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인조 컬링(왼쪽)과 믹스더블 컬링. 두 세부종목을 한국 선수들만이 오갈 수 없었던 규정이 삭제되었다.

4인조 컬링(왼쪽)과 믹스더블 컬링. 두 세부종목을 한국 선수들만이 오갈 수 없었던 규정이 삭제되었다. ⓒ 박장식


컬링 선수들의 대회 출전 자유는 물론 컬링 종목의 저변화를 막는다는 비판을 받아온 고유 규정이 사라진다.

대한컬링연맹은 지난 21일 연맹 운영규정을 개정해 오는 7월 열리는 믹스더블 한국선수권대회부터 4인조 컬링팀에 등록된 선수의 믹스더블 중복 등록을 허용하기로 했다. 4인조 컬링팀에서 활동하는 선수들이 마음에 맞는 다른 팀의 선수와 함께 믹스더블 팀을 꾸릴 수 있는 것이다. 

지난해까지만 하더라도 4인조 컬링팀에 등록된 선수는 믹스더블 선수로 중복 등록을 할 수 없었다. 배드민턴, 테니스 등의 종목으로 비유하면 혼성복식으로 뛰는 선수가 단식 종목에는 출전할 수 없었던 것과 비슷한 봉쇄조항이었다. 그러다 결국 대한컬링연맹도 다른 국가들의 추세에 발맞추어 해당 규정을 삭제하기로 했다.

해외에서는 가능한데, 한국은 못했다

해외에서는 믹스더블과 4인조 컬링을 함께 병행하며 올림픽에도 출전한 케이스가 적지 않았다. 2018년 열렸던 세계선수권대회에는 평창 동계올림픽 당시 남녀 대표팀으로 뛰었던 후지사와 사츠키와 야마구치 츠요시 선수가 함께 팀을 이뤄 출전했고, 스웨덴의 안나 하셀보리도 세계선수권 믹스더블 메달이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4인조 경기에 뛰었던 선수가 2인조 팀으로 뛰지 못하는 규정 탓에 믹스더블을 전업으로 하는 선수들만이 국내 대회나 국제 대회에 출전할 수 있었다. 물론 믹스더블 전업 선수들을 육성하는 정책 덕분에 2018 세계선수권에서는 4강까지 오를 수 있었다. 

문제는 국내에 믹스더블을 전업으로 하는 선수들이 많지 않은 데다, 믹스더블 컬링 선수들의 실업팀 내 입지 등이 4인조 선수들에 비해 불안하다는 것이 계속해서 발목을 잡아왔다는 점이다. 더욱이 현장의 선수들이 믹스더블 전향을 꺼리는 현상까지 발생해, 전력을 강화하기 어려운 면이 있었다.

평창 동계올림픽을 목표로 팀을 꾸렸던 당시 강원도청의 김지선-이예준 조는 한국선수권에서 출전이 불발되자 팀을 해체했다. 올림픽에 출전했던 이기정 선수도 올림픽 이후 4인조로 전향했다. 2019년부터 국가대표를 해왔던 성유진 선수도 국가대표 자리를 내려놓는 결단까지 하며 4인조 컬링으로 전향했다.

이러한 상황이 지속된다면 소수의 믹스더블 실업팀만이 운영될 수 있기에, 믹스더블 컬링의 미래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컬링계 내부에서도 적지 않았다. 결국 일부 믹스더블 전업 선수들의 강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이번 연맹 이사회를 통해 해당 규정을 고쳤다는 것이 연맹 측의 설명이다.

김용빈 대한컬링연맹 회장은 이번 규정 변경에 대해 "남녀 선수들이 4인조에서 국가대표가 되지 못했더라도, 호흡이 맞는 선수와 함께 믹스더블에서 좋은 성과를 낸다면 국가대표가 될 수 있는 방안"이라면서, "믹스더블 종목에서도 좋은 기량을 펼치는 스타 선수가 배출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대다수 선수들 믹스더블 경력 있다... '베이징' 기대 커져

재미있는 것은 해당 규정으로 득을 볼 '스타 선수'가 많다는 것. 만일 베이징 올림픽 대표 선발전에서 미끄러져 4인조 대표팀으로 나가지 못한다 하더라도, 믹스더블 팀을 꾸려 좋은 성과만 내면 베이징 동계올림픽에 출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특히 믹스더블 경력이 많은 선수들도 적지 않다. 현재 국가대표팀인 강릉시청 '팀 김은정'의 김경애, 김영미, 김선영, 김초희 선수는 루키 시절 믹스더블 대회에 출전했던 전력이 있다. 그 중 2015년과 2016년 회장배 대회에서는 김경애 선수가 성세현(현 경북체육회) 선수와 팀을 꾸려 2연패를 달성하기도 했다.

전북도청의 송유진 선수도 경북체육회 시절 믹스더블 선수로 큰 인기를 끌었고, 이지영 선수 역시 대학 시절 믹스더블 팀으로 활동해왔다. 현재 경기도청에서 뛰는 설예지 선수나 박유빈 선수도 실업 입단 전 믹스더블 선수로 출전했던 전력이 있다.

남자 선수들도 마찬가지다. 강원도청의 이기정 선수와 성유진 선수는 믹스더블 선수로 국가대표를 역임하기도 했고, 경북체육회의 성세현, 전재익 선수도 믹스더블종목에서 좋은 성적을 내왔다. 서울시청의 김산 선수 역시 군 전역 직후 경기도연맹에서 믹스더블 선수 생활을 하며 전국동계체전 우승의 기록을 쓰기도 했다.

다만 아쉬운 점은 선수들이 지역 시도 연맹을 벗어나 팀을 꾸릴 수 없다는 것. 강원도청 선수와 강릉시청/춘천시청 선수가 함께 믹스더블 팀을 꾸릴 수는 있어도 전북도청 선수가 경북체육회 선수와 믹스더블 팀을 꾸릴 수는 없다. 따라서 해당 규정의 신설에도 불구하고 '최강의 팀'을 구축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연맹 관계자는 "선수들의 소속이 다를 때 생겨나는 복잡한 문제가 있는 탓에 이번 연맹규정 개정에 소속 지역을 초월해 믹스더블 팀을 결성할 수 있다는 개정안을 넣지 못했다"라면서도 "점차 규정이 개선될 여지는 있다"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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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교통 기사를 쓰는 '자칭 교통 칼럼니스트', 그러면서 컬링 같은 종목의 스포츠 기사도 쓰고,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도 쓰는 사람. 그리고 '라디오 고정 게스트'로 나서고 싶은 시민기자. - 부동산 개발을 위해 글 쓰는 사람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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