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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부산시장 보궐선거 기간 정치권은 여야를 막론하고 가덕신공항 추진을 천명했습니다. 선거가 끝난 지금도 부산은 신공항 추진이라는 큰 난제를 마주하고 있습니다. 이에 기후위기와 환경 등의 이유로 공항을 반대하는 신공항반대시민행동이 연속기고를 보내와 싣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이와 관련 찬반을 포함 다양한 의견을 기다립니다. [편집자말]
색, 빛, 공간 침입자
- 가덕도신공항특별법 통과 결의대회 반대액션(with 청년긴급기후행동) 
부산청년기후용사대 김지안


1.

단색의 숨막히는 공간을 뚫고 돌아왔다. 한동안 긴장되어있던 몸을 이완시키고, 나의 공간을 정리하고, 이제서야 이 글을 적게 되었다. 섬과 삶의 이야기가 묻히지 않길 바라며. 우리의 노력이 헛되지 않길 바라며. 수필의 제목을 고민했다. 많은 사람들이 함께 현장에 있던 마음으로 읽을 수 있으면 좋겠다.

문득 너멀퓨어의 저서 '공간침입자 : 중심을 교란하는 낯선 신체들' 중 한 구절이 생각났다.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특히나 공적 영역에서 소수성이 어떻게 규정되고 가시화되는지 분석해 놓은 것이 인상깊던 책이었다.

"신체와 공간은 연관성이 있으며, 이는 시간이 흐르면서 형성되고 반복되며 경쟁을 벌인다. 이론 상으로는 모든 사람이 진입할 수 있지만 어떤 특정한 신체 유형들이 암묵적으로 특정지위의 ' 자연스러운' 점유자로서 지정되어있다. 어떤 이들은 그 공간에 무단침입자로 표시되거나 '그 자리에 부적당한' 존재로 제한된다. 그들은 신체 규범이 아니기에 공간침입자이다."

2월 7일, 가덕도신공항특별법 통과 결의대회 반대액션 자리에 모였던 기후용사대 가덕도팀, 청년긴급기후행동 장과 청, 혁 우리는 모두 공간침입자들이었다. 토목 구태정치의 표본지 '부산'의 시대착오적 정치인들에게 그들만의 중심을 교란하는 낯설고도 불량한 신체들이 되었다. 어린 청년, 헤테로 여성, 헤테로 남성, 지방 거주인, 수도권 거주인 등의 낡고 뻣뻣한 단어들이 되어 파랗디 파란 공간에 금을 긋고 왔다.

늦은 오후, 균열 사이 쏟아지는 빛에 눈이 부셨던 가덕도의 바다는 단지 파란색이 아니라 금빛, 아니, 하양이며, 쪽빛이자, 붉음이었다. 총천연색 자연은 인간이 자본으로, 토건으로, 문화적 차별로 공고히 쌓아놓은 홑색들을 늘 무색하게 만든다. 우리는 앞으로도 단색에 금을 낼 것이라. 색은 파장하는 빛이 있어야 비로소 그 고유성을 드러내게 되니, 끈질기고 유연한 목소리로 끊임없이 흔들리고 일렁이기를.
 
가덕도 신공항 건설반대 전국공동행동 기자회견이 지난 15일 오전 서울 종로구 환경운동연합에서 열렸다.
 가덕도 신공항 건설반대 전국공동행동 기자회견이 지난 15일 오전 서울 종로구 환경운동연합에서 열렸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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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가덕도 신공항이 답이다!"

집에서 하단까지, 하단에서 가덕도까지 들어가는 내내, 가덕도 신공항에 대한 현수막들이 잔뜩 붙어있다. 부산에 이미 가덕도 신공항이 들어서는 게 확정이지 않냐며 가볍게 되묻던 친구의 질문과 함께 그것들을 눈으로 잘근잘근 씹었다.

시민들에게 전달되는 것은 '가덕도 신공항을 짓기 위한 정치인들의 예비 타당성 조사 면제 특별법안의 문제성', '기후위기시대 공항 건설의 부절적함' 등이 아니라 '가덕도 신공항의 확정' 혹은 '보궐선거를 앞두고 시작된 정치인들의 가덕도신공항 표심'이었다. 액션 또한 '가덕도 내 작은 해프닝', '신공항 반대 측의 난장', '청년들의 치기'로 누군가에게 전달되거나, 어쩌면 우리의 서사가 누구의 입으로든 왜곡되어 "전해졌다"는 사실 자체에 안도해야할, 웃지 못할 상황이 올 것이다. 무엇이든 남기기로 마음먹었다.

"가덕도 신공항이 답이다." 부산시 홈페이지의 정보공개 란에 들어가보았다. 김해신공항 사업비 수준의 알짜 경제공항으로, 이미 충분한 수요가 확보된 사업이라 되어 있다. 지반침하부터 자연재해 모두 걱정할 필요 없으며, 조류와의 충돌도, 해상환경 변화도 할 필요가 없는 그야말로 "친환경적인" 공항이라 한다. 부산시의 홈페이지 홍보대로 이상적인 공항이라면, 특별법으로 예비타당성 조사를 면제하고 환경영향평가를 간소화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가덕도 인근의 낙동강 하구는 독특한 지형이다. 육지에서 하천을 타고 쓸려내려 온 모래가 바다의 밀물과 함께 작용하며 모래무덤을 이루면 식물의 뿌리가 그것을 잡아 안정시킨다. 사초, 버드나무 등 다양한 식물들이 정착할 때가 되면 긴 주기로 큰 홍수가 나고 앞선 식생들이 대부분 사라지며 또다른 독특한 생태계를 이룬다. 끊임없는 생태순환을 하며 한반도에 오는 태풍과 지진, 해일 등 자연재해의 방패막이가 되고 철새 도래지가 된다. 뿐만 아니라 가덕도엔 장지뱀, 대구, 수달 등등 다양한 멸종위기 동물들과 고유종들이 산다. 산을 잘라 건물 10층 높이의 해안을 메꾼다는 말은 이 생태의 움직임을 인간이 막아버린다는 얘기이다.

가덕도 신공항은 낙동강 하구의 혈을 막는 시한폭탄 혈전이 될 것이다. 인근 습지가 파괴되며 가덕도 바다에 주로 서식하는 대구 외 여러 생물들이 멸종 위기에 처하게 된다. 또, 자잘하게 분포되어 있는 작은 섬들이 없어지면 땅의 조도(거칠기)가 심히 낮아져 태풍을 효율적으로 막아내지 못한다. 가덕도는 태풍의 길목이다. 기후위기로 인해 잦아지고 세어지는 태풍에 가덕신공항이 들어서면 과연 제대로 운용할 수나 있을까. 관광에만 편중되게 도시를 구성해 재해에 무척 취약한 부산의 피해 역시 따져보지 않을 수 없다. 코로나 시대에 김해공항만의 적자 수익으로 이미 수요 타당성이 확인된 사업이란 찬성 측 주장은 정말 확실한가?

2019년도 기준으로, 김해는 1000억 원 흑자의 공항이다. 하지만 인근 대구, 울산 등의 인근 공항은 모두 적자이다. 어떻게 막연히 부울경의 경제를 모두 커버할 것인가? 국내 흑자공항 4곳 중 한 곳인 인천공항공사는 앞으로 코로나19 이전으로의 수요 회복에 최소 3~4년 이상 소요될 것이라 예측했으며, 2023년 이후로 가능하다 전망했다.

이러한 코로나 시대에, 외해에 지어진 공항 하나로 지역경제를 살릴 수 있단 말은 지나친 비약으로 보인다. 시 홈페이지엔 단지 7조의 예산만이 소요할 것이라 적혀있다. 이 7조는 국제선 활주로 하나만 지었을 때의 비용으로, 국내선 활주로, 교통인프라 외 여러 공항의 구색을 갖추는 비용은 포함하지 않았다. 찬성 측은 가덕도 신공항을 부울경 메가시티를 꿈꿀 수 있는 유일한 경제 수단으로, 수도권중심주의와 지역의 쇠퇴해가는 현 세태의 돌파구처럼 얘기한다.

가덕도 신공항이 답이라고 어떻게 명쾌하게 얘기할 수 있나. 글을 쓰는 지금도, 나는 내가 비전문가란 이유로, 말의 비약이 심할까봐, 찬성 측의 말에 반박하는 것이 조심스럽다. 지식의 부재에 끝없는 답답함을 느낀다. 공항의 중심에 있는 가덕도에 대한 제대로된 정보는 지속적으로 찾아보아도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 얼마 전 뵈었던 해양 정화 활동가분은 나에게 가덕도신공항에 대한 서칭을 어떻게 하면 잘할 수 있느냐에 대한 질문을 하셨다. 제대로 된 답을 할 수 없었다. 나 또한 같은 처지기에. 글을 쓸 때마다, 활동을 할 때마다 확신할 수 없는 주장에 나의 선명하지 않은 지식을 근거삼아 덧칠하는 것일까봐 몇 번이나 망설여진다.

동남권 신공항에 대한 언급이 나온지 16년째, 단순히 '신공항 건설 반대'의 문제로만 보기에 기후위기, 위장환경주의, 지역균형발전, 정치 내 위계 성폭력 인지 부재 등 여러 사회 맥락들이 한올한올 묻어 거대담론이 되어버린 것에 막막함을 느낀다. 앎의 깊이가 얕은 내가 느끼기에도 막막한 이것을 어떻게 이렇게 쉽게 논하나. 그나마의 신중함이던 예비타당성 조사마저도 면제하자고 외치며. 먹먹함을 느끼던 찰나 2월 5일 청년긴급기후행동에서 연대 제의가 들어왔다. 많은 것을 함께 나누고, 고립감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날 수 있었던 자리를 마련해준 청년긴급기후행동에게 다시 한 번 깊은 감사를 전하고 싶다.

3. 

우리는 가덕도에 먼저 들어가 집회 상황을 살펴볼 수색대팀, 강서구의 작은 공원에서 액션에 쓰일 현수막, 피켓을 만드는 팀으로 나누어 작업했다. 대항전망대의 집회상황을 지켜본 청과 혁이 경호 경찰의 규모, 분위기, 집회장소의 특징 등을 전했고, 후에 피켓을 만들던 팀까지 모두 가덕도에 도착했다.

집회 인근 카페에 모여 진입 사인과 구호, 각자 행동 지령을 의논하고, 조를 나누어 전망대로 걸어가는 순간이 얼마나 긴장되던지. 전망대엔 위아래 모두 파란 옷을 짜맞춰 입은 민주당 정치인들과 기자들, 경찰들, 가덕도 신공항을 찬성하는 시민들이 보였다. 그들의 부산 갈매기단 종이비행기 퍼포먼스를 우리가 재전유할 수 있길 바라며, 그들만의 견고한 세계에, '멸종행' 종이 비행기를 옷 안 몰래 품고 한참을 어슬렁거린다. 묘한 경계들이 느껴진다.

"에…… 이제 현수막 앞에 모두 서주십시오. 종이 비행기 들고 사진 찍고 간단히 연설문 읽고 집회를 마무리하겠습니다…."

혁이 마이크를 듬과 동시에 진입 사인이 떨어졌다.

"예, 반갑습니다. 의원님들께서 가덕도 신공항을 찬성하는 발언만을 계속 해주셔서 이제부터 반대 토론회를 잠깐이라도 해보고자 합니다. 저희는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여기 이 정치인들이 가덕도 신공항 특별법안을 생존을 위해서,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만들었다고 말입니다. 하지만 저희는 기후위기 시대에 토목 세력과 야합하는 이런 정치를 이젠 지켜볼 수 없습니다. 민주당에서 탄소중립*을 실천하겠다면, 기후위기에 실제로 대응하기 위한다면 신공항특별법은 지금 당장 철회되어야 마땅합니다!"

피켓을 들고 모두 현수막 앞에 뛰어드는 순간, 한 아저씨가 따라와 장을 밀고 끌었다. 장은 많이 놀란 듯보였다. 정신없이 아저씨를 함께 밀었다. 희와 나에게 오는 시민들 및 기자들의 삿대질과 비하발언, 욕설들.

하지만 이것들을 모두 뒤로 하고 나에게 정말로 치욕스러웠던 건, 이제 건질 만한 거 다 건졌으니 되었다,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말만 하겠다는 발언과 함께 일사불란하게 흩어지는 민주당 정치인들이었다. 우리가 난입하자마자 짜놓은 듯 철저히 외면하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피켓을 들고 뒤를 보며 외쳤다.

"외면하지 말고, 직시하십시오!"
"목청 좋다, 이 새끼야!"
"의원님, 부끄럽지 않으십니까!"


순식간에 목소리들이 혼잡하게 터져나온다.

"너네 부모님 누구고? 느그 이러는 거 아나?"
"가덕도 신공항 반대! 우리는 살고싶다!"


가덕도신공항 반대를 외치는 빈과 옥, 꿋꿋이 마이크를 들고 연설하는 혁, 해산명령을 하는 경찰, 발언을 하고 싶으면 예의를 지키고 사과부터 하라는 고조된 누군가의 목소리, 현수막 앞에서 또박또박 발언문을 읽는 희, 특별법에서 예비타당성조사를 면제한 것이 뭐가 문제냐 중얼거리는 민주당 의원들의 투덜거림. 단 한 마디도, 특별법 정책에 대한 납득 가는 설득과 제대로된 답변은 없었다.

작은 대항전망대에서 벌인 액션이 그렇게나 괘씸했다면, 수많은 우려의 목소리를 무시한 채 가덕도 특별법을 조속히 추진한 자신들부터 돌아보아야하지 않는가. 차라리 우리를 설득시키길 바랐다. 낯선 목소리가 단지 무례함이 되고, 이질감은 위화감에서 그치지 못한 채 곧 위압감이 되는 사회가 어떻게 다양한 목소리를 수용하는 열린 세상이 될 수 있을까.

* 탄소중립 : 인간의 활동에 의한 온실가스 배출을 최대한 줄이고, 남은 온실가스는 흡수(산림 등), 제거해서 실질적인 배출량이 0(Zero)가 되는 개념. 배출되는 탄소와 흡수되는 탄소량을 같게 해 탄소 '순배출이 0'이 되게 하는 것으로, 이에 탄소 중립을 '넷-제로(Net-Zero)'라 부른다.

4.

"난 사실 깜짝 놀랐어. 자기들끼리 파란 옷 입고 '부산갈매기, 가즈아~!'하는데 정치깡패들인 줄 알았어. 아직도 가슴이 두근거려."

구호를 외치고 해산한 뒤, 인근 카페에서 다시 짐을 찾고 잠깐 숨을 돌리던 장의 말이었다. 그러면 안 되는 걸 알면서도,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다. 한껏 답답했던 마음에 바다 전경으로 눈을 돌리자 그제야 어깨가 풀어졌다. 찰나의 휴식 후, 각자 액션 소감과 앞으로의 연대 방향성 등을 논의했다.

부산과 서울의 액션 느낌이 매우 다르다는 점, 이 액션이 묻히지 않도록 후속 조치가 더 중요해 보인다는 점, 등등을 공유하며 우린 다시 한 번 대항 전망대로 갔다. 제대로 보지 못했던 금빛 가덕 바다가 이제야 눈에 들어오며 뭉클해진다. 진작에 와볼걸. 전망대의 현수막들을 차근차근 둘러본다.

'가덕공항 고마해라-! 가덕주민 신물난다!' '가덕도 신공항 대항어민 다 죽는다!'

가덕도의 모든 주민들이 신공항을 반대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언제까지 '다수'를 위해, ' 대의'를 위해 소수와 지역주민들의 입을 막고 소리없이 희생시킬까. 현재 부산시장 후보들은 가덕 신공항으로 부울경 메가시티를 꿈꾼다고 얘기한다. '지역차별'로 인한 서러운 경기침체를 공항으로 해결될 것이라 외친다.

하지만 현실은 어떤가. 가덕도 신공항 건설 이슈가 뜨며 전체 주민들 수가 슬금슬금 오르더니 200명에서 한두달 만에 470명이 되었다고 한다. 대항마을을 비롯해 가덕도 곳곳에서는 쉽고 빠르게 지을 수 있는 조립식 건물공사가 한창이다. 신공항 토건 건설의 민낯이다. 부울경 메가시티의 새로운 도약이란 토건 개발 아래에 케케 묵고 음습한 성장 관성들만 남아있을 뿐이다.
 
가덕도 공항 반대 펼침막(원안).
 가덕도 공항 반대 펼침막(원안).
ⓒ 경남기후위기비상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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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2월 9일 아침 일찍 급하게 서울로 올라가 기자회견을 마치고 내려오던 길, 버스 창 밖엔 오래된 컴퓨터세탁소간판과 새로 붙인 빨래방 간판이 함께 보였다. 세탁기가 없어 손빨래를 하던 시절, 컴퓨터세탁소가 생겼다. 그당시의 가정용 기계 세탁기가 잔뜩 있는 사업장이었다.

어느 순간 세탁기는 집집마다 당연하게 있는 필수 가전 제품이 되었다. '빨래'란 단어는 더이상 손빨래가 아닌, 기계 빨래로 어느새 자리잡게 되었다. 세상은 이다지도 분주하고 시끄럽게 변한다. 그리고 생각지도 못한 변화가 일단 한 번 일어나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빠르게 또다른 과거에 회귀한다. 인간은 마치 시간이 '선형적으로 움직인다' 감각한다.

하지만 시간은 사실 정적, 그 자체이다. 움직이는 것은 생명체이지, 시간이 아니다. 누군가는 기후위기라 하더라도 밟아가는 절차가 있다한다. 시기상조이며, 사정이 있다고 한다. 태만하고 게으른 목소리이다. 일단 크고 작게라도 변하고 나면 그것에 또 적응하게 되는 것이 우리네 끈질긴 생명력이었다.

지난 100년간 지구의 온도는 말도 안 되는 속도로 빠르게 올랐다. 현재까지 산업혁명 전의 지구 온도에서 약 1℃ 가량이 올랐고, 국제기후변화대응기구(IPCC)에선 앞으로 1℃가 더 오르면 인간이 손써 볼 여력조차 없어진다고 한다. 그 때까지 현재 에너지 소모량이라면 약 8년이 남았다고 과학자들은 예측한다. 우리가 모든 산업활동을 멈춰도 기존의 온실가스 양으로 인해 지구가 알아서 뜨거워지기 때문이다. 하루에 인간이 배출하는 온실가스량을 에너지 크기로 환산해보면, 매일 40만개의 원폭이 지구에서 터지는 것과 같은 수준이라 한다. 초당 5개의 원자폭탄이 터지고 있는 것과 같은 셈이다. 이런 에너지를 지구가 지속적으로 버텨낼 수 있을까. 여러 핑계들을 거둬들이고, 그동안 외쳐왔던 '성장'에 대해 다시 면밀히 돌아보아야 한다.

현재의 성장에 대해 던지는 의문은 결국 서울중심주의의 어떤 지점과도 만날 것이다. 성장논리에 힘입어 그동안 지방은 서울을 닮아가길 원했다. 지난날 내놓은 지역균형발전 정책들 대부분이 토건개발사업과 기업유치에만 편중되어있다. 지역균형발전의 해결을 위해 '공간'에 질문을 던져왔다. 그 공간에 경제를 부양할 수 있는 무언가를 들여세우고, 사람은 그 곳을 채우는 부차적인 존재로 여겨왔다.

이제는 '사람'을 향해 질문해볼 때가 되지않았나. 공간은 사람의 활동을 뒷받침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사람이 채우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청년세대기를 거치는 우리는 하나같이 서울에 가야한다는 생각과 고민들을 안고 있을까. 양질의 일자리와 교육의 기회를 큰 이유로 꼽는다. 장년 세대기는 지속적인 직장 생활을 위해서, 노년 세대기는 주로 서울의 뛰어난 의료 인프라를 위해 남는다고 한다. 각 세대별로 수도권에 남길 바라는 이유도, 그들의 공통서사도 모두 다르다.

그렇다면 먼 출근시간을 감수해서라도 서울에서 경기도로, 혹은 지방으로 이사하는 사람들은 무엇때문일까? 주거환경을 가장 많이 꼽았다. 감당이 안 되는 집값, 더러운 환경에 지쳐 지방에 내려온다고 한다. 기후위기 시대에 지역의 무엇을 살려야 하고, 무엇을 발전시켜야 할지, 어떤 한계를 인정해야 할지 사람을 관찰하면 더 명백해질 것이다.

코로나19와 기후위기로 인해 '돌봄'을 다시 한 번 되돌아보는 때이다. 기후위기는 단순한 경제성장만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님을 이제 모두가 안다. 그동안 성장이란 이름 아래 외면했던 불평등, 돌봄, 환경 등을 직면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돌봄을 전제로 한 지역인지감수성을 우리 모두가 기르지 못하면 기후위기 시대의 그린뉴딜은 다시 뻔하디 뻔한 지역의 토건개발사업, 수도권 중심 사업들로 그칠 것이다.

아직까지 현재의 그린뉴딜은 지역인지감수성을 길러내지 못한 듯 보인다. 그린뉴딜의 공모사업형 지역균형 정책들을 보면 지역공동체가 주체적으로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이 함께 가는" 관점으로 보는 것이 여실히 드러난다. 수도권의 문제가 해결될 수 없으니 그것을 전 지역과 함께 해결해 나가겠다는 수도권 중심적인 표현들을 지우지 못한다. 지역인지감수성이 없는 건 중앙 정부뿐만 아니라, 지자체 또한 마찬가지이다. 기후위기를 정말 실감한다면 지역감정과 정치색을 내세워 토건개발에 앞장설 것이 아니라, 어떻게 지역끼리, 지역과 수도권끼리 소통할 것인가 정책의 언어와 관점부터 살피는 작업을 먼저할 것이다.

우리의 지역을 탐구하고,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고, 그 속에서 우리만의 발전을 도모하며 연대할 것이다. 지역과 수도권의 차별은 어떻게 생기게 되었나. 우리는 비대해지는 서울을 보며 어떤 차별들을 더 공고히 다져왔는가. 공간에서 던질 수 있는 삶에 대한 무수한 물음들이 실마리처럼 번져있는데, 우리는 어째서 공간에 녹아난 우리들을 세심히 관찰하지 않을까. 이 작업을 누군가가 나서서 해주지 않는다면, 나는 함께 뜻을 나누는 부산 기후용사대, 청년 긴급 행동 친구들과 이 연구를 해보고 싶다. 섬나라나 다름없는 우리나라가 에너지를 보다 빠르고 효율적으로 전환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주체적인 지역공동체들 간의 연대임을 잊어선 안된다.

6
2월 26일, 결국 가덕도 특별법은 통과되었다. 가덕도 현수막이 보이는 지상철 안에서 관련 기사를 보며, 허망하고 씁쓸한 마음을 감출 수 없다. 가덕도 신공항이 정말로 지어질 것인가는 두고보아야 할 일이지만, 우리는 예비타당성조사를 면제하려는 등 4대강 사업과 똑같은 전철을 밟아가는 토건 사업이 기후위기 시대에 여전히 반복되고 있음을 잊어선 안된다. 대항전망대에서 울려 퍼지던 희의 발언이 귓가에 울린다.

" …지난해 문재인 정부는 2050 탄소중립을 선언하였습니다. 하지만 그간 정치권이 펼친 그린뉴딜은 구린뉴딜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불려야 할 만큼 그 의미가 변색되었고, 지역균형발전을 명목으로 추진되고 있는 신공항 건설은 탄소배출의 면죄부를 받은 듯 비민주적인 절차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의원들이 산을 깎아내고 바다를 메우자는 비상식적인 사업에 한 치의 부끄럼없이 예타면제를 외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부산시민이 원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미래를 위한 지속가능한 '전환'이 아닌, 자연을 돈으로 '환전'하고자 하는 토건 세력들에 실소를 금할 길이 없습니다. 유한한 지구에서 무한한 성장은 불가능합니다. 우리는 탄소를 내뿜는 일자리를 원하지 않습니다. 삶의 전환을 원합니다. 지속가능한 일자리를 원합니다! … "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적을 수 있도록 도와준 기후용사대 가덕도팀 친구들에게 감사합니다.


태그:#가덕신공항, #부산, #환경, #토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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