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장승 하나 세우는데 영차소리와 호흡을 맞춰 당기고 세우고 흙을 덮는 3박자가 우렁차다
▲ 10여명의 장정의 힘을 모아 장승세워요 장승 하나 세우는데 영차소리와 호흡을 맞춰 당기고 세우고 흙을 덮는 3박자가 우렁차다
ⓒ 박향숙

관련사진보기


17일, 새만금 지역 중 하나인 전북 부안군 해창갯벌에서 환경운동단체들이 모여 장승을 세우는 행사가 있었다.

며칠 전 SNS로 행사포스터 '새만금 생명평화 장승문화제'를 받았을 때 이번에는 꼭 참석해야겠다고 다짐했었다. 작년 6월, 남편과 함께 해창갯벌에 가서 그동안에 세워진 장승들을 보면서, 30년이 넘도록 지역에 거대한 환상만을 심어주는 새만금의 실체가 왠지 겉만 예쁜 포장지 같았다. 그 소감을 기사로 써서 보냈었다(관련 기사: 사람은 없고 포장지만 남은 새만금... 장승은 알고 있다). 
 
2021해창갯벌 장승세우기 행사 플래카드
▲ 해창갯벌에 장승세우기 2021해창갯벌 장승세우기 행사 플래카드
ⓒ 박향숙

관련사진보기

 
해창갯벌의 존폐여부를 둘러싼 갈등이 얼마 전 지역뉴스에서 나왔다. 전라북도에서 열릴 2023세계잼버리대회와 행사장 설립을 위해, 해창갯벌이 매립될 위기에 놓였다는 소식이었다.

전라북도와 농어촌공사는 잼버리 대회의 야영장과 진입 도로를 만들기 위해 해창갯벌에 서 있는 장승들을 이전하고 그곳의 매립을 추진하겠다는 것이었다. 17일 가보니 벌써, 농어촌공사가 만들어놓은 철근 장벽으로 인해 갯벌진입로 일부가 막혀져 있었다. 도로에서 보이던 장승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개발을 지향하는 시민들은 환경단체들이 지역의 발전문제에 무조건 반대만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환경단체는 국제대회인 잼버리대회를 못하게 막자고 말하는 게 아니다. 새만금 개발로 인해 사라져버린 갯벌을 두고 이제라도 정부와 국민이 꼭 해야 할 일로, 새만금지역 해수유통과 그곳을 둘러싼 최소한의 갯벌지역을 생태복원하자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중 한 곳이 바로 해창갯벌, 장승벌이다.

개발만이 답일까 

'해창갯벌의 장승세우기'는 2004년부터 지역주민과 환경단체가 새만금으로 생긴 바다와 갯벌의 아픔을 치유하기 위해 일종의 종교의식처럼 진행해왔다. 올해도 환경보존을 기도하는 각 종교대표자들과 환경단체 활동가들, 지역주민들이 모여 10여개의 장승을 세운다고 했다. 남편이 활동 중인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을 포함하여, '사람과세상' 전북녹색연합, 환경운동연합 등의 환경단체 관계자들은 장승 조각을 위한 만발의 준비를 했다.

소나무로 된 통나무들이 갯벌로 옮겨왔는데 그중 절반은 장승 조각을 잘하는 지역민들의 작품이 새겨져서 도착했다. 절반의 장승용 나무들은 각 환경단체의 회원들이 자신들 소망대로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더니, 모양을 따라 조각칼로 다듬고 색을 칠했다. 장승을 만들면서 주고받는 그들의 대화를 들으면서,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아름다운 세상만들기를 실천하는 이들의 모습이 더없이 아름답게 느껴졌다.

남편따라 봄소풍 간 듯한 모양새로 간 것이 부끄러워, 한 장승 위에 써있는 글자에 색을 입히고 싶다고 했더니, 한 관계자가 "물론이지요, 어서 해보세요"라며 내게 자리를 내주었다.

내가 만난 장승은 머리를 소나무 원목 그대로 살려두자는 의견이 있어서 타 단체들보다 덜 매끄럽고 투박한 형상이었다. 그러나 오늘 세워진 장승 중에서 가장 큰 입을 가지고 있는 걸 보니, 아마도 바다와 갯벌생물을 해치는 인간들에게 천지를 뒤흔들 큰 고함으로 무섭게 혼을 내줄 것 같았다.

'다시 갯벌로' '다시 만나 짱둥어' ' 갯벌을 되살려라' '백합아 돌아와' '피어라 생명' '바닷물을 늘려라' '함께 살자 새만금' 등의 글귀가 새겨진 장승들이 세워졌다. 이미 세워진 장승들만 보았는데, 장정 10여명이 모여서 영차를 외치며 몸부림을 쳐도 장승은 한 번에 세워지지 않았다. 나무 장승 하나를 세우는데도 사람 여럿이 온몸과 마음을 합해야 하는데,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파괴된 자연의 본 모습을 되돌리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까 싶었다.
  
새만금생태조사단이 소망 글귀 '다시 갯벌로'
▲ 장승에 새겨진 글자 색칠하는 나 새만금생태조사단이 소망 글귀 "다시 갯벌로"
ⓒ 박향숙

관련사진보기

 
17일 세워진 장승들을 합하여 해창갯벌에는 100여개 장승들이 있다. 어떤 장승은 이미 제 몫을 다하고 바닷바람에 삭여져 쓰러졌지만, 어느 누구도 그를 홀대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존재에 감사하고 장승벌의 영혼으로 보자고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장승들은 하나같이 바다를 향해 섰지만, 이미 막혀진 갯벌위에 세워진 긴 둑으로 인해 키 큰 장승이 아니고서는 바다를 볼 수 없었다. 때마침 그 위에 올라선 새 한 마리가 키 작은 장승을 인도하는 듯한 모습이 좋았다.

해창갯벌을 잼버리 국제대회를 위한 간접자본으로 쓰려는 정부행정을 탓하고 수정을 요구하기엔 너무 미약한 우리들이다. 평범한 시민들 소망이 있다고 해서, 이미 공기관에서 정해진 행정이 바꿔진 예를 거의 본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시민들이 자신의 돈과 시간을 내어 이런 행사를 준비하는 바탕에는, 아마도 '사람은 혼자 살 수 없다'라는 불변의 진리가 깔려있기 때문일 것이다. 오늘의 행복이 내일에 쓸 정신적 에너지와 물질적 실체를 빌려 쓰는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 누구나 이런 작은 파고 위에 동참할 것이라고 믿는다.

이날 만난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 오동필씨는 말했다.

"민중사회가 갈망하고 소망하는 그런 장소마저 허용하지 않는다면, 어떤 세상이 올까요. 이곳은 공익적 의미를 가진 장소입니다, 돈을 주어도 만들 수 없는 장소를 훼손시키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안타깝지요. 이곳은 새만금 해수유통을 한 후 생태복원이 가능한 최적의 공간이며, 이는 물질적 가치로 계산할 수 없습니다."

새만금 사업 담당자들께... 사람들이 왜 장승 세우는지 생각해봐주길 

전락북도와 농어촌 새만금 사업 담당자들은 올해 안에 어떻게 해서든지 이곳을 잼보리대회를 위한 도로로 만들겠다고 밝혔다. 지금 서 있는 장승들은 특별한 공원으로 이전시켜주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해풍을 맞으며 바다와 생명을 같이 하려는 장승들이, 인간의 규격대로 정해진 조각공원에서 그 생명을 이어갈 수 있을까.

전라북도와 새만금 담당 관계자들에게 요청, 아니 부탁드린다. 행정에 줄 그어진 대로, 본인들이 세운 기안대로만 사람이 사는 세상을 볼 것이 아니다. 환경운동가들이나 지역주민들이 할 일이 없어서 장승을 세우는 것 또한 아니다. 장승을 세운다고 하루아침에 갯벌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것도 아니다. 왜 사람들이 해마다 장승을 세우는지 마음을 다해 생각해봐주시길 바란다.

17일 봄 소풍은, 전날까지 무겁고 답답했던 내 체끼를 단숨에 거두어갔다. 아마도 장승들이 "제발 장승들이 제 집에서 쫒겨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내 기도소리를 듣고 은혜를 베푼걸까.

비록 해창갯벌의 원형은 사라졌을지라도, 멀리서 고향의 냄새를 따라 찾아온 사람들과 생물들의 안식처 하나쯤은 남겨두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태그:#해창갯벌, #장승문화제, #새만금환경운동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행복과 희망은 어디에서 올까요. 무지개 너머에서 올까요. 오는 것이 아니라 '있는 것'임을 알아요. 그것도 바로 내 안에. 내 몸과 오감이 부딪히는 곳곳에 있어요. 비록 여리더라도 한줄기 햇빛이 있는 곳. 작지만 정의의 씨앗이 움트기 하는 곳. 언제라도 부당함을 소리칠 수 있는 곳. 그곳에서 일상이 주는 행복과 희망 얘기를 공유하고 싶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