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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왕가위 감독의 영화들이 리마스터링되어 나오고 있다. <해피투게더>, <중경삼림> 등 이 감독의 명작들이 많지만, 나의 최애 영화는 <화양연화>다.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시간을 뜻하는 말, 누구나 그 순간을 목 빠지게 기다리거나 가슴 저리게 그리워하는 그 찬란한 시절 말이다.

게다가 시각을 압도하는 영상미와 없는 사연마저 떠오르게 만드는 매혹적이고 음울한 음악. 몸에 딱 맞는 치파오를 입고 국수 통을 들고 걸어가기만 해도 '숨멎'인 장만옥과 눈빛으로 연기 하는 양조위의 등장만으로 관객은 이미 그 둘이 뭘 하든 용서할 마음의 준비가 끝나 버린다.

<화양연화>를 보는 세대별 감상 차이
 
 화양연화 한 장면.
 화양연화 한 장면.
ⓒ 앤드플러스미디어웍스, 디스테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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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운 건 (나만 놀랐는지는 모르지만) 주인공 양조위와 장만옥이 상대의 배우자가 바람을 피우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서로의 상처를 보듬다가 사랑에 빠지는 스토린 줄 알았는데, 그게 양조위의 왜곡된 기억일 수 있다는 해석! 그러고 보니 모든 게 심증일 뿐 명확한 건 없었다.

'오늘은 집에 안 들어갈래요'라고 말하는 장만옥은 과연 집에 안 들어갔을까. 엔딩에 등장하는 장만옥 아이 아버지는 누구일까? 양조위가 앙코르와트 구멍 난 벽에 대고 속삭이고 봉인해 버렸던 비밀은 무엇이었을까? 생각해보면 애만 태우다 끝나버린 사랑이 뭐 그리 대단한 비밀이라고 벽에 대고 속삭였을까? 

어쩌면 이런 모호함이 이 영화가 오래 사랑받는 이유가 아니었을지. 내용의 불확실성 때문에 상상의 여지가 많다는 점, 그리하여 '알흠답게' 포장할 수 있다는 점. 사랑은 아름다워야 마땅하니까. 다른 불륜 영화처럼 물불 안 가리고 직진했거나, 상간남이나 상간녀를 찾아가 복수하는 영화였다면 20년 동안 꾸준히 회자 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두 남녀 주인공은 '우리는 그들과 다르니까요' 하며 뜨겁게 타오르는 마음을 견딘다. 이 영화는 보는 사람의 연령대에 따라 반응이 조금씩 다르다. 20대까지는 이 감정선을 이해하기 어렵다. 주인공에 나를 대입하기보다는 부모를 대입하기 쉽기 때문이다. 부모의 사랑(불륜)이 내게 행복일 리 없으니 이게 뭐냐고 불평을 터트린다.

30대는 긴가민가해진다. 이해할 것도 같지만, 이해했다가는 내 배우자가 저럴 수 있으니 애써 외면하거나, 뻔한 불륜 이야기로 치환하기 쉽다. 내 배우자는 나의 것이라는 집착이 남아 있을 때다(오십이 넘으면 기억력 감퇴로 모든 게 좀 흐리멍덩해진다).

자, 이제 사십 대 이후부터 밑장 빼고 얘기해봅시다. 어떠신가요? 이들의 마음에 공감이 가지 않으신가요? 아니, 공감 간다고 다 불륜을 저지르자는 건 아니잖아요. 뉴스에서 아무리, 불륜카페가 성행한다고 해도 딴나라 이야기 같잖아요. 그저 저럴 수도 있겠다는 마음만 들 뿐. 일종의 대리만족이랄까.

그리고 우리 앞에 장만옥 같은 여인이, 양조위 같은 남인이 나타날 리가 없잖아요. 중년이 되면 다 배 좀 나오고 머리도 숱도 푸슬푸슬, 팔자주름에 눈 밑에 지방이 불룩하고 막 그렇잖아요.

이번 생의 남은 소확행
 
ⓒ elements.enva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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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나는 뿌리염색 하러 동네 미용실에 갔다가 웃픈 현실을 보았다. 대도시의 큰 헤어숍에는 보조 미용사가 와서 가운도 갈아 입혀주고 머리하는 동안 발 마사지 기계도 대 준다는데, 우리 동네 미용실은 열 평도 안 되는 소규모에 50대 여자 원장님 한 분이 하다 보니 그런 기계 없어도 발 디딜 틈 없고 웬만한 건 다 셀프다.

틀어놓은 티브이에서는 드라마 결사곡(결혼 작사, 이혼 작곡)이 재방되고 있었다. 얼마 전, '암세포도 생명이다'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해 전 국민을 충격에 빠트린 일명 막장계의 대모 임성한 작가님이 쓰신 작품으로 이 드라마에서는 세 쌍의 부부가 나오는데, 남편 세 명 모두 바람 피우는 내용이다. 내 옆에서 머리에 보자기를 쓰고 드라마를 보던 50대 중년의 여인 둘의 대화.

손님1 : "남자들은 지들은 늙었으면서 하나같이 젊고 이쁜 것들하고 바람피워."
손님2 : "보기 좋구만 왜? 그럼 늙은 것하고 바람 피우면 좋겠어? 나는 누가 좋다는 사람도 없지만, 있어도 못 만나."

손님1 : "왜 못 만나. 난 이러고 산 게 억울해 죽겠구만."
손님2 : "옷 입어도 부끄러운 몸뚱아리, 옷 벗고 누구한테 보여줘? 다 늘어져서 누가 볼까 무섭다."

손님1 : "불 끄면 보이냐?"
손님2 : "다 보여."

원장님 : "암막 커튼이 왜 있는데!"


나는 그만 마시던 커피를 뿜었다. 신스틸러(scene stealer) 원장님! 여기서 암막 커튼이 왜 나와! 현실이 이러할지니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서 대리만족하고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게 이번 생의 남은 소확행인 것이다.

석양을 등지고 노부부가 손잡고 걸어가는 모습은 여전히 가슴 찡하지만, 이 또한 단편적인 모습이라 내막에 어떤 사연이 있는지 모르니 마냥 감동일 수 없다. 언제부터인지 서로 배우자와는 세 마디 이상 섞으면 이상하게 가슴이 울렁거리고 답답해져서 티브이만 보거나 각자 휴대폰만 보는 시간이 길어진다. 어찌 그리 남의 남자(여자)는 그리 말이 잘 통하고, 내 남자(여자)는 그리 말이 통하지 않는 것인지. 그 남자도, 그 여자도 다들 집에서는 불통의 아이콘일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한 남자로, 한 여자로 사랑했던 기억을 지운 채 아이 키우고, 집 대출금 갚느라 달리다 보니 어느새 중년이 되었다. 이제 청춘이 끝났다는 느낌, 내게 다시는 사랑이 오지 않을 거라는 절망이 서성이는 마음을 만든다. 그런데, 이러고 사느라 억울한 손님1도, 드라마 속 불륜의 주인공들도 이래서, 혹은 저래서 더 행복한 것 같지는 않다. 그만큼 져야 할 무게가 있는 거니까.

그렇다면 선택과 감당의 문제인데. 한 번뿐인 인생에서 한 번의 선택 안으로 날 구겨 넣어야 하는 건 확실히 무리가 있다. 하물며 가위바위보도 삼세판인데 말이다. 제도적으로 청년, 중년, 노년 단계마다 누군가를 만날 수 있다면 모두에게 대안이 될 수 있으려나? 그나저나 암막 커튼은 공부하는 아들, 늦잠 자라고 설치했는데 이런 다양한 용도가 있었다니. 세상 참, 배울 게 많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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