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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과 독선에 대한 경계는 여러 문헌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중에서 가장 오래됐으며 여전히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인 책이 있습니다. 바로 성경입니다. 기독교에 대한 믿음 유무를 떠나 성경은 서양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는 데 원전이 되는 책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중 시편 1장 1편에,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라는 문장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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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성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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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시간에는 바로 '오만한 자들의 자리'라는 주제로 글쓰기에 관한 이야기를 이끌어 갈까 합니다. 

오만이라는 주제로 만들어진 작품은 정말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습니다. 그중 <어퓨굿맨>이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1990년대 초반에 극장에 개봉한 영화입니다. 꽤 많은 시간이 흘렀음에도 주인공과 대립한 네이선 제섭 대령(잭 니콜슨 분)의 '예의를 갖춰라'는 대사는 정말 오만한 권위의 정형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영화의 줄거리는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신참 군법무관인 대니얼 캐피 중위(톰 크루즈 분)는 여느 날처럼 대충 일을 끝내고 소프트볼 치는 것에 시간을 보냅니다. 몇 달 만에 사건 40개를 법정까지 가지 않고 밖에서 합의로 때운 것은 그의 능력을 보여주기에 충분합니다.

그런 그에게 인생을 걸 만한 사건이 생겼습니다. 바로 미 관타나모 기지에 위치한 해병 부대에서 산티아고 일병이 동료 부대원에 의해 살해 당한 사건의 변론을 맡은 일이었습니다. 코드레드라 불리는 군대 내 불합리한 훈육 방식에 의해 일병이 사망한 이 사건의 배후에는 제섭 대령이 있었습니다. 그는 무공훈장을 받은 해병장교로서 타인에게 경멸쯤은 해도 될 권리가 있다고 믿는 인물입니다.

해병대는 육군이나 다른 군대보다 우월하며, 적국 쿠바와 대립하고 있는 자신은 당연히 존중과 존경을 받아야 한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제섭 대령과 대니얼 캐피 중위와의 대립은 영화를 보는 내내 관객으로 하여금 긴장감을 유지하게 만듭니다.

제섭 대령을 보건대, 그와 연관된 행동이나 태도는 바로 '오만한 자들의 자리'의 정형을 보여줍니다. 지위를 과시하는 것, 지위를 이용해 남에게 위협을 가하는 것, 자신이 속한 계층이 아닌 사람들의 결함에 대해 멸시하는 말을 하거나 행동을 보여주는 것, 자신의 명성을 지키기 위해 스캔들을 숨기는 것, 남들보다 우수하다고 여기는 것, 폐쇄적인 성격이라는 점 등이 그렇습니다.

오만이라는 상위 개념 속에 포함된 이렇게 많은 성격과 행동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남을 깔보고 거만하고 잘난 체하는 것이 오만의 정의라면 그와 관련된 행동이나 말을 비롯한 태도는 정말 셀 수 없을 정도로 가지를 뻗어 나갑니다. 막연하게 생각한 오만의 개념을 돌이켜 보게 합니다. 내가 안다고 믿었던 개념을 다시 들춰보는 행위가 바로 글쓰기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글쓰기는 오만한 자리에 앉지 않으려는 삶의 태도이기도 합니다. 당연하다고 여겼던 것, 안다고 믿었던 것들에 대해 회의하는 것이 바로 글쓰기입니다. 남을 경멸하지 않고, 사회적 약자에 대해 따뜻한 시선을 보내려고 하는 것이 바로 글쓰기입니다. 그런 마음의 자세를 갖기 위해 해야 할 것이 바로 공부입니다.

도마 안중근 선생이 말한,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다는 말이 떠오릅니다. 실제 책이라는 것이 문서화 된 텍스트만을 의미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여기에서 가시란, 바로 남에게 뱉는 험한 말, 편견에 사로 잡인 고집불통의 말을 일컫습니다. 바로 무지에서 비롯된 말입니다. 검증 없이 바로 내뱉는 말이 그것입니다.

글쓰기는 검증없이 내뱉는 무뢰배 같은 태도를 보여서는 안 됩니다. 끊임없이 관찰하고, 세세 하게 그 말에 대해 나누어보고 실제 사례를 적용해보는 과학자의 검증 태도를 닮아야 합니다. 그렇기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인내입니다. 

문학작품 속에 좋은 문장의 탄생은 바로 작가의 끊임없는 고민의 결과가 있었기에 가능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예를 들어,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의 불후의 첫 문장은 이렇습니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고만고만하지만 무릇 불행한 가정은 나름나름으로 불행하다'가 그것입니다.

사랑, 신앙, 공동체라는 키워드는 톨스토이가 평생을 고민한 단어입니다. 톨스토이 평전을 쓴 로맹 롤랑은 톨스토이가 안나 카레니나를 집필하기 시작한 1873년 3월, 그는 전에 쓴 전쟁과 평화 이후 아주 오랫동안 환각과 죽음에 대한 공포에 사로잡혔다고 말합니다.

작품 속 인물인 레빈의 형이 죽는 과정을 꽤 많은 비중을 두고 작품 속에 할애합니다. 작가의 친형인 드미트리의 죽음에서 온 괴로움, 그리고 그것이 곧 닥칠 자신의 죽음으로 예견했기 때문이지 않을까 추측합니다. 따라서, 행복과 불행의 접점 사이에 펼쳐지는 사랑, 충동, 불륜, 증오 등의 인간의 감정을 윤리적인 잣대의 옳고 그름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인생이라는 긴축의 시간 텀에서 작가는 서술하는 자와 작가 본연인 자신과의 투쟁 속에서 문장을 가다듬었습니다.

흔히들 오만의 반의어로 겸손을 떠올립니다. 오만하지 않는 것은 겸손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정확히 말한다면 오만의 반의어는 겸손이 아닙니다. 글쓰기 코치이자 국제 연설가인 앤젤라 애커먼이 역사소설 작가 베카 퍼글리시와 공동집필한 <캐릭터 만들기의 모든 것 1>에서는 겸손한 성격을 건방지거나 자만하거나 뽐내지 않음으로 정의했고 후속편에서 오만한 성격은 남을 깔보며 거만하고 잘난 체하는 것으로 정의했습니다.

오만하지 않는자가 곧 겸손하다고 정의 내릴 수는 없습니다. 이것은 잘못된 말입니다. 오만하지 않는 것은 겸손을 일컫는 것이 아니고, 자신의 이익에 따라 상대를 깔보거나 억압하지 않으려는 자세여야 합니다. 이것은 겸손과는 다른 것입니다.

상대의 생각을 근거 없이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듣고, 자신이 한쪽 편으로 기운 편견이나 아집을 내려놓으려는 자세여야 합니다. 끊임없는 검증 과정을 거치겠다는 각오가 바로 오만의 반의어가 돼야 할 것입니다. 스스로의 낮춤만을 일컫는 겸손보다 오만의 반의어는 상대적으로 더 큰 개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쩌면 꾸준히 앉아서 작업할 수 있는 나만의 단어를 먼저 찾는 것이 필요할지 모릅니다. 글쓰기를 시작하는 사람은 마치 그 단어를 처음 보는 것처럼, 관찰하고, 읊조리고,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것이 첫 번째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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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생. 명지대 문예창작학과졸업. 목포대학교 교육대학원 국어교육학전공 석사수료. 전남지역에서 융합예술교육 강의 및 인문협업 활동가를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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