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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이쿠, 뭐가 이렇게 많이 들었어?"

5학년 아이의 가방을 들어주다 말고 깜짝 놀랐다. 뭐라도 하나 더 뺄 것이 없나 싶은 마음에 아이의 가방을 열어 재차 확인해 보았다. 교과서로만 빽빽하게 들어차 있는 가방엔 쓸데없는 것을 넣으려야 더 넣을 공간도 없어 보였다.

쉬는 시간이 거의 없이 수업을 하고 있는 초등학교는, 6교시를 마치고 1시에 급식을 먹고 바로 하교하는 스케줄이다. 학교에서는 오전 등교 / 오후 온라인 수업도 시도해 보았지만 지금의 방법이 가장 효율적이라 판단했는지, 현재는 빡빡한 6교시 등교수업을 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챙겨야 할 교과서가 많아졌다.

'창체, 국어, 과학, 사회, 수학, 미술.'

4월 어느 날의 둘째 아이 등교 시간표이다. 작년 한 해, 온라인 수업의 가장 큰 문제점이 학력격차였다는 문제 인식 때문인지 학교에서는 학력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등교일에 주요 과목 위주로 시간표를 짜는 모양이었다. 늦었지만 너무 반가운 일이다. 그런데 문제는 교과서. 창체는 교과서가 없으니 그렇다 쳐도 나머지 수업시간표를 보니 한숨이 절로 나온다.

등교하는 아이들 가방 한 번 들어보셨어요?

요즘 초등학교는 우리 때와 다르게 각 과목의 교과서가 두 권씩이다. 국어/국어 활동, 수학/수학 익힘, 과학/실험관찰, 사회/사회과 부도. 이날은 미술 준비물도 들었으니 미술 교과서와 함께, 읽을 책까지 교과서를 자그마치 9권이나 챙겨가야 하는 날이다. 가방을 들어보니 갓 5학년이 된 아이들은 물론 어른인 내가 들어도 쉽지 않은 무게였다. 직접 재 봤더니 선명한 숫자 5.1kg
 
가방의 무게가 자그마치 5.1kg이다.
▲ 가방의 무게 가방의 무게가 자그마치 5.1kg이다.
ⓒ 은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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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방이 너무 무겁다. 학교 끝나면 들고 오지 말고 엄마한테 전화해. 엄마가 데리러 갈게."

마치 등짐을 지듯 무거운 아이의 가방을 어깨에 멘 나는 초등 1학년 엄마가 된 기분으로 함께 등굣길에 나섰다. 코로나 이전에도 매일은 아니었지만 간혹 가방이 무거운 날에는 가방을 들어다 주곤 했다. 그래도 3학년 때까지는 학교 사물함에 교과서를 두고 다닐 수 있었기 때문에 이 정도는 아니었다.

그런데 코로나로 학교 사물함에 교과서를 두고 다니지 못하게 된 이후부터 가방의 무게가 무거워도 너무 무거워졌다. 아무리 일주일에 두세 번 하는 등교이지만 교과서가 잔뜩 들어 있는 가방을 들고 다니는 아이들의 척추 건강은 과연 괜찮을까?

내가 아이의 가방 무게에 이렇게 예민한 건 아마도 아이가 가진 '척추측만증'이라는 질병 때문일 것이다. 특발성 척추측만증은 특별한 원인이 없다고 하지만 그런 까닭에 더욱 척추에 무리가 가는 행동에 예민해지기 마련이다. 아이가 '척추측만증'을 진단받은 후 재활치료와 도수치료, 운동치료 등 많은 치료를 수개월에서 수년째 하고 있지만 진행성인 경우라 각도의 휘어짐은 멈출 수가 없다.

이렇다 보니, 컴퓨터 앞에 장시간 앉아 있어야 하는 온라인 수업과 등교할 때 들어야 하는 무거운 가방은 그야말로 근심거리가 아닐 수 없다. 그렇다고 누구에게 뭐라 할 수도 없는 일. 아이의 척추가 더 휘어질까 걱정된 나는 그렇게 또, 5학년씩이나 되는 아이의 가방을 들어주는 유난스러운 엄마가 되었다. 그런데 이것이 과연 나와 우리 아이만의 문제일까?

청소년 전체의 1.5~3%에서 발견될 정도로 드물지 않다는 척추측만증은 자연스럽게 좋아지는 경우도 있다지만 수술을 해야 하는 경우도 빈번하다고 한다. 실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척추측만증은 10대 척추 측만 환자 전체의 43%의 비율을 차지할 정도로 성장기 아이들에게 흔하게 나타나는 질병이다. 특히 척추측만증은 사춘기 급성장기에 만곡도가 심해지는 경우가 많아, 실은 그 진행이 어찌 될지 정확히 예측할 수가 없다.

안타깝게도 사춘기를 앞두고 있는 우리 딸은 이미 경증의 단계를 넘어 계속 진행되는 양상이고, 대형병원 검사 결과 수술로 치료 방향이 결정된 상태이다. 이런 연유로 나는 아이의 등굣길을 함께 하게 되었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이 혼자 무거운 가방을 낑낑대며 메고 가는 것을 볼 때면 걱정스러운 마음이 앞선다.

무거운 가방 정말 괜찮을까

학교가 가까운 아이들은 그나마 괜찮다고 해도 학교와 집과의 거리가 먼 아이들은 어쩌란 말인가. 온종일 컴퓨터 앞에서 수업을 듣는 것도 모자라 나가 놀 수도, 마음껏 운동을 할 수도 없는 아이들에게 무거운 가방이 정말 괜찮은 일일까?

지금은 코로나의 방역이 더 중요한 문제이긴 하지만, 우리는 어쩌면 너무나 코로나 방역에만 매몰되어 다른 쪽은 쳐다볼 여유조차 잃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언제 끝이 날지 모르는 코로나 시대이니만큼 오히려 새로운 뉴노멀을 더욱 적극적으로 찾아봐야 하는 것은 아닌가 싶다.

게다가 조금만 더 관심을 기울인다면 대안을 찾기가 불가능해 보이지 않는다. 시간표를 조정해서 등교일에 한 과목 몰입수업을 한다든지, 등교일에는 주요 과목을 하루에 두 과목씩만 수업을 한다든지 또는 단원별로 분책을 하여 얇은 교과서로 만들어 가지고 다니는 등의 방법 등, 현장에 계시는 분들이 함께 고민한다면 다른 많은 좋은 방법도 기대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가방 들어주는 엄마'로 살다 보니 본의 아니게 올봄, 만개한 벚꽃을 누구보다 자주, 한껏 만끽했다. 우리 아이들도 무거운 5.1kg짜리 가방을 메고 낑낑거리는 대신, 저 휘날리는 벚꽃 같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등교하게 되는 날이 오길 간절히 바란다.

태그:#가방이무거워요, #등교가방, #등교시간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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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고 글쓰는 일을 좋아합니다. 따뜻한 사회가 되는 일에 관심이 많고 따뜻한 소통을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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