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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념공원 안 전통 가옥 사랑채에 봉안된 허균 영정
 기념공원 안 전통 가옥 사랑채에 봉안된 허균 영정
ⓒ 나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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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글쓰기 수준은 장르를 가리지 않고 최고의 경지에 이른다. 명나라 사신으로 1606년 조선에 왔을 때 허균을 만났던 주지번(朱之蕃)이 "허균의 문장은 활달하고 여유가 있으면서도 아름답고 밝아 명나라 왕세정(王世貞)의 만년의 작품과 같고, 그의 시는 끝까지 꿰뚫었으면서도 어휘가 풍부하고 화려하여 명나라 변공(邊貢)의 청치(淸致)가 있다."고 평한 대로이다. 

「한정록(閑情錄)」의 머릿말은 선비로서 현실적인 관직과 이상적인 처사 사이에서 고뇌하는 모습을 유려한 필치로 담고 있다. 그는 아쉽게도 이상의 꿈을 이루지 못한 채 참형을 당하고 만다. 

아아! 선비가 이 세상에 태어나 어찌 벼슬을 더럽다 여겨 버리고 세상을 피해 살고자 하겠는가? 다만 자신의 도(道)가 세상과 맞지 않고 자신의 운명이 시대와 어긋나기에 고결한 지조를 지키고자 세상을 피한 자라면 그 뜻을 슬퍼할 만하다.

요순시대에는 요임금과 순임금을 군주로 삼아 임금과 신하가 한마음으로 정사를 의논하니 나라가 잘 다스려졌다. 그런데 도 소부와 허유 같은 이들은 귀를 씻거나 표주박마저 내던지며 마치 제 몸이 더럽혀진 것처럼 세상을 버리고 떠났으니, 이들은 또 무슨 생각이었을까.

지금 내 나이 벌써 마흔둘이 되어 머리숱은 줄어들었건만 잘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세월은 쏜살같이 지나가는데 이룬 일은 아무것도 없다.
 
 
 '국조시산', 허균이 엮은 시선집. 1706년에 간행된 목판본
 "국조시산", 허균이 엮은 시선집. 1706년에 간행된 목판본
ⓒ 한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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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생각해 보니 내 자신이 애처롭다. 나는 최상의 경지라는 사마승정이나 방덕공처럼 산과 계곡에서 마음껏 뜻을 펼치고 살지 못했다. 그 다음 경지라는 상징이나 도홍경처럼 자녀를 다 혼인시킨 뒤 먼 곳으로 떠나거나 벼슬을 그만두고 속세를 떠나지도 못했다. 그 아래 경지라는 사령운이나 백거이처럼 벼슬길에 머물면서 고결하고 드넓은 마음을 자연에 깃들이지도 못했다.

벼슬살이에 급급해서 한 해 내내 편안한 날 없이 작은 이해관계에도 마음이 위축되었고, 칭찬하거나 헐뜯는 시끄러운 소리에 마음이 동요되었다. 그리하여 발걸음을 머뭇거리고 숨죽이고 살며 함정에 빠지지 않기만 바랄 뿐이었다. 기러기가 날듯이, 봉황새가 날듯이, 매미가 허물을 벗듯이 혼탁한 세상을 떠난 옛 현인들과 비교해 볼 때 저들의 지혜로움과 내 어리석음이 어찌 하늘과 땅의 차이뿐이겠는가!

성성옹(허균)은 작은 재주로 아직 도(道)를 듣지 못했지만 태평성대에 태어나 당상관 벼슬에 오르고 국왕의 교서를 작성하는 직책을 맡고 있다. 그러니 어찌 감히 소부와 허유의 뒤를 따라 요순 같은 임금을 차마 저버리고 스스로 고상하다 여길 수 있겠는가. 그러나 시대와 운명이 어긋나 옛사람이 탄식하던 것과 비슷한 점이 있으니, 만약 건강한 시절에 벼슬에서 물러나 천수(天壽)를 다 누릴 수 있다면 이보다 더 다행한 일이 없을 것이다.

훗날 내가 숲속에 살 때 세상을 버리고 속세의 인연을 끊어 버린 선비를 만나 이 책을 꺼내 놓고 함께 품평하고 토론한다면 내 타고난 본성을 저버리지 않을 것이다. (주석 10)

주석
10> 정길수, 앞의 책, 209~212쪽, 발췌.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인물열전] 호방한 자유인 허균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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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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