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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선 기사(참고-http://omn.kr/1sttb)에서 사법시험이 시험기술자를 양산하는 문제를 해결하려 등장한 로스쿨과 변호사시험에서도 여전히 관건은 '기술'임을 확인했다. 데자뷰는 계속된다. 로스쿨 도입 초기, 수험 인프라를 잘 갖춰 사법시험 준비생들이 몰리던 신림동 고시촌은 위기였다. 유명 수험서점 '광장서적'까지 문 닫을 정도였다. 그러나 신림동은 다시 생기(?)를 되찾았다. 법조인을 꿈꾸며 '추리닝'과 '삼선슬리퍼'를 갖춘 로스쿨 재학생 및 졸업생들이 다시금 신림동으로 모여들었기 때문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토굴을 짓고 들어가 사법시험 공부를 했다지만 적어도 90년대 이후 사법시험 수험생 대부분은 '학원 강의'에 의존했다. 사법시험이 '기술(skill)'에 달렸다는 것은 그 기술에 특화된 사교육발이 먹힘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로스쿨 등장에 사법시험 학원도 위기였다. 하지만 사법시험 학원도 곧 변호사시험 학원으로 간판만 바꿔 달며 재기했다. 2018년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창립 10주년 기념식'  관련 기사에 로스쿨 커뮤니티에서 "아니, 박00 윤00 같은 강사들은 왜 안 불렀지? 전국의 로스쿨생들은 그들이 다 가르치는데..."와 같은 댓글이 이어졌을 만큼 현재 로스쿨 재학생 및 졸업생들 대부분은 변호사시험 대비 사교육에 의존한다.

신림동 상인의 바람, '변호사시험 불합격자 증가'의 실현

좁은 고시원에 갇혀 학원강사들이 만든 족집게 족보를 달달 암기하는 시대착오적인 수험법학은 이제 그만 하자고 만든 로스쿨이었거늘, 도무지 달라진 게 없는 이유는 뭘까?

로스쿨 설립 초기 있었던 어느 신림동 상인의 인터뷰가 힌트다. 그는, 고사 직전의 신림동과 관련해 "마지막 희망은 로스쿨 변호사시험 불합격자"라고 했다. 그리고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의 바람이 실현됐다. 변호사시험 합격률이 반 토막 나며 수험 인프라와 변호사시험 학원이 있는 고시촌으로 수많은 '변시낭인'들이 몰려들게 됐고, 방학 동안 또는 로스쿨 입학을 앞두고 신림동에 자리 잡는 이들도 적지 않게 된 것이다.

사법시험은 응시자 중 3% 정도만 합격했다. 당연히 경쟁이 치열했을 것이고 사법시험 수험생들은 살아남기 위해 고시촌의 사교육을 통한 시험의 기술 전수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변호사시험 합격률은 50% 정도다. 언뜻 이렇게 합격률이 높은데 어째서 로스쿨이 사법시험 시절과 같은 모습인지 이해되지 않는다. 그 답은 '50%'의 진실에 있다. 즉, 그 50%가 '무려 50%' 아닌 '무조건 50%'이기 때문이다.

변호사시험 합격률 무조건 50%의 진실, '변호사 수 통제'

변호사시험은, 종전의 사법시험과 달리 오직 로스쿨 졸업자들만이 치를 수 있어 허수의 응시자가 없다. 명문대 졸업장과 스펙을 갖춰 약 5:1(로스쿨 입학에 유리한 명문대 입학경쟁률 약 10:1까지 고려 시 약 50:1)의 로스쿨 입학경쟁률(로스쿨 입학의 문에 관하여는 다음 연재 기사 참조)을 뚫고, 유급과 자퇴 권유 같은 난관들을 뚫고 졸업자격을 취득한 이들만이 변호사시험을 치를 수 있다. 로스쿨을 졸업한 지 5년이 지나도 변호사시험법 제7조에 따라 응시자격이 없다. 이런 상황에서 '무조건' 50%다. 시험 응시자 전체의 수준이 높건 말건, 변호사시험이 변호사의 능력과 자질보단 시험기술 테스트에 불과한 시험이건 말건, 아니 무엇보다 왜 일부에게만 변호사의 자격을 허락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설명할 수 있건 없건, 어쨌든 변호사시험에서 일정 등수에 들어야만 변호사의 자격이 취득할 수 있다.

교육학에선, 이처럼 무조건 일정 등수나 응시자의 일정 비율에만 승자의 지위를 허락하는 평가체제를 '상대평가'라고 하고, 성취해야 할 목표나 규준을 먼저 정하고 응시자들의 등수와 무관하게 그 도달 여부만을 판단하는 평가체제를 '절대평가'라고 한다. 당연히 보다 교육적이고 정의로운 평가는 후자다. 다수의 실력이 어떻든 누군가는 승자가 누군가는 패자가 되게 하는 것은 시험을 위한 시험일 뿐이며, 나아가 관련한 교육기관을 완전히 붕괴시키고 교육권과 직업의 자유 등 여러 기본권 침해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엔, 모름지기 시험이란 줄 세우기 그 자체이며 좁은 문 앞에서 치열한 경쟁이 펼쳐져야 제대로 된 교육이 가능하단 믿음이 존재한다. 하지만 경쟁은, 시험을 위한 훈련은, 교육이 아니다. 전체의 능력이 어떠하건 무조건 줄 세워 앞쪽 소수에게만 전리품을 허락하는 시스템. 서로 밟고 밟히며 경쟁하고 위쪽에 올라선 이가 아래쪽 이들을 차별하고 아래쪽 이들이 그 차별을 수용하는 시스템. 이는 진정 배워야 할 것이 아닌 시험에서 살아남기 위한 지식 쌓기 훈련에만 전념케 하며 관련 교육을 완전히 붕괴시키니 '반(反)교육'적이다. 또 대부분이 능력을 갖추었음에도 승자와 패자를 인위적으로 구분하니 '불공정'하다. 절대적 기준 앞에서만이 진정한 교육이 가능해진다. 진짜 필드에 나가 활용할 실용적인 교육, 교육다운 교육에 전념할 수 있게 한다.

현재 우리 초중등교육이 절대평가로 나아가는 이유도 그래서다. 이미 중학교까지는 상대평가를 폐지했고 2025년부터 전국의 고등학교들에서 시행예정인 고교학점이수제의 중요한 전제조건은 내신과 수능의 절대평가이며, 대입에 있어서도 유럽식 고교졸업자격시험에 의한 사실상 대학입시의 폐지가 중요한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변호사와 같은 전문직의 자격에서도 절대평가는 중요하다. 전문직의 자격은 해당 전문직으로서의 능력과 자질의 판단기준(목표, 규준, 성취기준)을 먼저 설정해놓고 이를 달성했는가 하나만으로 판단되어야지, 전문직의 수급 문제와 같은 것이 개입되는 것은 공정하지도 정의롭지도 않다. 그래서 상대평가 개념이 아예 없는 유럽 각 나라들에선 물론이요. 미국에서조차 변호사시험은 절대평가다. 미국 각 주의 변호사시험 운영 시의 준칙 제4장 제18조 '시험의 목적' 항목에는 "변호사시험은 지원자가 사실관계에서 법적 논점들을 찾아내고, 그 논점들에 대해 합리적인 분석을 하고, 기본적인 법리에 대한 완벽한 이해를 바탕으로 이를 이용해 그 논점들을 논리적으로 해결해내는 능력을 시험하여야 한다. 시험은 정보, 기억 및 경험을 시험해서는 안 된다. 시험의 목적은 공공을 보호하기 위함이지 면허를 받는 변호사들의 숫자들을 제한하려는 것이 아니다"라고 명시하고 있을 정도다.

오래도록 우리나라에서 사법시험은 엄격한 정원제 선발시험인 상대평가로 운영되어 왔다. 현재 내지 장래(우리나라 판사, 검사들은 40~50대에 옷을 벗고 변호사로 나아가 전관예우의 이익을 누리는 경우가 많음) 변호사들로 구성된 사법시험관리위원회가 미리 '변호사시장을 고려한' '소수의' 선발인원을 정해 이를 고시한 뒤 사법시험을 치러왔고, 그 결과 3%의 좁은 문을 둘러싼 배틀로얄 경쟁과 시험기술자 양산의 문제들이 야기됐다.

그런데 이를 해결하자고 등장한 로스쿨 체제의 변호사시험에서도 관련 법에 합격점을 명시하지도 않고 사법시험 당시와 마찬가지로 현재 내지 장래 변호사들로 구성된 변호사시험관리위원회가 합격 인원을 결정한다. 그것도 변호사시험을 모두 치른 몇 달 뒤 합격자 발표일 당일에.

변호사시험이 '절대평가'라고?

교육정의는 물론이요, 시민의 이익을 생각했을 때에도 로스쿨 도입 취지에 정면으로 반하는 변호사시험의 합격자 결정이 아닐 수 없다. 중요한 것은 법무부의 문제의식이다. 변호사시험의 합격자 결정이 문제이니 관련 법 개정 등으로 그 해결에 나서거나 일단 심폐소생술을 위해 변호사시험 합격자의 수를 늘려 절대평가 실현의 효과라도 도모해야 할 텐데, 법무부는 아예 팩트를 왜곡해버리는 희한한 전술을 편다. 
 

최근 법무부장관을 상대로 진행 중인 변호사시험 관련 헌법소원에서 법무부는, “역대 변호사시험 합격자 결정은 모두 일정점수 이상의 응시 인원을 합격시키는 절대평가 방식으로 이루어져 왔다”고 주장했다. 내가 치른 변호사시험이 절대평가였음을 나는 그날 처음 알았다.
  최근 법무부장관을 상대로 진행 중인 변호사시험 관련 헌법소원에서 법무부는, “역대 변호사시험 합격자 결정은 모두 일정점수 이상의 응시 인원을 합격시키는 절대평가 방식으로 이루어져 왔다”고 주장했다. 내가 치른 변호사시험이 절대평가였음을 나는 그날 처음 알았다.
ⓒ 법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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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법무부장관을 상대로 한 변호사시험 관련 헌법소원(제10회 변호사시험 전원만점결정 위헌 헌법소원 및 그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 사건)을 진행하며 법무부 의견서에 대한 반박서면을 쓰다가 내 눈을 의심했다. 법무부의 의견서에 위와 같이 "역대 변호사시험 합격자 결정은 모두 일정점수 이상의 응시 인원을 합격시키는 절대평가 방식으로 이루어져 왔다"고 쓰여 있었기 때문이다.  

의사, 간호사 등의 자격시험 관련 규정인 의료법과 달리 변호사시험법엔 변호사시험의 합격점이 명시되어 있지 않다. 그래서 해마다 기득권 법조인들이 합격자 수를 임의로 결정짓는 통에 합격점은 늘 변동되어왔음은 그야말로 '주지의' 사실이다. 그런데도 변호사시험이 '절대평가'라고 하다니. 그 놀라운 논리 전개에 주변의 교육자들 및 교육학자들까지 혀를 내둘렀다. (해당 의견서에서 법무부는, 채점 없이 불합격시키게 되면 관련법 위반이라는 우리의 주장에 대해, "채점은 하고 점수 부여를 안 할 뿐이니 위법이 없다"는 놀라운 논리 구성을 전개하기도 했다.)  
  
JTBC에서 4월 방영 예정인 드라마 <로스쿨>의 양크라테스 (김영민 분).
 JTBC에서 4월 방영 예정인 드라마 <로스쿨>의 양크라테스 (김영민 분).
ⓒ 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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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닥하면 변호사시험 떨어져 내가 죽게 생겼는데. 변호사시험 합격률 반토막 나고 여기가 피 튀기는 전쟁터야. 너 죽고 나 살자."

어제 첫 방영된 드라마 <로스쿨>. 예상대로 심층적인 모의재판 수업 장면을 보여주는 등 대한민국 어디에도 없는 로스쿨의 교실을 등장시켰다.(참고 : http://omn.kr/1scfs) 하지만 위 대사만큼은 제대로 된 고증이었다. 로스쿨 건물에서 살인 사건이 발생했음에도 로스쿨생들이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또는 아랑곳하지 않으려 애쓰며) 곧바로 열람실에서 각자의 공부에 전념하는 모습도 그랬다.(짐작건대 작가는, 자살 문제가 터져도 아무 일 없는 듯 수험에만 매진하는 로스쿨생들의 모습에 대해 개탄하며 양필구 전남대 로스쿨 졸업생 등이 기고한 칼럼 등을 참고해 이와 같은 장면을 설정한 듯하다.)

'무조건 50% 합격'으로 해가 갈수록 변호사시험 불합격자들이 늘고 경쟁이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그 '무조건'은 공정하지도 정의롭지도 않다고 아무리 외친들 로스쿨생들의 목줄을 쥔 법무부가 '세상엔 이처럼 무조건 일정 비율만 선발하는 절대평가도 존재한다'는 놀라운 궤변을 펼치는 상황에서, 로스쿨생들도 과거 사법시험 수험생들과 마찬가지로 그저 시험의 기술에 전념하고 사교육에 의존하며 치열한 배틀로얄 경쟁을 펼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옆에서 누가 죽건 말건.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로스쿨 교육 정상화 및 법조문턱낮추기' 운동을 하는 로스쿨 출신 변호사인 시민기자입니다. 출판예정인 <노무현의 로스쿨은 죽었다>(가제)의 일부를 연재합니다. '제10회 변호사시험'의 합격자 결정 및 발표가 2021년 4월 22(23)일로 예정되어 있습니다. 모쪼록 이 연재가, 제10회 변호사시험을 시작으로 로스쿨과 변호사시험의 정상화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길, 법조계와 시민사회 모두를 위한 로스쿨 개혁에 작게나마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태그:#로스쿨 제발 좀 정상화!, #변호사시험, 절대평가가 필요해!, #법무부, 거짓말은 이제 그만, #변호사시험 합격률, #제10회 변호사시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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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사회과 교사였고, 로스쿨생이었으며, 현재 [법률사무소 이유] 변호사입니다. 무엇보다 초등학생 남매둥이의 '엄마'입니다. 모든 이들의 교육받을 권리, 행복할 권리를 위한 '교육혁명'을 꿈꿉니다. 그것을 위해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 글을 씁니다. (제보는 쪽지나 yoolawfir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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