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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나 노력 자체를 알아채 주는 세심한 관심도 칭찬이 될 수 있다.
▲ 알아챔 존재나 노력 자체를 알아채 주는 세심한 관심도 칭찬이 될 수 있다.
ⓒ 김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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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에게 아끼지 않고 칭찬을 해주는 편이다. 꾸지람보다 칭찬이 효과가 있다고 생각한다. 부정의 말보다 긍정의 말을 더 들려주고 싶은 마음도 있다. 그런데 남편이나 스스로에게는 칭찬에 박하다. 매일이 비슷하고 칭찬 거리는 별로 없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는 거고, 그나마도 제대로 못 하고 있다 여겨질 때가 많다. 아이에겐 쉬운 칭찬이 어른에겐 쉽지 않다. 하지만 내 안에도 칭찬받고 싶은 마음은 분명히 존재한다.

지난주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받아온 프로그램 활동지의 주제는 '칭찬'이다. '이런 칭찬이 듣고 싶어요'라고 적힌 종이 보드에는 가족들의 이름을 적고 그 사람이 듣고  싶어 하는 칭찬을 쓰는 칸이 있다. 보드를 펼쳐 놓고 아이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떤 칭찬이 듣고 싶어?" 하고 물었지만 "잘 모르겠어" 하는 시큰둥한 답이 돌아왔다. 나 또한 듣고 싶은 칭찬의 말을 생각해보았는데 선뜻 떠오르지 않았다.

아이 충치 치료를 위해 치과에 다녀왔다. 두 번째 치료라 첫 번째보다 더 겁이 났나 보다. 안 하겠다고 완강하게 버티는 아이를 간신히 달래 치료대에 눕혔다. 막상 치료가 시작되자 아이는 잘 참아냈다. 무사히 치료를 마치고 씩씩하게 잘 버텨서 멋있었다고 칭찬해주었다. 어린이집에서 받아 온 칭찬 보드가 떠올랐다. 텅 비어 있던 자리에 '용감하게 치과 치료를 받았어요'라고 적어주었다.

그렇게 한 줄 적고 나자 다른 칭찬 거리가 줄줄이 떠올랐다. 지난밤, 놀이하고 장난감을 정리한 일, 야채 반찬 골고루 먹은 일도 칭찬받을 만했다. 며칠 전 병원에서 코로나 검사와 피검사를 잘 받은 것, 엄마가 밥하고 상 차릴 때, 빨래 널고 설거지할 때 도와주는 것도 그랬다. 창문 닫아 달라는 부탁을 들어주고, 그림 그릴 때 여러 가지 색을 멋지게 섞어 쓰는 것도 칭찬해주고 싶었다. 아이에겐 처음해보는 일이거나 평소와는 다른 마음을 써야 하는 일이었으니까.

사소한 것에서 시작하자 쉬웠다. 칭찬할 거리는 많았다. 아이의 칸을 가득 채우고, 엄마와 아빠 자리로 넘어갔다. 술술 채울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또다시 막혔다. 어른에게는 처음이거나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 묵묵히 넘겨야 하는 일이 된다. 아이에게는 격려의 의미로 칭찬을 하기도 하지만 어른이라 생각하니 남들보다 잘하는 것, 뭔가 특별하거나 뛰어난 것을 칭찬해야 할 것 같았다. 별거 아닌 걸 칭찬하는 건 빈 수레를 흔드는 것처럼 요란해 보이기만 하니까. 남다른 노력을 들이는 일이 뭐가 있을까 생각해보았다. 밥하기, 청소, 아이 돌보기... 하지만 그런 칭찬은 달갑지 않다. 일에 나를 가두는 것 같기 때문이다.

어린이집 프로그램과 관련하여 애플리케이션이 있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되었다. 거기서 관련 동영상을 찾아보니 칭찬의 말 여섯 가지를 소개하고 있었다. "넌 참 잘 웃어, 넌 모르는 걸 잘 알려줘, 넌 인사를 잘해, 넌 정말 재미있어, 넌 용감해, 넌 이야기를 잘 들어줘." 그 중 "넌 참 잘 웃어"라는 말이 화면에서 유난히 환하게 떠오르는 것 같았다. 잘 웃는 게 칭찬이 될 수 있다니 새로웠다. 우리가 익숙하게 지니고 있는 것도 칭찬 거리가 된다는 깨달음은 칭찬에 대한 프레임을 바꾸게 해주었다.

내 마음에서 칭찬은 찬장 속에 고이 간직해둔 비싼 그릇처럼 놓여 있었다. 깨질까 봐 모셔 둔 그릇처럼 특별한 날에만 꺼내 쓸 수 있다고 생각했다. 평소와 다른 음식만 담으려다가 무엇이든 담을 수 있다는 본래 용도를 잊어버렸다. 매일 웃는 아이에게 "넌 참 잘 웃어. 네가 웃을 때마다 엄마는 행복해"라고 말해 줄 수 있다는 걸 미처 몰랐다.

내가 듣고 싶은 칭찬을 다시 생각해보았다. 엄마랑 있으면 기분이 좋아, 너랑 같이 있으면 편안해, 당신이 있으면 생기가 돌아. 이런 말들이 떠올랐다. 재능이나 능력, 성취한 일에 대한 칭찬보다는 존재 자체를 긍정해주는 말이 듣고 싶었다. 아이와 남편에게 해주고 싶은 말도 달라졌다. 너를 안고 있으면 행복해. 당신이 있으면 안정감이 생겨.

칭찬은 잘한 일을 추켜세우는 데에만 쓰는 말이 아니었다. 찬장 깊숙이 넣어두었던 칭찬이라는 그릇을 꺼내 보니 생각보다 많은 말들이 담길 것 같다. 곁에 있어서 기뻐, 손을 잡아 줘서 좋아, 함께 볼 수 있어 즐거워, 같이 걸으니 좋다... 존재나 노력 자체를 알아채 주는 세심한 관심도 칭찬이 될 수 있다. 칭찬이 상장 같은 말이 아니라 이불 같은 말이면 좋겠다. 밤마다 끌어 다 덮고 싶은 말, 수고한 당신과 나의 마음을 쓰다듬어 주는 말. 날마다 그런 말을 가슴 위에 덮고 싶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기자의 개인 블로그에도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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