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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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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 내리는 주말 오랜만에 여주에 위치한 영릉을 다녀왔습니다.

사람들은 여주 영릉하면 대개 세종대왕의 왕릉만 떠올리지만, 그곳에는 두 개의 영릉이 붙어 있습니다. 바로 세종대왕과 소헌왕후의 합장릉인 영릉(英陵)과 효종대왕과 인선왕후의 영릉(寧陵)이 그것입니다. 이름이 같기 때문에 요즘 사람들은 두 왕릉을 헷갈리기도 하지만, 한글 대신 한문이 공식 문자였던 조선시대에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겁니다.

코로나19 때문에 휴관 중인 세종대왕역사문화관을 지나 영릉으로 들어섭니다. 꽤 내리는 봄비 때문인지 사람들은 많이 보이지 않고 왕릉까지의 길은 호젓합니다. 아직 잔디는 노란색이지만, 왕릉 주변의 나무들은 푸릇푸릇 싱그러움을 품고 있습니다. 이 봄비가 그치고 나면 산하를 연녹색으로 장식하겠죠.

얼마 지나지 않아 세종대왕의 동상과 함께 임금이 재임시절에 만든 다양한 발명품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만원짜리 지폐나 영화 <천문>을 통해서 익숙해진 것들도 많네요. 게다가 한문으로 쓰여진 훈민정음 서문까지.

문득 우스갯소리로 많이들 하는 질문이 떠올랐습니다. 세종대왕은 문과형과 이과형 중 어느 쪽에 가까웠을까요? 아마도 임금의 존재 자체가 그 기준의 구분이 틀렸음을 증명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재실을 지나니 정자각이 나옵니다. 영어명으로는 T-shaped으로 시작되었는데, 역시나 건물 모양이 '丁'자와 같아 '정자각(丁字閣)'이라 불린다고 합니다. 정자각 안에는 위패 대신 창밖으로 왕릉이 보였는데요, 불상대신 진신사리를 모시는 사찰의 가람들과 같은 의미입니다.

이윽고 마주한 왕릉은 생각보다 크지 않았습니다. 대신 그 정갈함과 단아함으로 보는 사람을 경건하게 만듭니다. 아마도 그것이 성리학의 나라 조선이 추구하는 바겠죠.

세종대왕릉에서 내려와 얕은 구릉을 넘어 효종의 릉으로 향합니다. 과거 조선의 왕들도 넘었다는 그 길 옆으로는 가꿔지지 않은 오래된 숲이 눈에 띕니다. 아마도 저것이 한반도 숲 본연의 모양이겠지요.

효종의 릉은 세종대왕릉보다 크지 않았지만 더 아기자기하고 아늑한 느낌입니다. 어쩌면 효종이 그만큼 겸손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위인하면 세종대왕과 이순신을 떠올리는 초등학생을 둔 부모들에게 여주 영릉을 추천합니다. 직접 보는 것만큼 소중한 경험은 없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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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지금은 비록 회사에 몸이 묶여 있지만 언제가는 꼭 공부를 하고자 하는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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