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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계고등학교에서 대입 준비와 삶을 가꾸는 공부 사이에서 줄타기 하는 교사입니다. 조금은 밝고 건강하게 살아가는 아이들 이야기를 씁니다. [기자말]
겨우 이름만 아는 학생입니다. 다시 보면 알아보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조금 전에도 1학년 교실에 가서 들이(가명)에게, 들이인 줄 모르고 "들이가 어디에 있을까?"라고 물었으니까요.

쌍꺼풀이 없는, 예쁜 눈을 가진 아이지만, 그런 아이들이 한둘이 아니잖아요? 마스크를 끼고 있으니 한동안 알아보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지난달 나는 들이와 함께 뜰에 가로 2m, 세로 50㎝쯤 되는 이랑을 만들고 거름을 주고 감자를 심었습니다. 눈을 기준으로 자른 감자에 낙엽을 태운 재를 묻히는 것을 잊지 않았습니다. 

진로 희망란에 농부라고 적은 아이
 
감자밭 감자 심을 이랑, 씨감자, 싹
▲ 감자밭 감자 심을 이랑, 씨감자, 싹
ⓒ 김순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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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을 신청한 학생의 자료를 보았는데, 진로 희망란에 '농부'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교직 생활 29년에 처음 있는 일입니다. 농부가 되겠다니요. 그것도 여학생이. 저는 너무나 반가워서 어떤 농부가 되고 싶냐고 물었고 학생은 감자 농사를 짓고 싶다고 했습니다.

저는 이왕에 농부가 되기로 했으니, 기후 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작물을 찾거나 개발도 할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것은 어떠냐고 묻고, 그럴 수 있는 길을 안내했습니다. 그리고 바로 약속했지요. 감자를 학교에 심어보자고.

들이는 그다음 날 씨감자를 들고 왔습니다. 할머니가 주었다고. 그런데 그 굵기가 꼭 산새알 같았습니다. 할머니가 주신 것이니 마땅히 심어야 하겠으나, 밭보다 모자란 듯하여 장에 가서 굵은 씨감자 여남은 개를 더 사 왔습니다.
  
청소 시간에 감자를 심었습니다. 지나가던 학생들이 왜 그 아이와 감자를 심느냐고 물어보았습니다. 그냥 웃어넘겼습니다. 사정을 들은 양 선생은 "저 학생을 위해서 손수 땅을 팠단 말이죠?" 하고 물었습니다. 좀 이상하게 여길 수 있습니다. 한 명의 학생을 위해서 감자밭을 만들고 거름까지 주고 함께 심기까지 했으니까.

어떤 게 특혜일까요? 
 
감자싹 심은 감자에서 돋은 싹
▲ 감자싹 심은 감자에서 돋은 싹
ⓒ 김순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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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유별나지요? 그러나 돌이켜 보면 진작에 그러지 못했다는 생각에 미안했습니다. 그 학생이 아니라 우리 학교를 거쳐 간 수많은 보통 아이들에게 말입니다.

우리 학교는 서울대학교에 진학하는 서너 명의 학생을 위해 교육 과정을 서울대 교과목 이수 기준에 맞춰줍니다. 서울대학교에 진학할 생각이 없거나 갈 수 없는 학생들도 반드시 따를 수밖에 없지요. 아직 한 명의 학생도 서울대에 합격한 적이 없는 학교도 아마도 그렇게 하고 있을 것입니다. 이 밖에도 성적 좋은 학생을 위한 많은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그래놓고도 우리는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일 뿐, 특혜란 생각은 안 하고 살아왔지요. 그러니, 제가 감자 농사를 짓는 농부가 꿈인 학생과 함께 뜰에 감자를 묻는 일이 이상한 일일까요? 제가 특혜를 베풀고 있을까요? 

3월 19일 묻은 감자가 4월 5일에 땅을 밀고 싹을 내밀었습니다. 들이가 다시 등교를 하면 북을 돋우게 될 것입니다. 다음 달엔 하얀 꽃도 피우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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