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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접기가 흔치 않은 나라에서 내가 토끼 종이접기를 제안해 보았다.
▲ <우리반 부활절 바구니>  종이접기가 흔치 않은 나라에서 내가 토끼 종이접기를 제안해 보았다.
ⓒ 진실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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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서 만난 종교인(이 단어에 대한 정의도 그들에게 토론해보라면 한 시간은 거뜬히 지날 듯)들은 한국인들과는 꽤나 다른 종교적 태도를 지니고 있었다. 월급 명세서에 버젓이 종교세를 내고 있더라도 주일에는 교회나 성당에 가지 않거니와 종교인이라 스스로 정의하지 않더라도 사순절, 부활절과 성탄절 등등 종교절기를 명절처럼 지새우는 사람들도 많았다.

물론 절기를 기념하는 방식은 또 다르다. 내가 일하는 아동기관은 천주교 계열에 속해있어 그에 관한 종교적 규범들을 지키고 있다. 예를 들어 점심식사 전 함께 기도문을 외운다거나, 유치원의 대표 프로그램을 종교 절기에 맞춰 구성한다.

1월부터 주님 공현 대축일- 참회의 월요일-카니발-재의 수요일-사순절-부활절-예수 승천일-성령강림축일-성체축일... 적다 보니 꽤 많다. 나도 헷갈릴 정도다. 연말 성탄절이 다가올수록 분위기는 고조된다. 네 번의 강림절을 보내며 아이들은 각자 어드벤쳐 캘린더를 받는다. 그 사이에 니콜라우스도 오시고, 성탄절까지 매해 이런 루틴으로 돌아간다.

내가 생각할 때, 이곳의 종교는 뭐랄까 신봉의 대상이기보단 빵과 공기 같은 자연스러운 삶의 부분이라 그런지 다른 종교권의 나라에서 온 아이들도 유치원의 프로그램에는 부담 없이 참여한다. 물론 프로그램에 아이들이 참여하는 사항은 강요는 아니다.

학교 종교 수업시간에는 이러한 내용을 어떻게 아이들에게 보다 효과적으로 교육할 것인지,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는 종교적 의식을 기획하고 실습한다. 어른에게도 어려운 종교적 언어와 그 체험적 이야기를 아이들의 언어와 이해가 닿는 방식으로 새로운 판을 짜는 것이 매번 아주 새로운 경험이다.

지난주에는 부활절을 맞이했다. 이곳의 부활절 상징은 토끼와 달걀이다. 아이들은 부모들이 숨겨둔 달걀을 찾는 의식을 치루고, 찾게 되면 부활절 토끼가 남기고 간 선물(주로 초콜릿, 사탕)의 행복을 누린다. 이 부활의 기쁨에 참여하기 위해선 당연히 사순절의 시간을 아이들과도 통과한다.

아이들에게 관련 동화를 읽어주거나 우리 일상에서 쉬이 볼 수 있는 예들로 차근차근 설명한다. 사순절 기간에 무엇보다 아이들이 배우는 것은 절제와 인내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한 번 참아보는 것, 견뎌보는 것을 아이들은 서로 배운다. 그로 인해 후에 더 큰 기쁨을 경험하는 것도 물론 포함이다.

부활절 40일 전 우리 반에서는 사순절 달력을 함께 만들었다. 달력을 만들면서 아이들에게 "너희들은 오늘 무엇을 절제하고 싶니? 예를 들어 오늘은 레고, 내일은 초콜릿 아니면 애착인형..." 순간 고민에 빠진 아이들은 하나같이 침묵에 이르렀다. 그러자 아이 Q가 우렁차게 외친다. "낮잠 시간이요!!!!"

순간 아이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래 우리는 낮잠 시간을 절제할 수 있겠다며 연신 뜨거운 반응을 보였다. 얼떨떨한 반응은 오로지 교사들뿐이었다. 의문의 1패를 겪은 우리는 늘 아이들의 선택과 반응을 존중하기에 그날은 낮잠 시간 없이 온종일 아주 신나게 놀았다.

1~40까지 새겨진 꽃 모양의 달력을 아이들이 잘 보이는 교실 문에 빼곡하게 붙여두고, 매일 함께 모여 노래하는 시간에 한 명의 아이가 그날의 꽃을 떼어낸다. 꽃 달력 뒤편에 그날 절제해야할 것에 대한 그림이 붙어있다. 레고, 인형, 퍼즐, 사탕, 초콜릿 등등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들로 가득 채워둔 꽃달력이었다.

아이들은 직접 달력을 떼고, 절제할 것을 반 아이들과 공유하고 그날 하루는 그것에 대해 각자의 방법으로 절제하는 것을 시도해 본다. 물론 금세 까맣게 잊어버리고, 바로 그 장난감을 갖고 놀기 시작하는 아이도 있었다. 그러면 주변의 아이들이 다가와 오늘 우리는 이것을 절제해야 한다며 서로를 독려한다. 그렇게 아이들은 40개의 꽃 달력을 모두 떼어내고, 달걀을 색칠하며 부활절을 맞이했다.

올해 아이들은 이 시간을 어떻게 기억할까? 집으로 돌아가서 그날 자제해야 할 것에 대한 기억을 이어갔을까? 한 살부터 여섯 살까지 머무는 이곳에서, 매해 경험하는 이 시간이 아이들에게 무엇을 남길까?

어른인 나에게도 사실은 쉽지 않은 시간이다. 조금 더 불편해져보고, 참아보고 굳이 포기해보는 것... 어쩜 편하고 빠른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겐 평생 어려운 과제일 지도 모르겠다.

태그:#독일, #보육교사, #아동교육, #아우스빌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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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국문학+시민정치문화를 전공했고, 현재는 독일 중서부 뒤셀도르프에서 유아 청소년 교육 직업학교를 졸업하고 아동기관에서 재직중입니다. 경계를 넘나드는 인간의 일에 관심이 많고, 더 나은 세상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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