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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월 22일 서울 문화체육관광부 앞에서 전국의 예술강사들이 '시수통제, 사전검열'을 규탄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3월 22일 서울 문화체육관광부 앞에서 전국의 예술강사들이 "시수통제, 사전검열"을 규탄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 이지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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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8년째 초등학교에서 연극을 가르치는 예술강사입니다.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가 학교에 예술가를 파견하여 예술교육을 시작한지도 20여년이 지났습니다. 문체부 산하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이하 진흥원)이 주체가 되어 예술강사지원사업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초창기 진흥원은 예술가들과 좋은 파트너십을 가지고 있었다고 선배들은 말합니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조직이 커지면서 진흥원은 이 나라의 건강한 예술교육을 만들어가는 파트너가 아닌 노무 관리자로 전락하였습니다. 노동자로서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인 노동권은 무시되고, 교육현장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는 탁상행정으로 예술강사와 교사의 업무에 큰 지장을 일으켰습니다.

구체적인 사건의 발단은 다음과 같습니다. 지난 2월, 개학을 불과 일주일 앞두고 진흥원은 기습적으로 지침을 발표하였습니다. 바로 주 14시수, 월 59시수 제한과 사전 검열에 대한 내용이었습니다. 예술강사는 출강 전에 수업 계획 및 일정을 승인받아야 하며, 변경사항이 생길 때마다 진흥원에 승인을 받아야 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만약 승인을 받지 않을 경우 수업을 해도 수업료를 지급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한 강사가 여러 학교의 수업을 맡을 경우, 한 주의 14시간 일정을 세 학교와 함께 협의를 해야 하는데, 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입니다. 전국의 5000여 명의 예술강사들은 일주일 뒤 개학을 앞둔 상태에서 수업일정을 모두 재조정하여야 했고, 많은 예술강사들이 시수제한 조건을 맞출 수 없어 수업을 포기해야만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이에 분개한 예술강사들은 진흥원에 강하게 항의했고, 현재 전국적으로 문체부와 교육청 앞에서 1인 시위와 집회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저는 예술강사의 이번 사태가 가지고 있는 사회적 의미를 세 가지 측면에서 짚어보고자 합니다.

초단시간 노동자를 아시나요?
 
3월 22일 청와대 앞에서, 후보시절 대통령님이 약속한 예술강사 처우 개선에 대한 약속 이행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3월 22일 청와대 앞에서, 후보시절 대통령님이 약속한 예술강사 처우 개선에 대한 약속 이행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이지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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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에서 예술강사지원사업을 설계할 때 주 14시간 이하 초단시간 노동자로 설계하였습니다. 명목상으로는 예술활동을 병행해야 한다는 이유였지만, 사실은 예산상의 문제였습니다. 주 15시간 이상, 월 60시수 이상이 되면 그때부터 주휴수당, 연차휴가, 퇴직금 등 근로기준법에서 보장하는 노동자로서의 대우를 해줘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실제 교육현장의 특성상 주 14시간을 초과하고 월 60시간 이상의 수업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에 진흥원은 강의 시수 입력 시스템을 통제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사전검열이라는 무리수를 두면서까지 수업시수를 통제하려고 하였습니다. 예술교육의 높은 질을 위해서라도 예술교육 노동자들에 대한 충분한 지원이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강사들을 일회용품처럼 취급하며 강사들의 자존감에 큰 상처를 남기었습니다.

예술강사는 4대보험에서 건강보험이 빠진 3대보험만 보장받습니다. 10년 20년 넘게 일을 했어도 퇴직금 한 번 받지 못 합니다. 진흥원과 문체부는 예산을 줄이기 위해 예술강사에게 초단기 노동자라는 굴레를 씌워, 노동자로서 당연히 누려야 할 권익을 훼손하고, 교육현장에서 이루어지는 실제 수업 일정과 다른 강의 시수를 입력할 수밖에 없는 편법을 쓰게 만들고 있습니다.

또한 2020년, 전대미문의 팬더믹 상황으로 전 국민이 힘든 시기에, 예술강사들 역시 수업은 한 없이 연기되었고, 강의를 하지 못 하는 동안 수입이 한 푼도 없었습니다. 심지어 코로나 19 긴급고용안정지원금조차 고용보험 가입 대상이라는 이유로 받을 수 없었습니다.

저는 초단시간 노동자에 대한 법 규정은 앞으로 폐기되어야 하는 악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악법이 사라지지 않는다면 미래의 우리 아이들도 초단시간 노동자라는 굴레에서 정당한 노동 권리를 보장받지 못 하고 힘들게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학교예술교육 실무조직 팀장은 노무사, 적절한가 

만약 당신의 아이를 입학시키는 학교의 교장이 교육전문가가 아닌 다른 직종의 사람이라면 그 학교에 대해 당신은 신뢰할 수 있을까요? 그렇다면, 학교예술교육을 이끄는 실무조직의 팀장이 예술교육 전문가가 아닌 노무사라는 사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예술교육과 조금의 공통점도 없는 노무의 관점에서 바라본 예술교육이란 어떤 것일까요? 예술교육 전문가를 양성하여 질 높은 예술교육 서비스를 국민에게 제공하여야 할 의무가 있는 국가기관에서 노무의 관점으로 학교예술교육을 이끌고 있습니다.

진흥원은 법적으로 초단시간 노동자의 조건에 예술강사들을 꿰맞추기 위해 주 14시수 월 59시수 제한과 함께 사전검열을 기습적으로 공지하였습니다. 이 정책은 과연 어떻게 나온 것일까요? 

혹시 아이들의 창의와 인성을 육성하는 교육으로서 예술교육이 노무의 관점에서 이루어지는 게 아닌지 의심이 가는 대목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질 높은 예술교육을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학교예술교육 팀장이 노무사라는 사실 그 자체가, 2021년 오늘날 대한민국 학교예술교육의 수준을 보여주는 증거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학교예술강사 시급은 예술 노동자의 급여 기준
 
2021년 3월 29일 제주도 예술강사들이 교육청 앞에서 릴레이 1인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 교육청 앞에서 1인시위 하는 예술강사들 2021년 3월 29일 제주도 예술강사들이 교육청 앞에서 릴레이 1인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 이지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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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사료는 20년 동안 딱 한 번 3000원이 올랐습니다. 물가상승률을 따지지 않아도 어처구니 없는 숫자입니다. 또한 시수 제한으로 한 강사가 받을 수 있는 평균 임금은 월 100만원도 되지 않습니다. 많은 예술강사들이 투잡, 쓰리잡을 뛰고서야 겨우 일상인으로서 생계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진흥원은 왜 이렇게 인색한 것일까요?

물론 예산때문이겠죠. 하지만 더 중요한 건, 학교예술강사의 시급이 단순히 예술강사들만의 문제는 아니라는 점입니다. 진흥원이 내정한 예술강사 시급은 지역과 마을, 사회복지기관에서 이루어지는 예술 활동가들의 기준 시급으로 적용되고 있습니다. 지역과 마을에서 이루어지는 예술 활동은 단순히 강의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공연이나 전시 등 외적 결과물을 도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시말해 강의 시간 외에 들어가는 예술노동의 양은 훨씬 많습니다.

공연을 올릴 경우, 교육 시간에는 연습을 하고, 교육 외 시간에는 대본과 공연 제작을 위한 여러 일들을 진행해야 합니다. 이러한 노동의 수고에 대한 대가는 전혀 고려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 누구보다 문화예술의 사회적 가치를 아는 진흥원과 문체부가 예술가들을 초단시간 노동자로 대우하고 있다는 것에 저와 많은 예술강사들은 분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최고은 시나리오 작가가 돌아가신지 10년이 되었습니다. 여전히 많은 예술가들이 생계를 위해 본업인 예술활동에 전념하지 못 하며 투잡, 쓰리잡을 뛰고 있습니다. 예술 노동자들의 안정적인 수입을 보장하고 한국 문화예술의 풍요를 일구기 위해서라도 학교예술강사에 대한 처우는 개선되어야 합니다.

예술교육은 후학양성을 위한 필수 예술활동입니다. 에술강사들은 교육자이면서 예술인이고, 또한 노동자입니다. 이런 복잡한 정체성 때문에 예술강사는 20여년 간 정부 어느 부처에서도 제대로 된 처우와 인정을 받지 못한 것이 사실입니다. 이제라도 대한민국의 예술교육이 안정화될 수 있도록, 예술교육의 최첨단에 서 있는 예술강사의 정체성을 존중하고, 처우를 개선해 주시기를 온 마음으로 당부드립니다.
 

덧붙이는 글 | 필자는 예술강사, 극작가, 연극심리상담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태그:#예술강사, #초단시간 노동자, #문화예술교육, #탁상행정, #문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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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예술치유센터 '예술로 행복' 대표 https://yeslowhappy.modoo.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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