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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화도에 있는 꿈틀리에 봄이 왔어요.
 강화도에 있는 꿈틀리에 봄이 왔어요.
ⓒ 꿈틀리인생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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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2005년생, 이제 막 고등학교에 들어가야 할 나이인 17살 학생이다. 나는 좋아하는 것이 참 많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설명하기 위해 일단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나열해 보겠다.

나는 예술에 관심이 많다. 그림 그리기, 춤추고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하고, 나의 마음을 확 사로잡는 사물이나 이미지를 찍어 갤러리에 저장하기를 좋아한다. 또 피아노 연주, 요리하기, 책 읽기(책 읽기는 최근에 좋아하기 시작했다), 먹기, 유튜브 보기, 운동하기, 음악 듣기, 집에 있는 물건 버리기, 집 꾸미기, 물건 사기, 다이어리 꾸미기 등을 좋아한다.

이렇게나 많은 것들을 좋아해서 어렸을 때부터 여러 가지 꿈을 가지고 있었다. 태권도 사범이 되고 싶을 때도 있었고 제빵사, 일러스트레이터, 그림 학원 원장선생님, 피아니스트를 꿈꾸기도 했다.

다양한 꿈을 꾸던 나는 부모님의 적극적인 지원 덕분에 여러 활동을 경험해보며 살아왔다. 요리사가 되고 싶어 양식 요리와 제빵 학원에 다니기도 했고, 그림 그리기를 좋아해 온라인으로 그림 수업을 받은 적도 있다. 집에서는 뭘 만들어 보고 싶다고 말하면 늘 재료를 사주셨기 때문에 나는 늘 하고 싶은 것도 많고, 할 수 있는 것도 많은 사람이었다.
 
매년 첫 학기가 시작될 때면 선생님들이 늘 나눠주시는 종이가 있다. 그 종이엔 가족관계와 함께 장래희망을 적는 칸도 있었는데 그때마다 '꿈이 없는데 어떻게 해? 이런 걸 왜 적어야 해?'라고 볼멘소리를 내는 친구들이 더러 있었다. 어릴 때의 나는 늘 무엇이 되고 싶다고 생각하며 살았기 때문에 꿈이 없어서 고민이라는 친구들의 말에 공감할 수 없었다.

그런데 내가 변했다. 꿈이 많던 나였는데, 꿈이 사라졌다. 코로나바이러스가 극성이던 작년, 나는 10개월간 여행 대안학교에 다녔다. 일정이 매우 빡빡한 학교였다. 원래는 세계로 여행을 다니는 학교였지만 코로나로 인해 한국에서 머무르게 되었는데, 그 열 달이란 시간 동안 나는 집에도 갈 수 없었고 선생님들께 허락을 받고 잠깐 사용하는 것 외에는 인터넷도 사용할 수 없었다. 해야 할 것이 너무 많았던 탓에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찾아 깊이 파고들 시간이 부족했다. 그렇게 일정에 따라가다 보니 어느새 졸업을 했고 집에 돌아온 나는 자유의 몸이 되었다.
 
 실눈이의 '보물1호'는 우리 가족이예요.
 실눈이의 "보물1호"는 우리 가족이예요.
ⓒ 이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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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낮잠도 잘 수 있었고, 책도 질릴 정도로 많이 읽을 수 있게 되었으며, 그림도 그리고 싶은 만큼 마음껏 그릴 수도 있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그토록 바라던 자유가 주어졌는데, 열 달이란 시간 동안 하고 싶어도 하지 못했던 것들을 이제야 할 수 있게 되었는데,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림을 그리는 것은 다른 사람들의 그림을 보고 열등감이 느껴져서 손을 대기도 싫었고, 책을 읽는 것도 귀찮기만 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보기도 했다. 정말 아무것도 안 하고 있으니 시간을 무의미하게 보내고 있는 내가 너무 하찮게 느껴지고 싫었다. 어떠한 선택을 하든 날 만족시킬 수는 없었다. 그러던 와중 엄마의 소개로 꿈틀리인생학교에 대해 알게 되었다. 나는 꿈틀리에 다니기로 했다. 나의 사라진 꿈을 찾기 위해서.
 
3월 1일에 입학식을 하고 꿈틀리에서 지낸 지 한 달 정도가 지났다. 한 달 동안 생활하면서 나에게 변한 점이 있다. 가만히 있어도 화가 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전에는 뭘 하든 혹은 아무것도 하지 않든, 시간을 버리고 있는 것 같고 죄책감이 느껴졌는데 이제는 그렇지 않다.

'쉬었다 가도 괜찮아. 다른 길로 가도 괜찮아, 잘하지 않아도 괜찮아'를 모토로 삼고 있는 학교라서 그런지 한 달간 생활하면서 나의 몸에 자연스럽게 그 말들이 스며든 것 같다.

이제는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 때는 한 발짝 뒤로 물러서서 '아, 지금 내 몸에 휴식이 필요한가 보다'라고 알아차리고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휴식을 취한다. 아마 꿈틀리에 오지 않고 계속 집에 있었다면 이런 변화는 없었을 것이다. 지금 나는 무척 편안한 상태이다. 나를 이런 상태로 만들어 준 꿈틀리의 모든 사람에게 고맙다. 왠지 이 멘트는 졸업할 때 해야 할 것 같은데 벌써 해버렸다. 내가 정말로 꿈틀리를 졸업할 때가 되었을 땐 과연 어떤 말을 할지 기대가 된다.
 
 꿈틀리인생학교에서는 매일 저녁모임 시간에 자신의 이야기를 나눕니다. 실눈이가 자신의 이야기를 친구들과 나누고 있습니다.
 꿈틀리인생학교에서는 매일 저녁모임 시간에 자신의 이야기를 나눕니다. 실눈이가 자신의 이야기를 친구들과 나누고 있습니다.
ⓒ 꿈틀리인생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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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틀리에서는 금요일과 토요일을 제외하고 매일 밤 7시 30분에 저녁모임을 한다. 꿈틀리 친구들이 한 사람씩 돌아가면서 자신이 이런 사람이라고 소개하는 시간이다. 학기 초에는 학생들에게 시범을 보여주기 위해 선생님들이 저녁 모임을 하셨었는데 그때 보름 선생님이 하셨던 말씀이 기억에 남는다.

보름 선생님은 26살인 지금도 아직 탐색기라고 생각한다고 말씀하셨다. 그 말을 듣고 나도 용기가 생겼던 것 같다. 사실 꿈틀리에서 생활하면서 인생을 설계하러 왔다고 말하려고 했었는데 1년이라는 기간이 인생이라는 아주아주 긴 시간을 설계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할 수야 있다면 너무 좋겠지만 말이다.) 그래서 내가 정말 뭘 좋아하는지 탐색해보고 1년간 잘 쉬었다 가고 싶다.
 
그리고 목표가 또 하나 있다. 나는 완벽주의자 성향을 가지고 있어서 뭐든 항상 최선을 다하고 잘하려고만 한다. 그런 나에게 꿈틀리는 잘 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해준다. 그동안 무슨 일이든 항상 열심히 해서 많이 지치기도 하고 열심히 했는데도 결과물이 만족스럽지 않을 땐 종종 우울해지기도 했는데, 다른 사람들이 나를 보았을 때 멋진 결과물을 만들어내고도 불행해 보이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이곳에서 잘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문장을 마음속 깊이 새겨가고 싶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꿈틀리인생학교 6기 이지우(실눈이)가 보내온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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