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기사 수장 : 20일 오전 9시 43분] 

최근 시작된 드라마 <로스쿨>에서 카리스마 넘치는 형법 교수 양테스의 신념은 "양아치 법조인은 단 한 마리도 만들지 않"는 것이다. 아무래도 이는 첫 회에서 사망한, 뇌물수수 전력이 의심되는 전 검사장 출신의 또 다른 로스쿨 교수와 관계된 것으로 보인다. 작가는, 검사장 시절 뇌물을 받았으나 '친구 사이'란 이유로 무죄를 받은  A 전 검사장 사건을 활용해 출세나 금전적 이익을 위해 수사나 판결을 왜곡하는 법조인을 '양아치 법조인'으로 설정한 듯하다.

검찰개혁의 촛불이 환히 켜졌던 우리사회에 공감될 스토리다. 그런데 검찰개혁은, '양아치' 근절은, 단지 현재 진행중인 공수처 개혁만으로 해결되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돈과 권력으로 수사와 재판이 왜곡되지 않으려면 검찰개혁 외에 '유전무죄 무전유죄'를 막을 또 다른 개혁들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다 계획이 있는 현관들의 법조비리 막을, '전관의 법률시장 진출 금지'

최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재판(박근혜 공정농단 관련 뇌물공여 사건)에서 세간의 이목을 끈 것은 '전관 어벤저스'였다. 수사 단계에선 검사장 출신 변호사들이, 재판 단계에선 부장판사 출신들을 중심으로 변호인단을 구성했다. 구속영장 심사 때는 갓 법복을 벗은 전직 부장판사가 원샷구원투수로 나서 불구속기소를 받아내기도 했다.

맞춤형 전관 활용이 이재용의 전유물은 아니다. 2019년 차성안 전 판사(현 서울시립대 로스쿨 교수)가 사법정책연구원 연구위원으로서 발표한 '해외의 전관예우 규제사례와 국내 규제방안 모색'에 따르면, 과거엔 사건브로커가 하던 '현관과 전관 간 다리놓기'를 요즘은 대형로펌들이 한단다. 사법연수원 기수마다 전관 변호사들을 갖춰놓고 의뢰가 들어온 사건의 현관에게 영향력을 미칠 전관을 소개시켜주는 로펌들이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전관의 몰래 변호(위임장을 내지 않고 현관에게 전화 등으로 청탁하는 변호)'도 법조계의 공공연한 비밀이라고 한다.

전관 변호사의 활동은 수사, 재판의 왜곡으로 이어질 수 있다. 2015년 정운호 게이트를 통해, (위임장도 쓰지 않고) 그의 사건을 맡은 검사 출신 B 변호사가 사건 청탁 명목으로 수억을 받은 뒤 담당 검사와 18차례나 통화하며 불구속 수사를 부탁한 사실이, 이후 그의 2심 재판 변호를 맡은 판사 출신 C 변호사가 50억의 수임료를 받은 뒤 담당 판사에게 수억을 상납한 사실이 밝혀졌다. 어쩌면 B, C변호사들에게 검사, 판사 시절의 법복은 '장사 밑천'이 아니었을까? 현관 시절 이들에겐 전관 경력으로 제대로 한 탕 하리란 계획이 다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또 그들에게 뇌물을 받은 검사, 판사들도 역시 같은 마음으로 협력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모든 전관 변호사가 법조비리를 저지르는 것은 당연히 아니겠지만 '전관을 쓰면 유전무죄 될 수 있다'는 믿음은 법치주의 자체를 흔드는 심각한 문제다. 차성안 전 판사는 무려 600페이지가 넘는 위 보고서에서 그 해결책들을 제시한다. 양승태 블랙리스트로 유명한 그가 법복을 벗기 전 수많은 나라들의 사례를 뒤져 촘촘한 대안들을 갖춘 위 전관예우 보고서를 쓴 것은, 부정한 법원구조를 견디며 최대로 출세한 뒤 법률시장으로 나와 전관변호사의 이익을 누리려는 현관들의 문화를 근절하는 것이 사법농단의 근본 해결이요 진정한 사법개혁이라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아쉽다. 그는 사건 수임 제한의 강화, 연고관계를 고려한 배당 등 여러 대안들을 소개했고 그의 영향 때문인지 국회와 법무부에선 유사 법안들을 내놓기도 했다. 그러나 차성안 전 판사는 "해외에선 전관이 개업하는 일 자체가 없다는 핵심적인 공통점이 발견됐다"며 미국의 종신제나 독일의 평생법관제, 영국의 법관 임명시의 개업영구금지 서약 등을 소개하면서도 정작 이와 같은 것들을 우리 법조계에 대한 대안으로 제안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하나 더. 차성안 전 판사도 지적했듯 의뢰인들이 전관변호사를 찾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3분재판'이다. 판검사 수가 워낙 부족해 인생이 걸린 사건이 단 몇 분만에 처리되는 것이 현실이다보니 시민들은 담당 판검사와 연고가 있어 내 사건을 보다 신중하게 살펴줄 전관변호사를 찾게 되는 것이다.

결국 전관예우 아니 전관비리를 막고 유전무죄를 근절할 근본적인 답은, '전관의 법률시장 진입 전면 제한'과 '판검사의 수의 대대적인 확충'이다.

지강헌의 '홀리데이' 멈출, 법률서비스의 공공화

"00이 넌 탤런트 되기 글렀구먼"

현장검증 영상 속 경찰의 말이다. 1999년 2월 전북 완주군 삼례에서 발생한 '나래슈퍼 사건'에서 사회경제적 수준이 낮은 소년들(그중 일부는 지적장애까지 있었다)은 범행을 저지른 바 없음에도 경찰의 폭력 속에서 거짓 자백을 했고, 현장검증에서조차 범행의 재연 아닌 신인(?) 연기를 선보여야 했다.

강압수사는 옛말이 아니다. 최근인 2018년 고양 저유소 화재 사건의 용의자로 체포된 한 외국인노동자에 대해 경찰은 무려 123번이나 "거짓말 하지마!"라고 소리치며 반말과 비속어로 피의자신문을 진행했고, 배후에 대한 유도신문과 자백강요도 서슴지 않았다.

언어폭력이 난무하는 신문에서, 범인이라는 답을 정해놓은 채 끼워맞추기식 압박을 하는 신문에서, 피의자는 원치 않는 자백을 하거나 불리하게 진술할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피의자 단계에서는 '나의 변호인'이 필요하며 관련한 변호인조력권은 헌법상 기본권이기도 하다. 그러나 사회경제적 약자에게 변호인조력권은 그저 헌법에만 등장하는 것일 수 있다. 그래서 필요한 대안 중 하나가 '형사공공변호인 제도'다.

이미 우리나라엔 기소되어 형사재판을 받는 피고인 단계에서 경제적 곤란자 등에게 무료로 변호인을 선임해주는 국선변호인 제도가 존재한다. 하지만 초등수사가 중요함에도 피의자에 대하여는 그와 같은 제도가 없다. 이에 형사공공변호인 제도는 그 대안이 될 수 있다. 이는 문재인 정부의 형사정책 공약 중 하나였고, 법무부는 지난달 8일 박범계 법무부장관이 발표한 '2021년 법무부 주요업무 추진계획'에서 그 실현을 약속하기도 했다. 우리사회엔 사람의 신체적 생명에 대한 의료복지에 관하여는 건강보험제도가 그래도 잘 마련되어 있다. 반면 사람의 사회적 생명과 관련된 법률복지는 취약한 상황이다.

1988년 단 5백만원 훔치고도 무려 17년 감옥살이를 선고받은 지강헌은 전경환(전두환 전 대통령의 동생)이 중범죄를 저지르고도 겨우 징역 7년만 선고받은 것에 분노해 이감 도중 탈주했다. 그런 그가 희대의 인질극 도중 마지막으로 '홀리데이'를 틀어달라 하고는 마지막으로 외친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더 이상 시민의 공감을 얻지 않으려면, 이과 같은 선별적 법률복지 제도가 반드시 필요하다.

한편 중산층을 위한 보편적 법률복지에도 눈을 돌릴 필요가 있다. 바야흐로 변호사 3만 명 시대임에도 평범한 시민들이' 내 옆의 변호사'를 체감하지 못하는 것은 여전히 변호사 선임료가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이것이 2019년 한 해 동안 전국 법원에 접수된 민사본안사건 수만 약 100만건임에도 그 중 상당부분이 '나홀로 소송'인 이유, 아예 문제를 겪어도 참고 넘어가는 이들이 적지 않은 이유다.

독일 국민 43%(2007년 기준)는 권리보호보험에 가입해 있다. 변호사 보수의 법정화, 성공보수의 원칙적 금지, 그리고 변호사 강제주의의 토대 위에 독일인들은 매달 소액의 보험료를 내고 언제든 변호사의 도움을 받는 삶을 누린다. 민사 사건에서조차 성공보수가 금지되니 크게 한 탕 할 수는 없지만 독일 변호사 대부분은 '이웃같은 변호사의 안정적인 삶'에 만족하며 산다.

미국 국민들은 노조, 공제회 등 단체를 통한 법률서비스 공유에 익숙하다. 예컨대 어느 가정의 가장이 회사를 다니고 있다면 그의 가족 구성원 전부는 회사 노동조합이나 사용자 측이 제공한 법률서비스 공동구매 시스템을 활용할 수 있다. 결혼을 하거나 이사를 하는 등 일상에서 당면하는 여러 사건들에 관해 언제고 자유롭게 상담을 받을 수 있고 각종 계약서 검토를 요청할 수 있으며 소송비용도 전부 내지 일부를 지원받게 된다.

'유전무죄 무전유죄' 더는 없을 법률서비스 개혁과 로스쿨

침몰하는 배에서 바다로 뛰어드는 희생을 치를 이는 누가 되어야 할까?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에도 등장하는 이 딜레마의 답은 참으로 어렵다. 누군가는, 생존 가능성이 낮은 '노인'을 희생시켜야 한다고 할 것이다. 반대로 '노인'은 사회적 약자이니 오히려 보호해야 한다는 이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요즘 2030의 상징이라는 '형식적 공정'에 방점을 찍고 바라보면 답은 '랜덤(random)'일지 모른다. 누구에게나 생명은 소중한 법. 차라리 '아무나'를 바닷속으로 던져 버리는 게 답일 수도 있는 것이다. 전관변호사나 대형로펌은 무서워 감히 건드릴 수 없고 그저 만만한 변호사시험 수험생들만 바다로 던지겠다는 것보다는 차라리 '아무나' 던져버리는 게 나을 수 있단 얘기다.

변호사 수가 어느새 3만이 넘었다. 게다가 코로나19의 여파로 극심한 불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로스쿨을 졸업하고 변호사 자격을 취득해 자격증의 등록번호가 3만번대이며, 전관 경력이 전무한 신참 변호사인 내가 두렵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내가 두렵다고, 나만 살면 된다고, 나의 이익이 곧 정의라고 하면서, 그와 같은 태도로 법조인양성시스템과 법률서비스의 대안에 관해 목소리를 내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연재의 지난 기사들에서, 법조인 배출 수를 통제할 때 법조인양성기관인 로스쿨의 교육이 어떻게 파행되는지 보였다. 경쟁에 특화된 시험기술자 아닌 인권과 정의를 사유하는 법조인을 길러내려면 법조인 배출 수가 함부로(기득권법조인들의 이익을 고려한, 절대평가 아닌 상대평가의 방식으로) 통제되어선 안된다. 그럼 배고픈 변호사들의 문제는 어쩔 거냐고? 당장 거리에 나앉는 문제, 당신이 해결할 수 있느냐고?

나는 위와 같이 법률서비스 공공화를 대안으로 제시한다. 전관의 법률시장 진출 전면금지로 유전무죄를 막아야 한다. '3분수사', '3분재판'이 더는 없도록 판검사의 수를 대폭 늘려야 한다. 전관의 법률시장 진출 전면금지로 유전무죄를 막아야 한다. 형사공공변호인제도, 권리보호보험 내지 단체를 통한 법률서비스 공동구매 전면실시 등으로 무전유죄를 또 막아야 한다. 이와 같은 근본적인 대안들이 있는 한, 그저 신규 변호사 수를 통제하며 관련 교육기관을 황폐화하고 법조계의 특권의식을 유지하는 것은 효과적이지도 정의롭지도 못한 대안이다.

21일 제10회 변호사시험 합격자 결정 즉 신규 변호사의 배출 수 결정이 예고되어 있다. 그래서일까 19일 아침부터 변호사들의 칼럼이 쏟아졌다. 최근 변호사시험에 합격한 앳된 변호사마저 "변호사 배출 수를 줄이라"고 주장했다. 그들은 아마 나의 대안에 관해 '당신의 대안이 변호사들과 시민들 모두에게 바람직한 답이라 하여도 아직 그것이 실현되지 않은 이상 신규 배출은 통제되어야 한다'고 주장할지 모른다. 그런 그들에게 말하고 싶다. 나의 대안들은 결국 실현될 것이다. 아니 적어도 미국식 무한경쟁 법률시장이라도 조성되고야 말 것이다. 신규 변호사 수 통제는 그 시기를 다만 늦출 뿐이다. 그와 같은 지연 속에서, 비정상적인 로스쿨 교육으로 이미 피해를 입었는데 이번엔 법조계에서 영영 퇴출되며 억울함과 분노를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이들이 늘어간다. 지연 속에서, 시민들은 로스쿨을 대체 왜 만들었는지 전혀 이해할 수 없고 법조계의 밥그릇 싸움에 혐오만 느끼게 된다.

차라리, 법조인의 능력과 자질 그 하나만으로 변호사의 자격을 취득하도록 한 뒤, 법조인들이 공생하면서도 진정한 법조인양성교육과 시민들의 법률서비스 모두를 더 나은 것으로 만들 대안을 함께 머리를 맞대고 찾아보는 것 그것이 '효과적'이면서도 '올바른' 진짜 답은 아닐까?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로스쿨 교육 정상화 및 법조문턱낮추기' 운동을 하는 로스쿨 출신 변호사인 시민기자입니다. 출판예정인 <노무현의 로스쿨은 죽었다>(가제)의 일부를 연재합니다. '제10회 변호사시험'의 합격자 결정 및 발표가 2021년 4월 21일로 예정되어 있습니다. 모쪼록 이 연재가, 제10회 변호사시험을 시작으로 로스쿨과 변호사시험의 정상화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길, 법조계와 시민사회 모두를 위한 로스쿨 개혁에 작게나마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태그:#변호사시험, #변호사시험, #로스쿨, #양크라테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고등학교 사회과 교사였고, 로스쿨생이었으며, 현재 [법률사무소 이유] 변호사입니다. 무엇보다 초등학생 남매둥이의 '엄마'입니다. 모든 이들의 교육받을 권리, 행복할 권리를 위한 '교육혁명'을 꿈꿉니다. 그것을 위해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 글을 씁니다. (제보는 쪽지나 yoolawfirm@naver.com)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