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전당 잔디마당의 버스킹오페라 '로페라'로 시민들이 봄바람 맞으며 오페라 여러 대목을 감상할 수 있었다.

예술의전당 잔디마당의 버스킹오페라 '로페라'로 시민들이 봄바람 맞으며 오페라 여러 대목을 감상할 수 있었다. ⓒ 예술의 전당

 
지난 6일 개막한 제19회 한국소극장오페라축제(예술감독 장수동, 집행감독 이강호, 음악감독 양진모)가 막바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22년 전 유럽 각 지역 오페라극장이나 브로드웨이 뮤지컬처럼 오페라가 관객과 가까워지길 바라는 마음에서 출발한 '소극장오페라축제'가 예술의전당과의 공동 제작을 통해 관객 친화적인 소통 등 발전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기자는 이번 오페라의 다섯작품과 오페라 포럼 두개, 버스킹 두 번을 모두 다 보고 싶었으나, 이번에 신작인 <엄마 만세>(연출 장서문, 번안 최지형)는 표가 매진이라 못봤고, <김부장의 죽음>(대본 신영선, 연출 정서영)과 오페라포럼1은 스케줄상 못 봤고,  14일 <서푼짜리 오페라>, 17일 <달이 물로 걸어오듯>과 오페라 버스킹 <로(路)페라>를 보았다. 만약 이 공연들을 보지 못했다면, 한국 오페라가 발전하는 중요한 한 장면을 놓쳤겠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14일 관람한 <서푼짜리 오페라>(연출/각색 이회수, 번안 양진모, 지휘 박해원)는 경쾌한 음악과 연극적 재미 속에서 자본주의를 폐해를 꼬집으면서도 인정미 있는 작품이었다. 극 시작에 출연진 일곱 명이 각각 한 명씩 등장하며 자신을 노래로 설명할 때는 길다 싶었는데, 극이 진행되자 이 덕분에 캐릭터 간 갈등이나 행동이유를 구체적으로 알 수 있어 좋았다. 

주인공인 런던 암흑가의 보스 메키 메서(테너 김재일)가 객석에서 입장하면서 관객에게 말도 걸고, 노래를 불러 친밀감을 준다. 제작발표회 때 이회수 연출의 설명에 의하면 이번 작품이 대사량이 많고 가사템포가 빨라서 성악배우들이 "머리가 좋아지는 약을 먹고 싶다"고 했다는데, 성악가 대부분이 연극배우보다 더 배우같은 자연스러운 연기와 노래를 보여줘 놀랐다. 무대는 그물망 형태의 네모 조각 천을 10여개 스크린으로 삼았다. 장면에 따라, "No!" 자막, 독약 모양, 서로 맞물려 돌아가는 톱니바퀴 등을 띄워 가사 내용의 암시와 이해를 도왔다.
 
 '서푼짜리 오페라'는 음악, 무대, 연기, 의상이 조화롭고 당시의 풍자극 역할을 이번 공연에도 살렸다.

'서푼짜리 오페라'는 음악, 무대, 연기, 의상이 조화롭고 당시의 풍자극 역할을 이번 공연에도 살렸다. ⓒ 예술의 전당


인터미션을 제외하고 전후반 100분 동안 13여 곡의 노래가 분위기에 따라 금관과 목관, 타악기를 반주로 하여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20세기 초 유럽 캬바레 분위기를 잘 살렸다. 이 때 노래제목이 무대양쪽 전광판에 한국어로 뜨고, 스피커에서는 독일어로 소개되어 이국적 느낌을 준다. 한국에서는 잘 공연되지 않던 독일 극작가 바르톨트 브레히트 대본, 쿠르트 바일 작곡의 1928년작 <서푼짜리 오페라>의 한국초연은 이렇게 우리말 오페라로 탄생했다. 

여주인공 폴리 역의 소프라노 이세희는 '해적 제니의 노래'에서 빠른 리듬에도 경쾌하게 가사 장면을 관객들 눈앞에 펼쳐줬으며, 메키와의 '결혼의 노래' 또한 사랑스럽다. 경찰청장 브라운(베이스바리톤 윤종민)과 메키의 '대포의 노래'도 지팡이로 찰리 채플린 춤을 추며 암흑가 보스와 경찰청장이 친구가 된 연유를 익살스럽게 표현해주었다.

바로 이 장면에서, 이번 '소극장 오페라'다운 컷 한 장면이 연출되었다. 안 그래도 내 머릿속에 "어쩜 성악가가 연기에, 게다가 춤까지 저렇게 잘 춰? 엄청 연습했겠다"라고 생각드는 순간, 메키 역 김재일이 채플린 모자를 바닥에 내동댕이치며 "에휴, 오페라 가수 일도 못 해먹겠네. 개런티는 쥐꼬리만큼 주면서, 노래에 춤까지 시키고." 이렇게 말하니 옆에 브라운 역 윤종민이 "조심해요. 화난 이회수 연출이 내일 더 많은 대사를 안겨다주면 어쩌려고 그래요? 저~기 우리 보고 있는 거 보이죠?" 하고서는 연출을 향해 "사랑합니다"라며 둘은 손가락하트를 날려 재미를 주었다. 20세기 초 한켠의 유럽 소극장에서 사회를 비틀었던 그 장면을 이번 페스티벌 제작환경에 대해 슬쩍 푸념하는 것으로 보여준 것이다.

거지회사 사장 피첨 역 바리톤 최은석은 대사량이 제일 많아 보였는데, 연극배우 같은 내레이션으로 관객을 극으로 잘 인도해줬다. 메키의 부인인 피첨부인 역 메조소프라노 이미란은 '성의 노예에 관한 법칙' 노래에서 돈으로 해결되는 암흑같은 인생사 원리를 가슴 속에 파고들게 잘 들려주었다. 메키를 사랑하는 루시(소프라노 김경희)와 폴리의 '질투의 이중창'도 포인트였으며, 매춘여성 제니 역 메조소프라노 여정윤은 '솔로몬의 노래'에서 그 풍성하고 고혹적인 음성으로 사창가 여인의 삶과 선택에 공감을 불러일으켜 눈물을 자극했다. 결말은 여왕의 사면으로 메키가 석방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달이 물로 걸어오듯'은 무죄를 밝히기 위해 주인공 수남이 '생각'하는 것을 영상으로 표현했다.

'달이 물로 걸어오듯'은 무죄를 밝히기 위해 주인공 수남이 '생각'하는 것을 영상으로 표현했다. ⓒ 예술의 전당

 
<달이 물로 걸어오듯>(표현진 연출, 지휘 조정현)은 17일 공연을 보았다. 2014년 서울시오페라단(고연옥 대본, 최우정 작곡, 사이토 리에코 연출)의 세종문화회관 M시어터 초연 때는 인물 각각의 심리에 초점을 맞췄다면, 이번에는 관계 간 갈등을 더 부각했다. 

극의 줄거리는 이렇다. 술집여자 경자는 자신의 엄마와 이복여동생에 대한 원한을 품고 있다. 술집에 드나들던 스무살이나 많은 트럭운전수 수남을 유혹해 결혼한다. 어느날 새벽 수남은 경자의 엄마와 여동생이 죽은 모습을 보고, 자신이 그 죄를 뒤집어 쓰기로 한다. 감옥에 갇힌 수남에게 검사는 "잘 생각해보라"며 그동안 사랑에 눈이 멀어있던 수남을 일깨워준다.

2014년 초연이 노래로 심리를 드러낸 정통파라면, 이번 버전은 심리는 영상기법과 색채적 상징을 통해 암시하고, 관계 간 갈등은 노래로 풀어낸 모더니즘을 구사했다. 극 시작부터 주인공 수남이 "그래 생각을 해보자"라고 되뇌며 노래할 때, 영상에서는 경자, 마담, 술집여인 미나, 검사의 얼굴이 보이면서 이들의 노래(주인공에게 요구하는)가 중첩된다. 

또한임신한 경자가 좋아했던 딸기를 단서로 해서 경자의 붉은 머리색과 딸기장수(베이스 양석진)의 빨간색 바지, 남주인공 수남의 주황색 죄수복 등으로 통일시켰다. 그 이유를 공연을 보면서는 잘 몰랐는데 리뷰를 쓰면서 생각해 보니, 이번 공연의 '딸기'가 바로 유명한 모차르트 오페라 <마술피리>의 '마술피리' 같은 역할이겠구나 하고 느꼈다. 

이번 공연에서 술집여인 미나(소프라노 김효주)가 군인 둘을 어루만지며 노래하고, 살인을 한 것은 경자라며 하이C음까지 멋지게 노래부를 때,  오페라 <마술피리>의 밤의 여왕처럼 보였는데, 사실 2014년 초연 때는 그 정도로 악녀로는 안 보였었다. 즉, 표현진 연출이 대본을 분석해, 임신한 경자의 권력이자 마법 '딸기'를 오페라 <마술피리>의 '마술피리'처럼 둠으로써, 이번 극의 해설자인 마담 역을 기존 메조소프라노가 아니라 오페라 <마술피리>의 해설자인 파파게노처럼 남성배역인 카운트테너로 했음을 추리할 수 있었다.

이렇게 해서 2014년 초연의 심리오페라가 이번에는 심리판타지 오페라가 되었다. 
2014년 초연부터 매번 수남 역을 해온 테너 염경묵과 마찬가지로 초연 때부터 검사 역을 한 테너 엄성화, 그리고 이번에 합류한 주인공 경자 역의 소프라노 신은혜 등 출연진들은 정확한 우리말 발음과 훌륭한 노래로 오페라와 연극의 경계를 넘은 열연을 펼쳤다. 마담 역의 카운트테너 이희상이 "달이 물로 걸어오듯 여자와 남자는 만나는 거야"라며 노래할 땐 매력이 배가됐다. 

또한 지휘자 조정현을 포함한 바이올린 두 대, 비올라, 첼로 피아노와 신시사이저의 7인조 앙상블인데도 작곡가 최우정의 불협화음과 반음계의 극적 긴장을 효과적으로 극장에 꽉 채워주었다. 공연 후 관객과의 대화(GV)에서 테너 염경묵은 "연출과 지휘자가 바뀌면 극이 바뀐다"라고 관객의 질문에 답변했다.

맞다, 그랬다. 그래서 기자는 아직도 초연의 자연스런 아름다움이 그리운데, 이날 GV에서 관객이 "여주인공이 감옥에서 출산 후 죽고 누워있을 때, 그녀의 노랫소리가 화면 영상에서 들리는 줄 알았는데, 객석에서 실제로 노래부르는 것이냐" 등 사건 진행과 공연 기법에 대해 묻는 것을 보곤 '이제 오페라 <달이 물로 걸어오듯>도 앞으로 여러 무대를 만나 커가면서 자기 모습을 찾고 또 성장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페라 포럼I에서 이번축제 공동제작사인 예술의전당 유인택 사장이 열띤 설명을 하고 있다.

오페라 포럼I에서 이번축제 공동제작사인 예술의전당 유인택 사장이 열띤 설명을 하고 있다. ⓒ 예술의 전당

 
이번 소극장오페라축제는 극장 공연 작품에만 치중하지 않고, 관객과 소통하려는 노력이 돋보였다. 17일 토요일 오후 12시부터 3시까지 예술의전당 잔디마당에서 오페라 버스킹 '로(路)페라'가 무료공연으로 진행되었다. 주말 나들이 관객들은 따스한 봄바람과 함께 다양한 오페라 대목과 여러 젊은 연주단체를 만나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었다. 또한 자유소극장 각 오페라 4회 공연 중 한 번씩은 관객과의 대화(GV)를 진행해 관객과 오페라 공연자가 서로 가까워질 수 있었다.

지난 14일 오후 1시엔 예술의전당 인춘아트홀에서 오페라포럼 I <벼랑 끝에 선 오페라 - 소극장오페라 부활을 위한 난상토론>이 진행돼 오페라 현실에 대한 진단과 토론이 이뤄지기도 했다. 이제 오는 25일 폐막식과 시상식까지 <춘향탈옥> 공연과 오 페라포럼 II를 남겨두고 있는 제19회 한국소극장오페라축제에 많은 분들의 계속적인 응원과 관심을 바란다. 
한국소극장오페라축제 장수동 이강호 최지형 이회수 표현진 김재일 윤종민 여정윤 김경희 이미란 염승묵 엄성화 이희상 신은혜 김효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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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을 전공하고 작곡과 사운드아트 미디어 아트 분야에서 대학강의 및 작품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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