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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서재에서 가장 아끼는 만화 중에 하나가 신원문화사에서 나온 '만화로 독파하는' 시리즈다. 말 그대로 동서양 고전을 만화로 읽을 수 있게 제작한 시리즈다. <신곡>이라든가 <파우스트>와 같은 쉽게 읽을 수 없는 고전을 '읽었다'라고 자위할 수 있는 명분을 주는 좋은 기획이다. 물론 '만화 판본으로'라는 수식을 슬며시 숨겨야 하지만 그래도 줄거리라도 알게 해주니 고맙지 아니한가.

아쉽게도 이 시리즈는 좋은 장점이 있지만 일본 번역서이며 일본 고전이 상당수 포진되어 있다. 일본인 특유의 '오타쿠' 문화가 아낌없이 발휘된 분야 중의 하나가 만화다. 정말 다양하고 희귀한 아이템이 만화로 표현된다. 다른 건 모르겠는데 일본의 만화는 정말 부럽다. 뭔가 세상의 모든 지식을 만화로 담겠다는 기세가 엿보인다.

어려운 지식이나 사상을 좀 더 많은 사람이 이해하고 즐길 수 있도록 그림으로 표현하겠다는 시도와 사례는 우리 조상들의 모토이기도 했는데 현대에 와서는 '만화'도 독서의 범주에 포함되는지 고민하는 사람이 많다. 나도 마찬가지다. 만화를 읽고 있으면 뭔가 점잖지 않다는 생각에서 자유롭기가 힘들다. 만화는 과연 서브 장르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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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전 리뷰툰> 표지 표지
ⓒ 북바이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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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내가 좋아하고 자주 들리는 인터넷 커뮤니티인 '디씨 인사이드 독서 갤러리'에서 신기하고 재미난 게시물을 발견했다. 키두니스트라는 유저가 고전을 만화로 리뷰하는 신세계를 보여주고 있었다. 나만 열광한 것이 아니었다. 반말이 일상이며 욕설이 양념인 디씨 인사이드에서 키두니스트의 고전 리뷰툰은 언제나 찬양과 숭배의 대상이었다. 만화라는 장르의 장점을 마음껏 발휘한 작품이었다.

앞뒤 안 가리고 저지르고 보는 내 성격이 아주 가끔 순기능을 발휘하는 때도 있는데 키두니스트의 고전 리뷰툰을 알현했을 때가 그랬다. 이 멋진 콘텐츠를 좀 더 많은 사람이 볼 수 있도록 책으로 출간했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고 출판사를 물색하기 시작한 것이다. 한 번 본 적도 없고 이름도 모르는 작가를 위해서 일개 독자인 내가 혼자서 출간을 물색하는 엉뚱한 짓을 한 것이다. 그래도 출판사를 고르는 나름의 기준이 있었다.
 
고전리뷰툰
▲ 고전리뷰툰 고전리뷰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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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관련 책을 많이 내면서 매우 상식적이고 작가를 귀하게 대우하는 출판사이어야 했다. 책 읽기 운동에 가장 전력하는 '북바이북'이 최선이었다.

다행히 내가 점찍은 출판사와 작가는 의기투합했고 그 결과물이 <유머와 드립이 난무하는 고전 리뷰툰>이다. 고전 리뷰툰은 이 책의 장르에 가까운 표현이지 책 제목으로 적합하지는 않다. 그런데도 이 제목이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이 책이 고전 리뷰툰으로는 최초의 책이기 때문이다. 남들이 하지 않는 시도를 할 때는 보통명사를 고유한 것으로 삼을 기회가 있지 않은가.

<유머와 드립이 난무하는 고전 리뷰툰>이 내가 그동안 애지중지한 <만화로 독파하는> 시리즈와 구별되는 점은 우선 내용의 요약이 아니라 '읽기로의 초대'라는 점이다. 요약본은 그 책을 읽었다는 가짜 포만감에 그치지만 <유머와 드립이 난무하는 고전 리뷰툰>은 읽었다고 착각하거나 어려워서 감히 손을 못 댄 고전에 다가가고 싶은 호기심과 자극을 유발한다. 나만 해도 <데카메론>이라든가 <오 헨리 단편선>을 다시 읽고 싶다는 충동에 시달리고 있다.
고전리뷰툰
▲ 고전리뷰툰 고전리뷰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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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리뷰툰
▲ 고전리뷰툰 고전리뷰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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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어렵지 않고 전개가 독자와 눈높이를 함께 한다. 유럽으로 향하는 비행기에서 읽으려고 선택한 책을 읽다가 포기한 좌절을 보여주기도 하고 야한 표지 때문에 밖에서 읽지 못하는 고충을 털어놓기도 한다. 또 만화라는 장르의 장점을 최대한 활용하여 고전 리뷰로 독자들을 들었다 놨다 하는 긴장감을 발휘한다.

독자로서 감탄한 부분은 줄거리나 느낌을 늘어놓은 것이 아니고 해당 작가나 작품의 줄기를 뽑아내서 독자들에게 선사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에드거 앨런 포의 단편을 이야기하면서 작가의 클리셰를 짚어낸 부분이 그랬다. 에드거 앨런 포 소설의 특징은 이렇다고 한다. 소설의 8할은 1인칭 시점, 무한한 유럽 사랑 그런데도 미국인, 죽음에 대한 집착, 크든 작든 죽음과 함께 하는 점. 확실히 이런 뼈대를 알고 책을 읽는다면 또 다른 즐거움을 누리리라.

또 '유머와 드립이 난무하는'이라는 부제목에 걸맞게 요즘 세대 특유의 재미나고 절묘한 표현이 많다. 일단 리뷰가 재미나야 고전을 읽지 않겠느냐는 저자의 생각대로 고전을 어렵지 않게 접근할 수 있도록 소개한 노력도 돋보인다. 무엇보다 각 장마다 집필 후기를 주로 담은 'behind story'도 다른 서평 책과 차별되는 재미난 구성이다. 저자의 성장 과정을 지켜보는 재미도 있다.
  
고전리뷰툰
▲ 고전리뷰툰 고전리뷰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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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었다고 생각한 고전마저도 새로운 읽는 재미와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이 <유머와 드립이 난무하는 고전 리뷰툰>의 장점인데 명색이 '사지 않고는 못 배기는 서평'을 목표로 삼는 나조차도 이 책을 읽으면서 정신없이 장바구니에 책을 담았다.

장바구니에 담아두고 거의 1년간 결재 여부를 고민 중이었던 책이며, 책을 꽂을 때는 그 높이도 중요하게 생각하는 키두니스트가 항상 가까이 자주 볼 수 있도록 눈높이에 꽂아둔다는 에드거 앨런 포 전집도 마침내 구매 버튼을 눌렀다. 시공사에서 나온 6권 전권 세트인데 이미 절판되어서 더 망설이다가는 후회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유머와 드립이 난무하는 고전 리뷰툰>을 읽고 난생 처음 종이 책을 원망하게 되더라. 종이 책으로 읽고 싶어서 일부러 웹에서 연재한 고전 리뷰툰을 읽지 않았는데 종이 책의 태생적인 한계 때문에 그 상당수가 여전히 인터넷에 묶여 있다. 내용이 좀 더 많았으면 좋았겠다. 그것만이 아쉬울 따름이다. 

고전 리뷰툰 - 유머와 드립이 난무하는

키두니스트 (지은이), 북바이북(2021)


태그:#고전, #리뷰툰, #북바이북, #키두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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