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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독한 술을 좋아한다. 고량주든, 양주든, 안동소주든. 그 귀한 술을 물에 희석해 마시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고 굳게 믿고 있다. 

정치비평에도 오랫동안 유통된 희석주가 있다. 양비론이 그것이다. 속담에도 있다.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 양비론은 때리는 시어머니를 희석한, 말리는 시누이에 해당한다. 

양비론의 정체는 무엇일까? 누가 왜 어느 시점에서 양비론을 말할까? 

우선, 양비론은 간단한 구조를 지니고 있다. "이것도 그르고 저것도 그르다." '이것'을 비판하고 '저것'을 비판하니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중립적인 겉모습을 띤다. 

이런 이유로 수구세력이 부정부패나 폭압정치로 민심의 저항에 부딪혀 수세에 몰릴 때 보수 언론이 주로 구사하던 단골 전략이 양비론이다. 최근 구사하는 새 버전이 공정 프레임이다. "우리는 이미 부도덕하지만 너희도 위선적이야!" 보수 언론이 진보 언어 흉내를 내는 진기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이는 보수가 이미 민심에 호소할 수 '상징 자본'을 상실했기에 진보의 '상징 자본'을 공격하지 않을 수 없는 절망감과 원한 감정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사실을 단순히 전달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말의 내용보다 말하는 사람의 의도를 따져봐야 한다. 왜 양비론을 구사하는가? 차마 '이것'을 편들 수 없는 상황에서 '저것'을 공격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래서 양비론의 역할은 말리는 시누이에 해당한다. 

다음으로, 양비론은 원래 '이것'에 실망한 상태에서 기대했던 '저것"에 대한 기대감이 무너졌을 때 표현되기도 한다. 이런 식으로 양비론을 말하는 사람은 말리는 시누이는 아니다. 그러나 자신의 의도와는 다르게 때리는 시어머니의 편을 들게 된다. 

때리는 시어머니로 등장한 보수언론 

요즘 보수 언론은 기존에 하던 말리는 시누이 역할을 넘어 때리는 시어머니로 등장하고 있다. 이는 수구냉전친일세력이 정치적으로 몰락하고 있다는 위기의식의 표현이다. 보수 야당이 아니라 아예 보수 언론이 정치적 행위자로 등극했다.  

실망한 양비론자로 진보 민주 인사인 강준만 교수와 홍세화 대표를 들 수 있다. 현 정부와 민주당에 실망한 양비론의 대표적인 논객으로 보인다. 강준만 교수에 따르면 '깨끗하지만 무능한 진보'와 '유능하지만 부패한 보수'의 과거 프레임은 깨지고 지금은 둘 다 무능하고 둘 다 부패했다. 물론 두 분은 실망한 양비론자에서 때리는 시어머니로 역할을 전환한 진중권 전 교수와는 결이 다르다. 

그런데 실망한 양비론자는 그 자체로 순수하지만 말리는 시누이에게 악용되기 쉽다. 강준만 교수의 양비론을 인용하며 자신의 논지를 펼치는 박성민 컨설턴트가 혹시 말리는 시누이 역할을 자처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러운 이유다. 
 
<경향신문> 3일자에 실린 박성민의 정치인사이드 '권력을 쥐고 돈까지 갖고 싶었던 '586'의 시대는 종말로 향하고 있다' 칼럼
 <경향신문> 3일자에 실린 박성민의 정치인사이드 "권력을 쥐고 돈까지 갖고 싶었던 "586"의 시대는 종말로 향하고 있다"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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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민 컨설턴트는 3일자 <경향신문> 칼럼 '권력을 쥐고 돈까지 갖고 싶었던 '586'의 시대는 종말로 향하고 있다' 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를 만들겠다던 민주화 엘리트들의 약속은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를 지탱하는 정신적 권위의 몰락과 민주주의 시스템의 붕괴로 돌아왔다. 권력을 감시하고 비판해야 할 지식인, 언론, 시민운동가, 학자들은 침묵을 넘어 부끄러움도 없이 어용과 사쿠라를 자처한다."

박성민 컨설턴트는 자신의 논지를 강화하려고 강준만의 강남좌파론, 피에르 부르디에의 상징자본, 일본의 오구라 기조의 한국 지식인(선비, 사대부, 양반)론과 프랜시스 후쿠야마의 종교와 정치의 관계론 및 짐 콜린스의 위대한 기업론까지 화려하게 인용하며 장황하게 쓰고 있다. 

그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돈, 권력, 도덕의 순으로 '상징 자본' 에 대한 탐욕을 부린 이명박과는 달리 586 정치인은 도덕, 권력, 돈의 순으로 탐욕을 부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도덕을 지향한 선비에서 권력까지 지닌 사대부로, 나중에는 재물까지 탐하는 양반으로 타락한 지식인이며, 권력을 견제해야 하는 제사장과 선지자가 권력의 '직'에만 눈독을 들이는 자들이 되었다고 본다.  

그 결과로 568 정치인은 조국 사태로 '상징 자본'을 잃었고, 'LH 사태'로 그들이 내건 구호인 적폐 청산의 유통기한도 끝났다는 것이다. 중도 진보가 떠나가고 민주당은 다시 광야에 내몰렸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위대한 기업이 몰락하는 5단계에서 민주당은 위기를 부정하는 3단계에 머물고 있다고 본다. 물론 양비론자의 주장답게 국민의힘도 구원을 찾아 헤매는 4단계 머물러 있다고 규정한다. 그런데 이 점이 다행이라고 본심을 토로하고 있다. 

누구에게 다행인가? 수구냉전친일 세력의 생명이 완전히 끝나지 않아서인가? 칼럼을 통해 박성민 컨설턴트는 다음과 같이 마무리한다.

"4월7일 누가 승자가 되든지 그 결과가 내년 대선의 결과를 알려주지는 않을 것이다. 주류 권력을 향한 새로운 도덕적 쟁투가 시작되려고 한다."

희석된 소주처럼 양비론은 옹호하고 싶은 쪽의 문제를 감싸는 효과가 있다. 결국 수구냉전친일 세력이 주류 권력으로 다시 부활하기를 원하는 것일가? 박성민 컨설턴트는 여전히 거대 두 당을 비판하는 중도론자인가? 아니면 민주당에 실망한 순수한 인사인가? 그의 양비론이 그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실망을 넘어 말리는 시누이로 읽히는 이유다. 

수구냉정친일이 단지 과거의 문제인가? 왜 독일과 프랑스는 아직까지도 나치 가담자들을 찾아내 처벌할까? 파리 동정민 특파원에 따르면 2차대전이 끝난 지 70여 년이 지났지만 독일 나치범죄중앙수사국의 노력은 현재진행형으로 세계 곳곳으로 나치에 가담했던 가해자를 찾아 법정에 세운다. 매년 약 30명의 잠재적인 가해자를 발견하고 관련 기록 170만 개를 알파벳순으로 정리해뒀다. 심지어 독일은 나치 전범에게는 공소시효를 없애 목격자 증언만 있으면 학살을 방관한 이들도 처벌하도록 2011년 관련법을 개정했다. 과거를 잊은 자에게 미래가 없다. 

촛불시민의 피로감, 사실이지만...

박성민 컨설턴트의 진단과 달리 지난해 우리나라가 K-방역, K-경제, K-문화콘텐츠. K-국방 등으로 세계에 알려지며 선진국에 진입했다는 사실에 감격한 시민들이 많다. 이명박과 박근혜 정부에서 헬조선이라는 절망감을 외치던 시절과는 얼마나 다른가? 

작년에 OECD 경제성장률 1위, 최초 군사위성을 발사하는 등 세계 국방력 순위 6위, 올해 2월 외환보유고 4476억 달러로 사상 최대치 경신, 글로벌 혁신 지수 10권 진입, 재정적자 선진국 중 최소 수준. 팬데믹 상황에서도 국가신용등급 Aa2 유지, 한국 언론자유지수 아시아 1위 등을 기록했다. 

물론 총선 이후 180석에 가까운 거대 민주당이 촛불시민의 개혁 열망을 신속하고 과감하게 이행하지 못하고 정부가 집권 초기에 과감한 부동산 정책을 펼치지 못한 문제점도 있다. 여기에 대해 촛불시민이 피로감도 느끼고 실망한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검찰, 언론, 사법의 기득권 엘리트 카르텔이 브라질식의 연성 쿠데타를 꿈꾸는 현실과는 다르다. 보수 언론이 일부 검찰과 사법의 정치 세력과 보조를 맞춰 끝없이 정부를 흔들고 민주당을 공격하지만 결국 촛불시민의 벽에 가로막혔다. 박성민 컨설턴트는 이런 사실을 망각한 채 최근 여당에 불리한 여론 조사를 빌미로 정부와 여당을 무능과 부패의 이미지로 채색하고 만다. 왜 검찰 개혁, 언론 개혁, 사법 개혁을 위치는 촛불시민의 열망의 목소리가 그에게는 들리지 않는 것일까? 

우리나라는 기성 언론이 연성 쿠데타에 가깝게 자유롭게 여당과 정부를 공격할 수 있는 사회가 되었다. 그런데 2019년 기준으로 세계 주요 38개국에서 진행한 언론 신뢰도 조사에서 한국 언론의 자유는 29계단 상승했음에도 신뢰도 22%로 최하위 수준을 기록했다. 기성 언론이 처한 위기의 본질이 여기에 있는 게 아닐까? 

2020년 총선에서 촛불시민은 검찰과 언론의 연성 쿠데타 시도를 지난 총선에서 심판했다. 이번 재보궐 선거의 주도적인 참여자인 기성 언론에 대해 촛불시민은 또다시 어떤 결정을 할지 지켜봐야 한다. 

촛불시민의 개혁 명령을 따르는 정치인은 승승장구할 것이요, 거부하는 정치인은 몰락할 것이다. 촛불시민이 주류이다. 박성민 컨설턴트의 예측과는 다르게 주류는 이미 교체되었다. 다만 이를 인정하지 못하는 언론과 컨설턴트의 위기일 뿐이다. 희석된 양비론은 그들에게만 위안을 줄 뿐이다. 

태그:#양비론, #586, #박성민, #재보궐선거, #촛불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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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연구자로서 정치존재론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장자와 푸코를, 지젝과 원효, 바디우와 나가르주나, 헤겔과 의상 등 동서양 정치존재론의 트랜스크리틱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전 상지대 교양대학 교수로 학생들에게 인문학과 철학을 가르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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