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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서는 1948년 4월 3일부터 1954년 9월 21일까지 피 바람이 불었다. 사건의 희생자는 공식적으로 1만4532명 대부분이 무고한 제주도민이다. 정부는 도민을 공산주의자로 몰았고 사건을 은폐하려고 했다. 피로 물든 유채꽃은 노란빛으로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시간은 흘러갔지만 감출 수 있는 진실은 없다.
 
오늘도 잠들지 않는 남도 한라산
그 아름다운 제주도의 신혼여행지들은 모두
우리가 묵념해야할 학살의 장소이다.
그곳에 핀 유채꽃들은 여전히 아름답다.
그러나 그 별들과 꽃들은
모두 칼날을 물고 잠들어 있다.
- 시집 <한라산> 서시 중에서 이산하 지음

1987년 시인 이산하는 제주 4.3 항쟁을 소재로 시를 썼다. 아무도 말하지 않은 제주 4.3의 한을 시집으로 출간했고 군정부는 시집을 이적표현물로 판정했다. 시간은 흘러 군정부가 감추려고 했던 진실은 민주 정부가 들어와 많은 것이 밝혀졌고, 2000년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 공포됐고, 진상조사에 착수했다.
 
악의 평범성, 이산하(지은이)
 악의 평범성, 이산하(지은이)
ⓒ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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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결과 제주 4.3 사건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장대와 토벌대간의 무력충돌과 토벌대의 진압과정에서 수많은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으로 정의됐다. 대통령은 제주 4.3 사태에 대해 추도했다. 모든 진실이 밝혀져 한이 풀린 제주도는 이제 학살의 흔적이 신혼여행지로, 이국적인 도시로 잊히는 것 같다. 그렇게 모든 사건은 해결된 것처럼 보인다.
 
게난 훗설 잘 살게 되영
거들거리멍 까부럼수광
무싱 것들 햄수광
무신 웬수고치 경들 싸우지들 맙주
영정 죽어나게 사랑이나 허당 갑주
무자년 4.3 터정 반백년이 넘었수게
경허난 이제사
끝나감수광, 아아! 끝났쑤광

끝나지 않았수광 아직도
끝날 것 같지 않수광 영영
이름난 동산에 일 년에 혼 번씩

모일 사람 다 모영들
용서와 화해와 상생과 평화만 노래햄수광
시벌겅허당 버청 희영해진 눈물만
- 시집 <허물어진 집> 4.3의 노래 전문 문충성 지음

진실은 밝혀졌지만,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시인은 노래한다. 모두 끝난 것 같은 이 사건에 제주 4.3 항쟁의 아픔을 아직 잊어서는 안 된다고 노래한다.

끝난 것처럼 보이는 제주 4.3 항쟁에 아직 해결되지 않은 상처들은 많다. 2020년에 조정래 소설가는 "당시 2만인지 3만인지, 아니면 더 죽었을지 모르는 참혹한 비극을 제주도가 겪었다", "지금도 4.3 희생자들의 유골이 발굴되고 있다"라고 말했다. 공식적으로 신고된 희생자 말고도 더 많은 희생자가 제주도 땅에 암매장되었다. 지금도 제주도에선 이름조차 알 수 없는 유골이 발견된다.

살아 있는 사람의 억울함도 남아 있다. 2020 4.3트라우마 센터 성과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 5월 제주도에 4.3 트라우마 센터가 개소하고 그해 말일까지 이용자는 1만 699명이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조사를 통해 4.3항쟁에 내린 정의를 무시하고 자신이 믿는 이념에 따라 4.3 항쟁을 공산주의자들이 일으킨 반란으로 믿는 사람이 있다. 그들은 군의 제주도민 학살을 정당하다고 주장해 진실을 왜곡한다. 그 주장들은 살아 있는 제주도민을 1948년 총과 칼로 상처를 준 것처럼 말과 글로 상처를 주고 있다.

70년이 지난 제주의 현무암 깊은 곳에는 그때의 상처에서 피가 계속 흘러나오고 있다. 1987년 시집 <한라산>이 발간됐지만 2021년 지금도 제주의 유채꽃과 별들은 칼날을 물고 잠들어 있다고 한 것처럼 씻기지도 씻을 수도 없는 피와 한은 남아 있다.
 
청동 제사상 위 소박하게 진설된 제물들을 보며
자정의 제례가 끝나기를 기다리다 끝내
졸음을 쫓아내지 못하고 꾸벅꾸벅 조는 아이처럼
서로의 부리와 부리를 맞대고
대를 잇는 기억을 나누며
오늘을 잊지 말자고
부디 잊지 말자고

마치 환생의 순간을 보여주기라도 하는 듯
숲의 생명들이 다시 하나가 되는 날
한라산 까마귀들도 함께 음복하는 제삿날

- <검은 돌 숨비소리> 산전山田.3 중에서 이종형 지음

제주 항쟁 70주년이 지난 2018년에도 4.3 제주 항쟁을 기억하기 위한 시는 나와서 억울한 제주도민을 기억하려 하고 있다.

시인은 그들의 상처를 위로하고 잊지 않기 위해 쓰고 있다. 2010년 당진 철강업체에서 직원이 용광로에 빠져 숨지는 사고가 있었다. 사람들은 안타까워했지만 나와 관련 없는 사건이라 생각하고 공감하지 않았다. 시인은 그 슬픔을 시로 승화시켜 뉴스 댓글에 남겼다.
 
광염(狂焰)에 청년이 사그라졌다.
그 쇳물은 쓰지 마라.

자동차를 만들지 말 것이며
가로등도 만들지 말 것이며
철근도 만들지 말 것이며
바늘도 만들지 마라.

한이고 눈물인데 어떻게 쓰나.
(하략)
- 시집 <그 쇳물 쓰지 마라> 전문 제페토 지음

곧 잊힐 사고 뉴스 댓글에 적힌 시는 사람들이 슬픔에 공감할 수 있게 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게 만들었다. 이후 10년 지난 2020년 <그 쇳물 쓰지 마라>라는 시는 노래가 되어 잊어서는 안 되는 슬픔을 기억하는 챌린지가 되었고, 노래와 더불어 중대재해처벌법의 제정 촉구로 나아갔다. 시는 사람들이 공감하게 했고, 변화를 일으켰다. 그렇게 우리는 아직도 그 억울한 죽음을 기억하고 있다.

잊히면 안 되는 것들
 
"광주 수산시장의 대어들."
"육질이 빨간 게 확실하네요."
"거즈 덮어놓았습니다."
"에미야, 홍어 좀 밖에 널어라."

1980년 5월 광주에서 학살된 여러 시신들 사진과 함께
어느 인터넷 사이트에 올라 있는 글이다.

"우리 세월호 아이들이 하늘의 별이 된 게 아니라
진도 명물 꽃게밥이 되어 꽃게가 아주 탱글탱글
알도 꽉 차 있답니다~."

요리 전의 통통한 꽃게 사진과 함께 
페이스북에 올라 있는 글이다.

- 시집 <악의평범성> 악의 평범성1. 일부 이산하 시인

죽은 자는 말할 수 없다. 피해자가 말할 수 없으니 죽음은 너무나 쉽게 잊히고 왜곡된다. 그 왜곡은 진실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또 다른 상처를 준다. 시인은 그런 죽음에 대해 잊지 않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 생각으로 남긴 추모와 위로가 담긴 시로 독자는 그들을 잊지 말라고 말한다. 그것이 살아남은 우리가 그들에게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방식이다.

억울하게 죽은 자들을 위로하는 기념일이 많은 4월 시인은 그들을 기억하기 위한 시를 남겼다. 그 시로 상처받은 사람을 기억하고 위로해 보는 것은 어떨까?

악의 평범성

이산하 (지은이), 창비(2021)


태그:#4.3 항쟁, #허물어진 집, #검은 돌 숨비소리, #악의 평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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