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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평역사한옥박물관의 야외에는 눈에 띄는 표석이 있는데, 바로 은언군의 묘와 관련이 있는 금표석이다. 해당 금표석의 전면에는 '은언군묘소자내사패금표(恩彦君墓所字內賜牌禁標)'가 새겨져 있는데, 풀이해보면 이곳은 은언군의 묘소로 자내(字內)에 포함되는 곳이자 사패지(賜牌地)이기에 어떠한 행위를 금지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여기서 자내(字內)는 한양도성의 안과 밖을 감시하고 경계했던 구역으로, 사패지(賜牌地)는 왕이 하사한 토지다. 해당 금표석은 은언군 묘역의 경계에 세워졌는데, 위의 이유로 출입을 금지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은언군 묘소 사패 금표석 은평역사한옥박물과의 야외에 세워져 있다.
▲ 은언군 묘소 사패 금표석 은평역사한옥박물과의 야외에 세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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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표석 은언군묘소자내사패금표(恩彦君字內賜牌)가 새겨져 있다.
▲ 금표석 은언군묘소자내사패금표(恩彦君字內賜牌)가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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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해당 표석에서 언급한 은언군은 누구일까? 은언군(恩彦君, 1754~1801)은 사도세자(추존 장조)와 숙빈 임씨의 소생으로, 정조에게는 이복형제가 된다. 은언군은 서자이지만 왕권의 위협이 되는 인물로 인식되었기에 끊임없는 감시와 견제를 받았다.

특히 자신의 아들인 상계군(常溪君, ?~1786)이 홍국영에 의해 원빈 홍씨의 양자로 입적되면서, 훗날 역모로 몰리는 빌미가 되었다. 이 일로 은언군은 탄핵을 받아 강화도로 유배를 가게 된다.

이후 아내인 상산군부인 송씨와 며느리가 천주교 신자라는 이유로 사약을 받고 죽음을 맞았다. 은언군 역시 강화도를 탈출하려다 붙잡히게 되고, 결국 1801년(순조 1)에 파란만장한 삶을 마쳤다.   
 
이말산 은언군의 묘가 있던 곳으로, 지금은 그 흔적을 찾을 수가 없다.
▲ 이말산 은언군의 묘가 있던 곳으로, 지금은 그 흔적을 찾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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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천 전계대원군 묘 철종의 즉위와 함께 추숭이 이루어졌다.
▲ 포천 전계대원군 묘 철종의 즉위와 함께 추숭이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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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은언군의 묘는 서울특별시 은평구 진관동에 있는 이말산에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도 이곳에는 '제각말'이라는 지명이 남아 있다. 제각(祭閣)은 묘제를 지내기 위해 능묘 주위에 짓는 건물로, 은언군의 묘는 철종의 즉위와 함께 그 위상이 180도 달라졌다.

은언군의 가계를 보면 '은언군-전계대원군-철종'으로 이어졌는데, 자연스럽게 철종(哲宗, 재위 1849~1863)이 즉위하면서 정당성을 위해 은언군과 전계대원군(全溪大院君, 1785~1841)의 추숭이 이루어졌다.

이 과정에서 은언군의 집안과 관련이 있는 기록의 세초(洗草)가 이루어졌다. 또한 은언군의 묘에 제각이 만들어지고, 석물이 세워질 수 있었다. 이와 함께 1851년(철종 2)에는 철종이 직접 은언군 묘소를 전배하기도 했다.
 
흥창사 경내로 옮겨진 은언군의 신도비 장명등과 무인석 등의 석물은 창건주의 묘로 옮겨져 있다.
▲ 흥창사 경내로 옮겨진 은언군의 신도비 장명등과 무인석 등의 석물은 창건주의 묘로 옮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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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은언군의 묘는 현재 남아 있지 않다. 이말산에 있었다는 은언군의 묘는 1950년대 혹은 그 이전에 훼손된 것으로 보이는데, 이 과정에서 은언군 묘의 석물은 뿔뿔이 흩어졌다.

석물 가운데 은언군의 묘표는 현재 절두산 성지로 옮겨졌다. 또한 신도비와 무석인, 장명등을 비롯한 대부분의 석물은 흥창사와 창건주의 묘로 옮겨져 있다. 마지막으로 오늘의 출발점인 은언군 묘의 금표석 역시 한때 삼천동의 사슴목장에 있었다고 하며, 지금은 은평역사한옥박물관으로 옮겨진 상태다. 이러한 석물과 함께 지명으로 남은 '제각말'은 이말산에 은언군의 묘가 있었음을 보여주는 흔적이다.

다만 안타까운 점이라면 박물관의 야외에 세워진 금표석의 경우 별도의 안내문이 없다는 점이다. 처음 방문해보면 야외에 세워진 수많은 석물 가운데 하나일 뿐, 금표석의 존재를 알고 찾지 않는 이상 안내문이 없을 경우 그 의미를 알기란 쉽지 않다. 때문에 안내문을 설치하고, 그 안에 '제각말'과 은언군 묘의 석물 관련 내용도 함께 담아준다면 해당 금표석의 의미를 더욱 살릴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대한 관심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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