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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야 할 일은 산더미였지만 그렇다고 교향악축제를 건너뛸 수는 없었다. 매년 4월 예술의전당에서는 약 2~3주 동안 전국 각 지역의 교향악단이 모여 연주를 하는 축제가 열린다. 나는 축제 일정을 보고 협연자와 연주곡을 살핀 후 가고 싶은 공연을 골랐다. 그런데 예매를 하려고 보니 매진이었다. 하지만 괜찮았다. 공연 당일 나는 돗자리를 챙겨 아들과 예술의전당으로 향했다.

나는 아이와 한 달에 한 번씩 음악회에 간다. 아이가 학교 들어가기 전에는 어린이를 위한 키즈클래식 공연을 위주로 다녔고, 초등학생이 된 이후에는 일반 클래식 공연에 갔다. 엄마와 음악회에 가는 초등학생 아들이라고 하면 아이가 유난히 얌전한 성격이거나 악기를 전공하는 아이라고 볼지 모르겠다.

하지만 아이는 지극히 평범한 2학년 남자아이다. 축구를 좋아해 매일 운동장에서 2시간 넘게 축구를 하고 때가 꼬질꼬질해서 들어온다. 운동화를 털어보면 모래가 한가득 나오고, 바지는 사준 지 얼마 안 되었는데 무릎 부분이 금방 헤지기 일쑤다. 점퍼를 아무 데나 벗어놓고 챙기지 않아 몇 번씩 잃어버린 적이 있는 그런 아이다.

초등학생 아이와 음악회를 즐기는 법

그래도 아이는 음악회에 가자고 하면 즐겁게 따라나선다. 나는 아이와 음악회에 갈 때 어떤 교육적인 목적으로 간다기보다 아들과 특별한 데이트를 즐긴다는 기분으로 간다. 음악회를 여러 번 다니다 보니 우리만의 루틴이 생겼다. 맛있는 음식 먹기, 1부까지 보기, 음반 사기 등이다.

공연을 보기 전 먼저 맛있는 음식을 먹는다. 메뉴는 아이가 고르게 하는데 우리는 주로 성남아트센터에서는 아이스크림 와플을, 예술의전당에서는 오징어먹물 리조또와 치킨앤칩스를, 경기아트센터에서는 마르게리타 피자와 토마토 해산물 파스타를 먹는다. 이날도 예술의전당 안에 있는 카페에서 오페라하우스와 시계탑이 보이는 야외 테라스 자리에 앉아 치킨앤칩스와 보틀콥 샐러드를 먹었다. 아이는 바삭하게 튀겨 나온 치킨 조각을 먹으며 말했다.

"음. 맛있어. 역시 음악회 오길 잘했어."

우리는 음악당에서 '2021 교향악축제' 프로그램북을 구입한 후 야외무대로 갔다. 교향악축제는 공연장에서만 볼 수 있는 게 아니다. 야외무대 대형스크린으로 공연 실황을 생중계 해주어 누구나 와서 편하게 관람할 수 있다.

음악당 안에는 사람이 많았는데 야외무대에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챙겨 간 돗자리를 앞쪽 중앙 자리에 펴고 앉았다. 초록색 잔디 위에 붉은색 체크무늬 돗자리를 깔고 앉으니 피크닉 온 기분이 났다. 우리는 프로그램북을 들춰보며 공연이 시작되기를 기다렸다. 아이는 신발 벗은 발을 꼼지락거리며 말했다.

"엄마, 나는 공연장 안에서 보는 것보다 이렇게 밖에서 보는 게 더 좋아요."

나도 마음이 편했다. 공연장에서는 혹여나 아이가 움직이거나 소리를 내서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줄까 봐 아무래도 신경이 쓰이곤 했다.
 
<2021 교향악축제>를 야외무대에서 관람하는 모습입니다.
 <2021 교향악축제>를 야외무대에서 관람하는 모습입니다.
ⓒ 진혜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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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이 시작되었다. 400인치 화면에 소리도 웅장해 여느 로열석 자리가 부럽지 않았다. 공연장에서는 자세히 보기 힘든 연주자의 표정과 손가락의 움직임까지 큰 화면으로 보니 음악만 들리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그들의 열정과 집중력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지휘자의 손끝과 악보를 수시로 번갈아 보며 화음을 맞추어 나가는 오케스트라 단원, 흐르는 땀 때문에 머리가 젖은 지휘자, 눈을 감고 향기를 맡는 듯한 표정으로 연주하는 피아니스트를 볼 수 있었다.

특히나 아름다웠던 것은 위에서 내려다보는 각도로 촬영하여 오케스트라 전체의 모습을 담은 장면이었다. 부채꼴의 형태로 앉아 각자의 위치에서 자신의 악기를 연주하며 하나의 음악을 만들어 내는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내가 듣고 있는 음악이 혼자가 아닌 여럿이 함께 만들어 내는 하모니라는 것이 시각적으로 크게 다가와 감동이 더 했다.

야외에서 음악을 감상하면 그날의 날씨, 주변 풍경과 음악이 어우러져 하나의 장면으로 마음에 오래 남는다. 이날도 봄밤에 살랑살랑 부는 바람을 맞으며 음악을 듣는 것이 좋았다. 음악을 듣다가 아이는 말했다.

"엄마, 하늘 좀 봐요. 별이 떴어요. 하나, 둘, 셋…."

아이는 별을 세며 음악을 들었다. 나도 함께 고개를 들고 별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별과 별 사이에는 슈만의 피아노협주곡 A단조 op.54가 흐르고 있었다. 아이는 공연을 앉아서 보다가 좀 지나서는 내 무릎을 베고 누워서도 보았다.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음악을 들었다. 아이의 머리를 만진 것이 오랜만이었다.

곡이 끝나자 우리는 두 손을 위로 들고 커튼콜이 끝날 때까지 박수를 계속 쳤다. 우리의 박수 소리가 무대에 들리지는 않겠지만 큰 박수로 오늘 받은 감동에 화답했다. 아이는 양손을 펴서 입에 대고 큰소리로 외쳤다.

"브라보!"

아이가 클래식과 조금 가까워졌다

아이들 대상이 아닌 일반 클래식 공연의 경우에 대개 총 공연 시간이 2시간이 넘는다. 그 시간을 아이가 집중해서 보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우리는 보통 1부만 보고 온다. 티켓 가격을 생각하면 2부를 못 보는 것이 좀 아깝지만 무리해서 보지 않았기에 아이가 늘 부담 없이 음악회에 따라나설 수 있었던 것 같다. 우리는 이날도 기분 좋게 1부만 보고 일어섰다.

공연을 보고 나서는 그날의 연주자 또는 연주된 곡의 CD를 공연장 안이나 근처 음반 가게에 들러 구입한다. 책도 온라인 서점에서 주문해서 보는 것보다 직접 서점에서 산 책이 더 애틋하고 오래 기억에 남는 것처럼 음반도 그렇다. CD를 들을 때마다 그날의 추억이 떠올라 행복해진다. 우리는 예술의전당 음악당 안에 있는 음반 가게에서 오늘 협연자였던 피아니스트 윤홍천의 CD를 샀다. CD에는 연주자의 친필 사인까지 되어 있어 더 특별했다.

아이는 아직 성숙한 관객은 아니다. 공연을 볼 때 귓속말로 "엄마, 언제 끝나요?"를 여러 번 물을 때도 있다. 하지만 어떨 땐 음악을 듣다 갑자기 내 귀에 대고 '엄마, 이 음악 내 스타일이에요'라고 속삭인다. 아이가 좋아했던 음악은 그리그의 홀베르그 모음곡 3번이었다.

그날 밤 집에 돌아와 아이는 말했다.

"엄마, 우리 오늘 잘 때 아까 산 CD 틀어놓고 자요."

이렇게 아이는 클래식과 조금 더 가까워졌다.
 
예술의 전당 포스터 화면 캡처
 예술의 전당 포스터 화면 캡처
ⓒ 예술의 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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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클래식, #아이,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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