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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록달록한 도넛을 가지런히 놓고 바라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진열장을 보며 '예쁘다!' '맛있겠다!' 하는 손님들을 보면 아침 일찍 일어나는 보람이 있다.
▲ 진열 준비를 기다리는 비건도넛 알록달록한 도넛을 가지런히 놓고 바라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진열장을 보며 "예쁘다!" "맛있겠다!" 하는 손님들을 보면 아침 일찍 일어나는 보람이 있다.
ⓒ 김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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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집의 하루는 새벽녘에 시작된다. 사람들이 하루를 시작하기 전에 반죽과 발효를 마치고, 새벽같이 진열을 해둔 뒤 손님을 기다리며 아침을 깨운다. 알록달록한 진열장을 바라보는 손님들의 눈에는 늘 호기심이 가득하다. 무엇을 집어 들지 고민하는 손님에게 한 마디 건네본다. 

👩‍🌾 "저희 비건도넛집인 것 아시죠?" 

비건이 뭐예요, 비건도넛은 뭐가 달라요, 하는 물음이 돌아온다.

👩‍🌾 "우유, 계란, 버터를 넣지 않고 식물성 재료로만 만든 도넛이에요." 

비건이 아닌 빵은 우유, 계란, 버터를 넣어 만들곤 한다. 촉촉한 질감과 부드럽고 고소한 맛을 내기 위해서다. 내가 일하는 도넛가게는 그러한 동물성 재료들을 대체해서 두유, 아마씨가루, 유기농 코코넛오일 등을 넣는다.

동물성 재료가 들어가지 않았다고 말하지 않으면 무엇이 다른지 전혀 모를 정도로 '일반 도넛'과 다를 바 없는 맛이다. 오히려 더 맛있다는 평을 받는다. 덕분에 채식은 맛이 없다는 편견에 정면으로 도전을 하고 있다는 자부심이 생긴다. 

'진짜 비건'과 '가짜 비건'? 

웬만하면 손님 한 명 한 명에게 우리 도넛이 비건인 것을 상기시키려고 하는 편이다. 채식도넛집이라는 것을 모르고 들러본 손님들과 즐거운 대화가 이어지기도 한다. 도넛과 같이 마실 커피를 고르는 손님에게 소이라떼를 추천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우유가 아닌 두유로 만든 라떼만큼 비건 도넛과 잘 어울리는 음료가 없다.

어느 날 있었던 일이다. 점심시간이었다. 두유를 만드는 기업의 직원들이 우르르 들어와 커피를 주문했다. 가게 근처에 신사옥이 있다고 하던데, 식사를 마치고 후식을 먹기 위해 카페에 들른 듯했다. 손님들의 유니폼에 새겨진 기업에서 만든 B두유는 내가 비건을 시작하기 전에 즐겨 마시던 두유이기도 하다. 

두유 회사 직원 손님 무리 중 한 명이 음료 메뉴판을 보던 중 여기는 두유를 무얼 쓰냐고 물었다. '우리 회사 두유를 쓰는 게 어떻겠냐'는 것이다. 점심시간에도 일을 하다니, 직업정신이 투철하다고 생각했다. 

👩‍🌾 "저희는 비건을 지향하는 가게이기 때문에, B두유를 쓰지 않아요."

나의 대답이 무슨 의미인지 이해를 하지 못하는 것 같아, 덧붙였다.

👩‍🌾 "B두유에는 비타민D3가 식품첨가물로 들어가는데, 그게 양털에서 추출하는 동물성 원료라서요. 비건이 먹지 않습니다."

부장급으로 보이는 사람이 말했다.

👨‍💼 "B두유에 비타민D3 있는 것도 알고. 저분은 진짜 비건이네."

진짜 비건?! 🤔 진짜 페미니스트, 가짜 페미니스트라는 말이 유효하지 않듯이 삶의 지향 중 하나인 비건에도 진짜와 가짜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엄격한 비건이라는 뜻으로 이해하기로 했다.

까다로운 소비가 바꾸는 세상 🌱

윤리적 비건(동물착취, 공장식축산으로 인한 환경파괴 등에 저항하기 위해 비건을 실천하는 경우)에게 '엄격함'은 피곤하지만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태도이다. 채식을 하는 사람에게 '까다롭다' '까칠하다' 등의 편견이 씌워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소량의 식품첨가물에 눈 감지 않고 모든 동물성 원료를 거부하는 것이 쉽지는 않다. 장을 보거나 간식을 살 때마다 포장지 뒷면의 깨알 같은 성분표를 읽는 것이 습관으로 자리잡히기 전까지 얼마나 번거로웠는지 모른다.

알레르기 유발물질 표시란에 우유, 계란, 소고기, 닭고기, 돼지고기, 굴 등과 같은 재료가 써있으면 비교적 수월하게 동물성 원료를 읽을 수 있다. 하지만 숨어있는 동물성 원료가 있는 경우가 많다.

원재료 목록까지 꼼꼼하게 살피는 수고로움을 감수한다. 비타민D3(양털), 코치닐 등의 적색 염료(연지벌레로 만드는 식용색소), 카제인(우유), 젤라틴(돼지, 소, 어류의 피부) 같은 원료는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공부해야 읽어낼 수 있기도 하다. ✍
 
원재료명 하단에 비교적 굵고 큰 글씨로 써있는 것이 알레르기 유발물질 표시란. 밀 혹은 대두 함유까지만 써있다면 비건으로 추정할 수 있다. 동물성색소 등 숨겨진 동물성원료가 있을 수 있으니, 원재료명을 꼼꼼하게 읽어보아야 한다.
▲ 과자봉지 뒷면의 성분표 원재료명 하단에 비교적 굵고 큰 글씨로 써있는 것이 알레르기 유발물질 표시란. 밀 혹은 대두 함유까지만 써있다면 비건으로 추정할 수 있다. 동물성색소 등 숨겨진 동물성원료가 있을 수 있으니, 원재료명을 꼼꼼하게 읽어보아야 한다.
ⓒ 김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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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까다로운' 소비가 기본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목소리 내는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비건 인증을 받아 가면서 지속가능한 소비문화를 만드는 기업들이 늘어나고, 적극적인 호응과 응원으로 동참하는 소비자 단위의 몸집이 불어나는 것이 피부로 느껴진다.

채식선택권 운동을 하다가 직접 비건 시장에서 일을 하기로 방향을 바꾸면서 오히려 더 생생한 현장을 찾았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비건도넛을 파는 카페에서 일하면서 좋은 점은 비건의 실체(?)를 직접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비건노동'을 하면서 한국에 비건문화가 얼마나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지를 피부로 느끼고 있다. 전국에서 찾아오는 비건 손님들의 면면을 맞이할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이 도넛, 비건이에요"라고 했을 때 별다른 설명 없이 비건이 무엇인지 단번에 알아듣는 손님들이 많다는 것도 변화를 체감하게 한다. 

비건이라는 이유로 학교에서, 직장에서, 공동체에서 받은 차별들을 돌아보면 비건을 지향하는 곳에서 일하는 것만으로 일상이 안전해졌다고 느낀다. 회식으로 비건식당에 가는 것, 직원이 먹을 간식을 고를 때에 성분표를 꼼꼼히 읽는 사장을 만난 것만으로 노동환경이 무척 안전해졌다. 나의 노동과 일상이 안전해진만큼 가게에 오는 손님들에게도 그 기운을 나누고 싶어진다. 

"여기에 있는 도넛, 전부 비건인가요?"라고 묻는 손님들이 적지 않다. 연거푸 확인하는 것이 몸에 밴 사람들을 보면 마음이 짠하고 동질감을 느낀다. "그럼요. 전부 비건입니다. 저도 비건인데요, 오늘은 이걸 추천하고 싶네요"라고 답하며 '이곳은 안전하다'는 감각을 전한다. 

손바닥만한 도넛에 담기는 연대, 비건노동의 매력이다. 🍩🙌

태그:#비건노동일기, #비건, #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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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가족, 그리고 채식하는 삶에 관한 글을 주로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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