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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하는 학생과 교사
 청소하는 학생과 교사
ⓒ 김순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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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2시 50분, 청소 시간. 재활용품 상자와 쓰레기 종량제 봉투를 들고 학생들이 재잘거리며 걸어갑니다. 그 속에는 1학년 학급 담당 허 선생이 재활용 상자를 들고 있고, 배 선생도 빈 종이 상자를 가득 안고 걸어갑니다.

"선생님, 학력평가 너무 어려워요!"
"◯◯샘, 수행평가 너무 힘들어요. 너무해요."


학생들은 교실에서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조금은 편안하게, 장난과 원망이 섞인 목소리를 쏟아냅니다.

"니가 공부 안 해서 그렇지, 그게 뭐가 어렵노? 그러니 내가 평소에 공부하라 안 했나!"

창고에 도착하면, 종이와 비닐과 페트병으로 분리를 합니다. 재활용품 창고는 학생과 교사가 섞여 복잡하게 보여도 나름의 질서 속에 20분이면 말끔하게 정리됩니다. 날마다 볼 수 있는, 이런 풍경이 보기 좋습니다.

청소로 교권추락? 어떤 것이 교육적인가 

2월 8일, 국가인권위원회는 교무실 등 교직원이 사용하는 공간을 학생들에게 청소하도록 하는 것은 헌법상 일반적 행동 자유권을 침해하는 것이라며 비자발적 방법으로 학생에게 배정하는 것을 중단하라고 권고했습니다.

이후 언론에 보도된 내용은 예상을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학생들의 인권을 중요하게 여겨야 하지만 추락한 교권으로 학생 지도가 어려운데, 이번 권고가 교권 추락을 부추기는 것은 아닌가. 청소를 통해서 학생들의 공동체 의식을 기를 필요가 있는데 그런 기회를 잃지는 않을까. 교원들이 교육활동에 전념할 수 있도록 청소 용역 배치를 확대해야 하지 않나' 하는 것들입니다.

이런 의견들은 모두 무시할 수 없는 측면이 있습니다. 학생들이 함께 사는 공간을 청소하는 것은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해야 할 역할이고, 교권은 마땅히 보장되어 교육활동에 지장이 없도록 국가가 신경을 써야 합니다. 청소 용역을 확대해서 교사들이 교육활동에만 전념하도록 하는 것은 교육 당국이 검토해야 할 일입니다. 

그러나, 저는 논쟁의 핵심은 '비자발적 방법'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선생님들이 업무 공간을 청소하겠다고 나선다면 굳이 말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학생들이 교무실 청소를 하는 것을 부당하게 여기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교사가 학생들에게 교무실 청소를 하는 것이 왜 필요한지 설명하고 학생들이 흔쾌히 수용한다면 문제는 없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학생들이 청소하도록 강요해서는 안 되는 일이지요. 학생들이 교무실 청소를 해 주면 고마운 일이지만 그들이 반드시 해야 할 일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청소하게 하는 것이 교육적이란 주장이 있지만, 교사의 공간은 교사가 청소하면서 학생들이 사용하는 공간을 청소하지 않으면 나무라고 왜 해야 하는지 가르치는 것이 더 교육적이지 않을까요?

교사의 권위가 예전 같지 않은 것이 사실이고 학생과의 관계도 달라져서 교육하기 힘든 시절인 것은 맞습니다. 교육활동으로 인한 마찰이 법정 싸움으로 비화되는 일도 자주 일어납니다. 그러나, 이는 우리 사회의 변화와 함께 나타난 현상일 뿐, 유독 학교에서만 일어난 일은 아니라고 봅니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어떤 부류의 교사들은 조롱의 대상이 된 지 오래되었고 교사를 옛날처럼 존경해 달라고 떼를 쓸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아이들이 철이 없다는 말은 고대부터 있었다고 하잖아요. 그러니 교무실 청소를 학생에게 억지로 시키는 것은 인권 침해라고 인권위원회에 진정하는 학생을 기특하게 여겨야 한다고 봅니다. 마음속에 불만을 가득 안고 있으면서도 자신에게 불리한 일이 생길까 걱정하여 마지못해 청소하는 학생보다는 문제를 드러내어 해결 방법을 찾는 학생이 훨씬 건강하지 않을까요?

물론 자기 행동에 책임지게 하고 공동체의 발전을 위해서는 주장보다 양보가 더 좋은 일도 있다고 가르치는 일은 교사가 놓치지 말아야 하는 일입니다. 민주시민의 자질을 함양하는 일도 교사가 해야 하는 중요한 일이니까요.

"토론하고 합의하라!" 
 
청소하는 학생들
 청소하는 학생들
ⓒ 김순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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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마음에 새기는 어느 어른의 말씀이 있습니다.

"너희들! 옳다 그르다 걸로 다투지 마라! 전적으로 옳고 전적으로 그른 것이 어디 있나? 내가 알기로는 자연 세계에서 정의는 없다. 그것은 인류가 오래도록 무의식적으로 합의해 온 것일 뿐이다. 그러니 다투지 말고, 지금 너희들이 함께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토론하고 합의하라!"

대략 이런 말씀이었던 것 같습니다. 학생들이 청소해야 한다, 말아야 한다는 것도 이와 다르지 않다고 봅니다. 관습적으로 이어져 왔던 일이지만 지금 학생들이 받아들일 수 없으면 합의하고 조정할 일이지, 옳다 그르다는 것으로 다툴 일은 아니라고 봅니다.

교육 당국에 청소 용역을 배치하라고 요구하거나 교원 단체의 교섭 활동을 응원하는 일도 중요하다고 봅니다. 그러나 학생과 교사가 혹은 교사끼리 청소 여부를 두고 다툴 일은 아니라고 봅니다. 우리는 어린 시절 교무실 청소 잘못했다고 회초리를 맞은 세대이지만, 지금은 청소 지시 자체가 문제가 되는, 이미 달라진 세상에 살고 있으니까요.

오전 7시 50분. 1학년 실에는 학년 부장이 요란한 소리를 내는 청소기로 교무실을 청소합니다. 다른 교무실에는 교감 선생님, 교무부장 선생님이 창문을 열고 비를 들고 청소합니다. 어느 선생님은 출근하는 길에 대걸레를 쥐고 교무실로 들어갑니다. 행정실에는 행정실장이 아침을 깨웁니다. 국가인권위원회 결정 이전부터 보던 모습입니다. 교장 선생님께서도 교장실을 청소하십니다.

물론, 우리 학교에도 학생들이 청소하게 하는 것이 교육적 가치가 있다고 믿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리고 교사가 교무실 청소를 해야 하는지 따져볼 일입니다. 그러니 차후에 어떤 것이 학생의 인권을 보호하고 더 교육적인지 깊게 논의하고 합의하는 절차는 꼭 필요한 일이라고 봅니다. 그런데도, 문제 상황이 일어나자 먼저 학생의 의견을 듣고, 학생에게 시키지 말자고 결정을 한 뒤에는 교원들이 스스로 청소하는 학교, 꽤 흐뭇하지 않나요?

태그:#교무실 청소, #인권, #민주시민, #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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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이 책을 읽는 일을 버릇으로 만들면 참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을 돕도록 애써 살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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