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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미국 도널드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 영국의 브렉시트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세계화, 자유무역을 선도하던 미국과 영국은 왜 갑자기 세계를 향했던 문을 걸어 잠그고 보수화했을까? 마이클 샌델의 문제의식은 이 지점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내놓은 대답이 바로 능력주의다. 시장 주도적 세계화 체제에서 성공한 엘리트 계층의 거들먹거림과 오만이 세계화로 일자리를 위협받고 자신의 일에 대한 명예가 실추한 노동자 계층의 포퓰리즘적 분노와 집단적 저항을 불러왔다는 것이다. 능력주의가 폭발적 불평등 증대, 사회적 연대 약화, 공동체 붕괴의 주범이라는 것이다.

능력주의는 공정한 경쟁이 보장된 상태에서 자신의 재능과 노력으로 정당한 대가를 받는 것을 말한다. 능력주의는 신분제의 대안으로 오랫동안 사람들에게 공정한 게임의 규칙으로 여겨져 왔다. 능력주의를 신봉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능력이 이룬 성취는 공정하고 정당하며 그에 대한 합당한 대가를 누리는 것을 너무도 당연하게 여긴다.
 
"자신의 곤경은 자신의 탓이라는 말, '하면 된다'라는 말은 양날의 검이다. 한편으로는 자신감을 불어놓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모욕감을 준다. 승자에게 갈채하며 동시에 패자에게 조롱한다." -53쪽
 
능력주의의 부작용에 대한 사회적 검토와 성찰에 <공정하다는 착각>은 좋은 불쏘시개라 할 만하다.
▲ 마이클 샌델 <공정하다는 착각> 능력주의의 부작용에 대한 사회적 검토와 성찰에 <공정하다는 착각>은 좋은 불쏘시개라 할 만하다.
ⓒ 와이즈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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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주의는 불평등을 정당화한다?

샌델 교수는 능력주의를 '공정하다는 착각'으로 치부한다. 우리의 재능은 일종의 'DNA 복권'일 수 있다. 능력이라기보다 저마다 타고난 유전 정보의 우수함이라는 행운, 좋은 국가, 좋은 사회, 좋은 시대적 환경이라는 행운에 힘입은 바일 수 있다는 것이다.

행운에 힘입은 성취에 대해 과도한 경제적 보상과 사회적 명예의 왕관을 씌워준다. 그 결과는 엘리트의 부익부를, 그 반대급부로 능력이 없음을 선고 받은 이들의 빈익빈을 가져왔다. 이는 사회적 빈부와 명예의 등고선을 깊고 선명하게 그려 넣었다. 양극화와 사회적 불평등의 심화가 그것이다.

능력주의가 경쟁에서 성공한 사람들에게 자신의 노력으로 이룬 성공에 도취하게 하고 경쟁에서 실패한 사람들을 무시하는 결과를 불러와 사회의 양극화를 심화시켰다는 것이다. 

또한 능력주의 경쟁에서 밀려난 사람들에게 그 실패의 책임을 물어 국가가 수행해야 할 책임과 의무를 회피하는 수단으로, 불평등을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능력주의를 악용한다는 점이다.

능력주의의 대안은 무엇인가?

트럼프 당선은 능력주의 엘리트와 신자유주의, 기술관료적 정치 관행에 경종을 울린 것이라고 해도 트럼프식 미국 우선주의나 자국 이기주의가 대안은 아닐 것이다. 이런 민족주의적 편향은 나치즘이나 파시즘의 우려마저 들게 한다.

그럼 샌델 교수가 말하는 대안은 무엇일까. 대체로 그의 주장은 소통과 공동체를 회복하는 중요한 맥락을 짚고 있지만, 실현 가능성은 그리 높아 보이지는 않는다.

우선 샌델은 능력주의적 오만의 가장 고약한 측면을 학력주의에서 찾는다. 능력주의 질서의 방벽, 인제 선별기로 전락한 대학을 주목한다. 성공한 사람들이 자신의 재능과 노력으로 성공한 것이 아니라 우연한 행운에 힘입은 바가 크다는 것을 더욱 가시적으로 깨닫게 해 줘야 한다는 측면에서 대학 추첨제를 거론한다.

하버드대의 지원자 4만 명 중에서 자격 조건을 갖춘 2만 명 정도를 선정하고 그 중에서 추첨을 통해 2000명 정원을 선발하자는 것이다. 가능성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겠지만 우수 대학들의 거센 반발을 해결하는 데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두 번째 일의 존엄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전환을 말한다. 소비자 복지 우선주의에서 벗어나 생산자의 노동의 가치를 중시하자는 것이다. 마틴 루터 킹 목사의 말을 인용하며 질병의 창궐을 막는다는 의미에서 쓰레기를 줍는 환경미화원이 의사만큼 소중한 존재라고 주장한다. 일을 통해 사람은 '더 인간다운 인간'이 되기에 국가는 노동자가 일을 통해 사회적 기여의 보람과 가치를 느낄 수 있도록 세심하게 배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세 번째는 사회복지 확대를 위해 금융재산에 대한 죄악세 수준의 높은 세율을 부과하고 근로소득세에 대한 인하를 통해 양극화를 줄이자는 것이다. 능력주의에서 밀려난 사람들에게 실패를 자업자득으로 받아들이며 '깨져버리기 쉬운 인간'이 되도록 방치하지 말고 노동의 존엄을 인정받을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유전자 복권'에 당첨된 재능보유자들에게 세금을 부과해 천부적으로 재능 없이 태어난 사람들을 원조하는 방식으로 행운 평등주의를 실현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이작 뉴턴의 위대함과 겸손함의 표현으로 인용되는 "내가 더 멀리 볼 수 있었던 건 거인들의 어깨 위에 올라섰기 때문이다"는 말처럼 능력을 지닌 엘리트층의 겸손이 필요하다고 샌델 교수는 말한다. 그러나 제도적 뒷받침 없이 엘리트의 자발적인 양보와 배려만을 기대하는 것은 백년하청, 황하의 물이 맑아지길 기다리는 것과 같을 것이다.

우리가 지금까지 공정하다고 믿었던 능력주의가 많은 폐해와 부작용을 양산하고 있다면 그 원인과 해법에 대한 사회적 검토와 성찰이 필요할 때이다. 그런 의미에서 마이클 샌델의 <공정하다는 착각>은 좋은 불쏘시개라 할 만하다.
 
"민주정치가 다시 힘을 내도록 하려면, 우리는 도덕적으로 보다 건실한 정치 담론을 찾아내야 한다. 그것은 우리 공통의 일상을 구성하는 사회적 연대에 심각한 피해를 입히는 능력주의를 진지하게 재검토함으로써 가능하다." - 61쪽

공정하다는 착각

마이클 샌델 (지은이), 함규진 (옮긴이), 와이즈베리(2020)


태그:#마이클 샌델, #공정하다는 착각, #능력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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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베이징에서 3년, 산둥성 린이(臨沂)에서 1년 살면서 보고 들은 것들을 학생들에게 들려줍니다. 거대한 중국바닷가를 향해 끊임없이 낚시대를 드리우며 심연의 중국어와 중국문화를 건져올리려 노력합니다. 저서로 <중국에는 왜 갔어>, <무늬가 있는 중국어>가 있고, 최근에는 책을 읽고 밑줄 긋는 일에 빠져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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