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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보. 드디어 다 썼어요! 내가 읽어 볼 테니 들어보고 좋은 점, 아쉬운 점 말해줘요."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다.
 "여보. 드디어 다 썼어요! 내가 읽어 볼 테니 들어보고 좋은 점, 아쉬운 점 말해줘요."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다.
ⓒ pex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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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글을 쓰기 전, 먼저 종이에 몇 개의 문장을 쓰고 시작한다. '난 할 수 있다' '나만이 쓸 수 있는 글이 있다' 등의 자기 암시 문장이다. 종이를 노트북 바로 옆에 놓고 심호흡을 크게 한 번 한다. 그리고 한글 파일을 열고 글을 쓴다.

나는 글쓰기가 어렵다. 글 한 편을 쓰려면 마른 수건을 쥐어짜듯 쓴다. 내게는 대충 뭉뚱그려진 생각만 있다. 이것을 글로 쓰기 위해서는 명료하고 생생한 표현으로 바꿔야 하는데 그 과정이 정말 쉽지 않다. 나는 남편을 찾는다.

"여보, 내가 이번에는 우리반 애들 데리고 숲에 다녀온 것에 대해 쓸까 하거든요. 소재 어떤 것 같아요?"
"괜찮을 것 같은데요. 한 번 써 봐요. 애들이랑 숲에 가서 뭐 했는데요?"
"숲에서 봄이 오는 모습을 찾아봤어요. 새순이랑 꽃눈이 돋아나는 걸 봤는데..."


나는 그날 있었던 일, 내가 보고 들은 것 등을 남편에게 하나하나 이야기한다. 나만 혼자 일방적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남편과 긴 대화를 나눈다. 그러고 나면 생각이 어느 정도 정리돼 내가 무엇을 써야 하는지, 글을 통해 전하고 싶은 바가 무엇인지 감을 잡는다. 글쓰기가 한결 수월해진다.

감정만 상하고 끝났던 대화, 지금은

예전에는 남편과의 대화가 참 힘들었다. 서로 각자의 할 일이 많고 피곤하다는 이유로 업무적인 관계처럼 필요한 말만 했던 때가 있었다. 공과금을 냈는지, 언제 가족 행사가 있는지 등의 전달과 확인 위주의 대화를 했다. '나는 이만큼 힘들다' '내가 더 힘들다' 같은 말을 주고받다 결국 서로 듣고 싶은 이야기는 듣지 못한 채 감정만 상하고 대화가 끝나버리는 경우도 잦았다.

그런데 지금은 매일같이 남편과 '삶'을 바탕으로 시시콜콜한 수다를 떤다. 정말 한 사람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일상을 나누는 느낌이 든다. 그야말로 남편과 베스트프렌드가 돼 버렸다. 처음에는 글쓰기를 더 잘하고 싶은 마음에 조언을 얻고자 남편에게 말을 건넸다. 글쓰기의 수단으로 시작했던 대화의 장이 평소 좀처럼 말로 하기 어려웠던 생각과 감정들까지 말하게 하며 서로의 마음을 오가게 만들었다.

우리 부부의 대화 모습이 달라진 이유를 생각해 봤다. 그것은 내가 남편에게 내 생각과 감정, 마음에 남는 순간들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했기 때문인 것 같다. 글쓰기를 목적으로 대화를 하다 보면 그런 것들을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안방 내 작은 책상 위 노트북 앞에 앉아 며칠을 쓰고 지우고를 반복하다 마침내 초고를 완성한다. 나는 남편을 부른다.

"여보. 드디어 다 썼어요! 내가 읽어볼 테니 들어보고 좋은 점, 아쉬운 점 말해줘요."

내가 쓴 글을 남편 앞에서 소리 내어 읽는다.

성인이 돼 나의 한계가 여실히 드러나는 글을 누군가에게 읽어준다는 것은 꽤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다. 특히 남편에게는 더 그렇다. 오히려 나를 모르는 사람 앞에서 읽는 것이 더 쉬울 수도 있다. 처음에는 나도 남편에게 선뜻 내 글을 읽어주지 못했다. 좋은 글을 쓰고자 하는 욕망이 부끄러움을 이겨냈다. 남편과 더 가까워지고 싶고, 더 나누고 싶은 마음이 용기를 내게 했다.

글을 쓰고 읽고 듣는 사이

내가 글을 읽을 때면 남편은 하던 일을 멈추고 내게 집중한다. 그땐 남편이 나를 아내가 아닌 한 사람의 존재로 봐주는 것 같아 조금 벅차다. 이제 나는 더이상 부끄럽지 않다. 남편이 오롯이 내 목소리에 귀 기울여주는 이 시간을 좋아할 뿐이다. 내가 글을 다 읽고 나면 남편은 내 글의 첫 번째 독자로서 솔직한 피드백을 해준다. 그 피드백은 늘 꼼꼼하고 정성스럽다.

나는 글쓰기를 하며 남편을 다시 보게 됐다. 단순히 내 글을 읽어주고 조언해줬기 때문만은 아니다. 글을 쓰면서 우리가 함께 나눈 수많은 대화의 시간들이 그렇게 생각하게 만들었다. 이기적인 줄 알았던 남편은 꼭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는 사람이었다. 유약한 줄 알았지만 섬세하고 따뜻한 시선을 가진 사람이었고, 고지식한 줄 알았지만 삶의 태도가 정직한 사람이었다. 매일 이야기를 나눠보니 남편은 그런 사람이었다.

남편은 말한다. 당신의 글과 마음을 읽는 그 시간이 참 귀하고 좋다고. 나는 할머니가 되어서도 남편과 마주 앉아 내 글을 읽어주고 싶다. 오래도록 그렇게 당신에 대한 믿음과 사랑을 표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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