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2021년 4월 7일 재·보궐선거가 치러집니다. <오마이뉴스>에서는 각계각층 유권자의 목소리를 '이런 시장을 원한다!' 시리즈로 소개합니다. '뉴노멀' 시대 새로운 리더의 조건과 정책을 고민해보는 기회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편집자말]
 윤동주 시인의 기일을 이틀 앞둔 지난 2월 14일 오후 서울 서초구 방배역 스크린도어에 시인의 서시가 적혀 있다.
 자료사진. 서울을 가리켜 "눈뜨고도 코 베이는 곳"이라 하던 옛말의 뜻을 두고두고 되새기게 된 사건은 신촌역 4번 출구로 향하는 계단 위에서 벌어졌다.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나는 이십 대 중반에 처음 강사 일을 시작했다. 당시 내가 근무했던 학원은 서울 서대문구 신촌에 있었는데, 읍 단위 시골에서 나고 자라 그때까지도 촌티를 벗지 못한 내게 그곳은 마치 신세계나 다름없었다. 출퇴근 길마다 서울이라는 거대한 도시가 주는 위압감에 바짝 얼어붙어서 정신없이 사방을 두리번거리곤 했다. 돌이켜 보면 아는 사람도 없고 의지할 곳도 없는 서울에 손바닥만 한 방을 얻어 혼자 살다 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서서히 주눅 들었던 모양이다.

늘 사람들로 북적이던 복잡한 신촌 거리를 가로질러 학원에 갈 때면, 서울을 가리켜 '눈뜨고도 코 베이는 곳'이라 하던 옛말이 절로 떠올랐다. 내가 그 말의 뜻을 두고두고 되새기게 된 사건도, 바로 그즈음 거기서 벌어졌다.

나는 그날 신촌역 4번 출구로 향하는 계단 위에서 봉변을 당했다. 생전 처음 보는 웬 남자가 어디선가 불쑥 튀어나와선 내 오른쪽 엉덩이를 꽉 움켜쥐었다가 그대로 달아나 버린 것이었다. 아래위로 정장을 빼입고 한 손엔 서류 가방을 든, 멀쩡해도 너무 멀쩡해 보이는 삼십 대 중반의 젊은 남자였다. 머릿속이 새하얘지면서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놈이 유유히 출구를 빠져나가고 난 뒤에야 정신이 돌아왔다. 나라는 인간의 존엄이 길바닥에 널브러진 기분이 들었다.

시간이 흘러 내가 그날 겪은 일이, 여자들 사이에선 '난이도 하'에 해당하는 상당히 가벼운 에피소드일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좌절했다. 반지하 방에서 자취를 하던 친구는 여름에 창문을 열고 자다가 방충망을 뚫고 들어온 이웃 남자의 커다란 손을 목격한 이후, 학을 떼고 서울을 떠나 고향으로 돌아갔다. 몇 년 전 함께 일했던 동료 강사는 헤어진 남자친구가 한 달 넘도록 계속 집 앞으로 찾아와 다시 만나 줄 것을 요구하며 협박하기에 결국 경찰까지 불렀지만, 별 소용이 없었단다. 그녀는 직장을 관두고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자취방을 옮겼다.

2019년 기준 서울시는 전체 380만 가구 중 34%에 달하는 130만 가구가 1인 가구다. 그리고 그중 여성의 비율은 절반이 조금 넘는 53%에 이른다. 나는 나를 포함한 그 53%의 안전이 늘 걱정스럽다. 그간의 직·간접 경험을 종합해 본 결과, 서울은 여성들에게 결코 호락호락한 도시가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노력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서울시는 그동안 '여성 안심 특별시'라는 슬로건 아래 다양한 여성 정책들을 펼쳐왔다. 24시간 운영되는 편의점의 특성을 살려 서울시 800여 개 편의점을 '안심 지킴이 집'으로 위촉해 위기 상황 시 긴급 대피소가 되도록 한 것이나, 여성들의 늦은 귀갓길에 동행이 되어주는 '안심 스카우트 제도' 등을 운영해 온 것도 그 일환이다.

혼자 사는 여자도 안심할 수 있는 안전한 서울
 
 4·7 서울시장 보궐선거 사전투표 첫날인 2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남가좌1동 주민센터에 마련된 사전투표소를 찾은 유권자들이 투표하고 있다.
 4·7 서울시장 보궐선거 사전투표 첫날인 2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남가좌1동 주민센터에 마련된 사전투표소를 찾은 유권자들이 투표하고 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그러나 최근 있었던 노원구 세 모녀 살인 사건만 보더라도, 여성을 대상으로 한 범죄는 나날이 더 치밀하고 잔혹해지는 반면 우리의 치안 정책은 몇 년째 비슷비슷한 수준에서 반복되는 것만 같아 안타깝다. 우리에게는 조금 더 섬세하고 실효성 있는 대책이 필요하다. 어두운 골목과 인적이 드문 외진 지역 내 가로등과 CCTV 설치를 늘리고, 여성 주거 중심지에 대한 상시 순찰을 강화해야 한다. 또한, 지역 내 성범죄자의 동선을 파악하고 혹여라도 재범의 가능성은 없는지 철저히 관리 감독해야 한다.

물론 이 모든 것들이 현재 진행형인 사안임을 안다. 다만 나는 '단계적인 시행 후 점차 확대'라는 말이 좀 지겹다는 것이다. 이젠 '대대적인 시행 후 끊임없는 보완' 쪽으로 방향을 틀고, 조금 더 공격적인 방법으로 서울시의 안전을 도모할 때다.

나는 신촌역 사건 이후로 거의 3년간 지하철을 타지 못했다. 역내에서 정장 차림에 서류 가방을 든 젊은 남자만 보아도, 혹시 그때 그놈이 아닌가 싶어 손이 덜덜 떨려서다. 그러고 보면 서울이라는 도시에 정나미가 뚝 떨어졌을 법도 한데, 나는 여전히 서울에 살고 있다. 그것은 내가 사랑하는 일과 사람, 그리고 내가 오랫동안 소중히 가꿔온 미래가 아직 이곳 서울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번 4월 7일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혼자 사는 여자도 안심할 수 있는 안전한 서울'을 만드는 일에 앞장설 수 있는 배려 깊고 배포 있는 시장이 뽑혔으면 하는 바람이다. 무엇보다 적극적인 의지를 갖고 발 빠르게 추진할 수 있는 실천력 있는 후보자가 차기 시장감이라 굳게 믿는다.

최근 후보들의 공약을 찾아 읽다가 거기에, 꽤 여러 날 고심한 흔적이 엿보이는 다수의 여성 정책이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무척 반가웠다. 내 소중한 한 표가 부디 정책의 실현까지 이어질 수 있도록, 설레는 마음으로 기꺼이 투표에 동참할 생각이다. 어쩌면 내가 바라는 서울, 또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바라는 서울의 시작이 바로 그 작은 투표용지 안에 담겨 있을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