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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한국 사회에서 '반중 감정'은 아예 '상수(常數)'가 되어버린 듯하다. 최근에 이르러 그 정도는 더 심화된 것 같다. '김치 원조' 논란부터 윤동주 시인 국적 논란, 드라마 '조선구마사' 사태에 이르기까지 가히 "반중 감정의 극대화" 시대라고 할 수 있을 정도다. 이웃하는 국가와 좋은 관계를 유지해나가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관련 기사: '조선구마사' 결국 폐지, SBS 측 "방영 취소 결정").

그러나 중국에는, 단순히 시대에 뒤떨어졌다거나, '공산주의 독재국가'라는 색안경만으로 볼 수 없는 그 무엇이 존재한다. 중국이 그 자체로 지닌 장구한 전통과 유구한 문화와 사상, 역사적 경험의 두께와 깊이를 간과할 수 없는 탓이다. 어느덧 '중국'이란 말은 정치·경제적으로, 문화적 등 다양한 측면에서 시대의 중요한 키워드로 자리 잡았다. 긍정적 차원에서든 부정적 차원에서든, 이제 중국을 언급하지 않고서는 현 시대의 문제를 논의하고 내일을 모색해나가기 어렵게 되었다고 본다.

'반중 감정' 극대화 시대... 중국의 한계와 가능성, 냉정하게 봐야 
  
드라마 '조선구마사' 안내 포스터(SBS 홈페이지 캡쳐). 해당 드라마는 역사왜곡 논란이 인 뒤 시청자 항의 속에 결국 폐지했다.
 드라마 "조선구마사" 안내 포스터(SBS 홈페이지 캡쳐). 해당 드라마는 역사왜곡 논란이 인 뒤 시청자 항의 속에 결국 폐지했다.
ⓒ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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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중국은 하나의 국가라기보다는 차라리 하나의 '세계'라고 말할 수 있다. 이 거대한 중국을 한눈에 파악해내고 일의적(一義的)으로 규정한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과제일 것이다. 이는 무엇보다도 중국이라는 존재에 대하여 우리가 아는 대부분의 평가와 예측들이 여전히 미국, 혹은 서구적 시각에 기초하여 진행되어온 측면을 부인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중국의 정치체제는 비록 대중의 참여 확대와 일정한 제도적 장치를 통한 민주적 과정의 도입이라는 측면은 인정될 만하지만, 그러나 그것이 근본적 권력 교체에 연결되지는 않는다는 점에서 '권위주의적'일 수밖에 없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일당독재를 비롯하여 중화주의, 환경오염, 군사주의, 거품론 등등 중국의 미래에 대하여 여러 의문 부호를 붙이면서 갖가지 부정적인 진단을 내놓고 있다.

첩첩산중(疊疊山中), 일모도원(日暮途遠). 날은 저물어 가는데 해결해야 할 과제는 산더미처럼 쌓여있고 중국이 나아가야 할 길은 아직 멀지만, 동시에 중국이 무실(務實)의 태도로써 전진하고 있다는 것 역시 사실이다.

세계 역사란 서방 역사가 아니다. 단지 그들이 앞에서 걷고 있을 뿐

중국은 외부 세계의 관계에 있어 근대시대 이래 '서세동점(西勢東漸)'에 의하여 수세적 위치에 놓이면서 오랫동안 압도당해 왔다. 하지만 세계의 역사는 결코 서방 역사만이 아니고 특히 미국의 역사가 아니며, 단지 지금 그들이 앞서서 걷고 있을 뿐이다.

유명한 정치가이자 외교가인 헨리 키신저(Henry Alfred Kissinger)는 그의 저서 <On China>에서 "'중국'은 언제나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 중국의 역사의식에서 국가란 오직 복원(Restoration)이 필요했을 뿐, 창건(Creation)은 필요하지 않았다."라고 설파했다.

중국의 현실에 대한 올바른 분석이란 중국의 역사와 전통의 토대 위에서 전개되어야 하며, 이러한 인식의 틀에서 중국의 내일을 전망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오늘 중국이 보여주고 있는 현실 그리고 그 미래란 중국이 걸어온 오랜 역사적 과정이라는 켜켜이 축적되어온 토대와 결코 분리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미중 충돌'의 시대에서 한국이 취해야 할 길은
  
제국의 부활 책 표지
▲ 제국의 부활 제국의 부활 책 표지
ⓒ 소준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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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사회주의 혁명'과 '개혁개방'이라는 역사 과정을 거치면서 그 주체적인 역량이 신속하게 '굴기'하였다. 그리고 몇 가지 분야에서는 이미 우위를 보이거나 최소한 동등한 위상을 점하고 있다. 이러한 토대 위에서 중국은 이제 자신의 색채를 분명하게 드러내면서 미래 세계의 패자(覇者)로서의 구상을 드러내고 있다.

미국과 중국 간 '세력 충돌'이 가속화되는 국제 현실에서, 한국으로서는 국제정세 변화에 대한 정확한 인식과 그에 토대한 '국익(national interests) 우선'이라는 관점의 견지가 중요할 터다. 역사적으로 한국은 실용적이지 못한 허구적 명분론에 집착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가령 조선 왕조는 '숭명(崇明) 사상'으로 이미 쇠락했던 명나라만을 모시고, 신흥 강국 청나라는 오랑캐로 무시하면서 '소중화주의(小中華主義)'의 적대 정책을 취하고 있다가 병자호란의 비극을 맞아야 했다. 그 과정에서 급속하게 쇠락해가는 구(舊) 패권국가 명나라와 신속하게 부상하는 신흥패권국 청나라 간의 국제 역학관계를 누구보다도 정확히 인식하고 청나라와의 관계를 중시하고자 했던 광해군이 오히려 추방당해야 했던 역사는 실로 아쉬운 대목이다.

반중 감정이 범람하는 시대, 한국인들의 감정은 좀 더 냉철해져야 하지 않을까. 추상적 명분론이 아니라, 사실에 기초한 실사구시의 명징(明徵)한 사고방식으로 대응해야 할 일이라고 본다.

태그:#제국의 부활, #소준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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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관계학 박사, 국회도서관 조사관으로 근무하였고, 그간 <오마이뉴스>와 <프레시안> 등 여러 매체에 글을 기고해왔다. <이상한 영어 사전>, <변이 국회의원의 탄생>, <논어>, <도덕경>, <광주백서>, <사마천 사기 56>등 여러 권의 책을 펴냈다. 시민이 만들어가는 민주주의 그리고 오늘의 심각한 기후위기에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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