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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를 겪으면서 살던 대로 살면 안 될 것 같다는 걸 직감 했습니다. 지구가 망하지 않도록, 건강한 지구에 살고 싶어 생활 양식을 바꾸려 노력 중입니다. 기후 위기에 대응하는 소비 패턴의 변화를 연재합니다.[기자말]
쓰레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드물다. 특히 자연을 사랑하고, 깨끗한 풍경을 즐기는 사람에게 쓰레기는 참을 수 없는 존재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나 역시 쓰레기가 달갑지 않다. 우리 가족은 산책을 즐기며, 느긋하게 걷는 것을 인생의 아주 중요한 요소로 여긴다. 그러나 요즘은 어디를 가든 쓰레기를 피할 수 없다. 쓰레기와 함께 하는 일상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도대체 누가 길에 쓰레기를 버리는 거야! 화를 내보기도 여러 번. 하지만 화는 아무 소용이 없었다. 쓰레기가 사라지지 않을 뿐더러, 내 기분만 나빠진다. 어떻게 하면 기분 좋게 산책을 할 수 있을까. 우리 가족의 쓰담 산책(쓰레기를 담아오는 산책)은 여기서 출발했다. 적어도 내 눈 앞에 띄는 것들만이라도 없애보자. 산책의 쾌적함을 위해서. 

대단하지 않은 쓰담 산책 
 
분명 금연 공원이지만 담배꽁초는 왜 이렇게 많은 걸까
 분명 금연 공원이지만 담배꽁초는 왜 이렇게 많은 걸까
ⓒ 이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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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쓰담 산책을 대단하게 바라봐 주시는 분들이 계신데, 오해다. 우리는 개인적인 만족감을 높이기 위해 시작했다. 결코 무리하지 않고, 전문 장비를 갖추지도 않는다. 앞서 밝혔지 않은가. 내 눈 앞의 쓰레기만 치울 거라고. 우리의 준비물은 단출하다. 종량제 쓰레기봉투와 장갑. 평소처럼 걷다가 쓰레기가 보이면 주으면 된다. 매우 간단하다. 

지난주에는 차로 10분 걸리는 주택가 놀이터에 원정 쓰담을 갔다. 동네에도 놀이터가 여럿 있지만, 아이들이 그 놀이터를 콕 집었다(한동안 못 먹은 고르곤졸라 피자를 주문하는 느낌으로). 부모 입장에서는 대환영이다. 붐비지 않고 조용한 곳이 좋다. 여전히 코로나 감염세가 수그러들지 않는 요즘, 사람들이 몰리는 삼척 해변이나 강릉 경포대를 얘기했다면 곤란했을 것이다. 

또 다른 이유도 있다. 이건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취향이지만, 같은 쓰담 산책이라고 해도 왠지 관광지는 후순위로 미루고 싶다. 유별나 보인다고 할까, 어떤 선명한 의도를 가지고 정치적으로 홍보하는 사람처럼 여겨지는 시선이 부담스럽다. 뭐, 쓰레기를 줍는다는 점에서는 동일하지만.

우리가 놀이터 공원에 도착했을 무렵, 반대쪽 입구에서 아저씨 세 분이 담배를 피우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한 발은 공원에, 한 발은 도로 쪽에 디디고 있는 위치에서.

공원 주변에는 돼지 갈빗집, 중화요리, 칼국수 전문점 등 식당이 많다. 그래서인지 식후 땡 담배를 즐기는 사람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여보세요! 여긴 금연 어린이 공원이라고요). 그렇지만 놀이터에서 입구까지 약간 거리가 있고, 바람도 놀이터 방향으로 불지 않아서 크게 신경 쓰이지는 않았다. 

나는 주머니에서 종량제 봉투와 장갑을 꺼냈다. 부스럭부스럭, 구겨진 비닐 특유의 소리가 났다. 담배 아저씨들이 쳐다보았다. 아저씨가 아니라 아줌마라도 그랬을 것이다. 쉽게 예상할 수 있는 행동은 아니니까. 나는 일부러 눈을 마주치지 않고 태연히 장갑을 꼈다. 아내와 나는 아이들 노는 모습을 수시로 확인하면서 놀이터 주변에 떨어진 쓰레기를 주웠다. 

아저씨들이 당황해하는 것이 느껴졌다. 그들의 말수가 급격히 줄어든 것이다. 처음에는 "어, 어, 이거 뭐야" 하면서 경계하다가, 나중에는 "진짜 쓰레기 줍는 거야?" 하면서 땀을 삐질삐질 흘리는 것 같았다(어디까지나 내 감이지만). 아저씨들은 급기야 자리를 옮겨 100m 떨어진 곳으로 물러났다.

아직 담배도 다 안 탄 것 같았는데. 아무래도 쓰레기봉투를 들고 돌아다니는 사람들 앞에서 담배꽁초를 버리기가 난감했을 것이다. 물론, 휴대용 재떨이를 지참하고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지만 지금껏 그런 흡연자는 거의 보지 못했다. 

한번에 무리하지 않아도 됩니다
 
아담한 공원에 숨은 그림 찾기 하듯 쓰레기가 많기도 많다.
 아담한 공원에 숨은 그림 찾기 하듯 쓰레기가 많기도 많다.
ⓒ 이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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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에는 구석구석 쓰레기가 참 많았다. 끈 떨어진 마스크, 바닥에 커피가 남은 알루미늄 캔, 바람 불면 귀신처럼 날아다니는 비닐봉지... 마치 실력 없는 예술가가 폐품을 이용한 작품을 만들다가 성이 나서 발로 차 버린 것 같았다. 쓰레기 줍기는 빨리 끝났다. 10L 봉투를 꼼꼼히 채우는데 걸린 시간은 20분. 만일 철쭉 나뭇가지 사이에 낀 초콜릿 과자 껍데기 같은 걸 빼내느라 낑낑거리지 않았다면 15분이면 충분했을 것이다. 

시선을 멀리 보내면 군데군데 못 다 처리한 쓰레기가 눈에 띄지만 그냥 내버려 두었다. 오늘의 할 몫은 충분히 했으므로 지칠 정도로는 하지 않는다. 남은 시간은 달리거나 걸으면서 놀 것이다. 이것이 나의 쓰담 산책이다.

열정 가득한 사람은 50L짜리 봉투를 사 와서 동네 쓰레기를 다 치워도 좋다. 하지만 나는 아마추어 정신으로 쉽게 만족하는 사람이고, 아마추어답게 10-20L 사이즈로 꾸준히 실행에 옮기는 것을 선호한다. 어차피 쓰레기는 내가 죽기 전까지 무한 생산될 것이므로. 

우리 가족이 쓰담 산책을 하는 이유는 단지 쓰레기를 줍는 것에 한정되지 않는다. 자녀 교육과 소비 생활 점검에도 도움이 된다. 자녀와 함께 쓰레기를 줍다 보면 절로 봉사 정신을 기를 수 있다.  나는 직업이 교사라 가끔 봉사 활동 관련 문의를 받는다. 어떻게 하면 아이에게 유의미한 봉사활동 경험을 하게 할 수 있을까요 등등.

나는 학부모님께 이런저런 정보를 알려드리지만, 속마음은 '쓰담 산책'을 더 권한다. 꼭 별도의 기관에 가서 증서를 받아오는 활동이라야만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생활 속에서 내가 사는 거주지를 깨끗이 하면서 사람들하고 안면도 트고, 인사도 나누면 좋지 않을까. 자연스럽고.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정, 입시나 기타 이유로 어떤 공식적 데이터를 남기고 싶다면 따로 일지를 작성하거나 블로그를 운영해서 간접적으로 어필하면 되고(오히려 더 진정성이 느껴질 수도 있다).

가벼운 나들이도 즐기고 비용도 줄이고
 
적당히 쓰담했으면 놀기. 결코 무리하지 않는다.
 적당히 쓰담했으면 놀기. 결코 무리하지 않는다.
ⓒ 이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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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쓰담 산책 이후 우리 가족의 문화 여가비는 매우 양호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값비싼 입장권을 구입해야 하는 놀이동산이나 실내형 테마시설 이용 비중이 대폭 줄었으니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또한 그런 곳은 입장료뿐만 아니라 내부 매점 및 식당 이용료가 높은 편이다. 크고 작은 추가 옵션 지불 이벤트나 장비 대여료 등을 고려하면 소비 규모가 커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반면 쓰담 산책을 하기 좋은 산림욕장이나 공원, 탐방로는 규모가 크기 때문에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사례가 많아 비용이 거의 들지 않는다. 세상에 좋은 풍경은 대부분 공짜라는 말이 실감 난다.

상점이나 식당 등 편의 시설이 부족하다는 단점이 있으나, 손과 발을 바지런히 움직여 간단한 도시락과 간식거리를 준비하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해가 지는 노을을 바라보면 먹는 참치 샌드위치는 부엌 식탁에서 먹는 것과는 전혀 다른 감흥과 즐거움을 준다. 계절을 먹는 기분도 나고(과장된 표현이지만 내게는 진실이다).

그래도 간혹 인파로 북적이는 장소에 가고 싶은 충동이 들 때가 있는데 그럴 때는 강원도 거주민의 혜택을 톡톡히 본다. 비수기나 평일 등 사람들이 붐비지 않는 시간대를 골라서 혹은 지역민 할인을 받아 저렴하게 이용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비용을 줄일 수 있다. 그렇지만 자연에서 얻는 기쁨과 충만함이 훨씬 크므로 인공적인 엔터테인먼트 시설의 이용 비중은 20% 미만으로 유지하는 편이다. 

봄이 되어 나들이 가기 좋은 날씨가 이어지고 있다. 속초 영랑호를 한 바퀴 돌아도 좋을 것이고, 추암 해변을 거닐어도 그저 그만일 것이다. 얼마 전에는 웬 젊은 청년(20대 초반으로 추정) 둘이서 강변 쓰레기를 줍는 모습을 보았다.

무슨 무슨 환경 단체 같은 조끼를 입은 것도 아니고, 단정한 평상복 차림으로 다니는 걸로 봐서는 우리 같은 취미 쓰담 산책족 부류에 속하는 것 같았다. 우리는 맨손으로 걷고 있었기 때문에 돕지는 못 했지만, 우연히 눈이 마주쳤을 때 응원의 의미로 고개를 살짝 숙였다.

젊고, 날은 따뜻하고, 바야흐로 봄인데 차분히 쓰레기를 줍는구나 하고 참으로 묘한 감정에 휩싸였다. 동네에서 쓰담하는 다른 사람을 마주한 건 처음이었다. 두 사람이 1차로 쓰담을 하고 간 덕택인지 산책로가 말끔했다. 어쩐지 기분이 좋았다. 

혹시 주말에 콧바람 쐴 계획이 있다면 10L짜리 종량제 봉투와 장갑을 챙겨보는 건 어떨까. 쓰담 산책은 진입 장벽이 낮다. 남녀노소, 지갑이 두터운 사람 가벼운 사람 모두 참여할 수 있다. 운이 좋다면 마주치는 몇몇 분들에게 환대와 호의를 받을 수도 있다.

약속하건대, 10L 봉투를 채우는데 아무리 오래 걸려도 30분이 넘지 않으므로 지루한 걸 견디기 힘들어하는 사람도 재미 삼아 도전하기에 괜찮다. 쓰레기는 넘치니, 쉬엄쉬엄 합시다. 너무 힘들면 지치니까요. 

태그:#지구를구하는가계부, #쓰레기, #쓰담, #쓰담산책, #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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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교사입니다. <선생님의 보글보글> (2021 청소년 교양도서)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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