭉쳐 보여주는 투혼은 '인생을 걸고'라는 팀 모토를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KCC의 우세가 조심스럽게 예상되는 첫번째 매치업과 달리, 현대모비스와 인삼공사의 대결은 상당한 접전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인삼공사는 정규시즌 3위에 그쳤지만 올 시즌 개막전만 해도 가장 강력한 우승후보로 꼽혔던 팀이다. 정규시즌 현대모비스와의 상대전적에서도 오히려 4승 2패로 우위다. 6강전을 예상보다 일찍 끝내며 1주일에 가깝게 체력을 비축할 시간도 얻었다. 전성현-변준형-이재도-문성곤-오세근-양희종 등으로 이어지는 국내 선수 라인업은 10개구단 중 가장 이상적인 짜임새를 보이고 있다. 유일한 변수였던 외국인 선수들의 기복 문제는 후반기 합류한 '제2의 단테 존스' 제러드 설린저의 가세 이후 전혀 다른 팀이 됐다.

설린저는 6강 PO에서 평균 28점 10.3리바운드 4.0어시스트로 종횡무진 활약하며 팀을 승리로 이끌었다. 정규시즌 KT와 3승 3패로 호각세를 보였던 인삼공사가 플레이오프에서는 예상보다 쉽게 3연승으로 일찍 끝낼 수 있었던 것은 설린저 효과로밖에 설명할 수 없다. 전성현의 외곽포와 변준형의 돌파, 문성곤-양희종의 수비력, 오세근의 페인트존 장악같은 국내 선수들의 장점이 덩달아 살아날 수 있었던 것도 설린저가 공수에서 중심을 잡아둔 덕분이었다. 다만 설린저에 대한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아졌다는 것은 수비 조직력이 뛰어난 현대모비스를 상대로는 오히려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

김승기 인삼공사 감독은 KBL 최고의 명장으로 꼽히는 유재학 감독과의 대결에 강한 모습을 보여준 몇 안 되는 지도자다. 2016~2017시즌 4강 플레이오프(3승), 2017~2018시즌 6강 플레이오프(3승1패)에서 두번 만나 모두 김승기 감독이 승리한 바 있다.

현대모비스는 당초 올 시즌을 앞두고 양동근의 은퇴와 함께 선수구성이 큰 폭으로 바뀌며 리빌딩 시즌으로 예상되었지만, 외국인 선수 MVP 숀 롱의 눈부신 활약과 이적생들의 빠른 적응에 힘입어 기대이상의 성적을 거뒀다. 숀 롱과 설린저의 외국인 선수 맞대결은 4강전 최고의 빅매치가 될 것으로 보인다.

숀 롱외에 국내 선수들은 포지션별로 압도적인 선수는 없지만, 식스맨상을 수상한 장재석을 비롯하여 서명진, 이현민, 함지훈, 김민구 등 경험이 풍부하고 전술수행능력이 뛰어난 롤플레이어들이 많다. 현대모비스는 정규시즌 페인트존 슛 리그 1위(경기 평균 21.6개)를 차지할 만큼 확률높고 효율적인 농구에 강점을 보였다. '단기전과 수비전술의 대가'로 꼽히는 유재학 감독이 설린저를 제어할 어떤 깜짝 카드를 준비했을 지도 기대된다. 다만 수비와 높이에서 강점을 더해줄 것으로 기대했던 장신포워드 최진수가 팔꿈치 부상으로 4강전 출장이 아직 불투명하다는 게 변수다.

프로농구 역사상 총 23번의 플레이오프에서 (2019-20시즌 제외) 정규리그 1위팀이 챔프전에 오르지 못한 경우는 단 2번(2008-09시즌 모비스, 2010-11시즌 부산 KT)뿐이다. 반면 같은 4강직행팀이지만 2위팀은 13번 챔프전에 오르고 10번이나 준결승에서 덜미를 잡히며 5할(56.5%)이 조금 넘는 확률에 그치고 있다. 역대 프로농구 플레이오프에서 2위팀을 업셋하고 챔프전에 오른 경우는 모두 3위팀이었다. 3위팀은 총 23번의 플레이오프 중 10번 챔피언결정전에 올라 4번 우승했다.

1위팀은 챔프전 12회, 2위팀은 7회 우승으로 챔피언 등극 횟수도 플레이오프 성적 순과 일치한다. 4·5·6위 팀은 아직까지 챔프전에서 우승한 사례가 없고, 5-6위팀은 챔프전조차 올라보지 못했다. 정규리그 1위와 2위팀이 모두 4강에서 떨어지며 챔프전에 오르지 못한 사례는 2008-09시즌 울산 현대모비스와 원주 동부(DB), 2010-11시즌 부산 KT와 인천 전자랜드 단 2번이었다.

올해 여자농구의 경우, 정규리그 4위 용인 삼성생명이 플레이오프에서 1·2위 우리은행과 청주 KB을 잇달아 물리치고 사상 최초로 4번시드의 기적을 이뤄낸 바 있다. 남자프로농구 4강PO에서도 예상을 뛰어넘는 이변이 나올 수 있을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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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농구 4강P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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