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부산시장 후보 현수막에 쓰인 문구를 보며 유권자들이 가장 원하는 공약과 후보들이 가장 부각시키는 공약이 일치할지 궁금해졌다.
 부산시장 후보 현수막에 쓰인 문구를 보며 유권자들이 가장 원하는 공약과 후보들이 가장 부각시키는 공약이 일치할지 궁금해졌다.
ⓒ 김나라

관련사진보기

 
부산시장 보궐선거 투표일. 투표소 안에서 나는 한동안 정지 상태였다. 몇 초간, 투표용지와 눈싸움. 피하고 싶은 후보들은 뚜렷했고 마음으로 정한 후보도 있었다. 그런데 손이 선뜻 움직이지 않았다. 정책 면에서 지지하는 후보는 당선 가능성이 희박했다. 투표권을 행사하고 나오긴 했지만, 마음이 영 개운치 않았다.

작년에 큰 손님을 여러 번 맞았다. 2월에 코로나의 세계적 대유행이 찾아왔고, 여름에는 참사 수준의 폭우와 물난리를 겪었다. 그때 우리는 동시적으로 일어나는 세계적인 재앙과 기상이변에 전에 없던 위기감을 느꼈고, 사회 전반에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함을 절실히 깨달았다.

이런 와중에 작년 7월 정부가 '한국판 그린뉴딜' 계획을 발표했다. 와, 드디어 우리나라도! 반가웠다. 2030년까지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지금의 절반 수준으로 줄이고, 2050년까지는 탄소중립 상태로 만들겠다는 목표. 주어진 시간이 매우 촉박하고 여전히 기업과 관료 중심의 접근이기에 우려되는 점도 있었다. 하지만 어쨌거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이산화탄소 배출증가율 1위 등 '기후악당국가'로 머무는 한국이 늦게라도 변화에 적극 동참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대한민국 두 중심 도시의 새로운 시장을 뽑는 선거에 더욱 기대를 걸었다. 선거 공보로는 정책 정보가 부족해 홈페이지도 찾아보고 후보 토론회도 여러 번 챙겨 보았다. 그런데 토론회를 보는 내내 나도 모르게, 줄기차게 인상을 쓰고 있었다.

나는 정책에 대해 듣고 싶었다. 각 후보가 환경 분야에 어떤 철학을 가지고 있는지 특히 궁금했다. 꼭 환경 정책이 아니라도 다방면의 정책에 대해 자세한 정보를 얻고 후보 간 정책을 비교하는 기회가 되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이럴 수가. 1시간 20분여 되는 토론의 절반은 무의미하게 흘러갔다. 선거 패배가 예상되는 쪽은 각종 의혹 제기에 골몰해 후보로서 매력을 보여줄 기회를 흘려보냈고, 상대 후보는 마타도어라 비판하면서도 그럴듯한 답변을 내놓지 못한 채 시간만 보냈다.

정책 대결을 유도한 코너도 있었으나 시간이 턱없이 부족해 수박 겉핥기와 같았다. 게다가 정확한 자료에 바탕을 둔 논박이 아닌, 상황 모면을 위한 추측과 억지가 더 돋보였다. 서울시장 후보 토론회마저 같은 양상으로 진행되어, 우리나라 제1·제2 도시의 책임자를 뽑기 위한 토론이라는 점에 회의감이 들었다. 공무원의 도덕성은 매우 중요한 자질이고 비리 의혹이 있다면 철저히 검증해야 하지만, 허무한 청문회를 보고 싶지는 않다. 

건설토목공사가 만병통치약?
 
 5일 오후 부산 KNN에서 열린 부산시장 보궐선거 후보자 토론회에서 더불어민주당 김영춘 후보와 국민의힘 박형준 후보가 나란히 서 있다.
 5일 오후 부산 KNN에서 열린 부산시장 보궐선거 후보자 토론회에서 더불어민주당 김영춘 후보와 국민의힘 박형준 후보가 나란히 서 있다.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만일 그것이 토론의 문제라면, 공약은 어땠을까? 후보들의 공약을 훑다 보면 친환경 위장술 '그린워싱(Green-washing)'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을 맴돌았다. 당장 눈에 잘 보이는 성과와 치적을 위한 공약들이 아닌지, 일관된 환경 인식 위에 다방면의 정책을 수립한 것이 맞는지 의심이 갔다.

공약 대부분은 건설토목공사였다. 자재와 방식에서 탄소중립적인 방법을 실현하겠다는 것으로 구체적인 계획은 매우 부족했다. 환경 정책은 슬쩍 끼워 넣은 수준이었다. 기존과 다른 방식으로 일자리를 늘리고 경제를 활성화할 선순환 모델을 제시하자는 것이 그린뉴딜 정책이었기에, 이번에는 뭔가 다를 것이라 생각했던 만큼 더 씁쓸했다. 결국, 여전히 거대 규모의 건설토목공사가 진리이고 만병통치약이라는 태도 아니었을까.

국민의힘 박형준 후보는 심지어 완공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부산역을 부산진역으로 옮겨 짓겠다는 발언으로 토론회를 시청하는 부산시민들을 당황케 했다. "도대체 왜?" 부산 토박이인 지인들은 기함했다. 구조적 문제로 터널을 처음부터 다시 만들지 않는 한 이러한 이전은 불가능하다.

또한 대한민국 간선철도의 종점인 부산역은 조차장 시설이 필요하기에 거대한 부지를 차지하는 조차장을 겨우 300m 정도의 거리를 이전하기 위해 수조 원의 혈세를 들여 다시 지어야 한다. 끔찍한 일이다. 기술적으로 가능하다 해도 타당성 없는 사업이라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오히려 불가능해서 공약을 이행하지 못한다면 천만다행이다.
  
박 후보는 파리의 '15분 도시' 모델을 본뜬 15분 도시 조성 공약을 환경 공약이라 칭했지만, '15분 내 생활권'이라는 형식을 가져왔을 뿐 '혁신적 교통수단'인 '어반루프'와 '대심도·터널 건설로 사통팔달의 교통망'을 만들어 신공항과 도심 간의 거리 문제(신공항-동부산 간 55km)를 해결하는 것이 주된 내용으로 보였다.

생태를 중심으로 평등·연대성·근거리성에 기반하여 자전거와 도보만으로 생활이 가능하고 누구나 200m 안에서 자연을 접할 수 있는 도시 모델을 세운 파리와 달리, 자연환경과 지속가능한 지역공동체에 관한 철학이 잘 반영되지 않은 모델이었다.

더불어민주당 김영춘 후보는 40리 경부선 철길을 숲길로 전환하는 계획, 빈틈없는 감염병 대응체계와 공공의료벨트를 구축하는 계획, 사람과 환경이 공존하는 자족도시를 조성하는 계획 등을 세웠다. 그러나 가덕도 신공항 추진을 대표 공약으로 내걸며, 생태자연 1등급 지역을 지닌 가덕도가 신공항 건설로 인해 필연적인 환경훼손을 겪는 데에 대해서 수치상으로 납득할 만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했다.

의지가 중요하다
 
 중국발 황사가 덮친 지난 3월 29일 부산 부산진구 동천 주변에 벚꽃이 만개했지만 미세먼지 영향으로 거리는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중국발 황사가 덮친 지난 3월 29일 부산 부산진구 동천 주변에 벚꽃이 만개했지만 미세먼지 영향으로 거리는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최동진 기후변화행동연구소 소장은 '서울과 부산 같은 대도시에서 온실가스 배출의 증감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개발 사업'이라고 말했다. 시멘트 1t 생산에 0.913t의 온실가스가, 철 1t 생산에 2.89t의 이산화탄소가 배출된다. 아무리 태양광 발전을 확대하고, 전기차를 많이 보급하더라도 개발 사업으로 인한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지 않으면 탄소중립 사회는 멀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있는 것을 갈아엎고, 새로 만드는 것. 우리는 그것이 일자리를 창출하고 경제를 활성화시키는 길이라는 굳건한 믿음으로 지금 상황에 이르렀다. 이제는 그 방법이 낳은 부작용들을 너무 잘 아는 우리가 아닌가? 무턱대고 갈아엎을 것이 아니라 그로 인한 생태적 영향을 상쇄할 만큼의 실질적 대안이 절실하다.

대안이 없다면 과감히 포기할 수 있어야 한다. 기업의 생존 논리에 따라 눈앞에 돈이 흐르면 모든 것이 좋아질 것이라는 전제에서 벗어난 선례를 한 번쯤 만들어야 한다. 이로 인해 결국은 더 큰 돈이 낭비된다는 것을 4대강 사업을 통해 배우지 않았나. 대안이 충분하고 타당한 개발이라면, 친환경 자재의 비율을 높이는 등 모든 선택을 탄소중립이라는 잣대에 대어보는 일이 필수적이다.

일주일 전, 집 둘레 산들이 시야에서 한 번에 사라졌다. 부산은 전국이 미세먼지 나쁨 상태일 때에도 대체로 하늘이 맑았는데, 이날은 미세먼지, 초미세먼지, 황사가 손에 손을 잡고 왔다. 재채기와 눈 시림으로 종일 괴로웠다. 문을 닫고 있어봤자, 이건 공기라 어디든 흘러들어온다. 이럴 때면 새삼스레 실감한다. 이 지구 안에서 기후재난으로부터 달아날 곳은 없다는 것. 공기로 답답한 가슴이 두 배로 갑갑해진다.

후보들이 주요 공약으로 내건 주거와 일자리 문제는 나에게도 중요한 현안이다. 전세대란 속에 전세를 구하느라 애를 먹고, 이후에는 어디에서 살아야 할지 몰라 늘 불안정하고, 유지 가능한 일자리를 얻는 것도 쉽지 않다. 그런데 살기 위해 그보다 더 기본적인 조건이 있다. 병들지 않고 호흡할 권리, 암담함보다 체계적 재난 대비 속에서 생활할 권리.

한국의 중심도시를 이끌어가겠다는 후보라면 면밀하게 계획하고 많은 사람에게 전달했어야 한다. 상상력 부족 문제가 아니다. 삶에서 진정한 가치가 무엇인지 근본적으로 탐색하고 사회가 욕망을 충족하는 방식을 바꿔나가려는 의지가 중요하다.

새로 선출된 시장님께 간곡한 바람을 전하고 싶다. 더 큰 환경 재난을 막을 수 있는 시간은 토론회의 카운트다운보다 더 촉박하고, '탈탄소사회'라는 제목은 충분히 많이 읽었다. 이제 제목에 걸맞은 내용이 충실히 채워진 책을 한 장 한 장 같이 넘겨가는 기분으로 살아갈 수 있었으면 한다. 우리는 정말 한 사람도 빠짐없이 같은 하늘 아래, 같은 공기를 마시며, 같은 위험성을 감당하며 살고 있다.

댓글8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꼭 단단해지지 않아도 좋다는 단단함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