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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제 1-6학년까지 아이들이 먹고있는 매운급식
 실제 1-6학년까지 아이들이 먹고있는 매운급식
ⓒ 정치하는엄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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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님, 점심 맛있게 드셨습니까? 식후 커피도 한잔하셨는지요. 오후 업무 보실 때 출출하실 테니 요깃거리도 좀 하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무리 바쁘시더라도 끼니 거르지 마시고 국정 돌보시길 바랍니다.

저는 7살, 9살 두 아이의 엄마입니다. 7살 아이는 병설 유치원에 다니고 있고, 9살 아이는 지난해 코로나로 입학식도 제대로 못 하고 올해 초등학교 2학년이 되었습니다. 다행히 올해는 아이들 모두 매일 등원·등교를 하고 점심을 먹고 와서 저도 잠깐이나마 제 일도 하고 이렇게 대통령님께 편지도 쓸 수 있게 되었네요.

그런데 아이들 둘 다 점심을 먹고 오는데도 불구하고 집에 오면 배가 고프다고 난리입니다. 왜 그러냐고 물어보니 '먹을 수 있는 반찬'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병설 유치원과 초등학교의 급식이 거의 같아서 매운 반찬이나 국이 병설 유치원에도 그대로 배식 되기 때문입니다.

2학년인 큰아이의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저희 아이처럼 2학년이어도 매운 음식을 잘 먹지 못하는 학생들이 많거든요. 게다가 갈비찜 같이 뜯어 먹어야 하거나 질긴 음식은 아직 이가 약한 저학년 학생에게는 '손도 댈 수 없는 반찬'입니다. 그런 못 먹는 반찬이 가끔 식판을 점령하면 아이는 그야말로 맨밥에 물을 말아 먹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다행스럽게도 후식이 미니 핫도그 같은 거면 그나마 그걸로 허기를 가시게 하는 거지요.

'보릿고개 체험판' 같은 점심 식사를 마치고 나면 2학년 아이는 하교 후 돌봄교실로 갑니다. 돌봄교실에선 원래 오후 간식이 제공되었는데 요즘은 코로나 감염 우려로 간식까지 전면금지 되었습니다. 집에서 간식을 싸 오는 것조차 안 된답니다. 다행히 저희 아이는 돌봄교실에서 일찍 데려오는 편이지만, 양육자의 근로 사정으로 4~5시에 하교하는 아이들은 그 시간까지 하루 종일 밥 다운 밥을 못 먹고 배를 곯고 있어야 합니다.

대통령님께서 오늘 하루 배부르게 드시는 동안 전국의 수많은 병설 유치원 원생과 초등학교 저학년은 '마음껏 먹을 수 없는 반찬'을 배식받으며 한숨 짓습니다. 40~50대 교직원이 먹는 것과 같은 양의 나트륨이 들어가 있는 짜고 맵고 질긴 음식에 학생들을 억지로 적응시키라고 하는 것은 일종의 아동학대라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의 기본적인 인권인 생존권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식단을 공공교육기관이 제공하는 것이 과연 상식적인 일일까요?

기본이 전부입니다
 
 1-6학년까지 실제 먹고 있는 매운급식(꽈리고추, 가지무침, 매운오뎅탕)
 1-6학년까지 실제 먹고 있는 매운급식(꽈리고추, 가지무침, 매운오뎅탕)
ⓒ 정치하는엄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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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님, 교무실이나 행정실에 가면요, 한쪽 구석에 선생님들을 위한 커피믹스와 다양한 차들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선생님들은 입맛에 맞는 급식도 배불리 드시고 차도 드시고 개인적으로 챙겨온 간식도 요령껏 드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아이들은 어떻습니까. 필수영양소를 골고루 섭취하여 몸도 마음도 쑥쑥 자라야 할 나이에 공공 교육기관에서 제공하는 부실하기 짝이 없는 급식을 먹고 간식조차 없이 하루 종일을 버텨야 하는 이 현실이 얼마나 개탄스러운지요!

더욱 어이가 없는 사실은, 초등돌봄교실은 오후 간식이 전면 제한된 반면, 같은 초등학교 건물 안에 있는 병설 유치원 방과 후 교실에서는 오후 간식이 제공된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초등학교 옆에 있는 어린이집에서는 급식은 물론 오전, 오후 간식까지 다 나오는데 왜 유독 초등돌봄교실만 오후 간식을 전면금지하는 것인지 이해가 안 됩니다.

학교 측에서는 '감염병이 염려된다는 민원이 접수되어서 오후 간식을 없앴다'라고 합니다. 그런데 제가 만약 초등돌봄교실과 병설 유치원 방과 후 교실의 오후 간식 차이를 문제 제기하면 병설 유치원의 오후 간식까지 없애버릴까 걱정이 되어서 제대로 학교에다 말도 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전염병 감염이 염려된다면 방역이 되게끔 돌봄교실에 투명판을 설치하여 거기서만 먹게 한다든지, 아니면 빨대로 마실 수 있는 유제품이라도 제공을 한다든지, 고민하면 방법은 여러 가지 나올 텐데 무작정 오후 간식을 없애는 건 아이들에게 너무 가혹한 일입니다. 그리고 아이를 그런 돌봄교실에 맡길 수밖에 없는 양육자에게도 가슴 찢어지는 일이고요.

올해부터 군대에서 채식주의자나 무슬림 병사들을 위해 채식 위주 식단을 별도로 제공한다고 들었습니다. 일부 부대에선 알레르기가 있는 병사를 위하여 대체 식단을 마련하기도 한답니다. 좋은 소식에 기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대표적인 보수집단인 군대조차 이렇게 바뀌는데 학교는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나'라는 생각이 들어 참담했습니다. 만약 어린이들에게 투표권이 있었다면 이렇게 그야말로 '찬밥' 신세였을까 싶고요.

대통령님, 양육자로서 우리 아이가 학교와 유치원에서 배곯지 않게 해달라는 이 요구가 그렇게 들어주기 힘든 요구인가요? 공공 교육기관이 이렇게 변하지 않는데 누가 아이를 낳아 기르려 할까요. 가파르게 떨어지는 출생률을 보고서도 전혀 그에 맞는 대응책을 내놓지 못하는 정부가 저는 정말 원망스럽고 실망스럽습니다. 돈이 다가 아닙니다. 기본이 전부입니다. 아이들의 안전과 생존에 아무런 걱정이 없을 때 청년들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을 용기를 낼 수 있을 것입니다.
 
 불타는 매운 급식에 먹을 것이 없어 물에 말아 먹을 수 밖에 없는 아이의 모습을 형상화한 강미정 활동가의 작품
 불타는 매운 급식에 먹을 것이 없어 물에 말아 먹을 수 밖에 없는 아이의 모습을 형상화한 강미정 활동가의 작품
ⓒ 정치하는엄마들 강미정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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