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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로 도움을 호소하는 미얀마 출신 ‘티 티 사이엔’씨(가명)
 눈물로 도움을 호소하는 미얀마 출신 ‘티 티 사이엔’씨(가명)
ⓒ 최미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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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의 군부 쿠데타 반대 시위로 인한 사망자 수가 700명 이상에 달한다는 뉴스 발표를 접했다. 미얀마 시민들은 죽음을 무릅쓰고 여전히 항의 시위를 하기 위해 거리로 몰려나가고 있다. 그 모습에서 우리의 광주 민주화운동을 떠올렸다. 시위대를 대표하는 세 손가락 경례는 독재에 저항하고, 대의를 위해 희생한다는 뜻으로 SNS 물결을 타고 전세계로 번지고 있다.

지난 8일, 지역에 살고 있는 미얀마인들이 자국을 향해 애끓는 메시지를 던지고 싶은데 어쩌면 못하고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러던 중에 미얀마 출신 '티 티 사이엔'씨(가명)를 만나게 됐고 인터뷰를 요청하자 그녀는 "조국 미얀마를 위해 도움이 된다면 언제든 흔쾌히 허락하겠다"고 말했다.

- 미얀마를 생각하면 너무 속상하겠다. 지금은 어떠한 위로도 사치인 것 같아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미얀마에서 어떤 일을 했으며 한국으로 나온 지는 몇 년 됐나?
"학교 내에서 장사를 하셨던 엄마와 공무원이셨던 아버지 사이에서 4남매 중 셋째로 세상에 태어났다. 사람은 배워야 한다는 엄마 덕분에 미얀마 국립종합대학교인 양곤대학을 졸업하고 초등학교 교사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

평일에는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다 주말이면 엄마가 계신 집으로 돌아가곤 했던 생활. 그런데 발령지와 내가 사는 고향이 너무 멀다 보니 굉장히 피곤하고 힘에 부쳤다. 앞으로도 전근은 계속 있을 테고, 그때마다 이렇게 힘들게 생활해야 한다 생각하니 도저히 자신이 없어 결국 사표를 내고 말았다. 그리고 들어간 곳이 호텔이었고, 나는 그곳에서 10년 동안 근무하면서 미얀마를 유난히 사랑하는 5살 연상의 한국인 남자를 만났다. 그때가 2005년이었다.

3년 동안 교제했고 우리는 양가에서 결혼 승낙을 받았다. 하지만 장벽은 대단히 높았다. 미얀마는 외국인과의 결혼을 허용하지 않는 나라다. 그러다 보니 나는 차선책으로 여행 비자를 받아 한국으로 들어올 수 있었고 시아주버님의 노력으로 무사히 결혼식을 올릴 수 있었다. 그것이 벌써 햇수로 14년이나 됐다."

- 여러 가지 여건상 고향을 가지 못했을 것 같다. 미얀마 가족들과는 언제 만났나?
"못 만난 지 꽤 됐다. 2019년 엄마와 이모가 4개월간 한국에 나와 계시다가 미얀마로 들어가셨기 때문에 별 걱정 없이 이듬해에 미얀마에 들어가면 다시 볼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코로나가 터지고 쿠데타가 일어나면서 막혀버렸다.

평소 같으면 직장인이다 보니 자주는 가지 못하지만, 반드시 1년에 한 번씩은 한 달 동안 미얀마에 머물면서 가족과 친구들을 만나곤 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SNS로 안부를 묻기도 하고, 전화 통화를 하곤 했는데 미얀마 내부사태가 외부로 알려지는 걸 막기 위해 인터넷을 차단한 후부터는 그조차도 연락이 쉽지 않다. 굉장히 불안하고 공포스럽다."

- 얼마 전 미얀마의 한 남성이 다리에 총을 맞고 피를 흘리는 도중에도 세 손가락 경례를 멈추지 않는 것을 봤다. 또 양곤에서는 시위 도중 목숨을 잃은 교사를 추모하기 위해 장미꽃을 손에 쥔 채 세 손가락 경례를 하거나 거리에 꽃과 헬멧을 놓는 걸 봤다.
"나 또한 그 기사를 보면서 가슴이 많이 아팠다. 나만 한국에서 잘살고 있나 싶어 죄책감도 들고 아무튼 마음이 맨날 불안하다. 그나마도 이런 인터뷰를 통해서나마 시민들의 뜻에 조금이라도 동참하고 있다는 것을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아마 뉴스를 봐서 알 것이다. 지난 2월 1일, 군사쿠데타가 시작된 이래 시위대에 가해지는 군부와 경찰의 잔혹 행위가 도를 넘어서고 있다는 기사를 말이다. 처음에는 낮에 밖에 나와 있는 사람들에게만 총을 쐈다. 하지만 지금은 새벽 2~3시에 가만히 있는 집을 부수고 들어가 잠자고 있는 사람에게도 총을 쏜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럴 때는 동네 사람들이 냄비나 후라이팬 등을 두드리며 신호를 한다. 사람들은 밤이 오면 두려움에 불조차 켜지 못한다고 들었다.

지난달 23일에는 집에서 아빠 무릎에 앉아 있다가 군부의 총에 맞아 숨진 일곱 살 소녀 킨표치의 모습을 봤다. 아직 채 피지도 못한 아이가 '아빠 너무 아파요'라며 숨을 거뒀다. 나는 아직 아기가 없지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이의 부모님은 어떤 심정일까. 가슴이 너무 아프다.

NGO 단체 세이브더칠드런 측은 '어린이들은 평화적 시위대를 향한 치명적인 공격의 표적이 되고 있다는 사실에 매우 두려워하고 있다. 특히 집에 있을 때마저도 살해당할 수 있다는 사실이 확인돼 더욱 무서움에 떨고 있다'라고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처럼 많은 나라와 국제기관 그리고 NGO 단체들의 호소에도 불구하고 군부는 여전히 잔혹한 독주를 이어가고 있다. 특히 총에 맞아 숨진 시신을 '사인을 조작한다'는 이유로 탈취하고, 그것도 모자라 군경이 시신을 돌려주는 대가로 한 구당 한국 돈으로 14만 원 정도를 요구하고 있단다.

끔찍한 것은 장기를 밀매했다는 의혹이다. 돌려받은 시신의 가슴과 배에는 길게 봉합 자국이 남겨진 사진이 SNS에 줄을 잇고 있다. 이것은 하늘 아래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같은 사실은 고인을 두 번 죽이는 짓이다. 제발 멈춰야 한다."

- 엄마와 통화를 하면 주로 어떤 말을 하며, 다른 친지들은 다들 어떤지?
"전화 통화가 수월하지 않다. 인터넷도 모두 차단된 상태라 답답하다. 어쩌다 연결되더라도 자주 끊기다 보니 하루 종일 휴대전화만 쳐다보며 통화를 시도하기도 한다. 그나마 어렵게 통화가 연결되면 '엄마, 밖에 나가지 말고 집에 가만히 있으라'고 신신당부한다.

사실 미얀마에 있는 시민들은 지금 상당히 두려울 것이다. 그럼에도 조국의 미래를 위해 죽음을 불사하고 밖으로 나가 시위대에 참가하는 용감한 영웅들이 바로 미얀마 사람들이다.

미얀마 만달레이에 사는 사촌 동생들은 얼마전까지만 해도 매일 시위대에 참가한다고 들었다. 나가지 말라고 말해도 '불안하지만, 누군가는 해야 하지 않냐'고 말한단다. 동생 친구 둘은 길거리를 지나가다 군부에 발각되어 잡혀갔다. 오토바이까지 몰수였다. 몇 명만 모여도 모이지 못하도록 그들은 총을 쏘며 해산을 유도한다.

더 심각한 것은 아파트 옆으로 자동차 주차를 했는데 그것마저도 포크레인으로 다 밀어버리는 일도 있었단다. 이 또한 나가지 말고 집에 있으라는 이유다. 버스도 간간이 다니지만 그 속에 탄 승객들을 발견하면 그들은 무조건 내리게 하여 때린다. 이유는 나오지 말란 거다. 왜 나왔냐는 거다. 무조건 아무것도 못 하게 하니 국민이 더 아프고 더 화가 나 있는 거다.

국민들은 내가 죽으면 다른 사람이 이어서 또 (시위)할 거라는 마음으로 죽어도 하는 것 같다. 어떤 사람은 시위하다가 자신이 어떻게 될지 모르니 팔목에 자신의 혈액형과 함께 '내가 죽으면 내 몸에 있는 장기를 필요한 사람에게 주라'는 글자를 새기고 시위대에 참가한단다.

그렇다고 이들이 무언가를 얻기위해 시위대에 참가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자식들이 살아갈 미래와 그들이 살아갈 미래를 위해 맨몸으로 무장한 군인들과 불굴의 의지로 맞서고 있는 거다.

제발 UN에서 도와줬으면 좋겠다. 제발 관심 가지고 지켜줬으면 좋겠다. 제발 하루빨리 유혈사태가 멈춰질 수 있도록 UN에서 도와달라."

- 해외교포들이 군부를 상대로 위험한 상황에서도 목숨을 걸고 시위에 나서고 있는 미얀마 국민들에게 어떤 식으로 도움을 주고 있나?
"미얀마 교포들이 해줄 수 있는 것은 먹거리를 제공할 수 있도록 생계비 정도의 돈을 지원하는 것이다. 십시일반 돈을 거둬 야채, 쌀, 양파, 식용유 등을 필요한 사람들이 가져갈 수 있도록 해주고 있고, 적게나마 시위에 참가하기 위해 출근도 불사하는 공무원에게 월급을 준다는 얘기도 간간이 들린다.

사실 미얀마 공무원들은 '군부독재 아래서는 일을 할 수 없다'며 불복종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그들은 쿠데타를 일으킨 군부의 업무복귀 압박에도 파업을 통해 정부운영을 마비시키는 운동을 전개한다.

미얀마 국영철도사 소속 직원 전원이 파업에 동참했다는 뉴스도 접했다. 민간항공청의 관제사와 그 직원들도 연이어 뜻을 같이 했다. 의사와 간호사들은 이미 쿠데타 초기부터 진료거부를 시작했고 그 뒤를 이어 국영 은행 근무자, 교사와 각 부처 공무원 등도 반 쿠데타시위에 동참하며 "파면은 두렵지 않지만 독재자를 위해서 일하는 건 가장 두려운 일"이라며 뜻을 합쳤다.

감사하게도 미얀마에 살고 있는 독지가들과 시민단체들이 시위에 동참하며 출근을 하지 않는 공무원 영웅들에게 음식과 쉼터를 제공하고 있다. 한 지원단체의 회원은 호텔 전체를 개방하여 군부에 맞서 싸우고 있는 공무원들에게 숙소로 내놨고, 또 어떤 회원은 자신이 사는 집 한쪽을 이들에게 내주는 사람들도 있다.

고국의 소식을 접하다 보면 답답함에 물 삼키는 것조차 힘들지만 그런 속에서도 이런 훈훈한 소식들을 접할 때마다 '역시 미얀마'라는 생각이 든다. 내 조국이 자랑스럽다."

- 사촌을 비롯한 조카들까지 시위대에 나서는데 그들이 죽음도 불사하고 나서는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나?
"우리 조카들같은 젊은이들이 시위대에 나가서 연일 부르짖는 이유는 간단하다. 돈도 직업도 아닌 그저 '표현할 수 있는 자유와 다양성을 인정해달라'는 거다. 정말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다. 미얀마 국민들에게 필요한 것은 민주주의 사회, 민주주의 질서다. 그것이 피로 물들면서까지 계속하는 이유다. 코너에 몰린 미얀마 내 조국은 이렇게 외친다. 'UN에서 미얀마를 도와줄 수 없다면 우리가 직접 싸울 테니 제발 무기만이라도 지원해 달라.'

어떤 사람은 경찰과 군인 등 4명을 죽이고 자신도 결국 세상을 떠났는데, 그는 마지막 가는 길에 '그쪽 4명을 죽였으니 나는 괜찮다'라며 아주 편안한 마음으로 눈을 감았다는 소리를 들었다. 그 동네는 결국 보복으로 새벽 2~3시경에 불바다가 됐다는 소리도 함께 들었다.

이처럼 아까운 젊은이들이 삶의 끈을 놓는데 왜 UN은 손을 놓고 있는지 모르겠다. 물론 그럴만한 이유는 미뤄 짐작해 보지만 그럼에도 간절히 바라고 또 바란다. 어떻게 하는 것이 현명한지 방법이라도 찾아주기를.

UN 헌장 제1조에는 이런 내용의 글귀가 적혀 있는데 간추려보면 이렇다. 평화에 대한 위협의 방지·제거와 국제적 분쟁이나 사태의 조정·해결을 평화적 수단에 의하여, 또한 정의와 국제법의 원칙에 따라 실현한다.

세계평화를 강화하기 위한 기타 적절한 조치를 취한다. 그리고 경제적·사회적·문화적 또는 인도적 성격의 국제문제를 해결하고 공동의 목적을 달성함에 있어서 각국의 활동을 조화시키는데 그 중심이 된다.

그런데 UN은 여전히 제대로 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마음만 있다면 반드시 문이 있을 것이니 손잡이를 잘 찾아서 취지에 맞는 역할을 해줬으면 좋겠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미얀마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조국을 떠나 멀리 떨어진 대한민국에 있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이 너무 죄송하다. 다만 이렇게라도 뜻을 전할 수 있어 진심으로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고마운 사람들도 참 많다. 한국에 있는 미얀마 청년들과 한국 스님들이 미얀마의 민주화를 위해 '오체투지'하는 모습을 온라인으로 봤다. '미얀마 민주화 기원 오체투지'라고 적힌 조끼를 입고서 기자회견을 하는데 '우리는 미얀마 시민들의 무고한 희생, 목숨을 건 투쟁이 헛되지 않도록 끝까지 연대하겠다'고 말했다. 눈물이 쏟아질 뻔했다.

생각하면 참 기막히다. 유혈사태가 끝나도 복구되려면 오래 걸릴 것 같다. 나라가 부서지고, 정말 다 고장났다. 그래도 민주화가 확립돼야 나라가 산다. 희생이 늘어나도 끝까지 가야 한다고 본다. 하지만 대단히 미안하다. 조국의 자유를 말로만 응원할 수밖에 없어 정말 죄송하고 안타깝다.

지금은 온 신경이 고국으로 가 있다는 티 티 사이엔 씨. 그녀는 한국 사람과 결혼해 미얀마로 돌아간 친구가 무척 걱정된다고 했다. 얼마 전 통화에서 빨리 (한국) 들어오라고 독려하니 그녀는 "미얀마 중에서도 (유혈사태가) 심각한 동네에 있지만 운영중인 회사도 있고, 아이도 둘이나 있어 쉽지 않다"며 울먹였다고 전했다.

"그냥 두고 갈 수도 없고, 여기 있으면 위험하고…. 어떻게 해야 할지 머리 아프다"는 친구 말에 수화기를 놓을 수밖에 없었다는 티 티 사이엔 씨. 그녀는 마지막 말을 하면서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 "미얀마는 자유민주주의를 원한다! 시위대를 향한 탄압을 멈추어 달라! 그리고 미얀마 사랑하는 내 조국을 도와달라. 제발 제발..."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서산시대에도 실립니다.


태그:#미얀마를 도와주세요, #눈물로 호소하는 미얀마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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