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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태주의 산문집 〈부디 아프지 마라〉
▲ 책겉그림 나태주의 산문집 〈부디 아프지 마라〉
ⓒ 시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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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나 할 것 없이 아픈 시대를 살고 있다. 노인들은 노인들대로, 부모님들은 부모님들대로, 젊은이들은 젊은이들대로, 학생들은 학생들대로 다 힘든 시대를 살고 있다. 누군가는 "아프니까 청춘이다"라고 위로하지만 청춘의 아픔을 직접 겪어 보지 않는 이들의 위로는 그저 위선처럼 들린다.

공사판을 누비며 시험에 합격한 이들의 아픈 세월에 공감하는 이유가 그것이다. 부모의 도움도 받지 못한 채 홀로 세상을 개척한 이의 성공 스토리에 위로를 받는 것도 그 때문이다. 공무원 시험에 삼수를 하고 사수 째 합격한 청년이 "기도해줘서 고마워요" 하고 말할 때, 괜히 내 눈에 눈물이 나는 것도 그런 까닭이다.

풀꽃 시인으로 전 국민에게 널리 알려진 나태주 시인도 마찬가지다. 교사가 꿈이었던 그의 아버지는 너무 가난해서 외가에 데릴사위로 호적까지 파갔다고 한다. 그 속에서 죽을 고생을 하며 논밭을 일구어 분가했고, 줄줄이 딸린 자식들을 굶기지 않으려 이른 새벽부터 이슬을 맞으며 논밭을 뒹굴며 살았단다.

그런 아버지를 바라보는 나태주는 보란듯이 성공하고 싶었단다. 하지만 아버지의 뜻을 저버리지 못한 채 교사의 길로 들어섰다. 다만 그 시절의 교사 월급이 박하여  아내와 딸린 자식들을 돌보는 게 너무나도 힘들었다. 그림을 잘 그린 동료 교사는 가족의 배고픔을 해결코자 서울로 학원 강사를 찾아 떠나기도 했단다.

그런 갈등과 아픔 속에서 그가 자위하며 이겨낼 수 있었던 게 시 쓰기였다. 그때부터 그는 삶의 현장 곳곳에서 시를 쓰고 모았다. 그리고는 어느 날 그 시들을 엮어 세상에 내놓았는데 〈풀꽃〉도 그런 과정에서 세상에 뜬 시였다. 그만큼 그의 시는  군더더기 없이 간결하지만 모든 이들의 아픔을 공감하는 능력이 있다.
 
시인에게는 백 편의 시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백 사람에게 읽히는 한 편의 시가 중요하다.(105쪽)
 
올해로 문학인생 반세기를 맞은 국민시인 나태주의 산문집 〈부디 아프지 마라〉에 나오는 내용이다. 그가 오래전부터 입버릇처럼 해 온 말 중 하나다. 백 편의 시 가운데 독자들에게 기억되는 것은 한 편의 시일 수 있다고. 그런 시는 시인의 노력이나 의도로 가능한 게 아니라고. 그것은 오직 독자들의 선택에 달려있다고 한다. 그만큼 시인은 대중이 지닌 현재의 아픔과 함께 호흡하며 사는 게 중요하다는 뜻이다.

이 책은 시인이자 교육자요 가장이자 남편인 그가 지난날 소중했던 삶을 떠올리며 쓴 글이다. 죽음의 터널을 건너와서 그런지, 앞으로 죽음의 부름을 받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아서 그런지, 인생의 소중함을 일깨워준다. 꾸밈이나 가식이 없다. 누구보다 아프게 살아온 지난날의 삶을 통해 이 시대에 아픈 이들을 위로한다. 치유와 다시 일어설 용기를 북돋는다. 그의 삶 자체가 유언과 같다. 곳곳에 묵직한 삶의 울림이 베어 있는 이유가 그것이다.
 
내 이름이 나태주니까 '나 좀 태워주세요'로구나. 그래서 나는 강연장에 나가면 그 말을 빼놓지 놓지 않고 한다. 나는 차가 없는 사람이다. 그러나 아버지가 지어준 이름이 '나 좀 태워주세요.'라서 자동차 없이도 이렇게 잘 살고 있다. 그러면 사람들은 즐겨 웃는다.(154쪽)
 
예전에 자신의 이름을 아이들이 놀려대며 말한 적이 있는데, 나중에는 그 의미마저 자기 삶에 깊이 와 닿았단다. 지금은 그래서 어딘가에 강연을 가도 그 이야기를 웃으면서 곧잘 하게 된단다. 그렇게 누군가를 태워주고, 누군가를 받아주고 싶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뜻이다. 산이 등산가를 받아줘야 산에 오를 수 있고 바다가 어부를 받아줘야 고기를 잡을 수 있는 것처럼. 자동차가 없어도 자신의 자전거 뒤에 누군가를 태워주는 그런 사람으로 남고 싶다는 거다.

그것은 문학회 후배들과 밥을 먹을 때나 사람들에게 사인할 때도 마찬가지다. 문학회 회원 중에는 세상에 한 번 뜨기 시작하면 후배들에게 대접받기를 좋아하는 이들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후배들을 먼저 섬기고 베푼단다. 강연회 이후 사인할 때도 그만 앉아서 사인하는 게 아니라 서 있는 독자도 앉을 수 있는 의자를 마련해 독자와 함께 마음을 나누고 헤아려서 정성스레 사인을 해 준단다. 사람을 대하는 마음과 태도가 어떠해야 하는지 깊이 성찰케 한다.

이 책 말미에 '미리 쓰는 편지'가 있다. 그의 아들과 딸에게 쓰는 유언이다. 어려운 시절에 빈농의 장남으로 태어나 외갓집 외할머니 슬하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조금은 비뚤어진 성격으로 자랐지만 운 좋게 교사가 되었고 시인이 돼서 행복하게 살았노라고. 더욱이 공주를 제2의 고향으로 삼아왔고, 13년 전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사람으로서 더 바랄 게 없는 인생이라고. 남은 세월 소풍처럼 살다가 죽음 저편으로 건너가겠노라고 말이다.

다만 그 자식들에게 바라는 게 있다. 아니 이 땅의 모든 독자들에게 바라는 바일 것이다. 자기 삶이 고달프거나 아파도 누군가를 원망하거나 아쉬움 같은 건 남기지 말라고 권한다. 오직 고마운 마음, 미안한 마음을 갖도록 살라고 당부한다. 나무와 공기와 물과 햇빛과 바람에게도 감사한 마음을 품고 살라고. 상가에 찾아오는 손님들이 있거든 조의금은 받지 말라고. 저마다 자기 몫을 진솔하게 살다가 저 세상으로 건너오도록 당부한다. 

부디 아프지 마라 - 가장 소중하고 아름다웠던 삶의 순간들에게

나태주 (지은이), 시공사(2020)


태그:#풀꽃 시인 나태주, #부디 아프지 마라, #미리 쓰는 편지 , #13년 전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사람, #자기 삶이 아파도 누군가를 원망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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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확한 기억력보다 흐릿한 잉크가 오래 남는 법이죠. 일상에 살아가는 이야기를 남기려고 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에요.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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