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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야 괜찮다 쳐도 나중에 나이 들어 봐. 그땐 후회할 걸."

비혼으로 사십대 초반까지만 해도 엄마를 비롯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이런 걱정을 들었다. 오십을 넘기고 나니 걱정의 내용이 달라진다. 결혼해서 출산할 수 있는 가능성이 희박해진 나이여서 그런지 제3자의 걱정은 다행히 줄었고, 대신 엄마의 걱정은 결이 달라졌다.

"나는 너가 챙겨주니까 다행이지만, 너는 늙었을 때 널 챙겨줄 사람이 없잖아. 엄만 그게 가장 큰 걱정이야."

요즘 내 삶은 조금 조정되었다. 여태까지는 생활이 내 위주의 패턴이었다면, 지금은 엄마를 염두에 두고 내 시간을 짠다. 여든을 넘긴 엄마에게 내 시간과 돈, 마음을 투자하자는 결심을 했기 때문이다.

조금 덜 벌더라도 엄마와 시간을 많이 보내고, 엄마가 존중받는다는 느낌을 갖도록 최선을 다하려고 한다. 그런 나를 보며 엄마는 고마우면서도 한편으로는 걱정이 돼서인지, 전과는 다른 걱정을 털어놓곤 하신다.

자식이라는 것. 나는 낳아보지 않았으니 자식이 있는 미래를 그려볼 수 없다. 내가 그릴 수 있는 건 자식이 없더라도 엄마가 걱정하는 그런 삶을 살지 않는 그림이다. 하지만, 사회는 여전히 혼자 나이드는 사람에 대해 부정적이다.

애를 낳지 않아도, 애를 낳아도

지난 주 엄마와 함께 TvN의 <어쩌다 사장>이라는 예능 프로그램을 같이 보다가, 뜬금없는 장면을 접했다. 슈퍼마켓에 손님으로 온 노부부가 이런 말을 했다.

"자식이 없이 늙으면 개 밥의 도토리다. 자식이 많아야 행운이야."
 
 어쩌다 사장 한 장면.
 어쩌다 사장 한 장면.
ⓒ 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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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자리에서 유일하게 자식이 없는 조인성은 순간적으로 머쓱한 상황이 되었다. 노부부의 악의없는 말이었고, 어르신 세대의 가치관으로 당연히 할 수 있는 염려라는 걸 안다. 우리 엄마가 나를 보면서 하는 염려와 맞닿아 있는 지점일 것이다. 그래서 엄마가 한 마디 하시겠거나 했는데 다행히 엄마는 침묵하셨고, 나는 잠시 자식이 없어서 개밥의 도토리가 되는 내 노후를 강제적으로 그리게 되었다.

노후에 개밥의 도토리가 되지 않으려면, 아이를 낳아야 하나? 그런 고민을 안 한 건 아니다. 아이들을 예뻐해서 결혼보다 아이를 낳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그러나 그저 단순한 바람이었을 뿐, 사회적 분위기나 내 상황을 고려했을 때 나는 아이만 낳아서 키울 만한 용기가 없었다.

그래서 자발적 비혼모를 선택한 사유리의 선택이 쇼킹하면서도 신선했다. 그 생각까지 미치지 못했던 걸 보면 어쩌면 나는 그렇게 적극적으로 아이를 열망하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차마 가지 못한 길을 선택한 사유리를 응원하는 이유도 사유리가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가고, 자발적 비혼모로서의 좋은 롤모델이 되어줄 거란 기대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비혼모 사유리가 육아 예능 <슈퍼맨이 돌아왔다>에 출연하는 것에 대해 반대 청원이 올라왔다고 한다.

"비혼모 출산 부추기는 공중파 방영을 즉각 중단해 주세요."
 
 더 다양한 가족이 등장하면 좋겠다... 슈퍼맨이 돌아왔다 홈페이지 캡처
 더 다양한 가족이 등장하면 좋겠다... 슈퍼맨이 돌아왔다 홈페이지 캡처
ⓒ 슈퍼맨이 돌아왔다 홈페이지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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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 되면 공적인 사회적 차별에 해당하기 때문에 이야기가 달라진다. 청원인은 한국의 저출산과 결혼 기피현상을 언급하면서 "이럴 때일수록 공영방송이 '올바른' 가족관을 제시하고 결혼과 '정상적인' 출산을 장려하는 시스템과 프로그램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프로그램에서는 오히려 비혼모를 등장시켜서 청소년들이나 청년들에게 비혼 출산이라는 '비정상적인' 방식이 마치 정상인 것처럼 여겨질 수 있는 일본 여성을 등장시키려 하고 있다"고 하면서 '바람직한' 공영방송의 가정상을 제시해주길 요청한다고 말했다.

'올바른' 가족관은 무엇일까? 엄마와 아빠가 아들딸 구별 않고 둘만 낳아 잘 기른 4인 가족인가? 듣자니, 일부에선 이 청원을 독려하면서 "아버지의 부재 가운데 아이가 겪을 정신적 혼란과 고통, 결혼이 아닌 비혼의 테두리에서 출산한 모든 부정적이고 어려운 모습은 전혀 비춰지지 않고, 미화되어 방영할 때 어린이 청소년들의 결혼과 가정 가치관 형성에 매우 편파적이고 좋지 않을 영향을 끼칠 것으로 예상된다"는 카톡 메시지가 돌아다니고 있다고 한다.

다양한 삶을 존중하는 사회를 바란다
 
 유튜브 화면 캡처
 유튜브 화면 캡처
ⓒ 유튜브 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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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부재 가운데 아이가 겪을 정신적 혼란과 고통이라니. 아버지가 부재한 가정이 얼마나 많은데... 이들이 주변 한부모 가정에 어떤 편견을 가지고 있고, 어떤 식으로 대할지 선하게 그려진다.

또 '정상적인' 출산은 또 무엇인가? 구체적인 설명은 없지만, 글의 맥락으로 봤을 때 결혼이라는 제도를 통과한 사람만이 정상적인 출산을 한 것으로 판단한 듯 보인다. 청원인은 이렇듯 비정상적인 방식이 정상인 것처럼 여겨질까 봐 걱정이 된다고 한다.

정상과 비정상의 기준은 무엇이고, 그것을 정한 사람은 누구일까? 국가가 정했다 치더라도, 그것은 모든 국민이 반드시 지켜야 하는 절대적이고 영구불변한 진리는 아니다.

비혼을 이야기하면, 저출산 문제를 여성들 문제로 탓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젠 여성이 아이를 낳아도 뭐라고 한다. 올바르게 정상적으로 낳으라고. 비혼을 선택한 것도, 결혼을 선택한 것만큼 존중받아야 할 개인의 선택이다.

세상에는 수많은 삶의 결이 있고, 사람마다 가정마다 사정과 서사가 있다. 그런 배경 위에서 사람들은 결혼을 선택하거나 비혼을 선택한다. 출산도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옳다, 그르다, 정상이다, 비정상이다 하면서 판단할 만한 자격이 누구에게도 없다.

자신과 다른 삶에 대한 존중 없이, 비혼 출산을 정상과 비정상의 개념으로 가르고, 올바름과 올바르지 않음으로 정죄하려 드는 것은 엄연한 편견과 혐오다. 청소년과 청년들에게 전파될까 두려워해야 할 것은, 그런 혐오와 편견 아닐까.

그래서 나는 사유리씨의 유쾌하고 당당한 자발적 비혼모의 삶을 계속 보고 싶다. 사유리씨가 출연한다면, 대박이 이후 끊은 <슈퍼맨이 돌아왔다>를 꼭 볼 예정이다. 다양한 삶을 존중해 주는 사회가 될수록 그 누구의 삶도 개밥의 도토리로 평가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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