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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이전과 현재 생활 패턴의 세부영역별 변화 정도에 대한 조사 결과. 자료출처: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코로나19 이전과 현재 생활 패턴의 세부영역별 변화 정도에 대한 조사 결과. 자료출처: 전국장애인부모연대
ⓒ 박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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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은 취약계층부터 파고든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아래 코로나19)로 모두의 일상이 바뀌는 동안, 발달장애인의 일상은 멈춰버렸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학교와 기관 이용이 장기간 중단되면서 학습과 일상생활에 지장이 생겼다. 코로나19 이후 1년, 현재진행중인 발달장애인의 돌봄·학습 공백을 짚어봤다.

코로나19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행되면서 학교와 복지시설의 휴교·휴관이 이어졌다. 지난해 4월 학교는 온라인 개학 이후 두 달 만에 등교를 재개했다. 복지시설 역시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에 따라 휴관과 축소 운영을 반복했다.
     
휴교·휴관 이후 발달장애인은 극심한 스트레스를 호소했다. 2020년 4월 전국장애인부모연대(아래 부모연대)와 대한작업치료사협회가 시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87%가 발달장애인의 생활 패턴이 부정적으로 변했다고 답했다. 특히 외부활동과 에너지 발산 및 조절에서 큰 폭으로 감소했다.

생활 반경이 집으로 제한되면서 신체적·정서적 이중고가 발생했다. 발달장애 자녀를 둔 영등포구장애인체육회 마명주 사무국장은 "발달장애인은 코로나19로 시설 이용이 제한되는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다"며 "이들 입장에서는 기존의 규칙적인 루틴을 하루아침에 잃어버린 꼴"이라고 말했다.

누적된 스트레스가 도전적 행동으로 표출되기도 한다. 지난 3월 발표된 성인 발달장애인 연구*에 따르면 성인 발달장애인은 운동이나 영화 시청 등 기존 활동이 제한된 이후 손을 물어뜯거나 소리를 지르는 도전적 행동이 늘었다. 성균관대 사회복지학과 김민아 교수는 "성인 발달장애인은 주간에 복지시설 활동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며 "비장애인보다 훨씬 큰 고립과 정서적 어려움을 겪게 된다"고 지적했다.

코로나19로 발생한 지역사회 돌봄 공백은 오롯이 가족에게 전가된다. 발달장애인은 스스로 일상생활을 영위하기 어려워 24시간 보호가 필요하다. 이에 가족들은 코로나19 이후 가중된 돌봄 부담을 호소한다. 실제로 앞선 부모연대 설문조사에서 발달장애인 부모의 스트레스 지수는 10점 만점에 7.93점으로 높게 측정됐다. 마 국장은 "휴관 이후 (발달장애) 아이뿐 아니라 가족들도 견디기 힘든 상황"이라고 밝혔다.

자녀를 돌보기 위해 부모가 직장을 그만두기도 한다. 2020년 11월 국가인권위원회가 실시한 '코로나19 상황에서 발달장애인과 가족의 삶'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20.5%가 자녀 지원을 위해 부모 중 한쪽이 직장을 그만뒀다고 답했다. 이에 정부는 1월부터 '활동지원 가족급여'를 시행했다. 발달장애인이 활동지원 급여를 받지 못할 경우 가족이 직접 제공하면 급여비용의 50%를 지원하는 제도다.

"비대면은 불가능해요"…발달장애인 교육 격차 발생

코로나19 이후 비대면 교육이 대안으로 떠올랐지만, 발달장애인에겐 먼 이야기다. 발달장애인은 비대면 서비스 이용 과정에서부터 난관을 겪는다. 기계사용에 미숙하고, 외부 감각에 예민해 장시간 화면을 시청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다. 사실상 보호자의 도움 없이는 수업을 듣기 어려운 셈이다.

마 국장은 "비대면 서비스로 인해 보호자의 부담이 오히려 늘었다"며 "비대면 수업이 효과를 보려면 보조 인력도 함께 지원돼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사람과의 상호작용이 중요한 발달장애인에게 비대면은 효과가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 교수는 "발달장애인은 꾸준히 사람을 만나 교류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대면 교류가 중단되면 추후 사회적 기능을 회복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편 비대면 수업 콘텐츠에 대한 문제도 제기된다. 코로나19 상황이 악화되고,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가 격상되면 비대면 수업이 불가피하다. 그러나 현재 비대면 수업 준비는 미비한 상황이다. 부모연대 서울지부 정순경 부회장은 비대면 수업이 '구색 맞추기'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정 부회장은 "비장애인은 EBS나 실시간 강의 등 선택지가 많지만, 발달장애인은 수업에 쓸 콘텐츠 자체가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 2020년 10월 더불어민주당 김상희 의원이 EBS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발달장애인 대상 EBS 교육 지원이 미흡한 것으로 나타났다. 초등·중등·고등교육·평생교육·직업/자격증 5개 분야 중 평생교육 콘텐츠만 제공됐으며, 이마저도 3개가 전부였다.
 
발달장애인평생교육센터는 코로나19 이후 외부 인력이 줄어 프로그램 운영의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발달장애인평생교육센터는 코로나19 이후 외부 인력이 줄어 프로그램 운영의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 서대문구발달장애인평생교육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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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대면 대체가 어려운 것은 복지시설 역시 마찬가지다. 대면 프로그램에 비해 연속성과 활동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일례로 서대문구발달장애인 평생교육센터(아래 센터)는 지난해 3월부터 5월까지 휴관하며 이용 장애인에게 화분 만들기, 제빵 키트 및 스트레칭 영상을 제공했다. 활동 반경이 가정으로 축소된 이용자와 보호자는 만족도를 보였지만, 대면을 대체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오은경 센터장은 "제한된 방식이나 물품 지원으로는 휴관의 근본적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에 지난 2월 서울시는 돌봄 공백을 최소화하고자 사회복지시설 운영을 확대했다. 현재 장애인 주간보호시설, 직업재활시설, 발달장애인평생교육센터는 이용정원이 50%로 제한돼 운영 중이다. 그러나 사회적 거리두기로 외부 강사와 봉사자가 줄고, 프로그램도 축소됐다. 오 센터장은 "정부 방역지침은 이용정원뿐 아니라 활동성·외부 프로그램, 외부 강사도 제한한다"며 "외부기관 방문이나 문화·체육 활동이 코로나19로 전면 중단됐다"고 토로했다.

발달장애인 특성 고려한 섬세한 정책 필요해

비대면 일상 속 격차가 벌어지자 이는 재난시대의 또 다른 불평등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전문가와 현장은 발달장애인의 사각지대를 해소할 정책이 시급하다고 입 모아 말한다. 우선 발달장애인 지원 정책의 초석이 될 전수조사가 요구된다. 마 국장은 "재난 상황일수록 정확한 실태조사가 필요하다"며 "현재 행정은 코로나19 이전 자료를 기반으로 한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가장 최근 실태조사는 지난 2017년 서울시가 실시한 발달장애인 전수조사다. 서울시는 지난해 2020년도 전수조사를 계획했으나, 사회적 거리두기로 지연돼 현재 진행 중이다. 또 마 국장은 "발달장애인의 개별적 특성을 반영한 전수조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일괄적인 설문문항 외에도 발달장애인·가정·기관 담당자 면담 등을 통한 다각적 조사가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서비스 못지않게 서비스 전달체계 개선도 중요하다. 새로운 서비스가 나와도 이용자와 보호자가 전달받지 못하면 무용지물이다. 특히 의사소통이 어려운 발달장애인은 체계적이고 자세한 정보 제공이 필요하다. 일례로 지난해 현장에서 마스크 착용 및 방역지침 교육 요구가 나오자, 서울시는 지난 1월 '장애인 감염병 대응 매뉴얼'을 제작해 배포했다. 김 교수는 "재난 상황일수록 지속적인 소통과 정보 제공이 중요하다"며 "발달장애인과 가족이 불안을 덜 수 있도록 정책 현황도 꾸준히 공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적시에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활동보조인, 사회복지사 등 전문 인력 양성이 필요하다. 마 국장은 "활동보조 인력이 부족해 충분히 활용하지 못하는 상황"이라며 "장애인복지시설 역시 전문적인 양성과 양적 충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비대면 상황에서 개별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현장 지원 인력이 필요하다. 김 교수는 "비대면 시기 학대나 사각지대가 발생할 위험을 인지하고, 직접 찾아가는 방문 서비스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1월, 세계보건기구(WHO)는 장애인의 돌봄 서비스가 지속돼야 한다고 권고했다. 팬데믹 위기 속에서 장애인이 인간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사회적 돌봄을 강조한 것이다. 발달장애인의 지속가능한 일상을 위해 제도적 보완과 모두의 관심이 필요한 시점이다.

* A qualitative study on parents' concerns about adult children with intellectual disabilities amid the COVID-19 pandemic in South Korea(김민아, 2021.03)

태그:#코로나19, #발달장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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