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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진선님은 IMF 이후 갑작스런 부서이동 이후 1999년 삼성전자(주) 기흥공장에서 퇴사하였다. 웨이퍼 가공공정의 포토공정에서 4년 7개월간 3교대 근무를 하였고, 2020년 '전신성 홍반 루푸스'로 업무상 질병 승인을 받았다. 지난 26년간 그녀의 삶을 통해 만성질환자가 겪고 있는 현실을 직시하고자, 3월 17일 요양을 목적으로 이사한 여주 시골집을 찾아 인터뷰하였다. [기자말]
구진선님이 여주 시골집에서 창밖을 바라보고 있다.
 구진선님이 여주 시골집에서 창밖을 바라보고 있다.
ⓒ 구진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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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진선님이 근무하던 라인은 정예 멤버만 남기고 인원 감축에 들어갔다. 자진 퇴사 여부를 가리는 면담 과정을 거쳐 그녀는 반자동 신규라인에 남기로 했다. 그러나 신규라인은 납기일에 맞춰 물량을 빼기도 하고 반자동이다 보니 그만큼 일도 많았다. 무엇보다 라인 멤버의 유대관계가 예전 같지 않아 퇴사를 결심했다고 한다.

"퇴사 의사를 밝힌 후부터 퇴사 당일까지 아무 일도 시키지 않고 장비만 돌아가는 곳에 혼자 있게 했어요. 그동안 열심히 일해 왔는데, 일하다 퇴사하는 것은 선택 가능한 당연한 권리 아닌가? 당시 스트레스도 많이 받고 힘들었죠. 근무할 당시 피로감이나 편두통 같은 두통이 많았어요.

눈의 피로가 심했고, 한번 라인에 들어가면 방진복을 입고, 담당설비가 있으니 화장실을 자유롭게 갈 수가 없으니 방광염 등으로 병원 다니는 친구들도 있었어요. 우리가 취급하는 물질이 무엇이고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들어본 적도 교육받은 적도 없어서 누구나 아프니까 아픈 게 당연하다 생각했던 것 같아요."


퇴사한 해 남자친구였던 현재 남편의 청혼으로 결혼을 했고, 임신 7개월쯤 다니던 산부인과에서 단백뇨가 나오니 큰 병원에 가보라는 말을 들었다. 그 순간이 지난 20년 동안 겪고 있는 고통의 시작이었다고 구진선님은 회고했다. 가정을 꾸리고 새 가족을 맞이할 중요하고도 행복한 시기에 어려움을 겪게 된 것이다.

"몸이 붓고 다리도 부었는데 정확한 진단을 못 내리는 거예요. 임신중독 증상인지, 루푸스인지 애매하게 생각만 할 뿐이었어요. 그런데 원주 기독병원 갔을 때 애기 심장소리가 안 들린다고 하는 거예요. 8개월에 1.43kg 미숙아로 태어나서 인큐베이터에 한 달 반가량 있었고 저는 먼저 퇴원했어요. 애기 낳고 나니 친정엄마가 병원에 면회 오셨어요. 몸이 붓기도 하고 얼굴에 나비모양 반점이 있어서인지 엄마가 저를 못 알아보시는 거예요.

퇴원하고 여러 병원을 전전하다 아산 병원에서 검사하고 남편이랑 결과 들으러 갔더니 '이건 완치가 없는 병이라 치료가 안 돼요'라고 했어요. 당황스러워서 남편과 서로 쳐다만 봤어요. '루푸지만 다음에는 어디로 갈지 모르고 눈에도 가고, 머리에도 가고 전신을 다 공격한다고 무서운 얘기를 들으며 '루푸스'라 는 것을 알게 되었죠.

달수를 채우고 퇴원할 때도 애기는 2.5kg밖에 되지 않았고, 한 돌쯤 됐을 때 코에 동그랗게 낭종이 생긴 거예요. 검사하니 뇌종양이라고 하더라고요. 머리를 열어서 수술할 뻔했는데 캐나다에서 소아신경외과 선생님이 오셔서 코로 수술했어요. 병원 다니면서부터는 온 집안이 난리가 났으니 남편이나 저나 결혼해서 신혼의 달콤함은 남의 말이었어요. 병원생활하기도 어렵고 힘들었죠."


루푸스 자가면역질환자로 살아가기

잠복기와 활동기를 반복하는 루푸스는 활동기에 생명을 위협하고, 잠복기에는 드러나지 않는 통증과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활성화로 늘 불안의 연속이라고 한다. 고통의 시간을 다시 떠올리시게 해서 죄송했지만, 루푸스 자가 면역질환 투병 생활에 대해 여쭤보았다.

"잠복기에는 일반사람들과 겉으로는 똑같아요. 그렇지만 저는 계속 약을 먹고 염증을 일으키지 않게 조심해야 되고, 햇볕을 보면 안 되고, 거의 외부활동도 못 하죠. 애기 낳고 퇴원했을 때 관절이 너무 아팠어요. 기어 다녀야해서 애기 케어를 못하는 거죠. 우유도 못 탈 정도로요.

2005년도쯤 심해져서 병원에 입원했을 때 염증수치가 높았던 어느 날 친정 부모 형제가 모두 병문안을 왔어요. 나중에 안 사실인데 죽는다고 마지막으로 가족들 다 모셔오라고 의사 선생님이 말씀하셨다고 하더라고요. 저로 인해 애기가 아팠고, 뇌종양 수술을 했고, 남편은 신장을 떼줬어요. 그래서 남편도 사회활동을 하는 게 힘들어요. 남편이 감기만 걸려도 제 입장에서는 엄청 미안한 거예요. 나 때문이라는 죄책감. 원래 건강한 사람인데 신장이 하나 없어서 그럴까 미안함도 크고요.

저는 신장이식수술, 자궁적출술도 했어요. 자궁에 염증이 있었는데 일반인 같으면 간단하게 치료를 받으면 되지만, 면역억제제를 먹기 때문에 모든 장기 문제가 암으로 갈 수 있는 확률이 엄청 높대요. 그래서 건강검진하고 1년 뒤에 자궁을 적출했어요. 자궁적출하고 신장이식 하고 퇴원하려는데 후유증으로 눈에 바이러스가 침투한 거예요. 퇴원은 하고 버스 타고 병원 다니면서 약을 먹었어요.

신장 이식 초기에는 감염에 취약한데 마스크 쓰고 감염내과, 안과에 같이 다녔죠. 지금도 좌안이 시력이 떨어져 있고, 비문증이 있어서 운전도 조심스럽고 컴퓨터 보는 것도 힘들어요. 지금은 신장이식센터에서 약이랑 관리하고, 거기 약이랑 루푸스에 쓰는 면역억제제가 같아서 6개월에 한 번씩 류마티스내과에 가고 있어요."


발병 후 15년이 지나서 산재 신청을 했고, 20년이 지나서야 업무상 질병 승인을 받았다. 그렇다면 기나긴 투병 기간 동안 그녀는 생활비와 의료비를 어떻게 감당할 수 있었을까?

"루푸스가 희귀질환이라 진료비는 10~20% 정도 본인부담금을 낼 수 있었는데, 약값이 비싸서 남편 월급으로는 감당이 안 되는 거예요. 의사 선생님은 매일 아침, 저녁으로 두 알씩 먹으라고 했는데, 하루는 아침에만 두 알 먹고, 다음날은 저녁에만 두 알 먹고 이렇게 빼먹은 적도 있었어요. 대출, 식구들 도움도 한계가 있었고, 약값 때문에 남편이 밤에 대리운전도 했어요. 누가 건강보험공단에서 재난지원금이 있다고 알려줘서 혜택 조금 받았고, 보건소에 본인부담금 지원해주는 제도가 있어 조금 받았고요.

병원비도 그렇고, 애기 인큐베이터값도 엄청 나왔고, 경제적으로 힘드니까 몸이 좀 더 나은 잠복기가 되면 일을 다녔어요. 애기 4살 무렵에는 집 가까이 걸어갈 수 있는 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었거든요. 힘든 일 아니고 시청에서 오래된 문서 정리하는 간단한 일이요. 집에 있으면서 우울증이 있었거든요."


아픈 사람은 제대로 치료받을 권리가 있고 사회는 이를 보장해야

황산, 염산, 불산이 있는 통에 연기가 올라오는 걸 쳐다보면서 세척하고, 먼지에 예민한 반도체와 장비를 아세톤으로 청소를 했다. 웨이퍼로 코팅할 때는 화학물질이 많이 튄 볼도 장비에 올라가 직접 교체하고, 주변에 튀면 손수 닦아주었는데 그 작업들이 자신의 몸을 망가뜨렸다는 사실을 너무 늦게 알았다는 그녀는 2020년에야 업무상질병 승인을 받았다. 그런데 아무런 느낌이 들지 않았다고 한다.

"아픈 몸으로 여기저기 20년 가까이 진료 본 수많은 자료를 냈는데 2015년 10월에 신청해서 승인받기까지 기간이 너무 길었잖아요. 발병 초기 검사하고 수술, 치료하느라 비용이 많이 들었는데 병원 진료비 세부 영수증 보관기관이 5년밖에 안 돼서 자료를 찾을 수가 없었어요. 중간에 일을 할 수 있는데 왜 안 했냐고 휴업수당도 줄 수 없다더라고요. 공단에도 자문의가 있으면 신장이식을 한 사람은 평생 다시 투석이나 신장이 망가져서 이식을 하거나 평생 면역억제제를 먹고 계속 진료를 해야 한다는 것을 더 잘 알 텐데, 계속 자료를 원하더라고요.

승인 이후라도 마음 편하게 병원 다녔으면 좋겠는데 의사 선생님 만나서 요양연기신청서도 내야 해요. 바쁜 의사 선생님께 '연장신청서 써주세요' 어떻게 말을 꺼낼지 엄청 고민되고요. 공단에서 환자 동의 받아서 의료기관에 조치를 취해주면 되는 것이지 그것을 환자가 직접 받으러 다니는 것은 아닌 것 같아요. 아픈 사람이 중심에 있지 않고 공단이나 기관이 더 중심에 있는 것 같아요."


건강함이 정상성으로 인정되는 사회에서 질병을 개인의 잘못이나 부족함으로 치부하는 시선은 또 다른 고통이다. 구진선님 역시 그런 시선 때문에 상처를 받아왔다. 그녀가 경제적 어려움과 우울증을 극복하기 위해 다녔던 일과 동료의 반응, 그녀의 기대에 대해 들었다.

"그 사람이 아프다는 걸 알면, '너 오늘은 어디가 안 좋아 보인다', '오늘은 얼굴이 왜 이래?' 등 신체적으로 콕 집어서 대놓고 하는 말들이 다 상처거든요. 그냥 저 사람이 아프니까 그런가보다 속으로만 생각하고 그런 말은 하지 않았으면 해요. 다름을 인정하고 이상하게 보지 않는 태도도 필요해요.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자기만큼 못 한다고 해서 '야 힘 좀 써라', '그것도 못 드냐', 이런 말들이 다 상처니까 저 사람이 아프다고 생각하면 그런 말들은 삼갔으면 좋겠어요."

"언제 발병할지 모르니까 업무를 하다가 갑자기 아플 수 있고 피해를 주게 되니까 정규직으로 일하지 못했어요. 관공서 같은 데서 10~11개월 일하고 조금 쉬었다가, 또 몸이 괜찮다 싶으면 다시 했지 퇴사 이후 제대로 된 직장을 가져보질 못 했어요. 잠복기에는 멀쩡해도 조금씩 아프거나 관절이 아플 수 있는데 어디가 아프다는 말을 안 했어요. 관공서에서 사무보조로 의자에 앉아서 서류 정리, 입력해주는 정도 일을 주로 했죠.

저 같은 만성질환을 가진 사람이 일하기 위해서는 휴게시설이 있어야 할 것 같아요. 계속 일을 하는 건 안 되고, 질병의 특성을 동료들이 이해하고 어느 정도 일하고 쉴 때 눈치 안 주는 분위기, 단순한 일이라도 서로 공감할 수 있게 만성질환자들끼리 모여서 일을 할 수 있는 직장이면 더 좋겠고요. 주변에서 눈치를 안 준다고 해도 우리가 눈치를 봐요. 만성질환자들은 폐, 신장 등이 안 좋기 때문에 공기나 환경적으로 깨끗하면 좋을 것 같아요.

만성질환자는 평생을 병원에 다니는데 일 하다가 아프다고 쉬면서 치료 받고, 다시 직장에 들어가려면 힘들거든요. 솔직히 건강한 사람을 쓰지 누가 아픈 사람을 쓰겠어요. 그러니까 아프다는 얘기를 안 하고 일하다 아프면 그만 두는 데, 아픈 사람도 꾸준히 일을 할 수 있게끔 했으면 좋겠어요. 솔직히 아픈 사람들은 점점 사회하고 멀어지고 우울해지거든요. 잠깐 일을 하더라도 나가게 되면 일어나서 씻고 챙기고 자기를 가꾸면서 살아갈 수 있으니까요."


건강함을 유지하기 위한 건강권 활동, 그러나 이미 사고나 질병으로 아픈 사람은 제대로 치료받을 권리가 있고 사회는 이를 보장해야 한다. 구진선님의 인터뷰를 통해 아픈 사람이 살아가기에 제도적 장치가 부족하다는 것, 서로 다른 몸들이 살아가기 위해 가져갈 삶의 태도에 대해 알 수 있었다. 기꺼이 고통의 시간을 소환해주신 구진선님께 감사드리며, 활동기로부터 불안감을 떨쳐버릴 만큼 잠복기가 지속되길 기원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선전위원인 정경희님이 작성하셨습니다.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에서 발행하는 잡지 〈일터〉 4월호에 연재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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