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매일 이용하는 교통, 그리고 대중교통에 대한 소식을 전합니다. 가려운 부분은 시원하게 긁어주고, 속터지는 부분은 가차없이 분노하는 칼럼도 써내려갑니다. 교통에 대한 모든 이야기를 전하는 곳, 여기는 <박장식의 환승센터>입니다.[편집자말]
 
 MBC <손현주의 간이역>의 스틸컷.

MBC <손현주의 간이역>의 스틸컷. ⓒ MBC 제공

 
시골마을 간이역에 얼굴만 봐도 '누군지 알 법한' 연예인들이 북적인다. TV 드라마를 찍으러 왔나 싶은데, 제복을 잘 차려입은 연예인들이 눈을 쓸고 역 곳곳의 매무새를 정리한다. 그런 연예인들이 열차가 오면 열차의 표를 팔고, 동네 곳곳의 일손을 돕는다. MBC의 예능 프로그램 <손현주의 간이역>에서는 일상인 풍경이다.

<손현주의 간이역>은 앞 채널과 뒷 채널에서 하는 화제성 높은 드라마, 충성도 높은 예능에 밀리지만 나름 꿋꿋하게 방영되고 있다. 낮은 시청률에도 불구, 맵고 얼얼한 맛의 동시간대의 다른 프로그램과는 다른 이 프로그램의 '잔잔한 맛'이 조금씩 입소문을 타며 진가를 발휘하고 있다.

<손현주의 간이역>은 현대인에게 익숙지 않은 간이역을 살린다는 당초의 기획을 넘어, 한 지역에 대한 이야기를 두 주에 걸쳐 조명한다. 당초 10부작으로 계획되었다지만 지역 주민들과 가감없이 소통하는 잔잔한 이야기가 호평을 받으며 원래의 편성에서 더욱 연장되기도 했을 정도이다.

제설·발권·당직, 철도 종사자 공감 샀다
 
생애 첫 MC를 '역장님'으로 하게 된 배우 손현주.. 벌써 10번의 방송을 거듭하면서 어엿한 역장이 된 그는 방송 내내 역의 업무를 능숙하게 처리한다. 

특히 출연진들이 간이역의 역무원이 되어 실제 역무를 수행하는 모습은 철도 종사자들에게 공감을 사기도 했다. 손현주 역장이 역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지루한 당직 근무를 견디는 모습은 물론, 삼탄역에 방문한 박성웅과 오대환이 내리는 눈을 쓸어내리는 장면에선 "우리 모습이랑 똑같다"는 종사자들의 반응이 커뮤니티에서 나오기도 했다. 

단순히 연예인이라고 해서 본연의 업무에 소홀하지 않은 점도 볼거리이다. 김준현 역무원은 코로나19 시대에 맞게 방역 작업에도 열심이고, 임지연 역무원은 숙련된 역무원보다는 느리지만 승차권의 발권이나 현금영수증 처리, 현금 승차권 승객 대상 명부 작성 업무에서 숙달된 모습을 보였다. 

손현주 역장의 '역무'도 볼만하다. 손현주 역장은 역 곳곳에서, 열차가 오갈 때 해야 하는 수신호를 꼭 지켜가며 역무에 임하고, 역 내에 설치된 신호기를 여닫기도 한다. 첫 회에는 어리바리한 모습을 보여줬지만 다섯 개의 간이역을 거친 지금의 시점에서는 어엿한 역장으로 손색이 없다. 

역 내의 조경을 가꾸는 것도 특별한 역무원들이 있기에 가능했다. 상주 끄트머리의 자그마한 역인 청리역에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미소가 돋아나게 하는 지역 주민을 위한 갤러리가 마련되었고, 화본역 승강장에는 유해진과 김상호의 도움으로 사진 찍기에 좋은 벤치가 마련되었다. TV 프로그램이 만든 선한 영향력인 셈이다.

간이역을 넘어 지역 주민들도 함께
 
 MBC 예능 프로그램 <손현주의 간이역>의 스틸컷.

MBC 예능 프로그램 <손현주의 간이역>의 스틸컷. ⓒ MBC 제공

 
<손현주의 간이역>이 더욱 재미있는 것은 단순히 간이역 안에서 머물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역 주민들과 함께 소통하고, 때로는 지역 주민들의 부탁을 들어주면서 함께 일을 꾸려간다. 

당장 첫 에피소드인 화본역에서부터 지역 주민들과 함께하는 모습이 나온다. 열차를 놓친 주민들을 공설시장에 데려다주기 위해 운전대를 잡는 장면도 나오고, 역무원들이 미용실에 가야 하는 역전슈퍼 할머니를 대신해 가게를 지키기도 한다. 역을 벗어나 역이 끼어있는 지역 전체를 돌보는 사람이 된 것이다. 

회차가 많아지면서 해야 할 일도 다양해진다. 청리역에서는 부녀회장의 요청으로 엄청난 양의 빨래를 해야 하는가 하면, 연산역에서는 어르신의 부탁을 받아 텃밭 한 고랑에 파를 심어내기도 한다. 처음에는 적응하지 못하던 역무원들도 어느새 적응이 다 된 듯한 모습으로 웃음을 줬다. 

지역 주민들을 위한 선물도 회차를 거듭하면서 다양해졌다. 첫 근무지였던 화본역에서는 주민들을 위해 앙버터떡 선물을 하기도 했고, 가장 최근에 방문했던 연산역에서는 여러 해동안 사진관이 없었던 주민들을 위해 역을 일일 사진관으로 활용하며 어르신들의 모습을 담았다. 

특히 역을 돌보지 않을 때는 역무원들이 지역을 알려주는 가이드 역할을 해준다는 것도 큰 의미다. 능주역에서 일하던 역무원들은 화순의 명소인 영벽정을 함께 찾았고, 청리역을 찾은 역무원과 게스트들은 상주의 대표적인 풍경 맛집인 경천대를 방문해 감탄하기도 했다.

더욱 가까이 주민들의 삶에 녹아들기 위한 <간이역>의 전략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잔잔한 웃음을 짓게 만든다.

정말 간이역을 살릴 수 있을까

문제는 <손현주의 간이역>의 목표인 '전국 250여 개의 간이역을 살리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라는 데 있다. 심지어 방송이 나간 역 중에서도 폐역을 앞두고 카운트다운에 들어간 역도 있으며, 가까운 미래에 사라질 가능성이 높은 역도 존재한다.

첫 번째 방송에 함께했던 화본역이 그렇다. 화본역은 올해 가을이면 중앙선의 고속전철화 사업으로 선로가 이설되며 폐역된다. 물론 영화 <리틀 포레스트>에 등장하기도 했고, 역 건물이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기 때문에 역 건물이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열차가 오가는 살아있는 역으로서의 역할은 올해가 끝이다. 
 
 <손현주의 간이역>에 출연했지만, 경전선 직선화 계획이 현실화되면 향후 폐역될 가능성이 있는 능주역의 모습.

<손현주의 간이역>에 출연했지만, 경전선 직선화 계획이 현실화되면 향후 폐역될 가능성이 있는 능주역의 모습. ⓒ 박장식

 
삼탄역이나 능주역도 마찬가지이다. 삼탄역은 충북선 직선화 추진이 되고 있던 와중에 지난해 8월 폭우로 선로유실 사고가 벌어지면서 역 일대의 이설을 장기 계획으로 추진하고 있는 실정이다. 능주역 역시 광주-순천 간 서부경전선 직선화 계획에서 화순 일대를 경유하는 대신 수요가 많은 나주혁신도시를 경유한다는 안이 추진되고 있어 미래가 밝지 못하다.

실제로 상당수의 간이역이 폐역되는데 꼭 승객이 줄어서만은 아니다. 이미 승객이 줄어든 간이역은 2000년대 초 비둘기호, 통일호의 폐지와 시차를 두고 문을 걸어잠갔다. 도리어 선로가 옮겨지는 등의 사유로 인해 지역 규모에 비해 건실했던 간이역이 폐역되는 경우가 많다.

당장 2021년 폐역된 반곡역이 그렇다. 2006년 이래 열차가 멈추지 않았던 반곡역은 역 앞에 원주혁신도시가 조성되면서 2014년부터 무정차했던 열차를 다시 세웠다. 주말부부, 통근객 등 꾸준히 이용객이 열차를 타고내리던 상황이었지만, 중앙선 원주-제천 구간의 복선전철화가 지난 1월 완료되면서 역 앞을 지나갈 선로가 터널 안쪽으로 사라졌다. 결국 반곡역은 여객 취급 부활 7년 만에 문을 닫았다.

화본역을 찾았던 방영분에서 김준현 역무원은 역을 찾는 어르신에게 "화본역이 없으면 다른 곳에 어떻게 가냐"고 묻자 어르신은 "버스를 타고 영천까지 나가서 차를 타야 한다"고 답했었다. 그러자 김준현은 "이 역이 사라지지 않도록 꼭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 약속은 지켜지기 어려울 것 같다.  

주민들은 프로그램을 통해 한 목소리로 "간이역이 없어서는 안 된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다른 지역 주민들은 "철도 고속화가 빨리 되어 대도시까지 빠르게 가고 싶다"고 상반된 이야기를 하는 실정이다. 이 프로그램을 계기로 간이역의 지속적인 운영, 그리고 철도의 고속화라는 상반된 목표를 함께 달성할 수 있는 묘안이 나올 수 있을까.

그래도 아직 살릴 '간이역'이 많다

그럼에도 <손현주의 간이역>이 기대되는 이유는 카메라가 간이역의 단순한 일상만 담지 않기 때문이다. 프로그램을 통해 간이역은 단순히 철도역의 적자를 만들어내는 천덕꾸러기가 아닌, 작은 읍과 면에서 서울로, 부산으로, 대구와 대전으로 향할 수 있는 최후의 교통복지라고 이야기한다.

간이역을 찾는 방문객들도 늘어났다. SNS에는 <손현주의 간이역>에 등장한 다섯 개의 역인 능주역, 삼탄역, 연산역, 청리역, 그리고 화본역과 방송에 등장한 명소들을 방문했다는 게시글이 속속 올라온다. 간이역에 대한 충분한 관심을 이끌어내면서도, 지역을 방문하는 관광객까지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아낸 것이다.

앞으로 <손현주의 간이역>이 살려낼, 그리고 더욱 붐비게 될 간이역은 얼마나 많을지 기대가 된다. 특히 자그마한 역에 의존하는 주민들의 각양각색의 이야기가 교통복지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을 이끌어낼 수 있기를 내심 바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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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교통 기사를 쓰는 '자칭 교통 칼럼니스트', 그러면서 컬링 같은 종목의 스포츠 기사도 쓰고,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도 쓰는 사람. 그리고 '라디오 고정 게스트'로 나서고 싶은 시민기자. - 부동산 개발을 위해 글 쓰는 사람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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