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제38대 서울특별시장에 당선된 오세훈 시장이 8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시청으로 첫 출근 후 인사말을 하고 있다.
 제38대 서울특별시장에 당선된 오세훈 시장이 8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시청으로 첫 출근 후 인사말을 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관련사진보기

 
재보선 결과가 국민의힘 압승으로 나타나고, 서울과 부산의 각 선거구가 붉은색으로 채워지는 것을 지켜보는 가슴이 쓰렸다. 10여 년 전의 그 악몽을 다시 되새기며 용산참사 유가족들의 고통, 태극기 부대가 세월호 광장을 위협하는 장면을 걱정할 세월호 가족들의 우려, '안볼 권리'라는 말에 분노했던 성소수자들의 아픔, 이제 그나마의 '협치'도 사라지는 '암흑 시대'를 걱정하던 지역 활동가들의 심정을 떠올렸다.

아마 이것은 코로나 이후의 세계를 둘러싼 투쟁에서 곳곳에서 나타나는 국제적 반격의 일부일 것이다. 미얀마, 태국, 홍콩, 러시아 등이 대표적이고 노골적이지만, 프랑스에서는 마크롱 정부가 반무슬림 법안을 추진했고 극우 성향 르펜의 집권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영국 보리스 존슨 정부는 경찰국가로 가는 법안을 추진하며, 이에 항의하는 거리 시위대를 거의 짓밟는 수준이다.

개혁 정책 중단하라는 주류 보수언론  

재보선 다음날인 8일, <조선일보>를 보니 칼럼, 사설 등을 통해 '이제 문재인 정부는 반성하고 민심을 받아들여 반기업, 반시장, 친노조, 탈원전, 대북 화해, 소득주도성장, 부동산 시장 규제, 반미 친중 노선, 검찰개혁, 언론개혁 정책을 중단하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민주당 안팎에서도 '검찰이나 언론과 너무 싸운 게 문제였고 이제 방향을 바꾸자'는 이야기들이 흘러나오고 있다.

그러나 이는 항상 반복되는 전형적인 책임론이다. 기득권 우파에 맞서는 개혁에 대한 희망 속에 중도개혁 세력이 집권한다. 그러나 여전히 부와 권력을 움켜쥔 재벌, 주류언론, 관료들은 의미 있는 개혁을 가로막는다. 중도개혁 세력 내부에서도 반대하는 힘은 강력하다. 타협과 굴복 속에 개혁은 지지부진하고 실패해 간다. 그러면 실망 속에서 중도개혁 세력의 입지는 약화된다. 그럴수록 기득권 우파는 더욱 기가 살아난다.

나는 지난 총선 직후에 이렇게 예측했다. "민주당은 이제 진정한 시험대에 올랐다. 코로나발 세계적 위기라는 악조건 속에서 여전한 검찰 등 관료기구, 족벌언론, 재벌들의 방해를 뚫고 개혁의 성과를 거두는 실력을 보여야 한다. 또다시 우파와 기득권에 굴복하면 개혁은 껍데기만 남게 될 것이다. '트럼프가 허락하는 남북화해', '재벌의 눈치 보는 경제개혁', '윤석열에 맡겨놓고 뒤통수 맞는 적폐청산'이 지속되고, 차별금지법이 또 물 건너가면 실망은 환멸로 변하게 될 것이다."(관련 기사: [주장] 촛불의 힘이 만들어낸 총선 결과와 진보정당의 미래)

이런 식으로 개혁이 실패로 가면 몇 가지 역설이 나타난다. 먼저 개혁의 실패로 대중의 삶을 개선하고 불평등을 해결할 수 없게 되면, 희망을 잃은 대중은 각자도생에 내몰린다. 그리고 '자유롭고 공정한 경쟁'과 '능력과 노력에 따라 경쟁에서 승리할 기회'에 이끌리게 된다. 이것이 부동산 투기 척결에 실패한 결과가 '빛내서 집살 기회'와 '부동산과 주식으로 돈 벌 자유'를 주장하는 우파의 득세로 이어진 이유이다.

타협이 이어지면 기득권 세력은 그에 만족하는 게 아니라, (아웅산 수치의 타협에 만족한 게 아니라 쿠데타를 일으킨 미얀마 군부가 보여주듯이) 더 나아가 개혁의 싹을 자르려고 한다는 것이 두 번째 역설이다. 이것은 사회적 격돌을 일으키고, 애초에 개혁을 무리하게 추진한 것이 문제라거나, '이' 개혁 추진이 '저' 개혁 추진을 가로막았다는 논리가 힘을 얻는다.

세 번째, 가장 큰 역설은 개혁을 가로막고 그것을 실패하게 만든 바로 그 세력이 대중의 환멸을 이용해서 다시 권력을 탈환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이번 재보선 결과에서 나타나고 있다. 물론 개혁 실패의 역설만으로 이것을 설명할 수는 없다. 지난해 총선과 달라진 사실은 2016년 촛불 이후에 심각한 분열과 혼란에 빠져있던 기득권 우파가 어느 정도 정치의 재구성과 세력의 재통합에 성공했다는 것이다.

이들은 김종인, 오세훈, 안철수 등을 내세우고 힘을 합치면서 뭔가 낡은 과거를 벗어난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약발이 떨어진 '종북 혐오' 선동은 어느 정도 축소됐다. 그러나 성소수자 혐오, 반페미니즘, 혐중 선동, '586엘리트의 위선'에 대한 비난과 혐오가 그것을 대체하는 중이다.

'정의를 말하면서 특권을 챙기는 위선적인 586엘리트들이 파렴치한 인사들을 앞세워 검찰, 언론을 뒤흔들며 자신들의 반칙을 숨기고, 어설픈 정책으로 한국사회를 망치고 있다'는 저들의 프레임은, 이제 진영을 넘어서 대부분의 지식인과 언론들이 상식처럼 받아들이는 헤게모니적 담론의 지위를 얻은 것으로 보인다.

진중권, 서민 같은 새로운 스피커들이 생겼고, '능력과 노력에 따른 공정'은 이제 우파의 가장 강력한 이데올로기적 무기가 됐다. 이번에 오세훈의 선거 슬로건의 핵심에도 '공정'이 있었다. 그러면서 우파는 지금 청년(남성)층으로 지지기반을 넓혀가고 있고, 이번에 20대 남성의 72%가 오세훈에게 투표하게 된 것이다. 이 현상은 갑작스러운 게 아니라 이미 2017년부터 나타나 꾸준히 발전하던 경향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민주당이 압승한 지난 총선에서마저 20대 남성은 20대 여성에 비해 두 배나 더 많이 국민의힘에 투표를 했다. <시사인>은 이미 2019년에 치밀한 데이터 분석을 통해 20대 남성의 10명중 6명은 반페미니즘적이면서 문재인 정부에 비판적이고, 심지어 그 중에 25% 정도는 스스로 역차별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일관된 "반페미니즘 마이너리티 정체성 집단"이라고 분석했다.

국민의힘은 하태경, 이준석 등을 앞세워서 이들과 접속하는 데 성공하고 있고, 이것을 '586엘리트'에 대한 적개심으로 연결시켜 왔다. 이번에도 이준석은 "시대착오적 페미니즘을 강요하지 말라"고 하면서도, 이번 선거를 '앞으로는 페미니즘을 말하면서 뒤로는 성폭력을 저지르는 위선적인 민주당 586 엘리트'를 심판하는 투표로 만들었다.

그래서 성차별이고 성폭력적인 사회구조를 만드는데 가장 책임 있는 세력이, 가장 앞장서서 성폭력 피해자에 연대하자는 '호소'를 하고, 페미니즘에 가장 부정적이던 사람들이, 그것에 뜨거운 '호응'을 보이며 투표를 하는 다층적 역설이 나타나게 됐다. 박 시장 성폭력 사건과 피해자에 대한 민주당의 잘못되고 뒤틀린 대응이 여기에 힘을 실어준 셈이다.

'역차별' 받는다는 20대 남성들... 민주당의 잘못된 대응  

물론 우파의 새로운 지지기반이 되어가는 청년(남성)층을 매도하는 것은 대안일 수가 없다. 또 그들의 분노와 불만에 주목하고 공감하는 것과, 그들이 우파 정치적 대안에 이끌리는 것을 우려하고 비판하는 것을 양립불가능한 것처럼 취급할 필요도 없다.

미국과 영국에서도 신자유주의가 낳은 고통과 삶의 불안정은 대중의 정당한 분노와 불만을 낳았다. 그러나 신우파는 그것을 포퓰리즘적 인종주의 선동의 기반으로 이용했다. 트럼프의 당선이나 브렉시트 가결에 대해서, '정당한 분노의 표출'이냐 '잘못된 우파적 반응이냐'는 양자택일식 논쟁이 무의미했던 이유이다.

분노와 불만이 혐오의 정치로 향하지 않도록 대안을 만들어가는 것이 더 중요할 것이다. 선거를 평가하면서 민주당에 대한 온갖 평가와 비판들이 쏟아지는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 비판이 강할수록 더 큰 미련이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거기에 별로 말을 보태고 싶지는 않다. 민주당에게 급진적 개혁을 기대하는 것은 처음부터 무리였던 것으로 보이고, 지금 와서도 큰 의미가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민주당이 무슨 '악당'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 당의 구조적 성격 때문이다. 민주당은 애초부터 한계를 가진 다층적 기반의 중도개혁 세력이고, 물론 그 내부에 진지하게 진보와 개혁을 추구하는 세력도 포함돼 있지만, 그들은 주류가 아니라고 파악되는 탓이다.

나는 민주당이 개혁에 성공할 가능성보다, 민주당의 자체적 한계와 문제점에 실망해 이탈하는 사람들을 흡수하면서 '진보 좌파' 전체의 지지기반이 크게 확장될 것을 기대해 왔다. 진보좌파의 주도 속에 민주주의적, 반자본주의적, 생태주의적, 페미니즘적 가치가 확대되길 기대했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김태년 대표 직무대행과 지도부가 8일 여의도 국회에서 4.7재보궐 선거 결과에 책임을 지고 지도부가 전원 사퇴한다는 내용의 대국민 성명서를 발표한뒤 고개를 숙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김태년 대표 직무대행과 지도부가 8일 여의도 국회에서 4.7재보궐 선거 결과에 책임을 지고 지도부가 전원 사퇴한다는 내용의 대국민 성명서를 발표한뒤 고개를 숙이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관련사진보기

 
이번 결과에 실망하고 우울해진 핵심 이유도, 민주당이 패배하고 국민의힘이 반사이익을 얻어서가 아니다. 그것은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하고 심지어 필연적인 면도 있었다. 핵심은 진보좌파 정당과 후보들이 새로운 희망을 보여주긴커녕 너무나 미미한 결과를 얻었다는 데 있다.

이번에 정의당, 녹색당, 노동당 같은 주요 진보정당들은 아예 후보를 내지도 못했다. 그런데도 어느 때보다 많은 진보 후보가 전부 갈라져 출마했고, 군소후보의 절반 이상이 진보 후보였다. 어느 진보 후보에 투표하고 주변에 권할지가 너무 힘든 고민이 됐다. 그럼에도 진보 후보들은 심지어 허경영 후보보다도 못한 결과를 얻었다.

선거 과정에서 군소후보들의 TV토론회나 방송 인터뷰 등을 일일이 어렵게 찾아보면서 안타까움만 깊어졌다. 크게 다를 수 없는 가치와 정책을 가지고 출마한 진보 후보들이 서로의 부족함과 잘못을 찾아내서 공격하느라 바쁜 모습을 서글픈 마음으로 봐야 했기 때문이다.

선거 막판에는 국민의힘에서 여유를 부리며 '군소 후보들의 다양한 가치들에도 관심갖고 투표해달라'고 권하는 굴욕적 장면까지 봐야했다. 수많은 선거 평가에서도 진보정당과 후보에 대한 이야기는 별로 보이지 않는다. 무관심과 주변화 속에서 진보정당과 후보들을 향해서는 성찰과 쇄신을 요구하는 목소리조차 별로 나오지 않고 있다.

20년이 넘은 진보정당 운동의 역사가 이제 다 합쳐서 2%도 안 되는 득표라는 결과로 드러나는 건, 지지기반의 축소재생산이다. 민주당이나 우파의 지지기반을 가져오기 위해서 힘을 합쳐서 노력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고, 그 작은 지지기반을 서로 갈라먹기 위해 다투고 있다. 도대체 언제까지 진보의 씨앗을 뿌리기만 할 것인지, 솔직히 미래가 보이지 않는 심정이다.

그동안 진보정당들은 계속 더 분열했고 더 약화했다. 지역기반은 더 줄었고, 사회운동과 연계는 더 약해졌고 '영남노동벨트'는 희미해졌다. 언제까지 이 모든 게 양당구도와 주류 양당 때문이라고만 할 것인가? 양당 구도가 양당 때문이라는 것은 무의미한 동어반복이다. 세상에 어떤 주류 양당이 제3세력을 위해 알아서 길을 비키며 돕겠는가? 제3의 대안을 지지할만한 선택지로 만들어 제시하지 못하는 자신부터 스스로 성찰하고 쇄신해야 한다.

미국 등에서 제3정치세력이 실패를 거듭한 이유는 단지 양당에 흡수됐기 때문만이 아니었다. 선명성 경쟁에만 매달린 수많은 소규모 제3세력이 난립하면서 어떤 의미있는 대안으로도 성장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나마 이번 선거 막바지에 뒤늦게 기본소득당·녹색당·미래당·정의당·진보당이 '반기득권 공동 정치선언'을 한 것에서 희미한 희망이라도 찾고 싶다.

제3세력에 대한 기대 

차이점을 인정하고 비판, 토론하면서도 투쟁과 선거에서 공동의 과제를 위해서 힘을 모을 수 있어야 한다. 다양한 색깔은 얼마든지 아름다운 무지개가 될 수 있다. 민주당을 통한 개혁과 진보에 기대를 걸었다가 실망한 사람들이, 진보좌파의 기반으로 옮겨올 수 있도록 적절한 동맹과 전술을 택해야 한다. 민주당이 실패하길 기다리며 더 세게 욕하고 선 긋다 보면, 저절로 우리에게 기회가 올 것이라는 게으른 생각을 벗어나야 한다.

누가 가장 효과적으로 기득권 우파에 맞서며 개혁을 성공시킬 수 있는지 실천으로 입증하며, 진보좌파의 정치세력화를 뒷받침할 대중적 기반과 주체를 만들어내야 한다. 지지기반이 넓혀지기도 전에 먼저 갈라가려는 시도는 그만 보고 싶다. 이 모든 것은 민주당을 넘어선 진보좌파 정치세력이 한국사회의 희망이 돼야 한다는 기대와 애정 때문에 더 강하게 하는 비판과 주문이라는 것을 이해할 것이라고 믿는다. 

태그:#재보선, #진보정당, #민주당, #국민의힘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이윤보다 사람이 목적이 되는 다른 세상을 꿈꾸며 함께 배우고 토론하고 행동하길 원하며 <다른세상을향한연대>의 실행위원입니다. 더 많은 글들은 여기서 봐 주세요. http://anotherworld.kr/ 페이스북 계정 https://www.facebook.com/profile.php?id=100001746737727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