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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작은변화지원센터는 지리산권 지역에 필요한 작은 변화를 이끌어내는 사람들과 공익활동을 지원하고 있는 민간 지원단체로, 아름다운재단과 사회적협동조합 지리산이음이 함께 운영하고 있습니다. 지리산권 지역에서 직접 변화를 만들어가고 있는 사람, 모임, 공간, 네트워크를 소개하는 글을 싣습니다. [기자말]
 왼쪽부터 산보고책보고 작은도서관의 황정란 대표, 강은경씨
 왼쪽부터 산보고책보고 작은도서관의 황정란 대표, 강은경씨
ⓒ 지리산 작은변화지원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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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좋아지면서(?) 한 번 생각하면 마냥 좋지만, 두 번 곰곰이 생각하면 '이게 정말 좋은 걸까?' 의심하게 되는 일들이 많아졌다. 이렇게 빨리 찾아온 봄과 봄꽃들을 볼 때 그렇고, 오늘 주문하면 내일 이런 시골집 앞까지도 와 있을 택배들을 생각해볼 때 그렇다. 뭘 보더라도 남다른 시선으로 한 번 더, 돌아보고 짚어보는 눈길은 앞으로 살면서 꼭 갖춰야 할 태도라고 언젠가부터 마음에 새겼다. 

구례에는 그런 태도로 구례군의 예산과 행정뿐 아니라 이웃을 살피고 돌보는 사람들이 힘을 모아 꾸려가는 공간이 있다. 바로 전남 구례 오일장이 열리는 작은 길, 성신목재 건물 2층에 자리한 '산보고책보고작은도서관(이하 '산책도서관')'이다.

이게 정말 좋은 도서관일까 싶어서

시작은 구례 주민들로 구성된 자치조직인 '예산감시모임'이었다. 이들은 군청에서 기획하는 여러 가지 일을 검토하다가 구례 군립 매천도서관과 전남 구례교육지원청 관할 구례공공도서관이 한 부지에 이전 건립된다는 계획을 알게 됐다. 그래서 이 문제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며 함께 얘기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따로 모여 '좋은도서관모임'을 만들었고, 모임에서 이게 과연 마땅한 일인지, 구례에는 어떤 도서관이 필요할지 함께 궁리하기 시작했다. 

마산면 청천초등학교 마을도서관에서 자원활동으로 도서관지킴이를 하던 강은경씨는 '각 면 단위에도 도서관이 생겼으면' 하고 늘 바랐던 사람이다. 공공도서관을 이용할 때마다 느낀 점, 개선하면 좋을 점 등을 머릿속에 담아두고 있던 차였다. 

"언제나 도서관에 대한 갈망이 있었어요. 그러다 공공도서관 이전 문제를 접하게 됐고, 당연히 주민의 의견을 반영한 도서관이 지어져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외국의 경우 작은 마을에도 관공서와 교회, 도서관은 반드시 짓는다고 해요. 그만큼 마을 안에서 도서관의 역할을 중요하게 여기는 거죠. 그 즈음에 도시재생에 대한 강좌를 들었는데, '도시를 재생하기 위해서는 마을이 살아나야 하고, 마을에 도서관이 있어야 마을이 살아난다'는 내용이 와닿았어요." (강은경씨)

"저는 지역에 필요한 여러 활동을 하고 있었는데, 박애숙 선생님이 도서관 상황이 심각함을 알려줬어요. 저는 도서관학을 전공했고, 도서관 기능과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죠. 이 고민을 함께할 수 있는 바탕이 있었어요." (황정란 대표)


두 사람은 도서관 문제에 눈길이 가기 시작했을 때, 산책도서관의 전 대표인 박애숙씨의 권유로 '좋은도서관모임'에 합류한 사람들이다.

'좋은도서관모임'은 도서관 전문가를 초빙해 강연도 듣고, 주민설명회, 주민공청회 등을 열어 더 많은 주민에게 이 문제를 알리고 함께 의논하기 위해 힘썼다. 이에 공감한 많은 주민들이 '한 부지 두 도서관 건립은 행정력 낭비인데다, 도서관은 여러 지역에 분산돼 있어야 지역 격차를 줄이고, 누구나 도서관을 편리하게 이용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는 주장을 펼쳤다. 

"도서관 문제는 군민이 구례군의 행정에 처음 이견을 제시한 사례에요. 많은 주민이 호응했고, 초기에는 군에서도 우리 의견을 받아줄 것처럼 이야기했어요. 도서관이라는 게, 한 번 지어지면 50년 이상 가는 인프라니까 잘 지어보자 하고 꿈에 부풀었는데 결국엔 받아들여지지 않았어요. 그래서 저희는 두 도서관을 짓되, 한 건물처럼 통합운영 체계를 마련해달라고 다시 요구했고요. 그것도 결국엔 반영이 안 됐어요. 많은 애를 썼지만 관과의 협력을 끌어내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생각을 했죠." (황정란 대표)

"그런데 그때 우리(주민들)가 원하는 도서관의 모습이 뭘까 생각해보게 됐어요." (강은경)

그렇게 산책도서관이 된다
 
 구례읍 5일시장작은길에 위치한 산보고책보고 작은도서관
 구례읍 5일시장작은길에 위치한 산보고책보고 작은도서관
ⓒ 지리산 작은변화지원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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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에서 더는 좋은도서관모임과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는 뜻을 보였고, 교육청에서도 이미 진행 중인 계획을 백지화하거나 변경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을 보였다. 

"그럼 우리, 좌절할 게 아니라 작은 공간이라도 우리가 구현하고 싶었던 공간을 직접 만들어봅시다." 좋은도서관모임은 관과의 협의와 협력이 번번이 어렵게 되자, 새로운 돌파구를 열기로 했다. 바로 '주민자치'였다. 주민자치로 공유공간을 만들자는 의견을 모았다. 

"기존 도서관 이용자 중에 아기 엄마들이 많았는데, 아이들을 데리고 편하게 이용할 수 없어요. 부모님들로부터 아이들을 돌볼 수 있는 공간이 없다는 의견을 많이 들었어요. 그래서 공유공간을 계획할 때, 다양한 이용자층의 요구를 구현하기로 했어요. 최근 먹거리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고 있으니 공유 냉장고, 공유 부엌도 만들었고요. 작은 공간이지만 어린이를 위한 공간, 작은 회의나 모임을 위한 공간, 한 쪽에는 청소년을 위한 공간도 마련했어요.

많은 요구를 수용해서 구성하다 보니 지금의 산책도서관이 됐어요. 부족함이 많아 보여도 이 작은 공간을 구현하는 데 많은 토론과 논의를 거쳤고, 200여 명 정도 되는 주민들의 후원과 도움을 받아 산보고책보고작은도서관이 탄생했죠." (황정란 대표)

"도서관 이름도 공모했어요. 여러 좋은 제안들이 있었죠. 그 중 '산보고책보고'라는 이름이 가장 많은 지지를 받았고, 줄여서 '산책'이라 부르고 있죠. 뽑히지 않았던 이름들은 지금 산책 내 여러 공간을 부르는 이름이 됐어요. '노고할미방', '옹달샘방', '책마실방', '똥꼬(동네꼬마)방' 등이 그때 나온 이름이에요." (강은경씨)


그렇게 2020년 2월, 주민자치 공유공간 '산보고책보고작은도서관'이 탄생했다.

산도 보고 책도 보고, 사람도 있고 이야기도 있고
 
  주민 공모로 지어진 도서관 내 공간들의 이름을 새긴 나무현판들
  주민 공모로 지어진 도서관 내 공간들의 이름을 새긴 나무현판들
ⓒ 지리산 작은변화지원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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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의 공립 도서관은 저녁부터 밤 동안 자유롭게 이용할 수 없고, 떠들 수도 없는 시스템이잖아요. 아이들이 자유롭게 책과 함께 어우러져 놀 수 있는 시스템이 없죠. 그래서 공공 도서관에선 할 수 없는 영역들을 우리의 자치로 보완하자는 뜻이었어요." (강은경씨)

산책도서관 '지킴이'로 나선 주민들이 시간을 나누어 맡고 오전 10시부터 저녁 6시까지 운영했다.

"처음엔 정말 이용자 입장에서 편안하게 이용할 수 있는 도서관을 만들자고 생각하며 열었지만, 지킴이를 하다 보니 점점 벅차기 시작했어요. 관리자의 입장도 느끼게 되더라고요. 책임감도 무거워지고, 관리자의 입장에서 이용자를 제한하는 상황에 직면하면서 내면에서 갈등이 생긴 거죠. 지킴이인 우리도 이 공간에서 행복해야 하잖아요. 책임감에 얽매어서 지키기는 힘들다는 생각에 작년 하반기부턴 오후 2시부터 6시까지만 운영하는 것으로 조정했어요." (황정란 대표·강은경씨)

여기서 주민들은 산도 보고, 책도 보고, 각종 소모임도 열었다. 때마다 토론의 장, 교육의 장, 놀이의 장으로 변신했고, 도서관 문화제와 구례의 작은 도서관들이 함께 준비한 작은도서관 한마당 '작당'도 열렸다. 산책도서관에는 책과 사람들, 이야기가 정겹게 흘렀다. 공공도서관에 비하자면 산책도서관은 간판도 없이 아주 조촐하지만 어쩌면 그래서 더 넓은지도 모른다.

공공도서관을 정수기라고 한다면 산책도서관은 강물과도 같다. 공공도서관에는 더 발전된 기술로 필요한 서비스를 체계적으로 제공하는 편리함이 있다면, 산책도서관은 때로 부족함도 많고, 두서없이 흘러가는 것 같지만 서로 모르던 사람들을 모아 이웃이 되게 하고, 이야기를 풀어놓게 하고, 마을이 되게 하고, 서로를 돌보게 하는 놀라운 힘이 있다. 좀 떠들어도 되고, 좀 드러누워도 되는 편안함도 있다.   

지난해 여름, 구례는 사상 최악의 수해를 입었다. 구례 오일장 골목도 예외 없이 홍수에 잠겼다. 산책도서관 사람들은 피해 주민과 봉사자들을 위해 도서관을 쉼터로 개방하고, 구호 물품들을 모아 피해 주민들에게 나누어줬고, 평범한 동네 어르신들도 '아~ 거기? 물건 나눠주는 곳?' 하고 산책도서관의 존재를 알게 됐다.

도서관은 성장하는 유기체

개관한 지 1년이면 아장아장 어린 도서관이지만 주민들의 열정과 지혜로 이미 많은 일을 해냈고, 코로나에 수해까지 거듭 어려운 상황들도 겪어내야 했다. 코로나로 휴관하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산책도서관을 꾸려가는 이들은 지금 어느 때보다 긴 대화의 시간을 갖게 됐다.

황정란 대표는 그동안 준비된 역량을 고려하지 못하고 많은 사업을 진행하느라 내부소통에 많은 에너지를 쏟지 못했다고 솔직한 성찰을 털어놓았다. 깊고 치열한 논의를 나눈 지난 두 달여는 건너뛸 수 없는 소중한 성장통의 시간일지도. 

"도서관 운동이라든지 밀착된 도서관 서비스와 도서관 기능의 활성화를 추구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지난해를 겪으며 도서관 기능보다 지역 커뮤니티 공간으로 확장되길 바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도 확인하게 됐어요. 그래서 지금은 합의하는 과정에 있어요. 대화를 통해서 산책의 정체성과 활동 목적 등이 다시 정립될 것 같아요. 실제 이용자들 입장에서도 변화가 있을 거예요. 인터뷰를 하는 이 시점이 바로 과도기네요." (강은경씨)

"사실 논의 속에서 그보다 중요한 점은 누군가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누군가는 그것을 누리는 형태가 아니라, 누구나 함께 참여하고 함께 책임지는 공간을 구현하자는 얘기였어요. 그래야만 정말 주민들 속에 안착할 수 있을 것 같거든요. 현재 지킴이와 운영진은 20여 명 정도 되는데요. 50명~100명 정도의 주민들이 참여하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논의 구조부터 오픈하고, 더 많은 이야기를 함께 이야기하고 싶어요. '실험해보자. 안 되면 다시 해보면 되지'라고 생각해요." (황정란 대표)

도서관학을 전공하면 꼭 배우는 내용 중에 '도서관학 5법칙'이라는 게 있다. 인도의 수학자이자 사서인 랑가나단이 세운 법칙인데 지금까지도 도서관의 기본 운영 법칙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한다.

그 중 다섯 번째 법칙이 바로 '도서관은 성장하는 유기체다'라는 내용이다. 사람과 마찬가지로 사회와 환경의 영향을 받아 변화하고 성장한다는 뜻이다. 실제로 여러 도서관 전문가들이 도서관의 운영이나 형태가 점점 책 중심이 아니라 사람 중심으로 변화할 것이라 말하고 있다.

그런 점을 생각하면 책 중심의 다양한 서비스나 그럴듯한 대출 반납 시스템이 없더라도 '산책도서관'은 이미 훌륭한 도서관이다. 어떤 모습, 어떤 이름이든 구례 주민들이 지성을 기르고 문화를 누릴 수 있는 공간으로 뿌리내리고 있음은 틀림없다.

산보고책보고작은도서관에서 공유공간 산책으로
 
 왼쪽부터 산보고책보고 작은도서관의 황정란 대표, 강은경 씨
 왼쪽부터 산보고책보고 작은도서관의 황정란 대표, 강은경 씨
ⓒ 지리산 작은변화지원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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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지역민 가운데 문화에서 소외된 분들과 만나고, 뭔가를 같이 하고 싶어요. 이 공간을 통해 뭔가를 하고, 문화적 욕구를 충족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어요. 지난주에 모여 얘기했을 땐 소규모 학습공동체를 만들어보자고도 했어요. 지역에서 다 다른 모습으로 자기 철학을 추구하며 살고 있는데 우린 많이 모르고 살잖아요. 아무도 모르는 그런 분들을 모시고 같이 이야기 나누는 기획도 해보고 싶어요. '사람책'처럼요.

사회적 활동을 하거나 영향받는 사람들을 더 발굴하고, 연결하고, 알아가며 지역을 풍요롭게 하는 네트워킹을 하고 싶어요. 이곳이 '살롱'처럼 많은 사람이 와서 토론하는 공간이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인문학 강좌도 열리면 좋겠고요. 공유경제에 대해서도 이야기해보고 싶어요. 대안적인 삶의 방식을 찾아가면 좋겠거든요. 소수자에 대한 이야기도 했어요. 농촌이라 소수자를 더욱 차별적 시선으로 보는 경향이 있는데, 그런 걸 해소하고 연대하는 분위기를 만들고 싶어요.

이렇게 여러 갈래의 욕구들이 있는데, 어떻게 모으고 펼칠지가 저희에게 남아있는 숙제에요. 할 수 있는 건 여러 길이 열려있는 상태인데, 구조를 어떻게 개편할지 구상 중이에요." (황정란 대표·강은경씨)


최종규 작가의 <책숲마실>이라는 책에서 '책이 없는 옛날에도 사람들은 서로 읽고 살았습니다'로 시작하는 구절을 읽고 내내 산책도서관이 떠올랐다. 뒤따르는 문장들은 이렇다.

'종이책이나 누리책 없던 옛날에는, 신문이나 잡지가 없던 지난날에는, 무엇보다 낯빛을 읽고 마음을 읽었습니다. 생각을 읽고 꿈을 읽었어요. 이루고픈 뜻을 읽고, 밝히려는 뜻을 읽으며 함께 나아가려는 뜻을 읽었습니다. 바람이며 하늘이며 날씨를 읽었지요. 비랑 눈이 오는 결을 읽고...'

산책이 앞으로 하고 싶다던 많은 일이 결국에는 한 가지, '서로를 읽으며 사는 일'이라는 걸 알게 됐다. 

"주변에서 저를 보는 시선이 많이 달라졌죠. 저는 마을 안에서 아이들과 함께하고, 학교 안에서 함께할 수 있는 일들을 했는데, 지금은 관계가 넓어졌어요." (강은경)

"저는 수해를 만나고, 군청과 읍·면의 자원을 연결하는 일을 했어요. 적절한 대상자에게 자원이 가도록 하는 활동이요. 그 과정에서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많이 만나면서 훨씬 더 지역에 대해서 이해할 수 있고 바라보는 시선이 넓어진 것 같아요. 이제는 지역에서 소외된 분들에게까지도 시선을 넓혀가야겠다는 고민을 하고 있어요. 그리고 이런 작은도서관이 왜 필요하냐고 묻는 사람들을 자꾸만 이해시키고, 견인해와야 한다는 생각도 들어요." (황정란 대표)


서로를 읽고, 시선과 관계를 넓혀가는 '산책'. 그래, 그곳으로 가보자고 봄바람이 우리 등을 따뜻하게 밀어주고 있다.

글 | 푸른
사진 | 임현택
기획/진행 | 누리

Author 푸른
내 이름도 별명도 살고 싶은 모습도 '푸른'. 나는 따뜻하거나 뜨거운 사람. 어린이의 벗 되어 살고 싶다. 어린이 해방을 꿈꾸며 산청에 살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인터뷰는 지리산 작은변화지원센터 홈페이지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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